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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남소설가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남전南田
<경남펜문학> 2012년 제8호에 김현우 회원이 단편소설 <권총과 기차>를 발표했다.
단편소설
권총과 기차
김현우
예전에는 흔했지만 요즘 거리에서 구경하기 힘든 게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8~90년대를 살아온 6, 70대에게는 너무나 서운한 현상은 다방이란 게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실 다방이란 게 뭐가 미련이 남을 존재냐고 커피전문점을 드나들며 비싼 원두커피를 즐기는 젊은이들이야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때 그 시절 다방을 근거지로 사람을 만나고 사업도 하고 여자도 만나 연애를 걸던 세대들에게는 소중한 기억들이 스며있는 아지트이고 추억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다방이 왜 하나 둘 사라져 버렸는가에 대한 여러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사라져간 그립고 귀한 존재가 어느 봄날 석전동 한 골목 식당들 사이에 “커피룸”란 보리쌀 같은 커피원두가 흩뿌려진 알록달록한 총천연색 간판을 달고 개업했다는 걸 얘기하고자 한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건 재앙일지 축복일지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서서히 정체모를 호기심과 불안감이 안개 퍼지 듯 그 집을 중심으로 피어올랐던 것이다. 커피룸, 그러니까 커피를 파는 룸=방, 다방임이 틀림없으니 오래 전부터 불리어지던 전통적인 호칭 그대로 ‘향수다방’이니 ‘남도다방’이니 그도 저도 아니면 ‘커피숖 약속’ 하고 좀 심플하고도 멋있는 이름이 여럿 있음에도 평범하게도 ‘커피룸’라니! 아마 요새 천지사방에 꼬부랑 영어 아니면 생색을 낼 수 없는 세태라 그런가? 거두절미하고 주인이 다방 문을 열면서 작명하기에 귀찮으니 그냥 쉽고 간단하고도 평범하게 ‘커피룸’이라 했음에 틀림없었다. 아마 창원시 바닥에 그 혼자 존재할 지도 모르니까. 알록달록 꽃무늬 바탕에 커피원두 그림의 간판을 근처 중늙은이들이 곧 발견을 했지만 한 며칠은 접근조차 꺼리면서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일종의 낯가림이랄까? 아니면 관망하며 사자가 먹이를 잡을 때 노려보는 그런 자세일까? 그들은 개업한 커피룸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는 국수집 앞에서 딸깍! 300원만 넣으면 종이컵이 떨어지면서 ‘쪼로록!’ 하고 나오는 자판기 커피를 즐겨 마셔왔는데 저기 저곳 커피는 분명 한 잔에 2~3000원이 분명할 터이니 그건 그들에게는 거금이었기 때문이었다. 국수집에서는 오다가다 커피 한 잔 빼서 마시는 나그네를 위해 의자도 서너 개 내놓아서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다리쉼 겸 달콤한 커피를 자주 마시곤 했다. 길거리 다방인 셈이었다. 근처 철물점, 쌀집, 주택 개보수나 설비점, 구두방 등 구멍가게를 하거나 아니면 막노동을 하는 별 볼일 없는 60대 사내들이 슬금슬금 나와 국수집 어귀에 모여들기는 보통 9시 전후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전이나 천 원짜리 지폐를 돈구멍에다 넣고 버튼을 눌러댔다. 커피가 ‘쪼르륵’ 소리를 내며 어린애 오줌 줄기처럼 나오기를 기다려 한 잔 씩 기계구멍에서 빼내 마셨다. “이 맛이 최고야!” “암! 여러 곳 다니며 커피를 마셔 봤지만 이 국수집 커피가 딱 내 입에 맞아!” “그런데, 저게 뭐꼬? 커피룸? 국산 말로 하자면 다방 아이가? 언제 생겼어? 참 왕년에 동백다방이 내 아지트 아이었나! 서마산시장 2층에 있었던……. 