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ttps://music.youtube.com/watch?v=ii8XNeUSbtM&feature=share
2. 또는 https://www.google.com/url?sa=i&url=https%3A%2F%2Fwww.youtube.com%2Fwatch%3Fv%3Dii8XNeUSbtM&psig=AOvVaw3FN8-Q-rhCx_0IUVEXeoh3&ust=1585366457816000&source=images&cd=vfe&ved=0CAIQjRxqFwoTCJCeyrfcuegCFQAAAAAdAAAAABAD
이 노래는 박정희 군부 독재가 판을 치던 암울했던 1970년대에 지금은 변절한 김지하 시인이 가사를 쓰고 김민기가 곡을 써서 민주화를 바라던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어졌던 운동가요이다. 노래 가사가 의미하듯이, 독재로 국민을 억압하는 군부 정치를 배경으로 깔고, 이에 침묵하는 종교와 종교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특히 ‘금관’은 금 도금을 한 감실을 상징하는 상징어로서 ‘금관의 예수’는 독재에 침묵하는 가톨릭 교회를 에둘러 풍자한 이름이다.
노래의 가사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어 겨울 한 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거절당한 손길들의 이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로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가 어디 계실까
(기울임체 처리된 부분은 아이들이 부르는 부분. 볼드체 처리된 부분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김민기가 무덤덤하게 말하는 부분)
이 노래는 같은 이름의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대한민국에서 최다 상연된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박정희의 긴급 조치 독재 정치가 낳은 저항 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내일(3.28) 강론을 쓰느라 예레미야가 탄압받는 독서(예레 11,18-20)와 예수님께서 초막절 축제에서 생명의 물을 줄테니 마음껏 마시라고 외치신 복음을 묵상하다가 떠올린 노래가 하필 이 '금관의 예수'였다. 지금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과거의 독재부역 세력의 저항을 받고 있는 역전 상황인데, 교회는 달라졌을까? 아니면 그대로 금관의 예수만을 경배하고 있을까? 적폐세력과 싸우며 공동선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을 교회는 격려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 노래가 만들어질 무렵과 똑같이 금관의 예수 뒤에 숨어 있을까? 박해시대 무렵에는 순교도 불사하고 독재시대에는 이런 노래로 저항도 했는데, 박해와 독재에 비하여 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평화의 시대에도 예수님의 모범을 뒤따르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총선 정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친 이 시기에 들었던 생각이다.
첫댓글 예, 변절자의 대명사인 유다는 배반 후 자살했는데, 김지하, 김문수, 심재철, 이런 사람들도 이해가 안가지만, 박찬종, 이문열, 김동길 이런 사람들이 왜 문재인대통령을 하야, 혹은 사형해야 마땅하다고 팻말 들고 외친 그 속내를 모르겠더군요. 반대를 해도 납득이 가는 행위를 했음 좋겠어요. 진중○은 백번 살펴봐도 '질투에 사로잡힌 관종' 이 맞겠더라요.
동감입니다.
세상에나.....저도 이 노래가 보름전부터 계속 맴돌아 페북에 이 노래를 올리려 했었는데......저는 금관을 금테두른 감실로 이해하지 않고 머리에 쓰신 가시관에 대비되는 금관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물욕에 물든 우리가 예수님 머리에 금관을 씌우고 있다는 의미로요.....예수님을 자기 입맛에 맞게 활용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