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각 코끼리
이 홍사
*오늘밤도 코끼리의 코로 들어가
커다란 자궁에서 노닐면 좋겠다.
따스한 양수에 흥건히 젖은 채.
*미얀마에 온 것은 사흘 전 밤이었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한 시 반, 깊고 푸른 밤, 어느 시인은 그런 밤을 두고 깊고 푸른 밤이라고 했다. 그 깊고 푸른 밤에 도둑고양이 담 넘듯이 양곤 공항에 날아든 것이다. 그 시간 양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깊은 밤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뱉은 말이 ‘째주 바배’였다.
째주 바배!
미얀마 말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다.
미얀마로 ‘나 홀로 배낭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익힌 말이다. 물론 미얀마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말인데, 가이드북을 보고 이 말을 곱씹으며 번쩍 떠오른 것이 쪽빛 바다였다. 야외에서 바비큐 해먹었던 지난해의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제주 바닷가에서 본, 뇌리에 깊숙이 박힌 쪽빛이었다.
째주 바배라는 글귀를 읽고 번쩍 뇌리를 스쳐가는 쪽빛, 쪽빛을 본 그날은 내가 다리를 걸치고 있는 산악회 회원들과 한라산 등산을 마치고 자그마한 식당을 빌려 돼지 바비큐를 하며 돌담이 야트막한 식당 마당, 불가에 둘러서서 종이컵이지만 소주잔이 아닌 음료수 컵에 소주를 콸콸 부어 권하면서 하산 뒤풀이를 했다. 내가 잊을 수 없는 건 동행들 어깨 사이로 설핏 본 바다의 쪽빛이었다.
해질 무렵의 자연이 슬쩍 던져주는 그 빛깔에 반해 소주가 담긴 잔을 쥔 채 잠시 치를 떨어야 했다. 그날 내가 취한 건 소주가 아니라 쪽빛이라는 빛깔이었다. 어째서 째주 바배라는 말에 그 쪽빛 바다가 떠올랐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제주도 바비큐라는 어감과 비슷하여 그날 숯불에 떨어지는 돼지기름 타는 노릇한 냄새를 건너뛰고 바로 쪽빛 바다를 떠올린 것이다.
지은 죄도 없고 엄연히 비자를 받아서 입국장에 들어가지만 낯선 나라 입국심사대 앞에 서면 언제든지 긴장을 하게 마련이다.
미얀마는 특히나 입국심사가 느리다고 가이드북에 소상히 나와 있었지만 긴 줄을 선 끝에 내 차례가 되어 긴장하며 여권을 내밀자 때마침 걸러온 전화를 받는 이마가 벗겨진 오십대의 입국심사관은 눈치로 미루어 그리 중요한 전화는 아닌 것 같았지만 껄껄 웃어가며 내 인내를 테스트하듯이 긴 통화를 했다.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욕이 나올려는 찰라, 통화를 끝내고 내 얼굴을 힐끔 보고는 내 비자에 입국허가 도장을 찍고 여권을 건네주었다, 빛이 바래고 때가 꼬질꼬질 묻은 제복을 입은 직원에게 여권을 받으며 목젖을 간질이는 ‘째주 바배’를 뱉어내고 억지로 웃어줄 적에도 어김없이 쪽빛 바다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미얀마에서의 여행이 쪽빛처럼 아름다운 빛깔로 가슴에 오래 남기를 기원하며 앞사람의 궤적을 좇았다.
