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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수 근작/ 이명 외14편
근작특집/전문수 이명(耳鳴) 외 14편 귀가 운다. 왼쪽 귀는 바람소리로 울고 오른 족 귀는 늦가을 밤 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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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수 근작/ 이명 외14편이명(耳鳴) 외 14편이명(耳鳴) / 전문수귀가 운다.왼쪽 귀는 바람소리로 울고오른 족 귀는 늦가을 밤귀두라미 소리로 운다.바람소리는 때로어릴 적 짙푸른 용소(龍沼)의이무기 우는 소리로한겨울 간이역에서 앞 길 몰라외투 깃 치세우던 귀 바퀴에 와 울던 소리로헛짚어 넘어지면서 지르는외마디 소리로 변덕도 심하다귀뚜라미 소리는 제소리 빌어달도 불러라 하곤하루의 가장 낮은 음계를 늘러천길 심연으로 갈아 앉아서생뚱맞게 잊은 그리움 불러와함께 밤을 지새자한다.어찌 두 귀가 이리도내 인생의 아픈 양단을 붙잡고본디 듣고만 있어야 할 귀가스스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가밤마다 슬픈 이명어찌 병원에서 이 병을 고치겠는 가 고구마 / 전문수고구마를 캐다가 문득내가 고구마를 훔친다는생각이 들었다내가 기른 걸 모를 고구마는 땅속 깊숙이제 딴엔안심하고 숨어 있었을 것 같았다 양지 바른 곳, 두툼히 두둑 만들어뿌리 앉힐 곳 유인하고는 자라면질 좋은 알뿌리 캐 갈 속셈꿈에라도 의심 않았으려니고구마야 내 어찌 이런 야박한 짓 하는가 싶구나농자 천하지대본이라 하지 않느냐그래도 이게 욕심 버리고 천하대본을 지켜소박하게 사는 거란다오히려 일찍이 너는내 속셈 먼저 알고기꺼이 잘 자라오늘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구나고구마야 튼실하고 얼굴 예쁜 놈 우리 함께내년 씨 뿌리로 골라 두었다가또 이 땅에서 풍성한 수확 거두자 흑장미 / 전문수5월 푸른 목을물고미쳐버리자고가시 생 울타리벌겋게 뛰어 넘자고그만 둘이 캑죽자고지금 흑장미는 너무 위험하다꼭 가져 갈 것 / 전문수내가 그만 훔쳐 오듯 가져왔는데,어느 절해우소(解愚所)에 들렀다가벽에 붙어 있는“안 오신 듯 왔다가소서”란 말너무 탐이 나서 집으로 가져 와 요리 뒤집고 조리 뒤집으며 곱씹는다.해우소란 말도 몹쓸 것 버려 근심 덜 일 한두 가지 아닌내 삶의 파장 큰 시어(詩語)라면 시어거니와지금 이 내 자리안온 것처럼 깨끗하려면얼마나 깨끗이 써야 하나 생각하니지금까지 저질러 논 것들 다 어찌하나 싶어잠을 못 이루겠다.천혜로 얻은 깨끗했던 세상떠날 때는감사하게 되돌려 주고 가야하는데.아무리 벗겨도다 치울 수 없는 것들씻기지 않는 굳은 상처들내 죽어 묻힐 때는꼭 가져야할 것이제야 알겠다. 천문(天門) / 전문수들고나는 곳이 어딘지 천문을 못 봤다宇宙란 딱 한 채 뿐인 집이니들고나는 문도 한군 데 뿐일 터그 문을 아직못 찼겠다.만일 우리가 이미 집에 들어 와있는 것이라면그 문은 더욱 어딘가 있는 것분명한데혹 일찍이 내가생명을 받아 이승에 든 문그걸 천문이라 해둘까? 어느 반환점 / 전문수내 산책길의 끝 반환점에는믿음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서나를 되돌려 보낸다.제 큰 등치로 밤새 앓은내 고뇌를 툭툭 등쳐 날려주고산이 안기듯 가슴 가득 안기어두툼한 제 껍질처럼투박한 세상의 신뢰를의심치 말라한다한 백년쯤은 그리 믿어한자리에 있었을 아름드리 소나무앞으로 다시 삼백년이라도전혀 저 하늘과 이 땅을 의심하지 않을의연함내 산책길의 그 소나 한그루처럼이 세상이내 등 뒤를 툭툭 쳐다독여 보내는반환점이었으면 좋겠다. 바다에와서 / 전문수용케도 바닷가에까지 와서띳집이라도 짓고 살고 보니문득 나는 백두대간어느 산골 작은 바위틈에서 발원한옹달샘 물 같다실 줄기 같은 물줄기가어느 거친 노들 변에스며들어 벌써 흔적조차 없어졌을 법한데용케도 도랑물을 만나고 강을 찾아여기 땅 끝바다에 이르렀으니이제 어디로 더 가랴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비로소 소금이 되는이치 알아차릴 일그 것 뿐인 것 같네.꽃 / 전문수더없이 화려한 자태와아름다운 향기를 품는 꽃이라도꽃의 꿈은 꽃이 아니다더없이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라도그 꿈은 나비가 아니다詩人의 꿈은 시인이 아니라詩가 꽃이고詩의 꿈은 詩가 아니라美가 꽃이다美의 꽃은 美가 아니라생명에 대한 환희다.