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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갤러리 스크랩 향가(처용가)에 대한 신 이해와 해독에 관한 소고(小考)
문배샘 추천 0 조회 91 08.10.14 16: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향가(처용가)에 대한 신 이해와 해독에 관한 소고(小考)

 김문배

1.들어가는 말

이제까지 우리가 학교 교육을 통해 배워온 향가의 기존해독은 철두철미 엉터리라는 사실이다. 향가의 연구나 그 이해에 있어서 종래의 방법과는 달리 발상의 완전한 전환과 같은 근본적 수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지금까지 일반 사람들이 지녔던 상식적 견해와는 다르게 기성학자들에게서는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향가 연구에서 특히 그 해독법에 관한 부분은 그간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가 진전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성 학계에서는 이른바 “확고한 정설”이란 것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종래의 통설의 영향으로 인한 선입관 내지 그 통설을 지지하고 추종해 왔을 따름이다. 이 [통설]이란 용어는, 충분히 확립된 이론 후에 확고한 정설이 아닌 한낱 가설에 불과한데도 별 이의(異議) 없이 대학입시 등에서 출제되는 문제에 대한 정답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 기성 학계의 한 단편적 실상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 학계가 향가 해독문제에서 벽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이 부분에 관심 있는 연구자는 다 알고 있는 형편이다. 아마 양식 있는 학자라면 논리적 사고 판단에 따라 필자가 제기하는 새로운 견해에 공감하리라 믿는다.

 


2.향가 연구사와 이 글을 쓴 이유


향가 연구사의 기초를 닦는 소중한 머릿돌을 놓은 일로 평가 받는 두 사람, 오구라 신베이(小倉進平)와 양주동(梁柱東)에서 비롯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그 해독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법에 의한 해석의 결과라면, 그 잘못된 해독을 근거하여 향가의 문학적 측면 혹은 시학적(詩學的) 해명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우스꽝스런 짓인가, 그러므로 한국시의 원형이라 할 신라 향가에 대한 문학적 연구는 무엇인가 가장 기초적 작업으로서의 어학적 및 주석학적(註釋學的) 해석의 완결이 급선무이다.

그러기에 이 글에서 특별히 새로운 해독의 문제를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었다.


3. 향가가 왜곡된 이유

 1) 향가와 만엽가(일본시가)의 동일한 해독방법


중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향가]라는 명칭에 대해 웬만큼은 알고 있다. 한국의 고대 왕국의 하나였던 신라 시대에 지어진 가요 작품을 한정해서 붙여진 용어로서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실려 전한다. 일반적으로 [신라의 노래]를 통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즉 정격한문구조가 아닌 고대 한국 음을 살려내기 위한 이른바 향찰식 표기 문자를 표현 매개로 한 신라의 시가(詩歌)로서 기원 6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씌어지거나 불려진 노래를 뜻한다. 이런 향가에 대한 해독 내지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1929년 일본인 학자 오구라 신베이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에서 현전하는 향가 25수를 나름대로 모두 해독하고 나서 부터이다.

이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대체로 [향가의 실체를 밝히는 데 있어서 획기적인 업적]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리향가에 대한 참모습을 그 시초부터 전면적으로 왜곡시키게 되는, 해독의 그릇된 방법론적 틀을 형성케 한 계기였다고 단정한다. 일본에서 가나 문자의 발명(AD900~1000)이전에 유행했던 이른바 만요가나( 萬葉假名)로 씌어진 와까(和歌) 해석에 적용했던 방법론을 활용하여 고유의 한국어를 복원하면 가능하리라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애초에 일본인의 손에 의해 시도 되었던 데서부터 우리 향가 연구사의 첫 디딤돌이 어긋난 방향으로 유도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본 연구서에서 고찰 될 것이다. 한국인에 의해서 비로소 이 분야에 대해 본격적이고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 양주동의 <<조선고가 연구.1942년>>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 풀이된 내용은 결과적으로 오십보백보이다. 글자 몇 개를 달리 해석해 놓거나, 음수율을 살려내려 했다는 등의 차이 외에 풀이된 뜻이 근본적으로 크게 달라진 데가 없이 대동소이다.

