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역구의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가지고 대선의 향방을 예측해 본다는 건 지나친 비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야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민심의 변화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성남시 분당을’ 4.27보궐선거를 대선과 연결 지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작은 강남 분당을'이 갖는 정치적 의미
'분당을' 선거구가 갖고 있는 특성 또한 대선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여지를 던져 줍니다. ‘분당’은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이지만 완전히 서울생활권에 속한 지역입니다. 게다가 강남 3구에 필적할 만큼 중산층과 지식인층이 두터운 곳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해 한나라당 지지가 높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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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에게는 넘 보지 못할 ’여당의 성역’이었던 이 지역에 변화가 찾아 온 건 작년 지방선거 때입니다. 야당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성남시를 ‘장기 통치’해오던 여당 소속 이대엽 전 시장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당하자 민심이 여당 후보를 버리고 야당 후보를 선택한 겁니다.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여당의 '성역'인 분당구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견줄만큼 선전을 해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성남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한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분당을’ 싸움에도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입니다. 내년 말 대선을 겨냥한다면 ‘분당을’ 쟁취는 야당에게 엄청난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의 보수 중산층 심장부에 야당의 깃발을 꼽는다는 건 대단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대선용 선거 도구로 활용가치가 높습니다.
여당도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강남’ 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을 두고 벌이는 여야간의 싸움에서 부담스러운 쪽은 되레 여당입니다.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엄청난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여당의 '아성'에서 벌어지는 전투, 부담스러운 건 야당이 아닌 여당
한나라당은 정운찬 전 총리나 강재섭 전 대표 같은 거물급을 후보로 내세워 전략지역이 돼 버린 분당을 여유 있게 사수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싸움이 되려면 야당 역시 거물급 대항마를 내세워야 한다는 판단에 손학규 대표의 이름이 계속 거론돼 왔습니다. 하지만 ‘여당의 아성’에서 야당의 대표가 출사표를 던지는 건 큰 모험입니다.
장고를 거듭한 손 대표가 30일 4.27재보선에 성남시 분당을 지역구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손 대표의 출마로 ‘분당을’은 4.27재보선의 최대 격전장이 됐습니다.
손 대표의 이번 모험은 자신의 숙제를 풀기위한 승부수로 보입니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낮은 지지율과 당 장악력 부족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대선까지 버티기 어려운 형편인데다가 야권 후보 단일화에서 참여당 유시민 대표에게 밀리는 것 아니냐는 당내 위기감도 확산돼 왔습니다. 이렇다 보니 손 대표로서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가 절실히 필요했겠지요. 결국 ‘분당을’을 사활을 건 격전지로 삼은 셈입니다.
손학규 대표 '분당을' 출마 선언, 그 배경은?
손 대표가 ‘분당을’ 출마를 결심하게 된데에는 중산층까지 현정권을 불신하고 있다는 최근의 정치적 상황이 고려됐을 겁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산층의 실망은 수도권 여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남경필, 나경원, 정태근 등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 태반은 ‘강남 3구까지 야당에게 다 내어 줄 판’이라며 다음 총선을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내년 총선이 끝나면 19대 국회는 여소야대가 될 거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여당내의 파열음도 출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공천을 신청한 강재섭 전 대표와 박계동 전 의원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고, 정운찬 전 총리를 전략공천하려는 당 지도부의 움직임에 강 전 대표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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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상대인 정 전 총리의 출마가 불투명해진 것도 출마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최근 불거진 ‘신정아 스캔들’로 구설수에 오른데다가 동반성장위원장 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하는 등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정 총리입니다. 여당의 출마 권유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입니다. 설령 출마 한다 해도 파급력이 크게 떨어지겠지요.
손 대표에게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습니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덕택에 성남시 사정을 잘 안다는 점과 아직 '인맥'이 남아있다는 건 플러스 요인입니다. 그러나 2007년 민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한나라당 소속이었다는 과거는 한나라당 강세 지역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 민심이 한나라당에게 불리한 상황인 만큼, 손 대표의 ‘한나라당 과거’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발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손 대표의 '모험', 먹혀든다면?
