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 분과 장재열
R&D 정책 추진에 지도자의 강한 의지 보여야
2023년 10월, 국회 부처 업무보고 현장에서 야당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대통령으로부터 거친 언어의 질책을 받았느냐고 묻는다. 장관이 머뭇거리자 재차 강한 질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다그치자 장관은 확실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지난해 8월 이후 국내 대학과 연구계는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전년 대비 5조 2천억 원(16.6%) 삭감이라는 발표에 혼돈으로 빠져들었다.(연말 예산 조정시 6천억 원 정도 회복)
대통령의 과학기술 리더쉽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7월 대통령은 한 회의에서 카르텔을 구축해 이권을 나눠 먹는 구조는 철저히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도 원점에서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과학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 R&D 나눠 먹기 등 기득권 세력의 부당 이득을 원점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낼 방침」 이라고 대통령의 언급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이것이 예산 편성에서 그대로 보인 것이다.
졸지에 우리 과학기술계는 기득권 세력으로, 예산을 나눠 먹는 카르텔이 존재하는 조직이 돼버렸다. 이를 사전에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장관이 쓴소리를 들었을 것은 자명한 일.
어떻게 해서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이런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었을까. 평소 과학기술자들을 만나면 애정이 어린 표현을 해 오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예산을 무섭게 들어내었나?
이전 대통령과 과학기술계 원로와의 대담에서 연구비 배분 시 나눠 먹기 사례가 있다고 지적된 것과, 경제관료들의 R&D 예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연구개발 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나 현장 인식에 한계가 있는 대통령은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으면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는 몸에 밴 관성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여기서 대통령의 얄팍한 과학기술 리더쉽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결국 빈약한 대통령의 과학기술 리더쉽과 그 하부조직의 소극적 대응은 연구 및 과학교육 현장에 큰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에 어떤 악영향을 가져올지 우리 사회는 우려한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였던 고 현원복 언론인(1929 ~ 2010)은 이승만부터 김대중까지 6명 대통령에 대해 과학기술 리더쉽을 분석한 바 있었다. 각 대통령은 자신이 과학기술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과학기술 정책 부서에서 훌륭한 연구개발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려 해도 예산 당국의 이해 부족으로 번번이 무시될 때 이를 자기 리더쉽으로 돌파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예산을 챙기고 제도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 구축에도 필요했다.
이런 현상은 개발도상국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꾀하려면 지도자가 선두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외국의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2005, 대통령과 과학기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힘 있는 경제부처에 밀려 초기의 의욕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현원복 과학언론인은 결론적으로 현명한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하려면 대통령의 뛰어난 다원적 리더쉽과 유능한 참모진의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리더쉽의 한 정의는 이렇다. 리더쉽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집단을 공동의 목표로 지향하게 하는 능력” 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과학기술 리더쉽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과학교육과 졸업
중앙일보 과학부장
과학기술문화협동조합 이사장
한국과학언론인회 회장
(현)한국시니어과협 과학기술정책 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