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7월11일)
🌿1919년 상해 임시 의정원과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민 의회가 합병을 결의함.🌿1947년 서울대 제1회 졸업식, 졸업생 215명
1947년 7월11일...서울대학교 제1회 졸업식.광복 후인 1945년 11월 ‘조선교육심의회’는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 건물을 활용해 국립대학 설립을 제안하였고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에관한 법령’ 공포.
이에 따라 1946년 10월 9개 단과대학(문리과·공과·농과·법과·사범·상과·의과· 예술·치과)과 1개 대학원으로 개교.🌿1949년 관상대, 첫 기상단파 방송개시
🌿1951년 여객선 제5편리호 침몰 참사(부산 다대포 근해서 승객 130명중 80여명 익사)🌿1951년 7월11일,,서울서 휴전반대 국민총궐기대회
🌿1958년 산업은행연계자금 부정대부(약49억환) 국회서 말썽
🌿1961년 북한, 중공과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조인 (군사동맹)
🌿1965년 미육군 제1기병사단, 미국으로 복귀. 제2보병 사단으로 대체
🌿1966년 서울 노량진ㆍ동부경찰서 신설 (13개서, 249개파출소)
🌿1973년 적십자사, 남북적 제7차본회담(평양)서 추석 성묘단 상호방문 제의
🌿1973년 제8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박두병 선출
🌿1973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시행령 공포🌿1973년 7월 11일 천마총 발굴
경주 황남동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은 1973년 발굴 당시만 해도 황남동 155호분이라는 숫자만 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71년 수립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경주 시내 고분 중 가장 큰 황남대총을 발굴하려 했다.
그러나 대규모 신라 고분 발굴 경험이 없어 먼저 155호분을 시험 발굴했다가 국보 제188호 천마총금관을 비롯해 1만1526점의 유물을 얻는 ‘대박’을 터뜨렸다.
숫자만 갖고 있던 155호분은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에 매단 가죽이나 헝겊 장식,
국보 제207호)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1974년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1974년 문교부, 중·고 교과서에 한자 병용하기로 결정 (75년 실시)
🌿19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 인혁당 피고인 7명 사형, 8명 무기 선고
🌿1981년 중부·호남지방, 폭우로 재산피해 18억 원
🌿1984년 충북 영동군 상공에서 군용헬기 추락, 김공한 육군대장 등 5명 사망
🌿1985년 경북 영풍서 삼국시대 채색고분 벽화(직경 12, 높이 3) 발견
🌿1985년 정부, 언론기본법시행령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취소ㆍ발행정지 처분때 상대방의 진술기회 주기로
🌿1985년 한·영어 기계번역 시스템 개발. 국내에도 제5세대 컴퓨터 시대 도래
🌿1986년 남북회담 한국측 수석대표들, 경제ㆍ적십자ㆍ국회회담을 8월중 열자고 제의
🌿1986년 여자 핸드볼, 국제청소년대회서 우승(이탈리아 테라모)
🌿1986년 서울시경, 서울 20개 대학 심야수색 시위용품 1만 8000여점 압수
🌿1987년 전두환 대통령, 시국수습에 관한 특별담화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ㆍ29 제안 전폭적 수용
🌿1987년 민주당 김영삼총재, 김대중씨의 민주당 입당 합의
🌿1988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노태우 대통령의 7ㆍ7특별선언 두 개의 한국을 조작 분열주의안"
🌿1988년 부산일보, 한국언론사상 처음 노조 주도로 파업, 신문발행 중단
🌿1989년 행정개혁위, 문공1부를 문화행정부문과 공보 행정부문으로 분리, 문화체육부를 신설 체육부 흡수통합
🌿1989년 서울 영등포을구 재선거를 앞두고 구로동에서 민정당원 100여명 민주·평민당원 16명이 충돌, 15명 부상
🌿1989년 헌법재판소는 구 사회보호법 5조1항 '필요적 보호감호'부분을 위헌 결정
🌿1990년 백색 스모그현상 확인-수돗물에도 발암물질
🌿1990년 그로미코그 회고록, 6·25당시 소련이 유엔안전 보장이사회에 불참한 것은 스탈린 수상의 뜻이었다 언급
🌿1990년 문교부, 세종대 사태 최종 유급시한 넘겨 수업을 거부한 학생 전원이 학점 미취득으로 유급 발표.
🌿1990년 팔당호 주변 경기도 7개군 43개 읍면과 대청호 주변 충북 1구 3개군 11개읍면 수질보전 특별지역 선포.
🌿1990년 한국-홍콩-일본 간 해저 광케이블 개통
🌿1991년 정부,북한의 연형묵총리가 제4차 남·북고위급(총리)회담을 평양에서 열자고 제의해와 이를 수용하기로.
🌿1991년 조흥·상업·서울신탁·산업은행,167억원을 한보철강에 무담보 신용대출.
🌿1991년 오대양 사건 관련자 7명이 10,11일 이틀동안 잇따라 자수해옴에 따라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
🌿1992년 통계청, 우리나라 인구가 세계 23위인 4367만 4117명으로 추정되고 남북한 6600만명 추정 발표.
🌿1992년 서울대 김수태 교수, 뇌졸증에 빠진 최모 부인(47)의 간을 홍모군(11)에게 부분 간이식수술 실시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美대통령, 청와대-백악관 간에 상시 전화연락 체제 갖추기로 합의.
🌿1996년 최승찬(29.제38항공여단 10년 근무 93년 상사 제대) 군사분계선 넘어 귀순🌿2009년 7월11일 여성 산악인 고미영이 히말라야 하산 도중 사망하다.
(고미영씨와 오은선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