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길을 묻거들랑
김명희
노란색, 초록색, 빨강, 보라, 파랑, 색색의 길들이 마치 색실을 꼬아 놓은 듯 이리저리 꺾이고 만나며 복잡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으면 어지럽다. 그만큼 갈 곳도 많고 가야할 곳도 많다. 저 많은 길 중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이고 난 어디로 가야 할까.
예전에 나들이를 하려면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도 차고 자드락길을 걷다 돌부리에 채이기도 했지만, 그저 길을 따라가면 되었다. 하지만 이젠 하늘 길, 땅속 길까지 생기며 에움길을 전부 지름길로 만들었다. 몸은 덜 힘든데 머리가 힘들다. 까딱 잘못하면 오히려 되짚어 돌아가야 하는 에움길이 돼버리고 만다.
9호선을 타고 여의도역에서 막 내려 5호선으로 갈아타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한 젊은이가 뛰어오며
개화 역에 가려면 어디서 타야 돼요?하고 묻는다.
아, 이거요.
무심결에 지금 막 내가 타고 와서 내린 지하철을 가리키며 대답을 했고 그는 떠나려는 차를 타기 위해 뛰어 내려갔다. 순간, 아차 싶었다.
저건 개화에서 온 건데.하고 얼른 돌아보았더니 열차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못 탔겠지.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영 찜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알려준 내 한마디에 엉뚱한 곳을 헤매면 어쩌나 싶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다시 계단을 서둘러 올라갔다. 아까 그 청년이 급하게 내려오더니 건너편 계단으로 뛰어오른다. 아마도 누군가가 제대로 알려준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누군가 어디로 가는 길을 묻든 섣부르게 대답하지 말자. 가벼운 한마디에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섞갈리기 쉬운 홀림 길을 헤매게 만들 수도 있다. 엉뚱한 곳을 헤매 일 그 사람은 어찌할 건가.
집으로 오는 길, 여의도에서 아까와는 반대로 9호선으로 갈아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으로 가려면 여의도에서 당산을 지나 선유도를 거치는데, 샛강 역을 지나고 있다. 지하철을 잘못 타는 바람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허겁지겁 노들 역에서 내려 되짚어 타고 집으로 왔다. 다행히 얼른 알아챘기에 멀리 안 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인생길을 가다 보면 잘못 간 길인 줄 알았을 때 얼른 바꿔 타야 하는 것을 끝까지 가보자 미련을 떨 때가 있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길만 멀어지는데.
한 번은, 처음 가는 곳을 가야 하는데, 어느 쪽에서 어느 것을 타야 하는지 헷갈렸다. 어림짐작으로 탔다가 다시 갈아타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바로 가르쳐 준다. 아니, 이렇게 쉬운 것을?속으로 혼자 웃었다. 물어보면 이리도 간단한 것을.
북극 탐험을 할 때, 물론 나침반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북극성을 바라보고 걷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로지 북극성만 바라보고 가면 정확히 목적지에 갈 수가 없단다.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는 중간중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네 인생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지하철을 잘못 타 엉뚱한 방향으로 가듯, 전혀 다른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다.
누가 길을 묻거들랑, 잘 살피고 알려주자. 가다 또 물어보면서 가라는 그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