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ṃ vutte, āyasmā moḷiyaphagguno bhagavantaṃ etadavoca – ‘‘ko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aṃ āhāretī’’ti? ‘‘No kallo pañho’’ti bhagavā avoca – ‘‘‘āhāretī’ti ahaṃ na vadāmi. ‘Āhāretī’ti cāhaṃ vadeyyaṃ, tatrassa kallo pañho – ‘ko nu kho, bhante, āhāretī’ti? Evaṃ cāhaṃ na vadāmi. Evaṃ maṃ avadantaṃ yo evaṃ puccheyya – ‘kissa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o’ti, esa kallo pañho. Tatra kallaṃ veyyākaraṇaṃ –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ti.
Evaṃ vutte, āyasmā moḷiyaphagguno bhagavantaṃ etadavoca –
2.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존자 몰리야 팍구나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
4.이렇게 말씀하시자 몰리야 팍구나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ko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aṃ āhāretī’’ti?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의식의 자양을 섭취합니까?”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알음알이의 음식을 먹습니까?”라고.
‘‘No kallo pañho’’ti bhagavā avoca –
[세존]“그러한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āhāretī’ti ahaṃ na vadāmi.
나는 ‘[사람이] 섭취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Āhāretī’ti cāhaṃ vadeyyaṃ, tatrassa kallo pañho –
만약 내가 ‘[사람이] 섭취한다.’라고 말했다면, 그 질문은 옳은 것이다. –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면,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
‘ko nu kho, bhante, āhāretī’ti?
‘세존이시여, 누가 섭취합니까?’라는.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알음알이의 음식을 먹습니까?’라는.
Evaṃ cāhaṃ na vadāmi.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Evaṃ maṃ avadantaṃ yo evaṃ puccheyya –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 이와 같이 물어야 한다. –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이와 같이 물어야 한다. –
‘kissa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o’ti, esa kallo pañho.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자양이 생겨납니까?’라고,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알음알이의 음식은 어떤 [법의 조건이] 됩니까?’라고,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Tatra kallaṃ veyyākaraṇaṃ –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의식의 자양은 미래의 새로운 존재의 생성의 조건이고,
‘알음알이의 음식識食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의 발생이라 [불리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
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
그것이 토대가 생겨날 때 여섯 감역이 생겨나고,
그러한 [정신∙물질이라는] 존재토대가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있고,
saḷāyatanapaccayā phasso’’’ti.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난다.”’라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觸이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