참! 월계수, 오성 다방에도 자주 갔데이.” 철물점 정학도가 종이컵을 입에 가져가면서 흘낏 커피룸을 바라보고 딴청을 부렸다. 그도 지나다니며 개업한 지 며칠 된 걸 빤히 알고 있으면서. 정학도란 이름이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이를 넘보던 변학도와 같아 사람들은 그를 변사또라 불렀다. 또 하는 짓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치마만 둘렀다하면 좋다고 집적거리면서 ‘헤헤!’ 거리는 호색한이었기 대문이기도 했다. “아, 진작 개업했지. 변사또가 아직 가보지 못했구먼. 난 어제 가서 다방 마담과 상면하고 커피도 한 잔 했는걸. 예전에 다방이라면 이 근처서는 석전다방이 최고 아이가? 그 전 17번 시내버스 종점이라면 마산에서 유명했지. 손님도 참 많았고. 봉오재 길 저쪽에 있었던 유림, 세림, 근주천 쪽 북성다방 같은 거야 새발에 피였지.” 허리가 불편해 매일같이 물리치료를 받거나 침을 맞으러 병원 순례를 열심히 다니는 쌀집 박씨가 생색을 냈다. 그는 전에 쌀뿐만 아니라 연탄도 취급했는데 그 무거운 연탄을 배달하느라 골병이 들어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망가졌다고 신세타령을 하곤 했다. “수림다방도 있었지요? 거긴 고급 손님들만 모여 든다꼬 소문이 난 곳인데. 그건 그렇고 혼자 가면 무슨 재미가 있나? 우릴 모시고 가야지. 성질도 급하게!” 변사또 옆에서 커피를 아껴먹으려는 듯 홀짝거리고 있던 김선생이 끼어들었다. 그는 학교 선생을 하다 정년퇴직을 한 남자로 그들 중 가장 유식한 사내로 영감들의 잡스런 언행에 점잖게 일침을 주기도 했다. 쌀집 박씨가 손을 급히 내저으며 전원빌라에 사는 조씨를 따라 갔노라 했다. “어디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고……. 어제 저녁에 조 집 앞에서 조씨를 만났지요. 조씨가 퇴근하고서 한 잔을 했는지 건들건들하면서 오더니 내 팔을 꽉 붙들고 커피룸지 뭔지에 밀어 넣습디다. 전원빌라 조씨가 홀아비 아닝교? 벌써 저 집 여자에게 눈독을 들있는기라요. 조씨가 몇 년 전에 나이 많다고 밀려 퇴직했던 그 전자회사에 다시 나가고 있는데 좀 고단한 가 봐요. 2, 3년을 놀았는데 회사에서 일감이 많아지니까 숙련공이 필요했던지 그래서 조씨를 불렀나 봐요. 한참 놀다가 일을 다시 하자니까 손에 일이 잡히지도 않고 부치고 힘이 든답니다. 나이가 육십이 넘었으니 힘들만도 하지요. 그런데 아이고! 저건 다방도 아니고 술집도 아니고 식당도 아니고……. 영 분위기가 다방이 아이더라꼬요. 달랑 탁자가 네 갠가 다섯 갠가 그래요.” “다방 마담이 예뻐? 젊어? 그라고 레지 아가씨는 몇이던가?” 박씨의 얘기에 변사또가 구미가 당기는 듯 물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이 웃어댔다. “변사또는 오로지 여자에게만 관심이 있구만.” “아아! 여자 싫다는 놈 나와 보라고 해! 남자가 칠십, 팔십 아무리 늙어도 문지방 넘을 근력만 있다면 그 짓 할 수 있다던데! 난 이제 겨우 환갑을 넘겼다꼬! 팔팔하단 말이요! 새벽이면 포장을 치거든. 항상 일발장진[一發裝塡]! 준비된 후보라꼬.” 변사또는 일발장전을 언제든 일발장진으로 말했는데 쌀집 박씨가 커피룸 주인여자의 외모에 대해 빈정거리는 투로 털어 놓았다. “레지가 뭐꼬? 겨우 쉰이 넘었을 키가 큰 여자가 딱 하나 있는데 가슴은 절벽이여. 젖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떡판은 살이 하나도 없는 듯이 말라붙었고 다리는 와리바시 저리 비키라고……. 낯짝은 화장을 쌔기 해서 그렇는지, 그래도 수 십년 다방 물을 먹었다꼬 푯대 내는 긴지 반반하기는 하지만도.” 박씨의 말에 유식한 김선생이 끼어들었다. “섹시하지는 않단 말이네요? 여자란 우선 지성미가 있어야지. 보통 젖가슴이 빈약한 여자가 정조관념도 있고 지조가 있어 이 남자 저 남자가 건드려도 잘 넘어가지 않고 헤프지 않지.” “허어! 다방 하는 년이 무슨 지조요. 뭐 잘못 자셨는교? 김선생. 자고로 여자하고 바가지는 바깥으로 돌리면 깨진다 했는데 그 여자가 한두 해 바깥으로 돌았겠소? 