 아직도 여기 관련 있는 연구에서 방법론적 틀이나 기조(基調)를 결정해온 것은 대개 구세대의 학자이었고, 그 뒤 많은 신진 연구자들마저 스승인 구세대의 헛된 권위에 끌려서 종래의 생각과 접근 방법을 극복하지 못한 채 기존의 통설의 영향에서 줄 곧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4,處容歌(처용가)에서 살펴 본 기존 해석의 오류


여기 향가 해독의 기존 방법론상 쉽게 수긍되지 않거나, 이해 곤란한 점들을 지적해 봄으로써 그간의 해독을 위한 방법적 체계가 어떻게 설정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한 시가 안에서 같은 글자는 최소한 같은 음 또는 같은 훈(訓)으로 읽어야만 그것을 소위 [차자(借字)의 원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일관성마저 지켜지지 않고 제각기 달리 읽어내고 있는 기존 해법으로는 차자의 원리로 보아 일관성 없이 표기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 때문에 이런 독법이 수긍되지 않는다.

이 점을 가령 <처용가>에서 본다면

1구) 東京明期月(?? ?긔 ?(梁)), 東京?기 ?라라(完),東京?기 ?(俊),?블 ?기 ?랑(全)

3구)入沙寢矣見昆(드러? 자리보곤(梁), 들사 자?보곤(俊),들사 자리보곤(전)

4)脚烏伊沙四是羅(가?리 네히라(梁),가로리 네히라(완),가로이 너이라(준),가?리 네히라(전)

8구)奪叱乙何如爲理古(아?? 어시하릿고(양),아?? 엇디?릿고(완) 앗?을 엇다?리고(준), 앗늘 엇디?리고(전)

                  [梁은 양주동, 完은 김완진, 俊은 김준영, 全은 전규태]


위의 예문에서 알 수 있듯 [良]자의 쓰임이 [처용가]에서 모두 4번 나온다. 그런데 해독자에 따라 한 시가 안에서도 동일 글자를 각기 달리 읽어내고 있다. 예컨대 양주동은 [애?어?어?아]로, 김완진은 [아라?어?러?아]로, 김준영은 [애?아?아??]로, 전규태는[랑?어?어?아]로 읽고 있는데 과연 [良]자의 음이나 훈이 신라시대에 그렇게 읽혀졌다는 근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물며 4번 사용된 동일 글자를 각기 달리 읽고 있는 이런 방식은 차차원리로 보아 일관성이 결여된 주먹구구식 주장에 불과하므로 도저히 논리적으로 수긍될 수 없는 것이다.

 현전하는 향가 25수를 해독함에 있어 이와 같이 한 시가 안에서 같은 글자를 뚜렷한 근거 없이 각각 다르게 읽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여기서는 일일이 그 예를 드는 것을 생략하지만, 원문 마저 변조하는 경우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夜矣?乙 (서동요)에서, [?(엎드릴 원,누워딩굴원]자를 [卯:고음/모]의 오기(誤記)로 보고,[卯乙]을 [몰]로 읽어[몰래]의 뜻으로 풀이하거나(오구라신베이,양주동의 경우,김선기는 [모?](?)으로 읽고 뜻을 [몰래]로서 동일하게 봄) 또 읽기는 [몰]로 읽되, 그 뜻은 [무엇을]이라고 풀이하거나(지헌영) 아예 ?(원)자를 [卵(란)]의 오자로 취급하여 [卵乙]로 보고 이를 [알?=알을]로 풀이하는 따위(김완진의 경우)가 그 좋은 예인데,이런 것이 원문을 변조 해석한 견강부회의 경우이다.

