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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5일부터 7일까지 2박 3일간 [홍도와 흑산도]를 다녀왔다.
10일후 연이어서 이달에만 2번째로 원거리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동오산악회’ 여름방학 이벤트 산행으로 북쪽 ‘설악산 대청봉’ 정복을 목표로 출발하다.
그러나 날씨관계로 설악산 등정은 결국 하지 못하고 「꿩 대신 닭을 잡아먹는 일정」이 되고 말았다.
☞ 2004년 8월 16(월) ~ 17(화) 1박 2일 ['설악산' 외곽일주 - 백담사] 및 [통일전망대] 탐방기
▶ 1일차 : 16일(월)
♣ [탐방코스]
▶ 포항출발 → 삼척 근남면 [해신당 공원] → 한계령휴게소 → 백담사 → 미시령 → 설악동 [노루목 모텔] 1박
◆ 오늘의 첫 일정은 울진을 벗어나 삼척 땅과의 경계부근에 소재한 [해신당 공원]을 들리는 것이다.
남근조각상이 일품이었으며 우리가 방문한 날이 때마침 월요일이어서 공원이 개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장은 할 수가 있어서 우리들은 본의 아니게 입장료 없는 무료관람을 하였다.
♣ [해신당 공원]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에 소재한다.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이 전해 내려오는 이 공원에는 어민들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과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공원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 산책로와 푸른 바다가 한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이고 웃음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동해안 최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 ‘애바위’ 전설 -
옛날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미역을 따는 처녀를 위해서 총각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처녀를 내려주고는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파도와 심한 강풍이 몰아쳐 처녀는 그만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이후부터 이 마을에는 처녀의 원혼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가 잡히지 않자 바다를 향해 오줌을 시원하게 갈겼더니 이후 고기가 엄청나게 많이 잡혀서 만선을 하고 돌아온다.
이후부터 이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나무로 실물모양의 남근을 깎아서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매년 정월대보름과 음력 10월 첫 5일에 남근을 깎아 매달아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다시 갈 길을 재촉한 우리들은 설악산 오색폭포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은 당초 목표로 했던 [대청봉]을 오르려던 계획을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 오후 늦게부터 비가 시작되어 내일과 모래까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따라서 공원 측에서 오후 3시부터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오색폭포 매표소]에 문의한 결과 이미 오후 3시부터 입산을 시키지 않는단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이미 3시를 넘었으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
2박을 하려던 계획도 수정하여 1박으로 하기로 하였다.
할 수 없이 설악산을 포기하고 백담사를 보지 못한 회원들을 위하여 [한계령휴게소]를 향하여 출발하다.
한계령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비가 시작되었고, 운무가 엄청 끼어서 5m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빗속을 달려 어렵게 [백담사]에 도착하니 지난번에 들렀던 때와 달리 변동이 약간 있었다.
지난번엔 버스를 하차한 곳에서 백담사를 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서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바로 백담사 앞에서 하차를 하도록 버스길이 더 연장이 되어있었다.
♣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년)에 자장이 창건한 한계사로부터 기원되어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거치면서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등으로 개칭되어 새로 지어졌다.
1455년(세조 1년)에 중건하면서 ‘백담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만해 한용운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과 〈불교유신론〉을 집필하면서 만해사상의 산실이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957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이 절에 은거한 것을 계기로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칠성각·선원·요사채 등이 있고, 자장의 유물로 전하는 아미타상과 소종, 인조의 하사품인 옥탑, 설담당 부도, 연포당 부도 등이 있다.
백담사를 구경한 우리들이 [미시령]을 통과하여 [설악동]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다.
혹시라도 내일 날씨가 좋으면 [대청봉]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에 설악동으로 왔다.
어두워진 탓으로 당초 우리들이 목표로 한 [한화콘도]를 찾기 위하여 몇 번의 시행착오를 한 후에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숙박을 하려고 보니 25평형은 모두 나가고 46평형만 남아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5만원의 대여료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그곳은 포기하고 설악동에 소재한 [노루목 모텔]로 숙소를 정하다.
방 2개에 합 4만원에 얻어서(1층 식당이 크고 취사도구는 무료로 대여) 1박을 하다.
▶ 2일차 : 17일(화)
♣ [탐방코스]
▶ 비룡폭포 → 통일전망대 → 〈이승만〉,〈이기붕〉,〈김일성〉 별장 탐방 → 포항 착
◆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개는 것 같다.
그래서 당초 목표로 했던 [대청봉]까지는 몰라도 [울산 바위]나 [비선대] 방향으로 오르자는 등 의견이 분분하였다.
하지만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일기를 믿을 수가 없어서 결국엔 [비룡폭포]로 향하기로 하고 그 곳을 구경하다.
하기사 이곳도 설악산의 일부분이다.
이번산행의 목표가 설악산 [대청봉]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기 탓으로 당초 목표였던 '대청봉'은 못 오르고 '꿩 대신 닭'이라고 설악산 외곽을 차를 타고 일주한 셈이 되고 말았다.
비룡폭포를 출발한 우리들은 아직 [통일전망대]를 구경하지 못한 회원들의 요구로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다.
♣ [통일전망대]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있는 전망대이다.
동해안의 최북단 '명파 마을'을 지나 민간인 출입 통제선 북쪽 10㎞ 지점인 높이 70m 능선에 세워져 있다.