아예 그런 물정 모르는 소릴랑 하지를 마소.” 변사또가 면박을 주고 사람들은 웃어댔다. 그들은 커피룸 주인 여자가 박씨 말마따나 키 크고 날씬한 아줌마인지 아니면 박씨의 평가와 달리 미인인지 어떤지 발동하는 호기심에 며칠 지나지 않아 일요일 늦은 오후에 그곳으로 몰려갔다. 물론 국수집 앞의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는 커피룸 문을 열지 않고 영업시간도 되지 않았으니 일찍 갈 수 없기도 했지만 한 잔에 2천원이나 하는 커피를 여러 잔 사 댈 물주가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일요일이라 그 집 주인여자에게 눈독을 들인다는 전원빌라 조씨가 출근을 하지 않았고 변사또가 은근슬쩍 커피룸을 들먹이며, “저 집 커피 맛 좀 봅시다. 이거 뭐 촌에 있는 자갈논을 팔아서 올 테니 갑시다. 조씨! 조씨가 앞장서 안내해요. 지난번 박씨와 저기 갔다면서?” 하고 눙쳤다. “그래 가 봅시다. 우리 중에 돈 버는 사람은 조씨뿐이데이.” 변사또 말에 장단을 맞추며 먼저 나선 사람은 김선생 집 근처 골목에 사는 설비공사 간판을 내걸고 있는 최사장이었다. 그는 주택 신축 개보수, 수도, 냉난방 수리 같은 일을 하는데 점포 간판에다 증축공사, 개축공사, 신축공사, 조립식 판넬, 방수공사, 정화조공사, 냉난방공사, 수도배관공사, 위생배관공사, 각종보일러설치, 전기온수기설치, 전기보일러설치 하고 줄줄이 많은 종목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통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였다. 공사를 맡아 선금을 받으면 냉큼 술값으로 써 버리고 공사를 해주지 않는 것으로 파다하게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똥고집, 고집불통으로 주인의 주문과 달리 공사를 제 멋대로 해 치우므로 주민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영감이었다. 최사장의 한마디에 우르르 다섯 명의 늙도 젊도 않은 사내들이 커피룸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안은 썰렁했다. 작은 다탁이 겨우 다섯 개, 그것도 식당에나 있을 높은 식탁 같았다. 물론 의자도 여느 다방의 소파형 낮은 의자가 아니라 그냥 다리가 높고 등받이가 있는 의자였다. 좀 다행이라면 딱딱하지 않고 푹신하다는 정도였다. 주방인가 안방인가 커튼이 쳐진 안쪽에서 여자가 눈곱이 덜 떨어진 표정을 지으면서 허리를 굽히며 나왔다. 박씨 말대로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는 키가 컸다. 남자들은 얼른 절벽이라는 가슴이나 쪼그랑 바가지나 다름없이 빈약하다는 엉덩이, 가는 대나무 같다던 다리를 훑어보았다. “괜찮구먼. 충분해! 나무도 고목이 되면 오던 새도 안 온다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변사또가 일발장전 신속하게 감정을 하고서 평가를 했다. 일행은 그 말에 쓰다달다 토를 달지 않고 탁자 두 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마다무상! 일로 와 앉아보소.” 변사또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던 버릇대로 여자를 재빠르게 그의 옆으로 낚아챘다. 여자는 휘청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비시시 웃으며 그 옆에 앉았다. “어어! 오차물부터 가져오지 않고! 뭐 하요? 우짜든지 초면에 변사또를 알아 모시는 구먼.” 쌀집 박씨가 비아냥거리고 설비 최사장이 맞장구를 쳤다. “왕년에 장안에 여자란 여자는 다 맛을 봤다 풍을 치더니…… 그 못된 버릇 나이가 육십이 넘어도 개 안주고 징깄네. 쯔쯔쯔!” “아따! 여기에 여자가 하나뿐이니 인기가 좋네. 성이 뭐꼬? 뭐라 부를꼬? 강 마담이라 할까? 장마담이라 할까?” 변사또는 누가 뭐라 하건 말건 우선 여자의 손목을 부여잡고 얼굴은 여자의 가슴속을 들여다보겠다는 듯 가까이 들이밀었다. 