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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사치재-봉화산-월경산-중재
0. 위치 : 전북 남원시 아영면, 장수군 번암면 0. 코스 : 사치재-복성이재-봉화산-월경산-중재-지지리 (상행)
이제 산행하기 좋은 3월로 접어들었다. 월2회 산행에 2월 두 번째 산행일은 소위 까치설날인 섣달 그믐날로 설 연휴와 맞물려 부득이 건너뛰고 3월 첫 산행을 맞게 되었으니 그 사이 음력 병술년에서 정해년으로 바뀌었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보태어서인가 그만큼 많은 공백이 생긴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기야 계절적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인 만큼 주변이 하루가 다르게 다가서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뭔가를 확인하고 싶은 조바심인가 눈길이 자꾸 나뭇가지 끝에서 머문다.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를 이웃한 남원 땅 사치재에서 들머리다. 진달래 꽃망울이 서둘러 부풀어 올랐다. 곧 빨간 입술을 드러낼 성싶다. 여기도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일부는 시원시원하게 간벌을 하였다. 흙바닥에 물기가 흠씬 스며들어 발길이 편안하나 간혹 미끄러운 구간이 있다. 솔잎이 금빛 양탄자를 펼쳐놓은 듯 수북하게 깔린 길을 가노라니 마음이 붕 떠오르며 괜스레 으쓱해지는 기분이다. 겨우내 숙면에 빠졌던 초목이 깨어나며 기지개를 켰던지 계곡에 가득했던 안개가 걷힌다.
돌무더기를 넘어야 한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살펴보니 무너진 성벽이다. 이곳이 바로 아막성터다. 삼국시대 백제에선 아막성, 신라에선 묘산성으로 불리던 곳으로 백제와 신라가 영토 확장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움을 하던 곳이다. 아주 처절한 전투에 수많은 장병들이 피비린내를 뿌렸겠지만 지금은 어느 영혼 하나 느껴볼 수 없이 까마득히 잊혀간 평범한 돌무더기다. 천수백 년 세월은 모두를 깨끗이 씻어 내리고 이제는 신라도 백제도 아닌 그 터전 위에 오직 하나 된 대한민국만이 있을 뿐이다. 두 시간쯤 가니 복성이재로 오른쪽이 남원시 아영면이다. 오늘은 양력 3월3일이지만 날씨가 포근하니 마치 음력 3월3일의 삼짇날 같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지지배배 거리며 어디선가 날아들 것만 같다. 흥부가 밭을 일구며 박구덩이를 파고 있을 것만 같다. 저쪽이 성리마을로 흥부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박춘보(흥부의 본명)가 이웃 인월면 성산마을서 태어나고 형 놀부에게 쫓겨나 많은 자녀들과 그곳에 정착하여 굶기를 밥 먹듯 하다 제비와의 인연에 발복한 곳으로 권선징악의 표본이 되었다.
