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으로 살기
박영자
노인인구가 2014년 기준 628만 명으로 곧 전체인구의 14%에 해당되는 700만의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란다. 도시보다는 농촌에 노인들이 많이 산다. 한 나라나 지역에 노인이 많으면 고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60세가 되면 노인으로 여겨왔으나,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즈음 노인의 나이를 65~70세 정도로 상향조정 해야 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인(老人)은 고령자, 늙은이, 시니어, 실버, 어르신 등 불리는 이름도 많다. 노인만을 위한 경로당, 노인정, 노인대학, 노인복지회관 실버타운 노인요양원등 시설도 많이 늘어났으며 앞으로 더 늘려야만 될 추세이다.
장수를 축복으로 여겨 잔치까지 벌이는 우리 풍습이었다. 61세가 되는 생일을 환갑(還甲), 그 이듬해 생일은 진갑(進甲)이라고 하며 축하해 왔다. 일흔 살은 칠순(七旬) 또는 고희(古稀), 여든 살은 팔순(八旬), 아흔 살은 구순(九旬) 아흔아홉 살은 백수(白壽)라고 하여 자식들이 축하연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요즈음은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축하받을 일만도 아니지 싶다.
의도 하지 않았지만 나도 어느새 노인의 대열에 서 있고, 환갑, 진갑 다 지나 이제 칠순까지 치룬 처지이니 어딜 가나 왕언니다. 많은 노인들 속에서 젊은 세대들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눈치를 보아야 하는 처지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노인을 피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는 안 늙을 줄 안다면 착각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인간에게 주어진 길이니 말이다.
복지회관에 가면 나를 보고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여 ‘나보고 하는 소린가?’ 하여 화들짝 놀랐었다. 마치 ‘할머니’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처럼 생소하고 무엇인가 무너져 내린 것도 같고, 조금은 섭섭하던 묘한 그 기분처럼 말이다. ‘고쟁이를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더니 나이를 어찌 감출 수 있으랴.
그러나 ‘어르신’이라는 말의 어원을 알고 보면 그럴 일이 아니다. ‘어른’ 은 ‘얼’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 얼은 정신, 넋, 혼을 뜻한다. 나이만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 어른이다. 어르신은 어른 보다 더 한층 높여 부르는 경칭(敬稱)이다. 어르신은 지혜로워서 존경과 흠모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어른과 어르신은 육체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인 수준과 교양이나 양심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과연 내가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즈음 세상에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어른의 권위가 바로서지 못하니 젊은이들의 잘못을 보고도 타이르거나 혼을 낼 어른이 없단다. 섣불리 타이르다가는 오히려 망신을 자초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서글픈 일이다. 잘 못 된 세상일을 책임 질 어른도 없다는 것이다.
괴테는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 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건강을 잃고 일을 놓게 되며, 친구를 잃게 되고, 돈을 잃고 꿈도 잃게 된다. 하지만 늙었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건강, 일, 돈, 친구는 꼭 챙기고 희망과 꿈을 잃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홀로설 수 없게 된다는 말을 되새기지만 그것은 말이 쉬울 뿐 늙는다는 것은 사람을 기죽게 하고 초라하게 하는 폭군보다 더 위압적인 존재임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노인은 무기력한 존재이기만 할까.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66세에 작곡됐고, 소포클래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왕을 썼고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다는데 그들은 천재가 아니면 나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성격의 소유자였을까. 노인은 무능하고 외롭고 불행하다는 시각이 옳지만은 않다. 노인이 젊은이 못지않게 행복할 수도 있다. 가장 행복한 나이는 60세부터 75세사이더라는 92세의 김형석 교수의 말씀이 공감이 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를 넘어 5포 세대라는 말이 생겨나더니 이제 7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그만치 삶이 각박한 것이다. 그들에게 노인들이 짐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염치없는 일인가. 젊은 세대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자립적인 사고와 홀로서기로 노인보다 어르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노인네 무릎 세우듯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내 생각만이 옳다는 고집은 버려야 한다.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노인일 수밖에 없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하고, 소통하려 한다면 어르신일 것이다. 스스로 절제 할 줄 알고, 아는 것도 모르는 체 겸손하고 여유가 있다면 어르신인 것이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공짜를 바라지 말고 베풀며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한 삶이다. 그래야 친구도 이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 되기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인으로 살지 말고 어르신으로 살기위해 애써 볼 일이다.
젊은이들의 시각도 바꾸어야 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한 개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을 먼저 살아 본 노인에게는 지혜가 있다.
머리카락에
은발 늘어 가니
은의 무게만큼
나
고개를 숙이리
허영자 시인의 시를 나의 지표로 삼아보련다.
첫댓글 선생님, 요전에 TV에서 김형석박사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 분은 60세에서 80세까지 가장 행복했으며
96세인 지금부터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니 저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행복은 내려놓을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노년에 필요한 새로운 것을 가볍게 하나씩 집어드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허영자 시인처럼 늙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겸손도 아울러 배우면서요.
오늘 아침 하나의 도를 들었으니
오늘 집어 들 것은 다 이룬 것 같습니다.
저도 김형석박사님의 강연을 들었어요.
늙어감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떠한 것이 행복인지. 뜻깊은 강연이었어요.
감동이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늙을수록 고개를 숙일줄도 아는 겸손함을 지녀야 하는 마음을 갖출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이방주회장님, 노년이란 참 묘한 것인듯합니다. 홀가분 하면서도 때로는 서글프고 , 초조하고, 그런가하면 또 때로는 행복하기도하니 희로애락의 모든감정을 한데 섞어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방하착의 의미를 겉으로만 아는 척 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좀은 알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반숭례선생님, 잘 지내지요? 겸손한 분이 더 겸손해지면 곤란하니 겸손의 수위 조절을 적당히 하십시오.
진지하게 잘 배우고 갑니다. 아름답게, 지혜롭게, 겸손하게 늙어 가는 것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동네 정자에 앉아 고스톱, 윷놀이로 하루의 시간을 보내시는 어른들을 봅니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다짐하는데 어찌 될지 몰라 늙어서 할 일이 없을까봐 두렵습니다. 잘 배우고 사색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오문재님, 글 열심히쓰시고, 사색하다보면 지혜롭고 멋진 어르신이 되어있겠지요. 문재님이 어르신이 될 날은 까마득하네요.
참으로어른으로 살고 싶습니다 귀막고 눈감고 입닫고 사는게 지금 어른삶인거같아요 노인의지혜를 인정해주고 경험의 말씀을 귀담아들어주는 젊은이가 많아지기를 바래봅니다 박영자선생님 글 공감하며 잘보고갑니다
남소현씨, 글 열심히 쓰고 성단 열심히 다니다보면 좋은 어르신이 될테니 걱정없지요. 한 나이라도 젊을 때 글 열심히 써요.
공감한다니 고맙습니다.
모시기보다 거느리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어르신으로 산다는게 그만큼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본이 되는 진정한 어르신이 그리운날도 있습니다. 어찌 살아가야 함을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