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萬重, <本地風光>(본지풍광), <<西浦漫筆>> 下
김만중, <진실의 모습>
원문:
禪家有 本地風光本來面目之說 此喩最切
今有愛楓岳者 廣聚圖經 精加考證 抵掌而談 內外峯壑 歷歷可廳 而身未賞出興仁門一步 則 所見者 卷裡風光紙上面目 只與不見山者談論 若對正陽住持僧 則立敗矣
若有人 從東海路上 望見外山一峯 則 雖非全體 亦不可謂所見非眞山 徐花潭近之
又有人 等是圖經上所見 而其人素俱惠性 能識丹靑蹊逕 文字脈絡 不滯於陳迹 不眩於衆說 往往想出山中珍景 如在眼中 此雖非斷髮令上所見 世無眞見楓岳者 則可謂推以善知識 張谿谷是也
偏左晦塞 得此兩人 大非容易 進乎此 則浴沂弄環矣
李白洲 哭谿谷詩曰 幷世誰爭長 權時最得中 片言遺物則 萬里入神通
읽기:
禪家有(선가유) 本地風光本來面目之說(본지풍광본래면목지설)하니 此喩最切(차유최절)이라.
今有愛楓岳者(금유애풍악자)가 廣聚圖經(광취도경)하고 精加考證(정가고증)하여, 抵掌而談(저장이담) 內外峯壑(내외봉학)이 歷歷可廳(역력가청)이나, 而身未嘗出興仁門一步(이신미상출흥인문일보)면, 則(즉) 所見者(소견자)는 卷裡風光紙上面目(권리풍광지상면목)이라. 只與不見山者談論(지여불견산자담론)이고, 若對正陽住持僧(약대정양주지승)하면 則立敗矣(즉립패의)라.
若有人(약유인)이 從東海路上(종동해로상)에서 望見外山一峯(망견외상일봉)하면, 則(즉) 雖非全體(수비전체)라도 亦不可謂所見非眞山(역불가위소견비진산)이니라. 徐花潭近之(서화담근지)라.
又有人(우유인)이 等是圖經上所見(등시도경상소견)이나 而其人素俱惠性(이기인소구혜성)하여 能識丹靑蹊逕(능식단청혜경)하고, 文字脈絡(문자맥락)에서 不滯於陳迹(불체어진적)하고, 不眩於衆說(불현어중설)하면, 往往想出山中珍景(왕왕상출산중진경)이 如在眼中(여재안중)이라. 此雖非斷髮令上所見(차수비단발령상소견)이라도 世無眞見楓岳者(세무진견풍악자)면 則可謂推以善知識(즉가위추이선지식)이니라. 張谿谷是也(장계곡시야)니라.
偏左晦塞(편좌회색)이나 得此兩人(득차양인)이 大非容易(대비용이)니라. 進乎此(진호차)면 則浴沂弄環矣(즉욕기농환의)리라.
李白洲(이백주) 哭谿谷詩曰(곡계곡시왈) 幷世誰爭長(병세수쟁장)이리오, 權時最得中(권시최득중)했도다. 片言遺物則(편언유물칙)하며 萬里入神通(만리입신통)하도다.
풀이:
“禪家有”(선가유)는 “선가(禪家)에 있다”이다. “本地風光本來面目之說”(본지풍광본래면목지설)은 “본지풍광(本地風光)ㆍ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말”이다. “본지풍광”은 “본디 그 땅의 경치”이다. “본래면목”은 “원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此喩最切”(차유최절)는 “이 비유가 가장 절실하다”이다.
“今有愛楓岳者”(금유애풍악자)는 “지금 풍악(楓岳)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풍악”은 금강산의 다른 이름이다. “廣聚圖經”(광취도경)은 “그림책을 널리 모으다”이다. “精加考證”(정가고증)은 “정밀한 고증을 보태다”이다. “抵掌而談”(저장이담)은 “손바닥을 내저으며 말하다”이다. “內外峯壑”(내외봉학)은 “안팎의 봉우리와 골짜기”이다. “歷歷可廳”(역력가청)은 “역력해 들을 만하다”이다. “而身未嘗出興仁門一步”(이신미상출흥인지문일보)는 “그러나 흥인문(興仁門, 동대문)을 한 걸음도 나간 적 없다”이다. “則”(즉)은 “곧”이다. 所見者”(소견자)는 “본 것”이다. “卷裡風光紙上面目”(권리풍광지상면목)은 “권리풍광(卷裡風光)ㆍ지상면목(紙上面目)”이다. “권리풍광”은 “책 속의 경치”이다. “지상면목”은 “종이 위의 모습”이다. “只與不見山者談論”(지여불견산자담론)은 “다만 산을 보지 못한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하다”이다. “若對正陽住持僧”(약대정양주지승)은 “만약 정양사 주지승을 만난다면”이다. 정양사는 금강산에 있는 절이다. “則立敗矣”(즉립패의)는 “나서자 바로 패배하다”이다.