또 가령 풍요(豊謠)의 첫 구절 [如來如來]?를 해독함에 있어 [오다오다] 혹은 [온다온다]로 읽은 것은 기성학계에서 거의 정설이 되다시피 한 경우이다. 이때 [如]를 [-다]로 읽은 까닭은 [-답다]의 활용형인 [-다운][-다워]의 어간 [-다]를 차용한 이른다. 의훈차(義訓借)에 해당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통설이다. 그렇다면 같은 시가 안에서도 끝 구절에 나오는 [功德修叱良來] 역시 [功德닷라오]로 읽어 [如]를 일관성 있게 [다]로 읽어야 할 터인데 그러자니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때문에 앞의 [如]를 [加](가??)의 오기로 보아[修叱良](닷?라)로 해석하거나 혹은 [奴]의 오자로 보고 [修叱良](?라]로 풀이하려는 드는 것도 다 원문의 변경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밖에, 향가 중 [두드릴 ?(복)]자와 [가지 支(지)]자는 분명히 딴 글자인데도 이것을 일률적으로 [?]을 [支]와 동일시하여,(찬기파랑가,안민가,모죽지랑가,원왕생가,우적가,원가,도천수관음가,참회업장가, 도합27개소이다.) 이것의 음가가 15세기의 ???????과 통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김준영의 경우)도 다 원문 변경 해석이다.

2)소위 종성표기법이란 것을 설정하여 15세기의 한글자모의 표기 방식에 끌어다 맞추는 식으로 차자의 종성표기어형을 상정해보고 여기서 차용된 각 글자의 음가를 추정하는 기존 발상은 믿기 어렵다. 한자음이 없는 우리말의 특이한 음들(예컨대,갓,걱,곰,곳,굼...등)을 표기하기 위해서는 [ㄱ.ㄹ.ㅅ.ㅁ]등의 종성자만 정립해놓으면 그 음을 다 적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가 소위 기성학계의 [종성표기자]의 설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발상은 어디까지나 한글 자모의 제정 이후에 가능해진 문자 개념 내지 음의 표기 개념이지 결코 한글 제정 이전의 사고방식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5. <처용가의 기존해석과 신 해석의 차이점>

  가. 원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총61자)

(양주동)의 기존 해독

?? ?긔 ?래(서울 밝기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밤드리 노니다가)

드러? 자리 보곤(들어사 자리 보곤) 가?리 네히어라(가랄이 네히어라)

둘흔 내해엇고(둘은 내해 엇고) 둘흔 뉘해언고(둘은 뉘해언고) 본? 내해다마?(본대 내해다마른) 아?? 엇디?릿고 (앗아날 어찌하릿고)

(김완진)의 경우: 東京 (동경) ?기 ?라라(* 東京 (동경) 을 [??(서울)]이라 읽지 않고 그냥 음독하여 東京 (동경) 으로 풀이한 것 외에는 전반적 내용면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현대어 풀이가 동일함)

다른 해독자들의 해독도 어슷비슷하다. 결국 노래의 전체 내용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 노래의 배경 설화에 전적으로 의존한 채 해독에 착안했던 결과이다. 또 다른 근거는 << () () () () >>에 실려 있는 고려 속요 <처용가>에 한글로 적혀 있는 6구가 향가<처용가>의 향찰 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경 ?? ?래 새도록 노니다가/드러 내 자리? 보니 가?리 네히로섀라/아으 둘흔 내해어니와 둘은 뉘해어니오(악학궤범,권5) 


아무튼 기성 연구자들이 위의 6구가 향가<처용가>의 향찰 문자를 해독,한글로 옮겨놓았던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해독의 열쇠 내지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던 데서 향가의 기존 해독이 오늘날과 같은 전반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 그 머릿돌을 처음부터 어긋나게 놓은 계기였던 것이다.