입국장에서 에어커튼을 넘어서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훅 끼치며 숨이 콱 막히는 듯 했다. 전기가 모자란다는 미얀마, 밍글라돈 국제공항의 수화물 수취장은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며 한국의 11월의 옷차림이 금세 몸에 칭칭 감기기 시작했다. 사타구니에 끼인 팬티를 떼어내며 버릇처럼 시계를 보았다. 비행기에서 미얀마 시간으로 시계를 맞추었기에 이곳 시간이다. 밤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입국장 밖에서 김 선생님, 메일을 주고받을 적에야 김 선생님이라고 했지만 경상도 발음으로 팍 줄여 김 쌤이라고 불렀다. 김 쌤 역시 나를 두고 이 쌤이라 부르는 경상도 토박이였다. 김 쌤이 내 이름이 적힌 A4 용지를 들고 기다릴 것이다. 처음 미얀마여행을 계획하면서 배낭을 메고 게스트 하우스를 전전하며 미얀마의 바닥을 훑어보리라고 생각했지만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있어 미얀마 한인회 카페를 들락거리며 단기 하숙집을 찾아내고 주인인 김 쌤과 메일을 주고받아 공항 픽업까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게스트 하우스를 전전하기 위해 배낭을 꾸리고자 했지만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배낭이 자연스럽게 캐리어로 바뀌었고 항공기 도착 시간을 일러주었다. 사회는 이해 중심으로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공항 픽업의 관계! 아무리 이해 중심으로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30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 할 획기적인 수확의 관계다.
가방을 찾아서 입국장 밖으로 나오자 여름옷을 입은 미얀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피켓을 들고 있었고 누구는 이름이 적힌 A4용지를 들고 있었다. 내 이름을 찾는 척하며 도열해 선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한국인보다 비교적 키가 작은 미얀마 사람들은 표정이 밝고 순수해 보여 낯설지 않고 은근히 친근감을 느낄 정도였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 사람과 비슷한 생김새도 친근감에 한 몫을 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도열해 서있는 곳을 훑어보며 빠져 나오자 맨 끝에 내 이름이 인쇄된 A4 용지를 들고 서있는 키가 작달막한 소녀가 보였다. 나이는 겨우 열일곱이나 열여덟 정도로 보이는 청순가련형의 소녀였다. 소녀 앞에 서니 겨우 외우고 왔던 ‘밍글라바’ 라는 미얀마의 인사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미소를 지어주었다. 소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이름표의 주인임을 금세 알아차리고 한 번 웃어주고는 내 캐리어를 제가 끌겠다고 손잡이를 잡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소녀는 체리라는 이름을 가진 미얀마 시골의 소녀로서 김 쌤 댁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캐리어를 서로 끌겠다고 실랑이하는 사이 아랫도리를 론지라는 미얀마 옷을 치마처럼 입은 키가 후리후리한 오십대의 사내가 다가왔다. 첫눈에도 인상이 괜찮았고 김 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김 쌤 되시는교?
-예! 이 쌤 맞지요?
인사 겸 악수를 했다. 의례적으로 인사를 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김 쌤이 캐리어를 끌고 앞장섰다.
공항 청사 밖으로 나와도 후덥지근하고 입고 있는 옷이 거북할 정도로 더웠다. 차는 바로 공항 입구, 키가 큰 야자수 아래 서 있었다. 공항 주차장은 한산했다. 차를 타려고 보조석 문을 열었는데 이런, 그곳에 핸들이 달려있었다.
-이거? 일본차인 모양이네요?
-여기는 거의가 일본 중고차입니다.
대답을 들으며 차를 한 바퀴 돌아 보조석 문을 열고 올라앉았다. 메일을 받은 바에 의하면 공항에서 오 분 거리라고 했으니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달리는 차에서 보니 한국에서 단풍이 지는 것을 보고 왔는데 열대식물들이 파란 색깔의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노숙자들이 절대 얼어서 죽지는 않을 나라라는 생각이 먼저 스쳐갔다. 하긴 양곤에도 노숙자기 있는지 모르겠다.
하숙집은 대로를 조금 달리다가 단독주택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가서 또 좌화전하여 더 깊은 골목에 매달려 있었다. 혼자 찾아가라면 꿈도 꾸지 못할 미로 같은 골목이었다. 아무래도 공항이 시내 가운데 있는 모양이다.
-미얀마식 집이라서 쓰시기에 다소 불편하실 겁니다.
마당에 차를 넣고서야 운전대를 잡은 김 쌤이 브레이크를 채우며 말했다. 나는 그 동안 차창 밖의 이국 풍경에 빠져있었다.
