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9.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10.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음식(āhāra)을(*1) 꿰뚫어 알고,
음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음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음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1) "여기서 ‘음식(āhāra)'은 조건[緣, paccaya]을 말한다.
왜냐하면 조건은 자기의 결과(phala)를 가져오기 때문에 음식이라 불리기 때문이다.”(MA.ⅰ.207)
11.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음식이고, 무엇이 음식의 일어남이고,
무엇이 음식의 소멸이고, 무엇이 음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입니까?
도반들이여, 네 가지 음식이(*2) 있으니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부양하고 존재하게 될 중생들을 도와줍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이 [첫 번째요],
감각접촉[觸]이 두 번째요,
마음의 의도가 세 번째요,
알음알이가 네 번째입니다.
갈애가 일어나면 음식이 일어납니다.(*3)
갈애가 소멸하면 음식이 소멸합니다.(*4)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가 음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2) ‘네 가지 음식(cattāro āhārā)'은 빠알리어로 kabaḷīkāra-āhāra, phassa-āhāra,
manosañcetanā-āhāra, viññāṇa-āhāra의 넷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각각 단식(段食) 觸食, 意思食, 識食으로 옮겼다.
그러면 어떤 음식이 어떤 것을 가져오는가?
덩어리진 [먹는] 음식은 영양소가 여덟 번째인 물질, 즉 여덟 가지 분리할 수 없는 물질을 가져온다.
이것은 입에 넣는 순간에 여덟 가지 물질을 생기게 하고,
이로 씹어서 삼킬 때에는 각각의 덩어리가 각각 여덟 가지 물질을 생기게 한다.
감각접촉의 음식은 세 가지 느낌을 가져온다. 고수 락수 비고비락수 …
마음의 의도의 음식은 세 가지 존재를 가져온다.
욕계로 나아갈 업은 욕계 존재를 가져오고 색계 · 무색계 로 나아갈 업은 각각 그 존재를 가져온다.
알음알이의 음식은 재생연결의 정신·물질을 가져온다.
(*3) “‘갈애가 일어나면 음식이 일어난다.’ 즉 이전의 갈애가 일어나므로 재생연결의 음식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일어나는가? 재생연결의 순간에 세 가지 상속에서 일어난 동일한 30가지 물질 가운데 생긴 영양소(oja)가 있다.
이 영양소는 갈애를 조건으로 생긴 취착된 덩어리 음식이다.
그러나 재생연결식과 함께한 감각접촉과 의도와 알음알이의 이 셋은 갈애를 조건으로 생긴 취착된 촉식, 의사식, 식식이다.
이와 같이 이전의 갈애가 일어나므로 재생연결의 음식이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MA.ⅰ.214)
여기서 ‘취착된’이란 ‘업에서 생긴’이란 뜻이다.
(*4) “'갈애가 소멸하면 음식이 소멸한다(taṇhā-nirodhā āhāranirodho)'
이것은 취착된 음식과 취착되지 않은 음식의 조건이 되는 갈애가 소멸하므로 음식도 소멸한다는 말이다."(MA.ⅰ.214)
12. “도반들이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음식을 꿰뚫어 알고,
음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음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음식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
13. “도반이시여, 참으로 장하십니다.”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리뿟따 존자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도반이시여,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있습니다.
14.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15. “무엇이 괴로움입니까?
태어남도 괴로움입니다. 늙음도 괴로움입니다. 병도 괴로움입니다. 죽음도 괴로움입니다.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도 괴로움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요컨대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오취온]가 괴로움입니다.
16.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입니까?
그것은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향락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5) 갈애이니,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합니다.”
(*5) “‘여기저기서 즐기는(tatra-tatra-abhinandinī)'이란
어느 곳에서 몸을 받더라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DA.ⅲ.800)
17.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입니까?
그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이라 합니다.”
18.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입니까?
그것은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라 합니다.”
19.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괴로움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