주인여자는 몸을 비틀며 일어나서 손님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저, 장이예요.” 변사또가 신이 나서 고함쳤다. “보라모! 장마담이라 안카나! 이놈으 다방 마다무 관상을 척 보면 아는 기라. 그래! 커피 가져오소! 우리는 이 동네 사요. 다아 이 동네 이름께나 날리는 유지들이제.” “아이! 반가워요.” “나는 저쪽 길 대광철물 사장이고, 이쪽 키가 큰 젊잖게 생긴 분은 요 앞 이층집 김 선생이라고 전에 학교 댕겼고…… 머리가 확 벗겨진 사람은 쌀집 박 사장이고 그 옆에 술구신 같이 생긴 양반은 진짜 술구신 최사장이라꼬 한창설비 노가다 구찌고, 에에 오늘의 커피 값을 낼 저 키가 쪼그맣지만 깡다구 있어 뵈는 사람은 전원빌라에 사는 조씨인데 홀아비다 이거야.” 장여사는 변사또의 장광설에 재미가 있다는 듯 웃기도 하고 정색도 하면서 고개를 까딱까딱 소개되는 사내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둥글납작한 판을 들고 오더니 가장 가까이 앉은 최사장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으응?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가 뭐꼬? 이거 뭐 전부 영어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헤이즐넛?” “저 무식한 사람 보았나? 요새 젊은 넘들 마시는 원두커피가 다아 그런 요상한 이름이 붙어있어! 고속도로 휴게소 안 가봤어? 거기만 가도 뭐니 뭐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 수십 가지 좌악 나붙어 있던데!” 최사장의 말에 변사또가 잘 아는 듯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그도 그런 곳에서 파는 커피가 비싸기만 했지 예전의 다방 커피나 자판기 커피 맛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했다. 원두커피에 별로 자신이 없는 김선생이 메뉴판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듯 말했다. “예전 다방 커피는 딱 한 가지 아니요? 원두커피인지 뭔지! 그거 비슷한 것 주소. 설탕, 프리마 팍팍 넣어서 말이지.” 쌀집 박씨가 끼어들었다. “아아! 며칠 전 조씨와 왔을 때 마셨던 그거 주시오. 그거는 달달하던데? 우유가 들었는지.” “아 예, 카페라떼를 드셨나 봐요?” 장여사의 말에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던 최사장이 비명을 쳤다. “뭐야? 그거는 3천원이다! 이, 이거 맨 앞에 쓰인 것은 2천원인데 그거는 와 그리 비싸노?” 장여사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내들을 꼬드겼다. “값이 비쌀수록 맛이 좋은 거죠. 우리 집은요 다방이 아니고 카페예요, 카페 간판을 달려다가 수수하게 커피룸이라 했죠. 선생님들, 카페 아시죠? 커피전문점. 요즘 유행이잖아요?” “됐다, 됐어. 3천 원짜리는 그만두고 2천 원짜리 줘요. 그 뭐 아메리카……?” 전원빌라 조씨가 호기롭게 주문하자 다른 사람들은 얻어먹는 판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예전 다방 커피는 납작하고 자그만 사기 컵에 접시를 받쳐 나오는데 이곳은 그게 아니었다. 길쭉하고 맥주잔보다 더 커다란 잔에 가득 붉은 색이 도는 거무스름한 커피를 부어 왔는데 사내들은 우선 그 량이 자판기 커피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에 놀라워했다. “이, 이거, 커피가 많은 것은 싱거워서 그래. 원두커피란 게 싱겁거든. 서양 사람들 우리 숭늉 먹듯이 국그릇같이 큰 잔에 가득 부어서 먹는다잖아?” 이번에도 변사또가 아는 척했다. 사내들은 쓴 맛에 ‘설탕을 더 넣으라’느니, ‘프리마를 가져와라.’ 하고 한동안 소란을 피우고서야 그들의 입맛에 통 맞지 않는 커피를 약 먹듯 마셨다. 