뒷좌석에서 내린 소녀가 냉큼 트렁크를 열고 내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안에서 기다리던 다른 소녀가 나와 대문을 닫아걸었다. 조용한 동네는 어둠 속에 잠겨 웅크리고 있는데 그 집은 손님을 맞이를 한다고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처음 보는 소녀는 나를 보고는 수줍은 듯이 고개를 까닥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말로만 듣던 미소의 나라에 온 것을 실감할 정도였다.
내가 쓸 방은 이 층이었다. 일 층에서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니 이 층 거실이 있고 이 층에 방이 두 개 있었다. 소녀가 안내한 방에는 타일이 깔려 있었다. 사시사철 더운 나라라 난방이 필요 없으니 타일을 깔아도 무방하다. 방은 싱글 침대 두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미얀마로 배낭여행을 오는 배낭족은 이런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하루씩 자고 가는 모양이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뒤졌지만 미얀마의 패키지여행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단체 관광객들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한 땅이다. 그 점이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짐을 대충 풀고 반바지로 갈아입고 일 층으로 내려가니 거실에서 김 쌤이 YTN을 틀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는 샤워했습니다. 샤워부터 하시죠?
-11월에 샤워라니, 좀 우습군요.
이마에 땀이 맺히고 속옷이 땀과 함께 몸에 칭칭 감기고 있었다. 하지만 샤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동안 참았던 담배를 피울까하다가 이 층으로 가서 속옷을 챙겨들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들어가니 어느새 가사도우미 소녀들이 수건을 준비해두었다. 우리나라 욕실과는 달리 욕조는 없고 장방형으로 생긴 시멘트벽에 흰색 타일을 붙여 물을 가득 받아두고 바가지로 파서 쓰게끔 되어 있었다. 그 시멘트벽이 가슴 높이였다. 어린애들이 장난삼아 들어갔다가는 익사하기에 적당한 깊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얀마는 물에 진흙 성분이 많아 그 미세한 진흙가루가 가라않도록 그렇게 많은 물을 받아둔다는 것이다. 그 장방형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수조가 일종의 정수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빨래거리는 거기 바구니에 벗어두시면 됩니다.
옷을 벗는 사이 문 밖에서 김 쌤이 소리쳤다.
속옷을 여기에 벗어 두면 누가 빨겠는가? 저 어린 소녀들이 섬섬옥수로 내 속옷을 빤다? 상상만으로도 죄악이다. 고개를 저었다. 땀과 범벅이 된 메리야스는 잘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메리야스와 팬티를 벗고 쪼그려 앉아 빨래부터 시작했다. 빨래랄 것도 없었다. 물에 헹구어 땀만 빼면 그만이었다. 빨래부터 하고 샤워를 했다. 11월에 찬물 샤워라니? 한국의 냉수마찰과는 성격이 다르다. 들뜬 마음으로 기분 좋게 샤워를 마치고 빨래를 들고 나와 빨래를 널 곳을 찾자 소녀들이 무슨 죄라도 지은 듯이 김 쌤의 눈치를 보고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내 손에 든 빨래를 냉큼 앗아갔다. 무안한 건 오히려 나였다. 그렇게 빨래를 빼앗기고 자리에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YTN에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뉴스는 잘 보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다. 정치에 너무 민감하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나는 그 경험을 했다. 재작년까지는 몽골에서 건설업을 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의 현장에서 거의 보름이 넘게 일에 매달리고 있다가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하는 가운데 출입구 앞에 진열해 놓은 한국에서 날아온 따끈한 신문들의 타이틀을 훑어보니 뒷골이 팍 당기는 것이다. 매일 뉴스를 접할 때는 몰랐지만 뉴스가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 크다는 사실을 그 때 인식하고 가급적이면 정치에 관한 뉴스는 피한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김 쌤이 뉴스에 푹 빠져있는 것이다. 뉴스를 건성으로 보며 구형 텔레비전 위에서 코를 한껏 쳐들고 있는 목각코끼리에 눈길을 주었다. 참으로 정교하게 깍은 목각이다.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일었지만 참았다. 한국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은 본 것이 아니다. 꼭 손으로 만져봐야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면 만지기 좋은 곳에는 손때가 묻어 반질거린다고 어느 외국잡지가 보도했다. 나도 한국인인지라 예외는 아니다.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웠다. 그렇다면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두시 반이 넘었다는 얘기다. 그 시차 계산을 하자 갑자기 하품이 나왔다. 내가 입을 가리고 하품하는 것을 본 김 쌤이 한 마디 했다.
