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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미친 바람
지은이 김 종 선
바다는 풍랑을 일으켜 순영의 마음을 아프게 흔들었다. 순영의 자람골(고향)은 방파제 끝에서 등대불빛이 전설처럼 깜박이는 바닷가였다. 밤바다의 등대불은 귀항선을 비추는 맘바람(희망)의 불꽃이었다. 갯마을은 스물 두가구가 옹기종기 서로 도우며 사람맘(정) 나누며 살았다. 갯마을 뱃사람은 칠산어장에 그물을 던지며 고기잡이하며 살았다. 한때 칠산어장은 벌떼처럼 고깃배가 몰리는 황금어장이었다. 흑산도와 위도의 술막에 갈매기처럼 꽃띠들이 날아와 술을 따랐다. 꽃띠는 향기로운 웃음소리로 뱃사람들을 여시처럼 호렸다. 땃물(난류) 따라 어장이 열리는 그득배(만선)의 조기잡이에 세난장꾼들이 잘 벌고 잘 쓴다는 뜬말(풍문)이 나돌기 때문이었다. 순영은 열서너 살적부터 해녀인 어머니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물질을 익혔다. 중학교를 마치고 열일곱 살 어린나이에 물질하는 해녀가 되었다.
몇 해 앞 원양어선을 타고 아버지가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아버지가 탄 배는 먼 바다 파도에 침몰했다. 아버지가 실종되어 돌아오지 못하자 집안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은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 딸 일곱을 먹이고 기르는 것마저 몹시 힘겨워 가르치는 맘바람은 접어야 했다. 큰 딸로 태어난 순영은 아시삶(숙명)처럼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물질을 했다. 바다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파도가 몰리는 삶의 싸움터였다. 하지만 순영은 바다를 싸움터로 생각하지 않았다. 바다는 삶을 깨우쳐 주는 배움이(스승)이며 때로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소리꾼이요 시를읊어주는 글놀랑(시인)이었다.고된 물질을 마치고 물막이담(방파제)에 올라 쉬면서, 두 다리 뻗치고 앉은 그녀, 맘바람(소망)의 비손을 하늘에 간절히 올렸다.
‘백마 탄 왕자 하나 나타나 주기를…….
순영의 맘 바람은 스물다섯 살 적에 신기루처럼 찾아왔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기고 훤칠한 유자망 선장 이 연근과 인연의 끈을 맺어준 것은 고모였던 것이다. 고모부는 안강망 배를 부리는 선주였다. 고모는 늘상(평상시) 눈여겨본 착실하고 믿음직한 젊아이(청년)를 짝맺음(중매) 했다. 들봄달(2월) 고모 집에 놀러 갔을 때 순영과 다방에서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둘이 얘기를 나눌수록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고 마음이 딱 맞았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석 달 만에 약혼을 했다. 약혼 뒤 바닷가를 거닐며 뜨거운 사랑도 나누었다. 해일처럼 넘치는 기쁜 마음에 하늘을 보며 하트문양의 사랑을 여럿 새기었다. 백마 탄 왕자 이 연근은 성난 풍랑과 싸우면서도 순영을 생각하면 늘 흐뭇했다. 보름달처럼 밝은 얼굴 귀여운 목소리가 맘에 쏙 들었다.
신유년 한가위 지나서 손님(하객)들의 기림(축복)을 받으며 청사초롱을 밝혔다. 하지만 바다는 두 사람의 사랑을 짓궂게 질투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사리물 때, 바다로 나간 그에게 무서운 언걸(재앙)이 몰아닥쳤던 것이다. 지나친 게염불(욕심)을 부린 것이 빌미가 되었다. 그득배(만선) 깃발을 달고 귀항 중이던 배가 삼각파도의 마(魔)역에 휘말린 것이었다. 급물살이 회오리치는 섞미친 바람과의 숨 막히는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바다의 무서운 저주를 누가 막으랴!
“ 여기는 700복성호, 배가 좌초 침몰 중 살려주세요.”
비상주파수에서 울린 목숨보람(SOS)의 목소리가 들 여름의 밤공기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기상청은 온 바다에 풍랑주의를 풍랑경보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어업무선국은 온(전) 출어선을 가까운 섬으로 대피토록 방송했다. 어업무선국은 대피상황을 두 시간 마다 확인하고 있었다. 그날 군산어업무선국 송가영은 밤지킴이(야간당직) 통신사였다. 송 가영은 700복성호의 조난신호를 딱 한번 얼핏 들었다. 침몰어선을 확인하려고 화급히 무전기 앞으로 달려갔다.
“700복성호 여기는 수협군산”
계속되는 호출에도 응답이 없었다. 지역주파수에서 대흑산도에 대피중인 유자망 어선들을 불러 700복성호 조업위치를 물어보았다. 유자망 선단 700명신호가 700복성호 낮뒤(오후) 조업 위치를 알려 왔다.
“700복성호는 양망이 늦어 대피치 못하고, 그물 올리는 것을 보았음.