커피룸은 세월이 지나자 근처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어 단골이 많아지고 그런대로 영업이 잘 되는 듯 했다. 커피를 나르는 젊은 아가씨도 없어 전화를 해도 커피 배달은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아침이면 단골 가게로 다방 아가씨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생수인지 식수인지 물병을 돌리고 전화만 걸면 보자기에 커피를 담은 병과 잔을 싸 들고서 쪼르르 달려 왔었다. 보통 그렇게 배달 온 아가씨들은 손님이 팁을 얼마주기만 하면 짤막한 재미를 즐기게 해 주었었다. 그런데 커피룸은 레지도 없으니 그런 배달은 아예 하지 않았다. 장여사가 오도카니 점포를 지키다가 들리는 손님에게만 이름이 낯선 커피를 팔았다. “이래 가지고 무슨 장사가 되겄나? 장여사.” 변사또가 최사장과 초여름이 다 되어 가는 즈음 들렸다가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그들은 조금 여유가 생기면 장여사 커피룸에 자주 들려 최신 유행을 즐기려는 듯 큰 잔의 커피를 맛이 쓴 보약마시 듯 마셨다. “요새 조씨가 자주 들락거린다면서? 그 사람이 그래 키가 작아도 깡다구 있는 사람이제. 장마담이 잘 구슬려 보라꼬. 그렇게 착실한 홀아비가 드물데이. 형편이야 비슷비슷하고 말이야.” 변사또는 능청을 부리며 조씨와 장여사를 엮어보려고 했고, “술이라도 좀 팔지. 커피 가지고 되겠어?” 최사장은 은근한 걱정을 해서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럴 때는 장여사는 배시시 웃으며, “걱정 안 해도 돼요. 내 한 몸 이거 해서 먹고 살기에 충분해요. 제가 좀 험하게 살아와서 이제는 조용하게 살고 싶어요. 딸이 하나 있는데 떨어져 살아요. 에미가 이러고 사는 거 보기 싫다잖아요?” 하고 말머리를 돌려 버렸다. “아, 딸이 있구먼? 그럼?” “남자는 진작 다른 년하고 살아요. 이런 장사하는 년 팔자가 다 그렇지요.” 변사또가 불끈 화내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내쌔끼들! 다 그래. 책임을 질 줄 모른다니까! 난 예스 오케이? 여자와 화끈하게 놀았지만 뒤는 깨끗했지. 내 권총은 항상 일발 장진 발사하면 명중이지만, 어디 그게 다가 아니지! 참 난 진짜 권총을 하나 가지고 싶었어.” 그는 장여사의 신세타령을 듣다가 권총 얘기를 꺼냈다. 변사또는 자주 군대에서 지내던 시절 엠원 소총, 칼빈 소총으로 사격하던 얘기를 자주 했다. 일등사수란 말은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기관단총도 쏴 봤고 권총 사격도 해 보았다고 자랑하곤 했다. “내가 말이야. 권총을 쏘아 봤는데…… 총이야 말로 권총이 최고야. 타앙!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손목이 쩌리리 하면서 팔로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전율이야말로 기분이 최고지.” “사격이 무슨 재미가 나? 나는 기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 최고더라. 철거덕철거덕 빠앙! 검은 연기 푹푹 내뿜으며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기차 말이야! 칙칙푹푹 기차는 간다아!” 최사장은 변사또의 권총타령에 지지 않으려고 기차 얘기를 꺼낸다. 그는 기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최고라고 곧잘 얘기했다. 사람마다 다 취미가 다르니 좋아하는 것도 구구각색이 분명한데 그들은 마주치면 그것 때문에 다투었다. 조금도 양보 없이. 장여사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아직도 팔팔하시네. 사장님. 그렇게 기운이 넘치세요?” “암! 난 역발산기개세! 로세. 항우알지? 항우! 하하하!” 변사또의 기염에 최사장이 지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장마담! 우리 연애 한 번 하자. 