모든 꽃의 꽃은 계속 저야열매에 이른다.나는 어떤 열매를 위해아직 피어 있는 꽃인가 안경 닦기 / 전문수내 안경은윗부분은 근시를 위해아랫부분은 원시를 위 한다 초점 안경멀리도 잘 못 보고가까이도 잘 못 보는어디고 잘 못 보는 눈이 된 것아마 먼 것만 잘 보고가까이는 잘 못보다 큰일 당하고가까이는 잘 보고먼 것은 잘 못 보다 큰 일 당하다가이제 둘 다 잘 못 보는단계로 들어 선 것일 것원근 더 살필 필요 없다는 것 남이 써먹고 남은 뒷자리면안경만 쓰면그런대로 살긴 살 거라는 것먼지 낀 안경을 곱게 닦는다.달 / 전문수오늘밤도 달은나를 꾸짖는다.몸속에 탐욕과 증오가 가득하니잠이 안 오고괴롭지 않느냐고하늘에 뜨고 싶다면하늘보다 가벼워야 하고빛나고 싶다면빛보다 가벼워야 하니무거운 몸을 먼저 비우라고텅 빈 허공에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는이름 모를 새 한 마리그림자를 드리우면빛이 아니듯그리하여 뜨는 달이 되라고종소리.2 / 전문수앞산 뒷산 초목들 뭇 멧새들하루 삼시월해사 예불 범종소리이미 그 말씀 익히 알아귀가 나풀나풀자라갔겠네 종소리는 봄 귀도 열어매화꽃, 진달래, 백목련을 소리로도터뜨렸나 백모란도5월 장미도새들의 노래로도 날고그 소리의 인자한 미소로는 흰 뭉게구름을 거뜬히하늘에 피우기도 했겠네중생들 마른 마음 섶으로 날아서는새마을 녹색깃발처럼꽂혀푸르게 펄럭이고한 자락 끊어 옷 깁고 싶은고요한 평화였겠네우리 소나무 / 전문수꿈이 큰 소나무는묵은 잔가지들 쯤은과감하게 쳐내고높이로나 굵기로나궁궐 두리기둥, 대들보 감으로한 100년 자라서 밑 둥 잘려뿌리는 미련 없이 땅에 주고점유했던 공간 휑하니후대에게 비워 주며목도에 영차영차 실려장엄하게 산을 나선다.베어져서 분명 더 큰 세상 더 큰 몫을 위해 인세(人世)로의 위대한 하산죽어서 비로소 꿈을 이루는 우리 소나무영원히 우러러 숭앙되는그들의 저승이야말로극락 아닌가.큰 꿈은 반드시죽은 뒤에 이루어지고또한 제 것만 아닌 것매 마른 절벽 틈새조차에서도 100년은 키워야 도달하는 큰 꿈을잊지 않는 우리 소나무들우리 ‘나랏목’(國木)오늘도 어느 산허리를100년 거목이하산하고 있으리라길3 / 전문수내 산책길에는가파른 오르막길 한 곳 버텨 있어꼭 이곳을 지날 때 등골이 땀을 뺀다.길이 일부러 내 온 몸을 눌러대내 발이 허우적이는 듯하다.겨우 고비를 넘겨평탄한 길로 들면길과 내 발은 경쾌한 박자로정답다 이러다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이제 길이 나를 업고 나선다.업힌 내가 무거워길이 엎어질 까 무섭다아마 매일 아침 산책길이 반복 때문에 내가 조금씩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가는 것 같다 어느 집터 / 전문수한 고택은 뱀 형국의 코 앞 야산이집안으로 행운을 물고 들어오라고뱀 주둥이 쪽으로 대문을 냈다 한다같은 마을 한 재실은남향 높은 산기슭을 깎아 지어한가한 낮 구름과 여름밤 청풍명월을방안까지 끌어 드려 함께 놀게 했다참 멋있는 분들부럽다하기야 더 멋있는 분들도 있었다,봉황새 등에 타고 풍운을 희롱하고반달 쪽배로 임 만나러은하수 건너고만월 속 계수나무 베어다초가삼간 집을 지어 부모님 모신그런 분들.임이 가꾸던 채전 밭에 임이 쓰던농짝 두 개를 이어 방을 만들고 매일 밤 그리움을 이불로 덮고 잠을 자는현대판 순애보도 있으니마음먹으면 제 멋 낼 집터 못 잡을 이 없는데내 15층 4호 아파트야아무리 편리한들이걸 사내대장부로서 어찌내 집터 잡았다 하겠나.물 마을 이야기 시작 / 전문수물들은 어디서 사느냐고?식물들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고 동물들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고하늘의 구름에도 땅 속에도바다와 호수, 강에도그리고 우리 사람들마다의 몸속에도심지어 바람 속에도 살고 있고산에 사는 물들은나무나 풀 그 종류와 숫자만큼다른 설계의 집에서 살고 있다그런데 물은어디서 살든 영원히 죽지 않는다.북극의 얼음 속에서도얼어 죽지 않고 적도에서 열에 끓어도 죽지 않는다그래서 물의 마을엔 아주 재미있는물 이야기가헤아릴 수 없이 많이 쌓여 있어이야기 나라이기도하다. 오늘부터 물나라 이야기를시작한대도 참 재미있을 것 같네2009.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