-먼 여정에 피곤하시죠?
-아닙니다. 견딜만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과 비행시간을 합치면 열 시간 이상 차와 비행기에 시달렸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며 부산을 떨다가 아침 열 시에 집에서 나섰으니 몇 시간의 여정인지 얼른 계산이 되지 않는다.
-어디를 둘러보실 생각입니까?
-특별히 정한 데는 없고 발길 가는대로 양곤의 바닥을 훑어볼 작정입니다. 아주 밑바닥을요.
-관광지를 둘러보실 생각은 없으시고?
-예. 시장조사차 나왔습니다. 어디 다리 걸칠 곳이 없나하고.
-그럼 가이드는 필요 없겠군. 어떤 곳에 투자를 하시려고요
-아직 투자라 하기는 그렇고, 좀 둘러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늦었는데 그만 주무시죠?
내 말을 끝으로 김 쌤께서 담배와 휴대폰을 챙겨 일어섰다. 나도 일어서서 나무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랐다.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몇 번이고 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이마에는 또 땀이 맺히고 있었다. 티슈를 한 장 빼서 땀을 훔쳤다. 침대 머리맡 작은 탁자 위에는 가사도우미 소녀들이 물병과 컵, 재떨이를 준비해두었다. 쉬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담배를 한 대 물고 생각하니 참 멀리 왔다.
미얀마는 인연이 있어야만 올 수 있는 곳이라 했다. 무슨 인연으로 미얀마에 왔는지 모르겠다. 미얀마 여행은 벼르고 작정하고 준비한 여행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하여 글을 쓰다가 미얀마 이야기가 나오고 미얀마를 직접 밟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미얀마 껍질만 핥다가 바로 티켓팅을 했다. 황금보다, 현금보다 값지다는 지금, 나는 ‘지금’을 만끽하기 위해 미얀마로 왔다. 지금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야한다고 마음먹고 잠을 청했다. 불을 끄고 누우니 자꾸만 텔레비전 위에 얹힌 목각 코끼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어른거리다가 기어이 잠 속까지 따라 들어왔다. 미얀마의 첫날밤은 코끼리와의 동침이었다.
밤새 코끼리를 안고 잤으니 몸이 무거웠다. 아침을 먹으며 생각했다. 여정이 길었던 게 아니라 분명 코끼리의 몸무게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햇살이 퍼지자 준비해 온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대문을 나섰다.
김 쌤도 외출복차림으로 동행했다. 긴 골목을 빠져나와 큰 상가가 있는 대로변 환전소에서 미얀마 지폐로 환전할 때까지만 동행했다.
손가방에 물티슈와 양곤의 지도가 들어 있었다. 인정으로 하루만 가이드로 따라나서겠다는 김 쌤을 좋은 말로 정중히 사양했지, 억지로 뿌리치고 혼자서 ‘지금’을 만끽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가이드로 동행하면 ‘지금’을 만끽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냉큼 택시를 잡았다.
미얀마에 오면 모두가 간다는 술래 파고다와 쉐드공 파고다를 훑어보고 큰 와불이 있다는 차욱타지 파고다로 갔다.
날씨는 지독히도 더워서 연신 땀을 훔치며 동양의 정원이라는 양곤시내를 택시로 싸돌아다녔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데로 동선을 잡고 움직였다. 술래 파고다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책에 나온 순서대로 움직이는 게 택시비를 절감할 것 같았다.
