탄허 스님
서천국에서 달마 스님이 중국에 오셨을 때 양무제가 물었다.
“내가 천자가 된 후 지금까지 절을 짓고 경을 만들고 탑을 쌓고 스님을 양성하기를 무수히 해왔으니 내게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이 말을 듣고 달마 스님이 대답했다.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소무공덕(所無功德)].”
양무제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성인의 법에 제일가는 일입니까?”
“확연하여 체성(體性; 본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양무제가 다시 물었다.
“자신을 대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달마 스님이 말했다.
“불식(不識; 알지 못함)입니다.”
양무제는 달마 스님과의 대화에서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자 마음속으로 몹시 언짢고 불쾌했다. 실제로 양무제가 절 짓고 탑 쌓은 것이 복덕은 되지만 공덕은 될 수 없다. 공덕은 오직 자성(自性)에 있기 때문이다. 그 후 달마 스님은 소림굴에서 면벽을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는 광통 율사와 보리유지 선사가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두 선사는 달마 스님의 소식을 전해 듣고 질투와 시기가 생겼다. 그래서 달마 스님의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은 부당하다 하면서 이는 불교의 정법이 아니라고 참소를 했다.
이런 연유로 양무제는 달마 스님에게 사약을 내리게 된 것이다. 달마 스님이 사약을 받고 죽은 후 웅이산에서 장사지냈다.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해서 묘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달마가 죽기 전 양무제의 신하 송운은 인도의 사신으로 간 탓에 달마 스님이 사약 받고 죽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3년 후 귀국하다가 촉령(중국과 인도의 경계) 도중에서 달마 스님을 만났다. 당시 달마 스님이 주장자 끝에 신 한 짝을 달고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송운이 달마 스님께 물었다.
“스님, 어디 가십니까?”
그러자 달마 스님이 대답했다.
“내 인연이 다해서 고국으로 가노라.”
그러면서 양무제에게 문안 올리라고 말하였다. 송운이 이 사실을 양무제에게 전했다.
“촉령 도중에서 달마 스님을 친견했는데, 대왕께 꼭 문안을 올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무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이미 3년 전에 사약을 받고 죽은 달마 스님을 웅이산에서 장사까지 치렀는데, 무슨 말이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송운이 답했다.
“어찌 감히 신하가 군왕을 속일 리가 있습니까?”
이에 양무제가 하도 이상하고 괴이해서 웅이산 달마 스님의 묘를 파보니 오직 빈 곽에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 달마 스님은 생사가 없는 소식을 보여 주고 신 한 짝을 지팡이에 달고 인도로 떠났던 것이다.
출처 : 탄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