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ibal, filius Hamilcaris, Carthagine natus est.
하밀카르의 아들, 한니발은 카르타고에서 태어났다.
Odium patris erga Romanos sic conservavit ut numquam id deponeret.
그래서 그는 로마인들을 향한 아버지의 증오심을 간직하고 있었고, 결코 그것을 옆으로 제쳐두지 않았다.
Nam post bellum Punicum, cum ex patria in exsilium expulsus esset, non reliquit studium belli Romanis inferendi.
왜냐하면 포에니 전쟁 이후, 조국을 떠나 망명지로 쫓겨났을 때, 그는 로마인들과 전쟁을 치러야겠다는 집념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Quare, cum in Syriam venisset, Antiocho regi haec locutus est ut hunc quoque ad bellum cum Romanis inducere possit:
그런 이유로 그는 시리아(당시 "셀레우코스 제국")에 도착하여 안티오쿠스 왕에게 또한 그가 로마인들과의 이 전쟁을 지휘할 수 있음을 이와 같이 이야기했다.
"Me novem annos nato, pater meus Hamilcar, in Hispaniam imperator proficiscens Carthagine, sacrificium dis fecit.
"제가 아홉살이 되었을 때, 제 아버지 하밀카르는 카르타고에서 히스파니오로 출정하는 사령관으로서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습니다.
Eodem tempore quaesivit a me vellemne secum proficisci.
그 때 그는 저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기를 원하는지를 물었습니다.
Cum id libenter audivissem et ab eo petere coepissem ne dubitaret me ducere, tum ille 'Faciam', inquit, 'si mihi fidem quam quaero dederis.'
저는 그 말을 듣고 기뻐 그에게 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만약 내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신뢰를 네가 나에게 준다면 그렇게 하겠노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Tum em ad aram duxit et me iurare iussit me numquam in amicitia cum Romanis futurum esse.
그 다음 그는 저를 제단으로 데리고 가서 저에게 절대 로마인들과 친구가 되지 않겠노라고 맹세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Id is iurandum patri datum usque ad hanc aetatem ita conservavi ut nemo sit qui plus odii erga Romanos habeat."
그렇게 저는 아버지에게 맹세를 바쳤고, 어느 누구도 로마인들에 대해 더 큰 미움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Hac igitur aetate Hannibal cum patre in Hispaniam profectus est.
그렇게 하여 이 시기에 한니발은 아버지와 함께 히스파니아로 떠나게 되었다.
Post multos annos, Hamilcare et Hasdrubale interfectis, exercitus ei imperium tradidit.
많은 해가 지나, 하밀카르와 하스두르발이 죽자, 군대는 그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Sic Hannibal, quinque et viginti annos natus, imperator factus est.
그렇게 25세의 한니발은 총사령관이 되었다.
Tribus annis omnes gentes Hispaniae superavit et tres exercitus maximos paravit.
3년 뒤 그는 히스파니아의 모든 종족들을 무찌르고, 막강한 3개의 군단을 창설했다.
Ex his unum in Africam misit, alterum cum fratre in Hispania reliquit, tertium in Italiam secum duxit.
이 중 하나는 아프리카로 보냈고, 다른 하나는 그의 형제와 함께 히스파니아에 남겨졌고, 3번째 군단은 자신이 직접 이탈리아로 이끌고 갔다.
Ad Alpes venit, quas nemo umquam ante eum cum exercitu transierat.
그는 자신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군대를 이끌고 지나간 적이 없는 알프스에 도착했다.
Alpicos conantes prohibere eum transitu occidit; loca patefecit; itinera munivit; effecit ut elephantus ire posset qua antea unus homo vix poterat repere.
그는 이동 중에 그를 막으려고 시도하는 알프스 사람들을 중여 공간(길)을 만들고, 군대 행렬을 방어했으며, 겨우 한 사람이 기어갈 수 있던 곳을 코끼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Sic in Italiam pervenit et, Scipione superato, Etruriam petivit.
그렇게 그는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스키피오(아버지 스키피오, Publius Cornelius Scipio)를 무찌른 후, 에트루리아를 공격했다.
Hoc in itinere tam gravi morbo oculorum adfectus est ut postea numquam dextro oculo bene uteretur.
그는 이 여정에서 매우 심한 눈병에 걸려, 나중에는 오른 쪽 눈을 잘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Multos duces exercitusque Romanos superavit; longum est omnia proelia enumerare.
그는 로마의 많은 장군들과 군대들을 격퇴했는데, 모든 전투들의 숫자를 세는데 긴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Post Cannensem autem pugnam nemo ei in acie in Italia restitit.
더구나 칸나에 전투 이후에는 이탈리아에 있는 전선(戰線)에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Cum autem P. Scipio tandem in Africam invasisset, Hannibal, ad patriam defendam revocatus, Zamae victus est.
그러나 마침내 스키피오(아들 스키피오, Scipio Africanus)가 아프리카를 침략했을 때, 한니발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다시 소환되었고, 자마(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Sic post tot annos Romani se periculo Punico liberaverunt.
그렇게 아주 많은 해가 지나서야 로마인들은 포에니(페니키아 또는 카르타고)의 위험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