목각 코끼리를 산 곳이 차욱타지 파고다였다. 책에 나온 대로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도록 불사한 초대형 와불이었다. 합장을 한 채로 와불을 한 바퀴 돌며 그 장엄함에 놀라고 부처님 발바닥에 새겨진 반야심경을 카메라에 담고, 꿇어앉아 입술을 달싹이며 기도를 하고 있는 미얀마인 옆에서 미얀마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고 견문의 폭을 넓히게 해달라는 뜻을 담고 큰 절을 세 번 울렸다.
이국인이 누운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는 게 미얀마인 눈에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기도를 하던 미얀마인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코리아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웃어주었다. 미얀마의 모든 파고다는 맨발로만 들어갈 수가 있다. 물론 양말도 벗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책에서 읽어서 아는 사실이지만 타일 바닥을 쏘아 다니니 발바닥에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렸다.
모든 파고다에는 신발 보관소가 있었다. 신발 보관소에서 내 신발을 찾아 신고 나오다 보니 파고다 영내 주차장 건너편에 식당이 있었다. 시간은 점심때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식당을 보자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미얀마 음식도 책에서 본 것 밖에 모르면서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갔다. 모르는 나라 식당에 가면 글씨도 모르는 메뉴판을 찾을 게 아니라 옆에 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가를 살피는 게 좋은 방법이다. 그것 중에서 먹을 자신이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식당에 들어서니 두 테이블에서 남녀 쌍쌍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쪽 팀은 국수 같은 것을 먹고 있었고 한 팀은 뽁음밥 비슷한 것을 먹고 있었다. 국수 종류는 모힝가인 모양이고 뽁음밥은 아무리 보아도 책에 나온 터민조가 맞는 것 같다.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주인아주머니가 쪼르르 달려왔다.
-터민쪼 실라? (터민쪼 있습니까?)
책에서 외운 대로 혀 꼬이는 발음을 겨우 토해 냈다.
-시대! (있습니다!)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음식을 시키기는 했는데 얼마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들고 있는 책을 펴면 얼마냐고 물어볼 수는 있는데 그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고 맛을 보니 우리나라의 뽁음밥과 흡사했다. 한 스푼은 조심스레 맛을 보고 입맛에 맞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시장기가 식사의 속도에 한몫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냉장고에 있는 물을 한 병 직접 꺼냈다. 미얀마에 오면 특히 물을 조심하라고 들고 있는 가이드북에 나와 있었다. 물을 마시고 음식 값을 몰라 미얀마에서 고액권인 오천 짯 한 장을 내밀었다. 잔돈을 받아보니 삼전 팔백 짯이다. 밥값이 천 짯이고 물이 이백 짯인 모양이다. 밥값이 천 짝이라면 비교적 물가가 싸다.
물가에 대해 대충 감을 잡고 옆에 붙은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들어섰다. 내 눈은 목각 코끼리를 찾고 있었다. 김 쌤 댁에서 본, 내 눈을 사로잡은 목각 코끼리와 모양이 똑 같은 것을 더듬고 있었다. 코끼리는 큰 놈 작은 놈, 여러 마리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모두가 수작업으로 직접 깍은 코끼리다. 코끼리에 눈길을 주고 있자 기념품 가게를 지키는 아가씨가 코를 늘어뜨린 큰 코끼리를 집어 들었다. 너무 커서 가방에 들어가기도, 가져가기 곤란할 것 같다. 그걸 보고는 한 발짝 물러서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쭉 훑어보다가 코를 내리고 있는 좀 양순한, 작은 코끼리를 집어 들었다. 코끼리 등에 붙여진 견출지에 오천 짯이라는 가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말로 물었다.
-벨라웃래? (얼마입니까?)
아가씨는 손가락을 다섯 개 펴서 손바닥을 쳐들었다. 결코, 코끼리 값을 몰라서가 아니다. 책에 나온 미얀마 말이 맞나 실험하기 위해서다.
-째지 대! (비싸요!)
-쑈배 바! (깎아 주세요!)
