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의 ‘4대 성수(聖樹)’에 대한 이야기
1. 싯다르타 붓다의 탄생수인, 사라까(Saraca:sorrow-less:無憂樹)
2. 깨달음 얻을 때 삡빨라(pippala:peepal tree:菩堤樹)
3. 열반의 나무 사라수(Sal tree:Shorea robusta:沙羅樹)
4. 아시아, 최고령 나무 빠까리(Pakari Briksh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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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싯다르타 붓다의 탄생수인, 사라까(Saraca:無憂樹)
1) 힌두교에서 보다 비중이 무거운 사라까
일반적으로 불교에 관련된 나무를 모두 '보리수(菩堤樹)'로만 알고 있으나 세분하면 ‘3대 성수’ 또는 또는. 필자의 가설로는, '4대 성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 우선 탄생수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자. 한문권에서는“걱정이 적어진다.”라는 뜻을 가진, ‘무우수(無憂樹:sorrow-less)’라는 속명으로 우리에게는 알려진 ’사라까 아소까(Saraca asoca)‘ 또는 ’아소까(Ashoka)‘는 현재 필자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 를 중심으로 주위에 산재한 나무이다.
당시 출산을 위해 친정인 콜리아(Koriya)왕국으로 가던 마야대비(Maya Devi)부인이 룸비니동산에 이르렀을 때 별안간 산고를 느끼게 되었는데, 이 때 마침 눈높이 정도에 어떤 나무의 늘어진 가지가 보여서, 부인이 그것을 붙들고 힘을 써 아기 싯다르타를 무사히 순산하였다는 바로 그 나무이다. 당연히 세계적인 종교로 커진 불교사적 면에서는 존재감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 ’3대 성수‘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나무는 '불교화'가 되기 이전부터 힌두교와 자인교(Jainism) 등에서도 비중이 무거운 나무였다. 이 나무가 인도대륙에 그 존재감을 들러낸 것은 그 연원은 아주 오래 전이었다. 태양신과 대지신의 토템화 시기인 초기 부라만교(Brahmam)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토템화가 자리잡은 인류문화사의 초창기였는데, 일종의 정령(精靈)을 인격화하여 약시니(Yakshini)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때 였다. 당시 이 나무는 꽃과 열매를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존재를 드러내었다.
여기서 약시니는 남성격 약샤(Yakshas)의 여성격 호칭으로 힌두신화에 의하면, 히말라야 신비의 왕국 알라까(Alaka)의 지배자이며 또한 ‘재복의 신’ 꾸베라(Kubera)의 시종들로서, 남성격인 약시상은 용맹하고 무서운 형상으로 묘사되고 여성격인 약시니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자태로-싱싱한 뺨, 넓은 궁둥이, 잘록한 허리, 넓은 어께, 묶여진 머리, 과장된 반구형의 유방을 가진-묘사되고 있다.
그 후 기나 긴 부라만(Brahman) 시대를 지나고 인도대륙이 힌두이즘과 자인교 그리고 불교로 삼분되어 각기 만개하면서 이들 종교의 판테온(pantheon)으로 들어가면서 각기 다른 이름과 특유의 표현양식으로 굳어져 갔다는 사실은 우리는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이런 현상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오늘 우리의 주제는 약시니 상으로 상징되는 정령신앙이 아니다. 분명 우리의 초점은 어떤 나무이다. 바로 사라까, 즉 아소까 나무의 줄기와 잎사귀 그리고 꽃송이다. 이런 모티브가 힌두교의 정령인 약시니 조각상의 손, 발, 허리, 골반, 목 부분에 장식되어 있기에 이 둘을 같이 이야기했던 것이나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면, 이 아름답고 숭고함의 상징성이 된 이 사라까 나무는 이들 3가지 종교 중에서 특히 ‘불교화’를 거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그저 정령이나 여신을 예쁘게 치장하던 조연급에서 무게감을 더하여 싯다르타의 룸비니 탄생수(誕生樹)와 또 다른 나무 보드가야의 정각수(正覺樹)인 ‘삡빨라(pippala:peepal tree)’나무가 혼합 또는 혼동되면서 넓은 의미의 ‘깨달음의 나무’인 보디수(菩堤樹)‘로 변하면서 나무자체를 불상과 동격으로 신성시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바로 불교사적인 용어인 무불상(無佛相) 시대를 말함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인도대륙 뿐만 아니라 불교의 주요 전파로 상에 있었던, 주변국인 네팔, 스리랑까, 동남아시아 제국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 제국도 같은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1세기 때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싼치 스뚜빠(Sanchi Stupa) 같은 불교건축물에서 상당한 양의 나무, 줄기, 잎사귀, 꽃잎 등이 보이는 것을 보면 성수로서의 이 두 나무-사라까와 삡빠라-의 예술적 용도는 그 연원이 상당히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넓은 의미의 보리수’에 속하는, 위에서 말한 두 나무 외에도 ‘다라수(多羅樹:Tara)’와 같은 나무가 경전 속에 나오기는 하지만, 비중면에서 위의 두 나무와 비교되지는 않는다. 물론 슈베르트의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도, 우리나라 절마다 있다는 보리수[보리자]도, 모두 역사적인 성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도 모두 사족이리라….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나무와 꽃으로 치장된 이런 약시니(Yakshini)상들이 단순히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것을 넘어 대단히 섹시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고대 남자들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관능적인 여성상은 그들의 안목이 현대 남성들의 시각인 쭉쭉빵빵한 몸매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시대를 초월한 모든 남성들의 영원한 로망인 것 같다. 이는 종교적이기보다는 선정적이고 관능적인 몸매를 강조했다는 대목인데, 마치 그리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혹은 비너스(Venus)와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이런 면으로의 접근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이쯤해서 줄이기로 하겠다.







첫댓글
자주 들어오셰요
노트북이 애물단지로군요.
문제가 생기면 들고가서 고칠데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