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어렵다 / 봄바다.
언니는 요즘 의사 파업에 할 말이 많다. 아들이 의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렇게 졸속으로 숫자를 정해 무데뽀로 밀고 가려 하는지 참 대통령답다며 혀를 찬다. 그가 전문의가 되려고 중간에 진료과를 바꾸느라 애쓴 것까지 합하여 17여 년을 고생한 걸 곁에서 지켜 본 이의 말이기에 뭐라 토 달기가 어색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가 편리한 대도시에서 근무를 선호하기에 지방에 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료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는 어렵다.
거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거기에 책까지 많이 읽은 조카는 한 부분에 뛰어나면 전이가 일어나 다른 부분까지 이해가 저절로 되나 의심이 들 만큼 해박하다. 섣불리 의견을 내놓았다가 그의 장황한 논리를 들을 때면 힘들어진다. 그렇지 않은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이런 정도의 머리를 가진 이들이 현재의 의사들 수준 아닐까? 그러니 저절로 선민의식이 생길 듯하다. 이러니 정부의 필수 대책에도 본인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며 이제는 교수들까지 파업에 끼어들 태세고 여느 정부 또한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했으니 그들의 세는 정말 대단한 듯하다.
요즈음 사태가 일어나면서 독일에서 의대 지원을 하는 학생들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공공의대에서 정책적으로 의사를 양성하고 있는 나라답게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학생들인지 면접에서 신중하게 고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우수하지 않아도 의사를 하고 싶어서 지원하고, 해낼 역량이 있다면 성적과 무관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길러낼 수 있어 가능한 제도인 것 같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돈을 벌려고 의사를 택하는 일은 없을 듯싶다. 조카도 절대 음감이 있어 길에서 들었던 음악은 흥얼거리며 곧바로 연주하는 아이라 집이 뒷받침해 줄만큼의 수준이 되었다면 굳이 의사의 길로 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작곡가는 못 되었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는 ‘장기하’ 정도의 작곡가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막내는 요즘 ‘밤양갱’을 하루라도 흥얼거리지 않으면 하루를 마감하지 못한다.
그가 대학에 다닐 때, 동창끼리 외국 여행을 가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그는 꿈도 꾸지 못해 안타깝다는 언니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라도 여행비를 마련해서 주려고 했지만, 남편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에 나오면 보이는 게 없을 직업을 가질 텐데, 이렇게라도 어려움을 겪어봐야 만이 그래도 다른 의사들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낫지 않을까 하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학비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것까지 친척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그도 원치 않을 것이라는 남편이 옳은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신뢰받는 몇 안 되는 의사 중의 하나라고 한다. 멀리 있지만 내 주치의도 해 준다. 바쁜 중에도 건강염려증 중증 환자인 내 불편함을 즉시즉히 해결해 주면서도, 꼭 내가 다니는 병원의 의사 말을 허투루 듣지 말고 잘 따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요즘 의사 파업은 우리나라의 의료정책과 전통적인 직업관이 한밑천 거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느 직업에도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오래 전부터 검사, 판사. 의사에게는 그들이 우수한 만큼 대접을 해 주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이 많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걸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인정하기 어렵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정복을 입은 여성이 수거차에서 내려 당당하게 쓰레기 가득 찬 통을 치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나라에서 과연 여자들이 저렇게 할 수 있겠냐며,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소리를 높였다.
아침 출근길에 듣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 대표로 현 의료 정책과 전공의들 사이에서 조율하며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러 나온 교수가 현재의 심정을 사과문으로 발표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들도 으레 겪은 일이니 그들도 무리없이 이겨내리라 전공의들에게 전혀 문제의식 없이 강요하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국민들도 동조하리라 믿었지만 그들의 준엄한 꾸짖음과 아픈 사람들이 겪을 고통에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고 하는 것을 다 듣지 못하고 내렸다. 최소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들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원래 변화는 어렵다.
첫댓글 버릇은 어쩌지 못합니다. 늦었으니 지도까지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
히히.
봄바다님의 마음 복사하여 고대로 붙입니다. 부끄러움은 게으른자들의 몫입니다.
우와. 교장 선생님의 생각이 잘 정리된 글이네요. 의대는 늘 전교 1등이 진학하는 학교라는 인식이 제게도 있어요. 정말 다방면에서 뛰어나죠.
공부는 적당히 잘하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의사가 되면 참 좋을 텐데요.
그래도 조카가 주치의니 얼마나 든든할까요?
부럽습니다.
우리 나라도 독일 같은 시스템으로 의사를 양성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의 입장이 있겠지만 아픈 사람의 안타까운 처지를 먼저 생각하며 일을 해결해 가면 좋겠어요.
의사들의 파업과 의대교수들의 사표관련 뉴스가 사그러지지 않아 한편으로 야속하면서도 관련업종에 피붙이가 있어 온전히 미워하지도 못하는 마음을 깊이 공감합니다.
조카분이 신뢰 받는 의사이시다니 다행입니다.
부디 현명하게 가닥이 잡히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