그라면 내 진짜 실력을 알 수 있을걸.” “치아라! 최사장 근력을 어디 명함이라도 내놓겠나? 이 변사도의 왕년 실력은 마산 바닥에 모르는 년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쫘악 퍼졌지.” “어어! 그럼, 지금이라도! 사실 다방에 새로 오는 가서나들은 다아 내가 제일 먼저 맛을 보았다니까! 왕년에!” “무슨 소리야? 내가 유림, 서림다방에서 노상 살 때 그 집에 오는 년들은 다아 날 거쳤지. 마담이 바로 내 애인 아니었나? 이 집에도 아가씨가 있었다면 내가 벌써…….” 두 사람의 허튼 소리에 장여사는 웃으면서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뭔가 가져왔다. “사장님들이 아가씨 좋아한다니 제가 소개해 줄 께요. 전화만 걸면 얼마든지 연애할 수 있어요.” 장여사가 손아귀에서 탁자위에 주르륵 쏟아 놓은 것은 다름 아닌 아가씨 사진이 인쇄된 명함들이었다. 윗옷을 벗거나 젖가슴만 가린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젊은 여자들. 어떤 사진의 여자는 나체이기도 했다. “골라 보세요. 전화만 걸면 째깍 나타나요.” 변사또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갑자기 젊잖아 지려고 했다. “어어! 벌건 대낮에 무슨!” 최사장은 흥미로운 듯 명함들을 살피며 물었다. “진짜야? 예전처럼 숏타임도 돼?” “사장님 마음대로 돼요. 사진을 보고 사장님 마음에 드는 애 고르기만 하세요.” 두 사내는 카드를 뒤적거리며 품평을 하듯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떠들다가 일어났다.
여름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쌀집 박씨가 깜짝 놀랄 소문 하나를 물고 나타났다. “전원빌라 조씨가 드디어 장여사를 품에 안았다꼬! 며칠 전 커피룸 문을 안 닫았나? 조씨하고 그 여자하고 통영 어디 놀러간 기라. 요새 통영 케이불카 인기가 안 있나? 둘이서 거기 가서 회 한 접시 하고 케이불카도 타고 여관까지 가서 그네도 타고 그랬다고!” “야아! 홀아비 과부가 잘 만났고만! 둘 다 외로운 처지에.” “결혼해서 한 집에 살기는 힘들거구만. 조씨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데 분가를 해 줄 형편도 아니고 혼인신고도 해 줄 수 없거든. 그러니 합치기는 힘들꺼고 그냥 왔다갔다 만나는 거지.” “그것도 좋지. 그런데 최사장이 왜 안보이나?” 김선생이 일감이 없어 놀고 있을 최사장이 나타나지 않자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변사또가 뭔가 아는 낌새를 보였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다시 국수집 길가 다방에 사내들이 모여들었을 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최사장이 나타났다. 뭔가 고민이 있고 고초를 당한 듯 보였다. 변사또가 최사장의 난처한 사정을 아는 듯 빈정거리는 말을 한 마디 했다. “꼬리가 길면 그런 기라. 예전에 일본놈들이 쓴 구구식 장총있제? 단발식이제. 일발장진해 타앙! 최사장, 내가 하는 소리 무슨 소리인지 알겄제?” 최사장은 목을 쭈욱 빼고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총을 쏠라 카마 구구식 장총처럼 쏘든지. 장총이 아니라 권총이 최고지! 방아쇠만 당기면 탕!탕!탕!탕! 나가니 속전속결 속 시원하고 깨끗하고 그만인 기라. 어느 놈은 칙칙푹푹! 검은 연기 뿜으며 천지가 진동하는 기적을 울리며 긴 고빼를 달고 달리는 기차가 제일이라 하더니만! 동지섣달 기나 긴 밤…… 어쩌고 저쩌고 긴 거 좋아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좀체 알아듣기 힘들만한 변사또의 흰소리에 한참이나 입을 꾹 다물고 반응이 없던 최사장이 드디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욱! 하고 성을 버럭 냈다. “뭐라꼬? 