“若有人”(약유인)은 “만약 어느 사람이”이다. “從東海路上”(종동해로상)은 “동해의 길 위에서부터”이다. “望見外山一峯”(망견외상일봉)은 “바깥 산 한 봉우리를 바라보다”이다. 則(즉) 雖非全體(즉수비전체)는 “비록 전체는 아니라도”이다. “亦不可謂所見非眞山”(역불가위소견비진산)은 “또한 본 것이 진짜 산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이다. “徐花潭近之”(서화담근지)는 “서화담(徐花潭)이 이와 가깝다. “화담”은 서경덕(徐敬德)의 호이다.
“又有人”(우유인)은 “또한 어느 사람”이다. “等是圖經上所見”(등시도경상소견)은 “그림책으로 본 것은 마찬가지”이다. “而其人素俱惠性”(이기인소구혜성)은 “그러나 그 사람은 평소에 지혜로운 성품을 갖추다”이다. “能識丹靑蹊逕”(능식단청혜경)은 “능히 붉고 푸른 좁은 길을 식별하다”이다. “文字脈絡”(문자맥락)은 “문자의 맥락”이다. “不滯於陳迹”(불체어진적)은 “지난날의 자취에 얽매이지 않다”이다. “不眩於衆說”(불현어중설)은 “여러 사람의 주장에 현혹되지 않다”이다. “往往想出山中珍景”(왕왕상출산중진경)은 “이따금 산중의 참다운 모습을 생각해내다”이다. “如在眼中”(여재안중)은 “눈으로 보는 것 같다”이다. “此雖非斷髮令上所見”(차수비단발령상소견)은 “이는 단발령 위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고 해도”이다. “世無眞見楓岳者”(세무진견풍악자)는 “세상에 풍악을 정말로 본 사람이 없다”이다. “則可謂推以善知識”(즉가위추이선지식)은 “곧 선지식(善知識)이라고 추대할 만하다”이다. 선지식은 많이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불교 용어이다. “張谿谷是也”(장계곡시야)는 “장계곡(張谿谷)이 이렇다”이다. “계곡”은 장유(張維)의 호이다.
“偏左晦塞”(편좌회색)은 “왼쪽으로 치우쳤으며 어둡고 막히다”이다. “得此兩人”(득차양인)은 “이 두 사람을 얻다”이다. “大非容易”(대비용이)는 “쉬운 일이 아주 아니다”이다. “進乎此”(진호차)는 “이것이 더 나아가다”이다. “則浴沂弄環矣”(즉욕기농환의)는 “곧 욕기(浴沂)이고 농환(弄環)이다"이다. “욕기”는 공자(孔子)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기분 좋아한 것을 말한다. “농환”은 구슬을 던지고 받는 놀이이며, <<장자>>(莊子)에 나온다.
“李白洲”(이백주)는 이명한(李明漢)이다. “哭谿谷詩曰”(곡계곡시왈)은 “계곡 영전에서 곡한 시에서 말하다”이다. “幷世誰爭長”(병세수쟁장)은 “같은 세대에 어느 누가 낫다고 겨루리”이다. “權時最得中”(권시최득중)은 “얼마 동안은 가장 적중함을 얻다”이다. “片言遺物則”(편언유물칙)은 “토막말에 사물의 원리를 남기다”이다. “萬里入神通”(만리입신통)은 “만 리나 신통한 경지에 들어서다”이다.
번역:
선가(禪家)에 본지풍광(本地風光)ㆍ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말이 있다. 이 비유가 가장 절실하다.