700복성호 조업 위치가 홍도 북 서방 이십 마일쯤으로 추정됨,
낮부터 교신이 끊겨 교신하지 못했음 오버.”
군산어업무선국 송 가영은 조난선명 시간과 장소, 조난개요를 구조기관에 통보했다. 곧 바로 후반 근무자를 깨워 2인1조 조난선 구조 비상근무 체제로 들어갔다. 군산무선국은 700복성호 조난통신을 관장하며 비상주파수와 지역주파수를 모두 열어 놓았다. 무전기소리에 정신을 집중하고 700복성호가 다시 불러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 때 비상주파수에서 “수협군산”을 호출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수협군산! 수협군산! 수협군산! 여기는 마리나호.”
“마리나호! 여기는 수협군산.”
“수협군산! 여기는 마리나호,
현재시간 대흑산도 북서쪽 이십 마일 해상에서 침몰한 군산 선적 700복성호 선원 1명 구조, 나머지 실종선원 수색중임 오버.”
“마리나호! 여긴 수협군산, 어디 선적 어디서 어디로 가는 선박인가, 오버.”
“여기는 마리나호,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는 일본선적 화물선, 기상이 나빠 대흑산도로 대피 중, 조난선을 발견함, 오버.”
“마리나호! 여긴 수협군산, 조난상황을 조목조목 상세히 연락 바람, 오버.”
송 가영은 조난상황을 육하원칙에 따라 받아 적었다. 실종자 구조상황을 해경에 알리고 마리나호와 교신토록 했다. 해경은 화물선 마리나호를 불러 조난선 구조 통신에 돌입했다. 송가영은 비상주파수뿐 아니라 지역주파수에도 조난상황과 실종선원을 발견하면 즉시 알리라고 조치했다. 화물선에 구조된 선원은 갑판장이었다. 갑판장은 700복성호 침몰 사실을 빠짐없이 털어 놓았다.
수협중앙회 상황실에도 조난선 침몰 과정을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 보고했다. 송 가영은 700복성호 선주에게 침몰 사실을 알리기 몹시 힘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전화기를 들었다. 송 가영은 선주 아낙인 순영과 자람골(고향)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700복성호 소식이 있을 때마다 전화로 빨리 알려주곤 했었다. 송가영은 막상 조난사실을 말하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라지 마라. 복성호가 풍랑을 만나 침몰한 것 같다!”
순간 순영은 충격적인 비보에 멍하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깨어났을 때 딸이 근심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군상어업무선국으로 달려간 순영은 정신없이 무선국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의자에서 일어난 가영은 무슨 말로 위로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쩔쩔맸다. 마음을 다잡고 조난경위를 말하며 위로의 말을 거듭했다.
송 가영은 사고처리에 바쁘고 실종선원 가족들 전화를 받느라 힘이 들었다. 돌발적인 침몰사고의 현지상황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해경은 헬기를 띄우고 100톤급 구조선 2척이 조난해역으로 출동했다. 대흑산도에 대피해 있던 유자망 10척이 구조차 자원해서 출동했다. 안강망 5척도 실종선원수색에 도우려고 나섰다. 구조헬기가 공중에서 불빛을 환히 밝혔다. 유자망들도 전조등을 대낮같이 비추었다. 사고 해역을 중심으로 바다 위를 샅샅이 찾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서해바다의 풍랑이 한 계단 높아지고 있었다. 폐색전선은 비구름대를 형성 심한 비바람을 몰아쳤다. 복성호 실종선원은 단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백마 탄 왕자 순영의 남편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떠난 것이다. 뼈 시린 그 아픔을 누가 알랴! 순영은 앙가슴을 쥐어 뜯었다. 가끔 꿈결 속에 남편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 맺힌 남편의 넋이라도 건져 달래주어야 한다고 순영은 생각했다. 문득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해 순영은 부둣가로 나왔다. 물결치는 바다에 긴 그림자를 비추고 물속을 굽어보았다. 흰 옷자락 긴 머리칼이 바람에 올올이 휘날렸다. 밀물의 바다 해조음 가락에 맞추어 갈매기 떼가 물비늘 치며 날아올랐다. 이승을 떠난 임의 빈자리가 이리도 클 줄 순영은 왜 몰랐던가. 저승과 이승은 가까우면서도 너무 먼 거리였다. 남편의 웃는 얼굴이 바닷물에 비쳐보였다. 순영은 갈매기 나래에 사랑이 담긴 편지를 무수히 날렸다.
남편을 잃은 충격은 무서운 현실로 다가왔다. 사채 빚쟁이들이 날마다 찾아와 순영을 괴롭혔다. 순영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해망동 부두에 나가 노을이 물드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니 남편과의 옛 생각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순영은 문득 바다에 뛰어 들어 모든 것을 다 잊으려 했다. 한 몸 죽으면 끝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투신 장면을
목격한 것은 때마침 해망동 부두에서 그물을 깁던 뱃사람이었다.