손 대표가 ‘분당을’의 혈전에서 이긴다면 승리의 의미와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분당을’을 ‘작은 강남’이라고 부릅니다. 역대 선거 결과를 봐도 왜 여당이 ‘분당’을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분당구가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야당이 지역구를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여당 독점 현상은 지방선거에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역대 성남시장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대패하게 된 원인은 '분당구'에 있습니다. 여당은 유권자수가 성남시의 다른 두 구보다 두배나 많은 분당구에서 야당 후보와 30% 정도 큰 격차를 벌이며 압승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6.2선거 때 전례가 깨지고 맙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여당의 아성'인 분당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불과 6% 차이까지 추격하는 선전을 벌이며 당선을 거머쥐었습니다. 인권변호사이며 시민운동가인 이 시장이 ‘경기도의 강남’에서 여당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낸 겁니다. '분당을'에 처음으로 야당 깃발이 꽂힌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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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표가 '분당을'에서 승리한다면 국회의원과 단체장 모두 야당 소속이 돼 사실상 민주당이 분당을 접수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분당 접수’는 대단한 상징성과 파급효과를 예고합니다. 분당과 인접한 송파, 강남, 서초 등 한나라당 ‘성역’의 표심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세가 강한 인근 수도권 지역까지 파장이 미칠 것입니다. ‘여당 몰표 지역’이 야당으로 배를 갈아타는 현상이 수도권 곳곳에서 일어나겠지요.
'분당을' 보궐선거, '작은 대선'으로 보는 이유
차기대선의 최대 승부처는 수도권입니다. 호남은 여전히 야당의 텃밭으로 남을 테고 충청 민심은 세종시와 과학벨트에 대한 실망 때문에 여당에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입니다. 호남 보다 유권자수가 많아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온 영남지역도 여당에게 골칫거리입니다. 여야 대권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변수가 달라지겠지만, TK와 PK로 갈라진 영남에게 예전과 같은 수준의 충성심은 기대할 수 없게 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최근 PK지역에서 야당의 성장은 놀랍습니다.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가 40% 득표를 하고, 경남지사에 야당 후보가 당선 되는 등 ‘노풍’의 힘이 적지 않게 일고 있는 지역입니다. PK 표심이 여당이 아닌 야당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경쟁 구도에서 하나를 잃으면 상대와 둘 만큼 차이가 벌어집니다. 여당의 아성 가운데 수도권 몇 개 지역이 야당으로 이탈하게 된다면 여당의 손실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블딥' 현상에 빠져들게 될 겁니다. 이런 것을 모를 여당이 아닌 만큼 죽자 사자 분당을 수성하려 하겠지요. ‘분당을’을 ‘예비 대선’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분당대전’이 시작됐습니다. 여당이 ‘분당을’을 놓치면 강남 3구와 수도권 아성이 흔들리게 될 것이고, 야당이 ‘분당을’을 손에 넣는다면 대선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단순한 재보선 선거가 아닙니다. 지키느냐 뺏느냐의 혈전이 분당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외의 결과 나올 수 있는 분위기, '분당대첩'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분당을'이 손 대표의 사지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만 그리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분당 대첩'을 일구어 내지 못한다 해도 어느 정도 선전을 한다면 야당에게 큰 수확이 될테니까요. 강남 민심도, 바닥 민심도 정권 초와는 많이 다릅니다. 최소한 '선전' 정도는 가능할 것이고, 누가 여당 후보로 나설 것인가에 따라 예상외의 '대승'도 기대해 볼만 합니다.
손 대표가 ‘분당혈전’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개인적인 위상이 크게 제고되는 것은 물론 정권교체의 중요한 고비를 하나 넘게 되는 셈이 됩니다. 별 다른 이벤트가 없는 야당에게 손 대표의 ‘분당을’ 출마는 큰 흥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비겁하게 분당에 출마 안하고 강원, 김해에 가서 표 달라고 한들 대의명분이 있겠느냐”고 말한 손 대표. ‘분당을’ 출마는 고뇌에 찬 결정이겠지만 정권교체를 바라는 다수의 국민은 이번 결정을 신선한 도전으로, 시의 적절한 결단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