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한 학생이 스승인 성백원 시인에게 사은사를 올리고 있다. ⓒ조백현 기자 |
8월 28일 오후 4시 오산중학교 시청각실에서 오산문인협회 5, 10대 회장이자 현 고문인 성백원 시인의 교사 퇴임식이 있었다.
성 시인은 청년이던 1982년 3월 1일 오산중학교에 부임 이후 약 32년 6개월 동안 인생을 바쳐 지역 사회의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문학적 성취도 이루어 국제펜클럽 회원이면서 『내일을 위한 변명』,『형님 바람꽃 졌지요』,『아름다운 고집』 등의 시집을 냈다.
성 시인은 이날 퇴임사에서 “교사로서 퇴임하려니 이제야 교육의 문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면서 “학생을 위한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했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라고 교단을 떠나는 교육자로서의 소감을 밝혔다. 퇴근하면서 오산천 변 음식점에서 동료 교사들과 한잔하며 소통하고 교육을 고민하던 추억도 회상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과제인 평화통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거나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현실에서 잘 융합하고 서로의 장점을 살려 민족 번영의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는 등 역사 교사로서의 사회적 메시지도 전달했다. 성 시인은 오랫동안 뒷바라지하고 함께해 온 부인에게는 큰 절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편 이날 퇴임식엔 사랑하는 가족을 비롯하여 동료 교사, 학생, 졸업생, 문단 지인 등 300여 명의 많은 사람들이 교단을 떠나는 성 시인을 위로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축하했다. 특히 성 시인의 중학교 제자이면서 오산문인협회의 문학적 동지인 신동성 작가가 감동의 사은사를 성 시인께 올려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존경하는 은사님께] 신동성 올림 32년 하고도 6개월!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지요!
한 직장에서 10년을 근속하기도 힘든 일인데, 선생님께서는 평생 한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오산’이라는 낯선 곳에 부임하셔서, 청춘을 오산에 묻고, 또한 뿌리를 내리셨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셔서, 이 나라의 훌륭한 역군으로 배출하시면서도 정작, 당신이 늙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아직도 중학생의 마음으로 제자들과 함께하십니다. 선생님께서는 20대 중반에 사회의 첫발을, 오산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싱싱한 머리카락, 반짝이는 피부, 그리고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오산중학교’에 부임하신 후,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아버지처럼, 사춘기 저희와 그리고 후배들과 동고동락하시더니 이제는 흰 백발에,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으셨고 반짝이는 피부 대신, 슬프게도 머리가 벗겨지셔서 반짝이고 계십니다. 그동안 가르쳐서 졸업시킨 제자들의 숫자만큼 머리카락이 빠졌을까요? 아니면, 속 썩이는 제자들 때문에 빠진 머리카락일까요?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생각하는 한 명의 제자로서 가슴이 저립니다. 제가 오산중학교를 졸업한 지 26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선생님을 뵙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분이란 걸 중학교 시절에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첫 수업이 있던 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뵙고, 저 개인적으로는 코미디언 이상운을 떠올렸고,
칠판에 크게 적으신 ‘성’ 자 ‘백’ 자 ‘원’ 자! ‘성백원’이라는 존함을 보고 절대로 잊지 못할 선생님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낮은 저음의 목소리는 자상한 아버지를 연상케 하곤 했답니다. 운동부였던 저로서는 사실 애석하게도 중학교 시절, 선생님과의 특별한 추억거리가 생각나질 않습니다. 아~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더니 한가지가 생각나는군요! 별관 뒤쪽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지요?
육상부였던 제가 땀과 먼지로 범벅인 채로 작은 볼일을 보려는데 선생님께서 옆으로 오셔서, 나란히 작은 볼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색하셨는지 저를 보시더니, ‘육상부냐?’ 하며 물으시더군요! 저는 ‘네~’ 하고는 수줍게 뛰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추억거리는 많지는 않았지만, 선생님께서는 기억엔 정말 오래 남았던 선생님이셨습니다. 누가 봐도 기억될 외모와 존함!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오산중학교 출신’이라면 모두가 기억할 분이 아니신가 생각합니다. 작은 마을이던 오산이 점점 발전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 ‘오산천’의 모습에서부터 지금의 ‘오산천’의 모습, 하나하나를 지켜보시면서 매일매일 그 길을 걸으셨겠지요? 쓰레기도 줍고, 출퇴근하시는 등하굣 길에 많은 제자의 이름과 추억도 쌓으시던 그 많은 시간이, 오늘의 세월이 되셨습니다. 제 페이스북에 선생님의 ‘명예퇴직’을 알리는 글을 올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댓글이 줄을 이었지요! 그중 한 제자의 댓글에서는 선생님과의 추억을 이렇게 올려놓았습니다. 오산천 잔디밭에 앉아, 당신의 무릎을 베고, 본인을 눕게 하시더니, 다정하게 귀지를 파 주셨다고 합니다. 또 한 분 제자의 댓글에서는 6년 전, 전남 어느 바닷가에서 우연히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먼저 아는 척을 해 주시면서 아주 반갑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상한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많은 제자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교직 생활 외에도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하셨고, 제가 ‘오산문인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선생님과 저의 깊은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학의 수준이 많이 부족했던 오산의 문학을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되셨고, 지금도 꾸준히 문단 활동으로 문학의 한 획을 긋고 계십니다. 저의 어려움에는 늘 긍정적인 응원과 함께, 손을 잡아주시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말로 다 하자면 너무나 많고, 그 말을 하려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굳이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존경하는 성백원 선생님! 제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정년까지 계셔 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남을 먼저 헤아리시는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의 결정은 ‘정당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명예롭게 퇴임하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며,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그 사랑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겉으로 비친 선생님의 모습에서 막걸리가 생각납니다. 이젠 무거운 짐 하나 내려놓으셨으니, 구수한 시와 함께, 막걸리 한 사발 함께 마실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해 봅니다. 그동안 걸어오신 먼 길! 너무나 많았던 역경! 그러나 항상 남을 배려하시는 선생님의 커다란 정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많이 사랑합니다. 성백원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 저작권자 © 물향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첫댓글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위로와 박수에 감사드립니다. 꾸벅~~
조영제 선생님이 낭독한 윗글에 울컥 무엇이 올라왔습니다 눈가에 까지요
성 고문님 그 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언젠가는
옛 고구려를 되찾아 이 땅에 외세의 거드럭거림이 없어지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옛말 속에 사람의 흔적이 있지요. 역시 멋있는 선생님이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발자국의 위대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새로운 시작에 축하드립니다
존경서럽습니다 앞으로도 더 휼륭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