지금 풍악(楓岳)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림책을 널리 모으고, 정밀한 고증을 보태 손바닥을 내저으며 말하면, 안팎의 봉우리와 골짜기가 역력해 들을 만하다. 그러나 흥인문(興仁門)을 한 걸음도 나간 적 없으면, 곧 본 것이 권리풍광(卷裡風光)ㆍ지상면목(紙上面目)이다. 다만 산을 보지 못한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한다. 만약 정양사(正陽寺) 주지를 만나면, 나서자 바로 패배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동해의 길 위에서부터 바깥 산 한 봉우리를 바라보면, 곧 비록 전체는 아니라도 또한 본 것이 진짜 산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서화담(徐敬德)이 이와 가깝다.
또한 어떤 사람이 그림책으로 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평소에 지혜로운 성품을 갖추어 능히 붉고 푸른 좁은 길을 식별하며, 문자의 맥락에서 지난날의 자취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사람의 주장에 현혹되지 않으면, 이따금 산중의 참다운 모습을 생각해내서 눈으로 보는 것 같다. 단발령 위에서 바라본 것은 아니라고 해도, 세상에 풍악을 정말로 본 사람이 없다면, 곧 선지식(善知識)이라고 추대할 만하다. 장유(張維)가 이렇다.
왼쪽으로 치우쳐 어둡고 막혔으면서, 이 두 사람을 얻은 것이 아주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면 곧 욕기(浴沂)이고 농환(弄環)이다.
이명한(李明漢)이 장유의 영전에서 곡한 시에서 말했다. “같은 세대에 어느 누가 낫다고 견주리오. 얼마 동안은 가장 적중함을 얻었도다. 토막말에 사물의 원리를 남기고, 만리 신통한 경지에 들어섰다.”
논의:
본지풍광과 권리풍광을 구분하는 비유를 불교에서 가져와 불교에 대한 호감을 은근히 나타내면서, 유학이 권리풍광에 머무르는 잘못을 시정하고 본지풍광으로 나아간 서경덕과 장유를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고 말면 알아차리기 어려우므로, 본지풍광이 무엇인지 금강산의 비유를 들어 실감이 나게 깨우쳐주었다.
권리풍광에 머무르는 것은 금강산에 가보지 않고 어떻다고 떠드는 짓이다. 금강산에다 견준 진실과는 동떨어진 관념을 진부한 문자를 통해 이어받고 이구동성으로 받드는 것은 개탄할 만하다. 이렇게 바로 말하면 크게 반발할 사람들은 금강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여기도록 했다. 알아도 되는 동지에게만 내밀한 생각을 전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금강산에다 견준 진실을, 서경덕은 한 자락이라도 분명하게 보고, 장유는 간접적인 추론을 통해서나마 실상에 근접되게 상상했다고 했다. 철학사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어 놀랄 만한 말을 했다. 누구나 신봉하는 정주학(程朱學)의 이기(理氣)이원론에서 벗어나, 서경덕은 기(氣)일원론이 진실임을 밝히기 시작하고, 장유는 심즉리(心則理)라는 양명학(陽明學)에 의거해 진실한 삶을 추구했다는 말이다.
두 선구자의 혁신을 나란히 평가하면서, 한계점도 아울러 지적했다. 서경덕은 기(氣)일원론 기초공사를 하는 데 그쳐, 금강산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 같은 후속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장유가 양명학에 의거한 것은 대안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방편에 지나지 않으므로 금강산을 직접 보려면 기일원론과 합류해야 했다. 후대에 해야 할 일까지 제시해 김만중의 혜안이 더욱 빛난다.
“왼쪽으로 치우쳐 어둡고 막혔으면서”라고 한 데서는 조선은 중국 왼쪽에 치우쳐 있어 식견이 어둡고 막혔다는 말로 정주학 일색인 학풍을 비판했다. 그런 상황을 타파하고 서경덕과 장유가 나선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면 곧 욕기(浴沂)이고 농환(弄環)이다”는 말은 두 사람이 이룬 경지에서 더 나아가면, 기수에서 목욕을 하듯이 상쾌하고, 구슬을 마음대로 던지고 받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사상의 자유를 직접 말하는 모험을 피하고 적절한 고사를 이용했다.
이명한의 시를 들어 장유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렸다. 서경덕은 아직 어둠속에 묻혀 있었다. 서경덕의 토대 위에 임성주(任聖周)가 한 층, 최한기(崔漢綺)가 또 한 층 탑을 쌓아 금강산의 전모를 속속들이 파악한 것은 김만중 사후 한참 뒤의 일이다. 눈 어두운 사람들이 철학사를 더듬는 것을 밥벌이로 삼으면서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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