역시 물건 값을 깎기 위함이 아니라 아가씨에게 말을 걸고 싶은, 말상대가 없는 여행자의 마음과 내가 억지로 구사하는 미얀마어가 맞는지 실험하기 위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미얀마어는 그것 밖에 없었다. 가이드북에는 간단한 말들만 실려 있었다.
아가씨는 억지로 미얀마어를 구사하는 이국인이 가소로웠는지 말이 통했는지 슬쩍 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째지 대를 몇 번하고서 사천 짯에 코끼리 한 마리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코끼리가 내 손으로 건너오는 순간 그놈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돈을 건네고 그놈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코끼리를 귀에 대고 그 놈이 내쉬는 가냘픈 숨소리를 들으며 아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점원 아가씨 역시 거스름돈을 건네주며 내 행동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얼른 보기에 치열이 가지런한 아가씨의 미소가 참으로 예쁘다.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지만 미소가 예쁘다는 말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았다. 고로 나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째주 바배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차욱타지로 들어서는 택시를 세웠다.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가서 종일 흘린 땀을 씻고 좀 자고 싶었다.
미얀마의 택시는 흥정을 먼저하고 타야한다. 기념품 가게 아가씨가 택시 기사와 흥정하는 것을 보고 서로 오우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택시 앞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보였다. 어라? 웬 과잉 친절? 속으로 저어기 놀라며 표정을 보니 결코 장사속의 과잉 친절이 아니기에 택시를 타며 째주 바배를 다시 외칠 수밖에 없었다. 택시가 출발하니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마음이 푸근해졌고 다시 차욱타지에 온다면 이 아가씨를 먼저 찾을 것이다.
택시에서 손에 들고 있던 코끼리를 메고 있는 손가방에 조심스레 넣었다. 코끼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가방 지퍼를 완전히 채우지 않고 조금 열어두었다. 코끼리가 내쉬는 숨과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택시 안은 찜통처럼 더웠다. 차창을 모두 열어놓았지만 연신 땀을 훔치며 돈이라는 무기로 포획한 코끼리를 보니 마음이 푸근했고 택시기사가 운전을 하며 피우는 담배연기도 싫지 않았다.
김 쌤이 일러준 꼬(구)마일은 그리 멀지 않았다. 미얀마는 술래 파고다를 중심으로 몇 마일 몇 마일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에 거리를 가늠하기 쉬웠다.
택시에서 내려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며 다시 코끼리를 꺼내 보았다. 여러 마리가 같이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한 마리만 들고 있으니 참으로 정교하게 깎은 작품이다. 분명 손재주 좋다는 미얀마 장인이 손으로 직접 깎은 것일 터이다.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이젠 내가 네 주인이다. 잘 사귀자.
그렇게 코끼리에게 나직하게 말하며 코끼리 코에 뽀뽀를 했다.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뭇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코끼리를 가방에 몰아넣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더듬으며 코끼리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코끼리의 이름을 생각하며 미로 같은 골목에서 숙소를 찾아 마당에 들어서니 차가 없었다. 아마도 김 쌤이 출타하신 모양이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체리라는 소녀가 김 쌤은 골프 치러 갔다고 골프 치는 시늉으로 백스윙을 하고 공이 어디까지 가나 살피는 시늉을 했다. 짤막한 판토마임 같이 그 동작이 너무 정확해서 알겠다며 웃어주었다. 그 동작이 너무 정확해서 골프장에 따라가 보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영어도 미얀마 말로도 물을 수가 없었다.
이 층으로 올라가 코끼리가 든 가방을 침대에 얹어두고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면서도 코끼리의 이름을 생각했다. 코순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으나 너무 진부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한 가지 의혹이 일었다. 왜 목각코끼리가 암놈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상아가 달렸으면 수놈이 아닌가? 그렇다면 암놈은 상아가 없는 것인가? 모르겠다. 발가벗은 채 쪼그려 앉아 곰곰이 생각하니 상아가 달렸지만 암놈 코끼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 암놈으로 하자.