어떤 넘은 단발식 아니, 구구식 권총이라메? 그런데 그 실력 좋은 물총에 몹쓸 병이 왜 걸렸나? 얼른 물만 뺐으면 임질 매독이 웬 말이고? 한방에 끝났으면 절대 그런 일이 없었지. 나이를 먹을 만치 먹은 영감이 비뇨기과 출입이 웬 말이여?” 최사장의 말에 변사또가 불같이 화를 내며 멱살을 잡을 듯이 손을 뻗더니 최사장을 힘껏 밀어붙였다. “최사장 니 때문이 아이가? 나야 그 여석아 데리고 노래방에나 갈라 캤는데! 니가 노래방 가는 거 그만두고 직행하자꼬 했지!”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고? 장여사 보고 아가씨 불러 달라꼬 말을 꺼낸 건 변사또 니가 먼저 아이었나?” 주위 둘러앉은 사람들은 그들의 입씨름에 어이가 없어 졌다. 전문 해설자가 없어도 사건이 어찌 진행 되었던지 금방 눈치를 챌 수 있었기에. 변사또는 ‘이왕 엎지르진 물 퍼 담지 못할 바에야!’ 하고 그간의 일을 까발렸다. “아하! 그래서 어떤 넘은 딸냄이, 아니지 손녀 같은 애하고 재미를 보다가 미성년자 보호법에 걸려 경찰서 왔다 갔다 하는구먼. 나야 단발에 그쳤지만 최사장은 야들야들 보들보들한 애가 최고라면서 여러 번을 불러냈으니 그 애 수첩에 단골손님으로 등록되었지.” “내가 알았어야지. 난 그렇게 어릴 줄 몰랐지. 제 입으로 열아홉이라 데. 몸이 어찌나 숙성하고 좋은지. 잠자리서 하는 짓도 어른 뺨치게 얼마나 능수능란한지……. 한번 걸렸다하면 뼈도 못 추리게 남자를 완전히 죽여 놓는데 환상적이었다니까!” 최사장은 한숨을 푹 쉬며 후회를 거듭했다. “길면 안 되는 거야. 꼬리가 길면 밟힌다 커는 속담도 있잖아?” 박씨가 한 마디 훈수를 하면서도 웃었다. 김선생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면서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어느 도사님께서 그랬는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로다.” “그기 무슨 소린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하고 유명한 스님께서 설법한 줄 아는데?” “얘기를 하자면…… 서양에 유명한 괴테란 시인이 있었는데 칠십두 살 때 열일곱 처녀에게 청혼을 했다가 우사스럽게도 퇴짜 맞았고, 미국에는 아주 인기 있는 할리우드 늙은 배우들이 삼, 사십 살이나 차이나는 아가씨와 산다꼬요.” 김선생의 이야기에 박씨가 맞장구 쳤다. “젓가락 들 힘만 있어도 아이를 맨들 수 있다꼬! 칠십 살 묵은 노인하고 손녀뻘이나 되는 여고생하고 연애하는 그 뭐라 카더라 그런 영화가 요새 인기라메? 하지만도 변사또도 그렇고 최사장도 그렇지! 젊은 아가씨 너무 좋아하다 비락 맞았제!” 변학도가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는 뜻으로 한 마디 했다. “역에 가보라모! 여자들이 노인들 후릴라꼬 줄을 서 있다. 2만원에도 오케이, 단돈 만원에도 오케이다. 홀애비 영감들이 오데다……, 정말로 요새 노인들이 꼬부랑 늙은이가 아니고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이팔 청춘아이가? 참 문제데이.” “우짜든지! 별로 영검{靈驗}도 없는 고치를 단 노인들이 생지랄을 하는구먼.” 옆에 둘러 앉아 있던 사내들은 드디어 사건 내막을 짐작하게 되었고 한동안 골목안 사람들은 커피룸에 발길을 뚝 끊었다. 다만 조씨만 횡재를 한 듯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 장여사를 만나러 그곳을 다녔다. ****
(소설이 실린 경남펜문학 2012.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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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는 소설이네요.
늙은이들의 일상생활이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소설을 쓰시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