분단조국의 상징적 시설인 동시에 통일 홍보교육의 산실이다.
1984년 2월에 준공된 2층 건물로 총면적 343㎡, 높이 8.1m이며 전시실과 전망실로 이루어져 있다.
1층 전시실에는 6·25전쟁 이후의 각종 전쟁 관련 자료와 금강산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전망실은 유리 방벽으로 되어 있고 VTR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 해금강 일대를 볼 수 있으며, 고성능 망원경으로는 금강산 주봉인 비로봉과 세존봉·옥녀봉 등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오른쪽으로는 통일을 기원하는 뜻에서 '성모 마리아상'과 '미륵불상'이, 왼쪽으로는 6·25전쟁 때 공을 세운 호림부대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강산 1만 2천봉과 금강산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 바다의 금강이라 불리는 해금강,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깃든 강호, 하얀 포말에 휘감긴 송도, 푸른 동해 바다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민통선 못 미쳐 남쪽 약 7.8㎞ 지점에 있는 [통일안보공원]은 전망대 관람을 위한 출입신고와 브리핑을 하는 곳으로 1985년 6월에 완공되었다.
총면적은 0.012㎢이고 공원 내에는 야외반공전시장·반공교육장·휴게소 등이 있다.
거진읍 대대리 검문소에서 국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안보공원에서 전망대까지 순환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통일전망대에 들어가려면 먼저 통일안보공원에 들러 출입신청을 하고 사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공원 내에는 출입신고소와 관광안내소, 교육 강당시설, 각종 토산품 및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점과 휴게소, 관광식당이 있다.
공원 안에는 세계자연광물박물관과 깨끗한 모래와 청정호수로 유명한 화진포해수욕장, 철새의 요람인 화진포호수, 해양박물관, 송지호해수욕장 등의 명소가 인접해 있어 동해안의 절경을 관광할 수 있다.
통일전망대를 뒤로한 우리들은 포항으로 발길을 돌리다.
내려오는 길목에 앞에는 바다를 끼고 뒤에는 호수를 품고 있는 천혜의 별장터에 자리 잡은 [이승만 별장]을 둘러보았다.
♣ [이승만 별장]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죽정리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이다.
6.25전에는 38도선 이북이라 북녘 땅이었던 화진포 일대가 수복이 되었다.
그러자 당초 선교사 별장이 있던 이곳을 대통령별장으로 사용하였다.
4.19혁명 이후 방치되었다가 철거되었던 것을 1999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이기붕 별장과 맞은편 해안가에 있는 김일성 별장과 함께 화진포 호수 일대의 명소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장소이다.
별장 건물은 27평 규모로 침실과 집무실, 거실로 구성되어 있는 소탈한 규모이다.
별장 내부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집기들을 가져다 놓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별장 건물 위쪽에는 2007년에 개관한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이 있으며, 약간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고 아담한 단층 건물로 자연석을 외장으로 마감했으며, 응접실과 침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어서 인근에 위치한 [이기붕 별장]도 둘러보았다.
♣ [이기붕 별장]은?
휴전이후 당시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였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 있다.
화진포호수와 바다의 경계를 만드는 모래톱에 형성된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로 주변에 있는 별장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한국전쟁 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이 개인별장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한동안 폐쇄되어 사용하지 않다가 1999년 이후 다시 수리하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화진포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단층 건물로 방과 거실의 구분이 거의 없으며, 외벽은 계곡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몽돌로 마감하고 있다.
내부는 침실, 책상과 응접실이 있는 집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별장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별장이다.
박마리아는 별장 주변지역인 강원도 고성군 대진리에 대진교회를 세우고 이 별장을 자주 이용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인 이유로 폐쇄되어 방치되다가 1999년 7월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건너편에 있는 [김일성 별장]을 구경했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공교롭게도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내부까지 둘러볼 수는 없었다.
♣ [김일성 별장]은?
6.25전에는 북녘 땅이었던 이곳에 김일성은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휴양지로 화진포를 자주 찾았다.
19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리베데 소장의 아들과 별장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화진포의 성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다.
해안가 산기슭에 위치한 이 건물은 광복 직후 건립된 건물로 당시 건축물로는 제법 화려함이 엿보인다.
본래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건물이었으나 전쟁 중 크게 훼손되어 1964년 육군이 본래 건물을 철거하고 지금의 1층 건물로 재건축 했었다.
화진포의 성에는 옛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를 비롯해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물로 만들어져 전시 되어 있다.
새롭게 단장된 화진포의 성은 내부에 김일성의 정체, 독재체제 구축과정, 한국전쟁 도발, 그리고 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도발만행 등 북한관련 자료를 판넬식으로 게시하고 있다.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찍은 사진 등 관련사진도 전시하고 있다.
이곳의 절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마주 보이는 ‘금구도’라 불리는 바위섬이다.
화진포 해변에서 3백여m 떨어진 금구도는 거북 모양을 닮은데다가 가을철이면 이 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 노랗게 변해 섬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이 든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가 해초, 전복 등을 따며 해수욕을 즐기고 겨울철에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를 비롯한 철새가 군무를 펼친다.
'화진포의 성'이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언덕에 위치한 것과 달리 '이승만 별장'은 바다는 보이지 않고 화진포 호수만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서로 3km 정도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이동 중에 계속 비가 오락가락 하여서 완전히 우중 행사가 되고 말았다.
다음 산행은 10월 첫일요일(3일)로 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