사타구니를 씻으며 혼잣말을 뱉어내고 코끼리를 암놈으로 정했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자 그 놈은 암컷이 되었다. 미스 미얀마를 줄여서 미스미라고 이름도 지어버렸다. ‘미스미’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또 의혹이 일었다. 저 놈이 처녀일까 하는 문제에 봉착된 것이다. 생각하니 그것도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알아내지? 혼자서 전전긍긍하다가 진열장에 발가벗고 서서 날 사가시오 했으니 과부는 아닐 것이다. 숫처녀일 것이라는 결론을 짓고 팬티를 입었다.
욕실에서 나와 머리를 닦으며 이 층으로 올라가 코끼리를 꺼내 침대에 세워두고 코끼리에게 물었다.
-미스미! 너 정말 암놈이냐?
코끼리는 대답이 없었다.
-너 숫처녀가 확실하냐?
뒤에서 누가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코끼리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무 야한 질문을 했나? 일 층 텔레비전 위에 있는 코끼리도 암컷인지 그게 갑자기 궁금해졌다. 후다닥 일 층으로 내려가서 텔레비전 위에 얹힌 코끼리를 확인했다. 어라? 상아가 없다. 이놈은 분명 암놈이 맞다. 그렇게 말을 흘리며 다시 이 층으로 올라가 코끼리 성전환 수술을 시작했다. 뿔로 만들어 꽂아놓은 상아만 빼면 된다. 코끼리를 거꾸로 들고 상아를 살펴보니 구멍을 뚫어 꽂고 접착제를 발라 놓은 것 같았다. 코끼리 입장에서 보면 성전환 수술이 난생처음 겪는 대 수술이 되겠지만 나로서는 손톱 밑에 가시빼기다. 상아를 살며시 흔들어보니 조금 흔들렸다. 성전환이라는 대 수술을 하자면 손을 씻고 무균장갑을 끼고 해야 마땅함이거늘 손은 고사하고 담배를 삐딱하게 물고 침대 걸터앉아 간단하게 상아를 뽑은 것으로 대 수술을 마쳤다. 뽑은 상아는 피우던 담배와 함께 재떨이에 버리고 보니 코끼리는 양순한 암컷으로 변해 있었다.
-미스미 아팠냐?
암컷으로 변한 목각 코끼리에게 물어보니 대답이 없다. 강한 부정이 아니면 긍정이라고 했다. 아프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의 끝을 물고 한낱 나무도막에 불과한 코끼리에 이렇게 집착하는 게 무슨 연유인가 하는 의문이 슬며시 일었다.
낯설고 먼 이국땅에 와서 정을 줄 곳이 없는 나그네의 외롭기 그지없는 마음이 한낱 사물에 집착하고 여분의 자투리 정을 주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미얀마로 여행 오는 모든 인간들은 목각 코끼리를 들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것인가? 모르겠다. 지금은 여행 중이고 기념품을 하나 산 것으로 생각하자고 결론짓고 코끼리를 침대 머리에 있는 탁자에 올려 두었다. 그곳에 올려두고 가이드북을 뒤지며 다음날 둘러볼 곳을 챙기다가 가만히 보니 코끼리는 보면 볼수록 정교하게 깎은 작품이다. 곧 숨을 쉬며 탁자 위에서 내려와 방안을 걸어 다닐 것만 같이 생동감이 넘쳤다.
자신도 모르게 그놈을 다시 집어 들고 귀에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가만히 귀에 대고 있으니 내 심장이 뛰는 속도에 맞추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숨결은 참으로 고르고 감미롭기까지 했다. 목각코끼리가 숨을 쉬다니? 정말 환장할 일이다.
코끼리의 숨결에 도취되어 있을 때 가사도우미 소녀 체리가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들어왔다. 방 청소를 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체리를 향해 한 번 웃어주고 코끼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 층 거실에서 좁은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니 옥상이었다.
옥상에서 보니 한국과는 사뭇 가른 이국풍경이 펼쳐졌다. 한국의 중소도시 옥상에 올라가면 보이는 것이 교회첨탑과 온천 마크가 불을 밝힌 모텔뿐인데 반해 온통 숲으로 도시가 덮여 있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도시다.