목장 울타리를 타고 무명봉에 올라선다. 철쭉이 절정을 이룬다. 빈틈없이 빼곡하기가 마치 콩나물시루를 연상시킨다. 건너편에 봉화산 정상이 늠름하다. 그러나 민둥산 같아 보인다. 봉화산은 봄이면 철쭉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이 오가며 사랑을 받는다. 철쭉 군락이 산사면 곳곳에 널려 있는데다가 장수와 함양 땅으로 뻗은 암릉길이 온통 철쭉꽃길이다. 봉화산 철쭉꽃의 피크는 대개 5월 중순이라는데 올해는 엘니뇨현상에 온난화로 개화시기가 보름쯤은 앞당겨서 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1996년 말에 이 철쭉 명소에 그만 산불이 났다. 산불은 산등성이의 동쪽 비탈 즉 남원시 아영면 지역의 주봉과 무명봉(870m) 일대를 무자비하게 불태워버려 그만 흉측하니 처참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 번 산불이 나면 50년은 지나야 겨우 제 모습을 찾는다고 한다. 산불이 나고 6~7년쯤의 세월이 흘러갔다. 불탄 자리에 억새가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그야말로 억새 판이 되었다. 이제 가을이면 억새평원으로 탈바꿈하고 애수에 찬 그리움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봄이 오는 길목 한 자락에 서서 철쭉꽃도 억새꽃도 그저 마음속에 그리며 담아볼 뿐으로 그냥 한 줌 바람처럼 흘려보낼 따름이다. 때문에 같은 길이라도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제때 기회를 잡아야 제대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치재를 넘는다. 주변에는 보리똥나무가 유난히 많아서 저들이 익을 때쯤은 입이 심심치 않겠지 싶다. 가파른 기슭을 오르며 꼬부랑재를 넘어 다리재 능선에 닿는다. 잡힐 듯싶은 봉화산(烽火山) 정상(920m)을 향하여 치달았다. 사람이 아주 많다 보니 같은 이름도 많듯이 산도 많다 보니 곳곳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특히나 봉화산은 봉화대가 있던 산으로 춘천 남면의 봉화산(487m), 북산면의 봉화산(736m), 포항 죽장면의 봉화산(637m), 여기 남원의 봉화산(920m) 등 여러 곳이 있다. 동명이인이듯 동명이산인 셈이다. 본래 봉화는 밤에 피우는 횃불이고 봉수는 낮에 피우는 연기다. 그러나 지금은 통칭되고 있으며 거의 관리되지 않아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도 이름만 남았을 뿐 평범한 산이다.
적이 쳐들어온다든지 반란이 일어난다든지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도 연락을 취할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고작 파발을 띄우며 연이나 새를 이용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시시각각 변화에 즉각 대처할 수 없었던 시대에 봉화는 획기적인 통신수단으로 생겨난 제도다. 봉화는 연기와 횃불로 연결되기 때문에 봉화대를 밤낮없이 지켜야 했다. 요소요소에 설치하여 한양으로 연결되었다. 섬지방도 봉수대와 봉화대가 설치되어 외적의 침입이나 난리 등 위급한 소식에 연락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봉화산은 우뚝 솟아 있다. 사방이 툭 터져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다. 이만하면 봉화대를 설치하기에 흠이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억새밭뿐 그늘이라고는 없는데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금빛을 발하던 억새 대궁은 겨울을 나면서 색깔이 퇴색하고 짓이겨졌지만 강렬한 햇살을 조명처럼 받으니 금세 찬란한 모습을 되찾아 내보이며 마음에 위안을 준다. 이제 저 모습도 그루터기마다 새싹이 움터 슬그머니 자리를 비워야 하리라. 아낌없이 자양분으로 삼으며 억세게 자라 그들만의 영토를 넓혀갈 것이다.
무인 산불감시초소가 멀건이 바라보고 있지만 이 너른 초원에 막상 일이 닥치면 무슨 힘이 있으랴 싶다. 북쪽으로 저 멀리 다음 산행지인 백운산(1279m)이 어서 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는 성싶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내려가다 그늘을 찾아 점심식사를 한다. 휴식도 잠깐 갈 길이 멀다. 능선을 가노라니 철쭉이며 억새가 계속하여 따라 나선다. 광대치를 지난다. 그런데 갑자기 맥이 탁 풀린다.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진다. 점심도 반밖에 먹지를 않았는데 속이 부글거린다. 머리가 다소 띵하다. 대체 무엇을 잘못 먹었는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나하나 짚어보아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습기가 많은데다 날씨가 너무 후텁지근하여서 적응이 안 되는가 싶기도 하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내 나름대로의 페이스로 천천히 걷는다. 월경산(980m) 옆을 가까스로 지나친다. 내려서는 가파른 비탈길이 너무나 훼손되어 우회로를 만들었지만 시궁창 곤죽에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다. 중재에 다다라 가까스로 일행을 따라잡고 왼쪽으로 꺾어 내를 건너 함양군 백전면 지지리 마을이다.
*. 2007년 03월 03일 7시간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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