 나. 처용가의 새로운 풀이

   1)원문 및 소리값

() (??) () (곳집) () (흴) () (때) () (달) () (어딜) () (밤) () (들)

    (남긔(나모?)고지 ? 때 ?어딜 밤들)

  () (다?) () (놀) () (녀) () (??) () (가)

   (담아놀려 갔다가)

() (들) () (어딜) () (몰애) () (잘) () (의) () (보) () (곤)

   (?러딜 모래 자리보곤)

() (발) () (오) () (다?) () (네) () (이) () (어딜) () (라)

   (바로 담아 네히엇디라)

() (두) ? () (흘) () (은) () (나) () (아래) () (어) () (즐) () (고)

  (두흐른 나 아래 어즈리고)

() (두) ? () (흘) () (은) () (누) ? () (두들) () 아래) () (언) () (고)

  (두흐른 누구 두들 아래언고)

() (본) () (의) () (나) () (아래) () (이) () (??) () (?) () (어) () (은)

  (보니 나 아래 이 같다마런)

() (앗) () (즐) () (어딜) () (새) () (엇디) () (??) () (?) () (리) () (고)

 (앗?러딜 새 엇디 같다 하리고)


현대어 통역:

나무에 꽃이 필 때 달려질 밤(栗)들 담아놓으려 갔다가 떨어질 모랫자리 보곤 바람 담아 넷이었더니라.

둘은 내 아래 어지럽고 둘은 누구 두둑 아래던고 보니 내 아래 이 같다마는 아스러질새(으깨어질새) 어찌 같다 하리까.

 


동경 ?? ?래 새도록 노니다가/드러 내 자리? 보니 가?리 네히로섀라/아으 둘흔 내해어니와 둘은 뉘해어니오(악학궤범,권5) 

6구가 향가<처용가>의 향찰 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성 연구자들이 위의 6구가 향가<처용가>의 향찰 문자를 해독,한글로 옮겨놓았던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해독의 열쇠 내지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던 데서 향가의 기존 해독이 오늘날과 같은 전반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

그 머릿돌을 처음부터 어긋나게 놓은 계기였던 것이다.


 나. 처용가의 새로운 풀이

   1)원문 및 소리값

() (??) () (곳집) () (흴) () (때) () (달) () (어딜) () (밤) () (들)

    (남긔(나모?)고지 ? 때 ?어딜 밤들)

  () (다?) () (놀) () (녀) () (??) () (가)

   (담아놀려 갔다가)

() (들) () (어딜) () (몰애) () (잘) () (의) () (보) () (곤)

   (?러딜 모래 자리보곤)

() (발) () (오) () (다?) () (네) () (이) () (어딜) () (라)

   (바로 담아 네히엇디라)

() (두) ? () (흘) () (은) () (나) () (아래) () (어) () (즐) () (고)

  (두흐른 나 아래 어즈리고)

() (두) ? () (흘) () (은) () (누) ? () (두들) () 아래) () (언) () (고)

  (두흐른 누구 두들 아래언고)

() (본) () (의) () (나) () (아래) () (이) () (??) () (?) () (어) () (은)

  (보니 나 아래 이 같다마런)

() (앗) () (즐) () (어딜) () (새) () (엇디) () (??) () (?) () (리) () (고)

 (앗?러딜 새 엇디 같다 하리고)


현대어 통역:

나무에 꽃이 필 때 달려질 밤(栗)들 담아놓으려 갔다가 떨어질 모랫자리 보곤 바람 담아 넷이었더니라.

둘은 내 아래 어지럽고 둘은 누구 두둑 아래던고 보니 내 아래 이 같다마는 아스러질새(으깨어질새) 어찌 같다 하리까.
 



6. 새로운 풀이에 따라 드러난 <처용가>의 내용


기존 해독에서처럼 배경 설화에 보이는 역신(疫神)과 처용 아내의 간통을 해학적으로 암시하는 [가랑이가 넷이어라]와

 같은 표현, 게다가 [둘은 내 것이다마는 둘은 누구 것인가?]처럼 직서적(直敍的)이고 유치한 표현으로 노래되었던 것이 아니다.