들고 있는 코끼리를 옥상 난간에 올려 두고 그놈을 유심히 살폈다. 처음 보는 풍경인지 코끼리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도시를 살피고 있었다.
-한국에 가면 이상한 풍경이야. 여기 풍경을 잘 보아 둬.
그 말을 하고 보니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 골목으로 김 쌤이 골프백을 메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코끼리를 들고 옥상에서 내려와 일 층 거실로 갔다.
김 쌤이 거실로 들어오자 언제 내려왔는지 체리가 냉큼 쫓아가 골프백을 받아들고 들어갔다. 김 쌤은 나를 보고 오늘 어디를 둘러보았냐고 인사치레로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들고 있는 코끼리를 보며주며 말했다.
-이 코끼리는 숨을 쉬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는 눈치더니 금세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미얀마 코끼리는 모두 숨을 쉰답니다. 숨 쉬는 목각 코끼리를 어디서 사셨어요?
-차욱타지 파고다에서 누워계신 부처님께서 멀리서 왔다고, 잘 키우라고, 벌떡 일어나셔서 한 마리 주셨어요.
-하하하. 아주 귀한 선물을 받았군요. 잘 키우십시오.
그렇게 시작된 얘기는 저녁을 먹을 때까지 코끼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나는 김 쌤으로부터 코끼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코끼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그날 저녁은 기어이 코끼리와 한 침대에서 함께 잤다.
잠자리에 누워 코끼리를 가지고 놀다가 잠이 든 것이다. 전날 잠을 설치고 종일 싸돌아 다녔으니 비교적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너무나 생생했다. 내가 코끼리의 코로 빨려 들어가 코끼리의 자궁에서 노는 꿈이었다. 그곳은 안온했고 이해타산으로 복잡한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하여 더욱 편안했다.
이게 꿈이지, 꿈이지? 하면서도 나는 그곳에서 놀았다. 코끼리의 양수에 흥건히 젖은 채. 코끼리의 자궁은 빛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밝았고 숨이 막히지 않았다. 여기가 코끼리 자궁이야?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그곳은 편안했다. 마치 따끈한 욕조에 홀로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알몸으로 유영하며 코끼리가 잉태한 생명체가 되었다. 자궁을 헤집고 다니다가 나에게도 꼬리가 달렸나 싶어 보니 사타구니에 털이 난 초로의 사내였다. 이게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 좀 논리적으로 이 사태를 정립하자. 여기는 코끼리 자궁이고 나는 알몸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그러면 나는 인간이 아니라 코끼리 새끼인가? 꿈은 결코 논리로 정립되지 않는 법이다. 괜히 논리를 따지다가 잠이 깼다.
깨어보니 매트리스에 코끼리의 양수가 흥건했다. 내 몸에서 묻어나온 양수 아니, 땀으로 범벅이 된 매트리스를 손바닥으로 훔치면서 보니 목각 코끼리는 내 사타구니 부근에 끼어서 자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뒤집어진 코끼리를 집어 들고 꿈을 되짚어보니 참으로 푸근한 꿈이었다. 야릇한 흥분에 도취되어 꿈을 찬찬히 짚어보았다. 코끼리 자궁에서 놀던 시간은 감미로운 시간이었다. 꿈에서 깬 걸 안타까워하며 땀으로 범벅이 된 자리를 둘러보았다. 에어컨이 꺼져 있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적에 약하게 켜둔 에어컨은 타이머를 맞추어 놓은 모양이다.
생각하니 아까운 일이다. 꿈이 거기에서 깬 것은. 코끼리 자궁에서 놀던 꿈을 더듬으며 나는 목각 코끼리에 여러 번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뒹굴었다.
창밖은 여명의 시간이다.
오늘 밤도 코끼리의 자궁에서 노니는 꿈을 계속 꾸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목각 코끼리에 입을 맞추었다. 아주 여러 번. 그리고 목각 코끼리를 응시하며 ‘째주 바배’라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 속삭임조차 혀에 감기며 감미로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