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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주)나라의 周公(주공)은 큰 집을 曲阜(곡부)에 下賜(하사)받아 오랫동안 살았는데, 주공 단(旦)이 아니고서는 누가 그 거대한 집을 經營(경영)할 수 있었으랴. 주공이 천자에게 封地(봉지)를 하사받아 노나라 都城(도성)인 곡부에 집을 지었는데, 이는 오직 주공이 어질었던 까닭이다. 주나라 주공의 큰 업적을 기리는 말이다. 주(周)나라 창업 군주인 무왕(武王)이 일찍 죽고 9세 밖에 안된 어린 아들 成王(성왕)이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이에 주공(周公)은 자신이 충분히 어린 조카를 내몰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조카를 엄격한 군신의 예를 갖춰 지극 정성으로 섬긴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키는 자신의 동생들인 관숙과 채숙을 직접 처단시키게 되니 이때부터 비로소 주(周)나라의 기틀이 다져지게 되었다. 이러한 업적이 매우 컸기 때문에 주공은 노(魯)나라의 제후로 봉해지게 되고 그나라의 도읍을 곡부에 두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모두 주공이 어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니 만약에 주공이 훌륭한 인물이 아니었던들 어느 누가 이처럼 큰 기업을 영위할 수 있겠느냐 -는 말이다.
[예기-明堂位(명당위)]에는, "성왕(成王)은 주공(周公)이 천하에 공로가 있으므로 주공에게 곡부 지방을 다스리게 하니 그 지역은 사방 칠백리요 천승(千乘)의 수레가 있었다. 노공에에 명하여 대대로 천자의 禮(예)와 樂(악)으로써 주공의 제사를 치르도록 명하였다." 라는 말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