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되면 좋을까? / 이훈
‘통일’의 반대말은 뭘까? ‘분단’이나 ‘분열’쯤 될 듯. 분단, 분열은 ‘쪼개지고 갈라졌다’는 부정적 감정을, 통일은 ‘하나되고 일치한다’는 긍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니,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통일만 된다면, 긴장과 대립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유되며 온 세상에 일치와 단결의 함성이 드높아질 거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분단, 분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일사불란한 통일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칠 때 뿌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통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가려야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획일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분단’, ‘분열’을 보자. 요즘 말로 바꾸면 ‘자유’나 ‘자치’라 하겠다. 각각의 자유가, 서로의 다름이 당당히 추구되고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함께할 구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떠올라야 ‘같은 말과 피’라는 민족적·유전자적 차원보다 진일보한 통일이 가능하리라.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 분산, 더 많은 지방색, 더 많은 자치가 필요하다. 통일과 자유, 자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게 시대적 과제다. 반대말의 사이를 헤엄치며, 반대말을 뒤섞음으로써.(김진해, <‘통일’의 반대말>,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57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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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암컷과 수컷의 갈등이 가장 친밀한 관계인 엄마와 태아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흔히들 임신을 엄마와 아이 사이에 유대가 형성되는 특별한 시간으로, 육아 전쟁이 벌어지기 전 단계라고 여긴다. 태아는 아기처럼 밤새 울어 젖히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으며 부모의 골치를 썩일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신 기간을 평화로운 시기로만 본다면 이는 장밋빛 환상에 불과하다. 많은 임신부에게 생기는 튼살은 엄마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태아를 품느라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자국은 배 속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태아의 유전체와 엄마의 유전체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니컬라 라이하니, 김정아 옮김, <협력의 유전자―협력과 배신, 그리고 진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한빛비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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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타자에게 적대적 시선을 보냄으로 정신적 고향을 박탈할 때 세상은 한결 위험한 곳으로 바뀐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그려 보이는 세상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곳이다. 가상의 나라인 오세아니아는 기존의 모든 언어를 대치할 신어(Newspeak)를 제정한다. 신어는 체제의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정신 습관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신어를 만드는 이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의미를 지닌 말은 삭제하고, 언어의 2차적 의미를 제거하려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어휘가 줄어들면 사고하려는 유혹도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양함과 차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은 전체주의의 유혹에 항거하는 일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고향을 선물하는 일이다.(김기석, <어디에나 있는 고향>,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12103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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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례를 서면 무엇보다 먼저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면서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흔히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제 경험으로는 아닙니다. 남녀가 원래 다른 데다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생각이 안 맞으면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합시다. 그러면 다툴 일이 줄어들어서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앞으로 낳을 자식도 부모의 종속물이 아니라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지닌 동등한 인격체로 대접하면 양쪽이 다 편안합니다.
다른 존재인데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통일, 일심동체, 일치단결, 일사불란은 언뜻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안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부정적인 측면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만사가 대립이고 갈등인데 똑같이 하나가 되자면 강자가 약자를 억누를 수밖에 없다. 강자의 자유는 약자에게는 억압이고 차별이고 금지다.
그러므로 흔쾌하게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 차이와 갈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연대하고 협력하고 싸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자면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귀담아듣고 내게 잘못된 점이 없는지 살피는 것은 필수다. 내가 유한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관용은 이런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다(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한 신의 세상에는 ‘용서’란 말은 없을 것이다).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 꽃처럼 피어날 수 있는 바탕이다.
다른 것, 심지어 반대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품는 잡종이 살아남는다. 같은 것끼리만 어울리면 망한다는 건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진리다.(이훈, <일사불란은 위험하다>, https://cafe.daum.net/ihun/jsjy/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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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각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다른 주장을 틀렸다면서 배제하는 진영 논리, 내부에서 비판하면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총질’이라고 우기면서 쫓아내는 대통령이 그 예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삶에 정답은 없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얘기가 나오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서로 다르면서도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다. 우리가 그리는 ‘통일’은 이래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해도 좋을 엄마와 태아 사이에도 갈등, 심지어 전투라고 할 만한 사태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협력하지 못할 것은 없다.
첫댓글 동질성은 사형선고와 같다.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주는지, 심지어 완벽하게 자기 복제할 수 있는 벌레들과 식물들까지도 새로운 변이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유성생식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실들은 정말로 이상하구나!” 하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따금이라도 서로 다른 개체와 교배하는 것이 유리하거나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사실은 아주 간단히 설명된다!”
룰루 밀러, 정지인 옮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