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씨 (房氏)
방(房)씨는 문헌 (文獻)에 20본(本)으로 나타나 있으나 남향방씨(南陽房氏)와 수원방씨(水原房氏)를 제외한 나머지 18본(本)에 대하여는 미고(未考)이며. 수원방씨(水原房氏)는 방정유 (房貞儒)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으나 그 선걔 (先系)에 대하여는 상고 (詳考)하지 못하였다.
(南陽房氏) 남양방씨
시조(始祖) 동래시조 (東來始祖) 준(俊)의 선세계(先世系)는 중국 (中國)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방읍(房邑)의 후(侯)로 봉(封)해져 지명 (地名)인 방(房)을 성(姓)으로 하였는데. 그 후 고구려(高句麗)의 진청(秦請)으로 당(唐)나라 정관(貞觀)17년에 8학사(8學士)를 파유(派遺)할 때 방후(房候)의 후손(後孫)인 당(唐)나라 재상(宰相) 현령(玄齡)의 2자(2子) 준(俊)이 8학사(8學士)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남양(南陽)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여 남양(南陽)으로 관적(貫籍)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었다가 고려조(高麗朝)에 벽상공신삼중대광보국 (壁上功臣三重大匡輔國)을 역임(歷任) 한 계홍 (季弘)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