위의 새로운 해독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노래는 하나의 상황을 다른 사물이나 관념으로 대치하여 철저히 은유적으로 처리되어

고도의 암시성을 띠고 있다. 즉 밤느정이(밤나무의 꽃)에 비유된 여인의 향기, 매달리는 밤송이가 여물어 저절로 떨어지는

상황을 통해 마치 밤이 여물면 벌어지듯 육체적으로 무르익은 숙성한 여인의 농염(濃艶)함의 발산에 대한 암시, 그리고 주워

담아 놓은 밤송이마저 실은 떨어질 때 이미 내 앞에서 아스러져(으깨어져) 상한 상태이므로 이를 어찌 본디대로 멀쩡히

 성하던 때와 같다하리까 의 탄식 속에 처용이 눈앞에서 목격한 아내의 불륜의 장면에 대한 심정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이에 처용이 돌아서 나오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 <<삼국유사>> 속의 그의 행위는,

지금껏 오해되어온 것처럼 소위 부정과 불의의 현실을 평화와 아름다움과 감동의 춤에 의해 승화시킨 것이라고 보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도리어 처용의 행위에서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 일테면 인간관계에서

완전한 믿음이나 완전한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부부지간이라도 거기엔 늘 한계가 있다는 깊은 깨달음에서

우러난 체념의 비애를 엿 볼 수 있다.그래서 그의 춤은 차라리 무한한 절망의 몸짓이었음을 강력하게 암시받게 된다. 

역신의 정체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 내부의 어떤 요사스런 본성,혹은 부정함을 충동질하는 요소로도 볼 수 있다.

 시기심과 질투와 욕정에 좌우되는 요사스런 인간본성의 은유적 표현이 역신의 정체이다.

그러한 인간 본성에 대해서는 관용과 체념만이 회개를 가능케 하는 현명한 대응책일 뿐이라는 설명이 배경 설화의 내용인 듯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배경설화를 통해 거꾸로 처용이 인간관계에서 진실로 원했던 것은 완전한 믿음과 사랑이었다고 해석된다.

 그런데 처용은 그것에 실패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이 <처용가>가 [인간 본성에 대한 절망과 체념의 노래]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향찰 표기의 용자법에 관해서이다. 향찰 문자의 해독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점은 어디까지나

고대 한국어의 소릿값(발음부호) 차용된 한자 개개의 뜻에 이끌려 정격 한문식 해석을 은연중 적용하려 드는 기존 해독 법에는

 문제가 있음을 밝혀둔다.


7.결언

향가에 대한 해독 내지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1929년 일본인 학자 오구라 신베이(小倉進平)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에서

현전(現傳)하는 향가 25수를 나름대로 모두 해독하고 난부터이다. 삼국유사에는 향가가 15수가 실려있다.

그 중 필자가 새로운 풀이로 해독한 노래는 헌화가,제망매가,도솔가,서동요,찬기파랑가,처용가,풍요(7수)이다.

지면상 이곳에는 처용가만 실었을 뿐이다. 차기에 이 새로운 해독으로 나머지들도 해독 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바 또한 크다. 

 애초에 일본인의 손에 의해 시도되었던 데서부터 우리 향가 연구사의 첫 디딤돌이 어긋난 방향으로 유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본 연구에서 고찰되었다. 특히 아직도 여기 관련 있는 연구서에서 방법론적 틀이나 기조(基調)를 결정해온 것은

대개 구세대의 학자들이었고, 그 뒤에 많은 신진 연구자들마저 스승인 구세대의 헛된 권위에 끌려서 종래의 생각과 접근 방법을

 극복하지 못한 채 기존의 통설의 영향에서 줄곧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한 것은 향가 해독의 문제가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독법이야말로 이 분야의 가장 기본적인 연구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기존의 방법론으로서는 더 이상의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역설적 상황 또한 충분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성 학계가 이 문제에 대해

 이룩한 학문적 실상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일반 연구자들은 아주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깨달음이란,

 다름 아니라 기존의 해독 방법론적 체계가 얼마나 오류투성이였던가에 대한 발견의 놀라움인 것이다.

 

 

참고 문헌:1.<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김문배외1명 공저, 우리문학사 1993년.

         2,<한국고시가연구>김준영.형설출판사(1990).

         3.<論註鄕歌>전규태 , 정음사 1976.

         4.<古歌硏究> 일조각, 1974.


ID:   김문배 kmb22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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