“사람이 물에 빠졌다.”
구멍 난 그물을 내던지고 달려온 뱃사람이 허우적대는 순영을 건져 올렸다. 순영은 어릴 적 바다 속을 누빈 해녀였다. 거뜬히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헤엄 칠 기력마저 없었다. 그녀의 심신은 그만큼 허약해 있었다.
바람 좀 쐬려고 어업무선국 옥상으로 올라간 송가영은 바다에 뛰어든 투신사건으로 부두가 술렁이는 것을 보았다. 뭔가 집히는 게 있어 내려가 본 그는 화들짝 놀랐다. 물에 빠진 사람은 뜻밖에도 순영이었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 119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금세 달려왔다. 저체온 증으로 떨고 있는 순영을 군산의료원 응급실에 입원 시켰다. 의사의 진단결과 건강에는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고 진단했다. 순영은 한참 만에 응급실에서의식이 깨어났다.
“죽게 놔두지 왜 날 살렸어. 남편 뒤따라 가 영원히 자고 싶었는 디.”
혼자 넋두리를 내뱉는 순영의 여린 손을 가영이 다가와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물귀신 되면, 남은 애들은 어쩔 건 디?”
매일 악몽을 꾸는 것처럼 가슴앓이로 순영은 우울증까지 겹쳤다.
“가슴이 너무 쓰리고 아파, 세상살이가 다 허망해, 잠자듯 죽고 싶어.”
“살다보면 언젠가 잊힐 날 있겠지, 이제 떠난 사람인 디 맴 굳게 먹어야지.”
“남편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미치겠어.”
며칠 동안의 병원치료 끝에 기력을 되찾은 순영은 병상을 박차고 퇴원했다.
“금방 병원에서 나온 몸인 디 술 한 잔 해도 될까, 죽고 싶을 땐 술이 약이랑께.”
순영의 제안에 가영은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몸도 풀 겸 한 잔 마시고 나면 기분전환이 될 거야. 좋아 가자.” 바다가 보이는 해망동 부두 포장마차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둘이서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한 마을 초등학교 동창인 그들은 타향에서 만나서도 허물없는 사이였다. 어릴 적 꾀벗쟁이 사이라 서로 만나면 못 할 말이 없는 터수였다. “뱃사람 아낙으로 살기가 참 힘들었을 거야”
“벌어 논 돈도 없고 빚더미 떠안고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 혀.”
“복영호는 이제껏 별 사고 없는 부자 배로 아는 디 빚더미라니?”
“친구의 배가 나가질 못한다고 매달릴 때마다 물러 터져서 빚보증을 서준 게 덫이야.”
“그랬었구나.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힘껏 도울게.”
“고맙다. 친정으로 들어가 처녀 때처럼 물질이나 할까 생각중이야.”
“아이들 두고 죽을 생각은 꿈에라도 허덜 말어.”
“알았어. 잠깐 정신이 핑 돌았었나 벼.”
한참동안 넋두리를 늘어놓자 순영은 마음이 조금 풀렸다. 순영의 넋두리에 가영의 눈시울도 붉게 물들었다. 해망동 부두로 작은 고깃배 두어 척이 귀항하여 닻을 내리고 있었다. 해망동갈매기가 마중하며 날아올랐다. 700복성호 조난 경위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갑판장이 낱낱이 털어놓아 밝혀졌다.
출어 때마다 소요되는 기름 값, 식자재와 한사리 뜨굽지(식고미)는 살림꾼 순영의 몫이었다. 이번 사리 출어경비는 사채 빚까지 얻어 돌려막았다. 배 출항을 앞두고 승선할 선원들을 점검해본 선장이 목쉰 소리로 외쳤다.
“선원 홍성오가 어찌 안 보이는 디?”
어제 오후 서울에서 내려온 그가 여관에 투숙 했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중동 전주집 꽃띠에게 그가 잡혀 있다는 걸 알았다. 순영은 중동 색시골목 전주집을 찾아갔다. 아직껏 술이 덜 깬 놈이 자빠져 자고 있었다. 밤새 퍼마신 술값을 계산하고 데려가라고 주모가 고함을 쳤다. 바가지를 쓴 술값이 터무니없이 많았다. 다짐 글까지 써 주고 놈을 데리고 나와 배에 태웠다.면세유와 얼음도 넉넉히 실어주었다. 닻을 올리고 부두에 매단 줄을 풀어주었다. 출항 깃발이 높새바람에 펄럭였다. 순영은 따로 사무장을 둘 수 없는 형편이라 출항 때마다 하나에서 열까지 챙겨야하는 힘든 싸움을 했다.
이미 고혼이 된 남편 연근은 사리 물때를 맞추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내 순영이 늘 고마웠다. 몇 해 앞 영광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수온이 올라 칠산어장의 물고기 떼가 사라져 조기떼가 나타나는 길목도 홍도 북서쪽으로 바뀌었다. 낯선 어장에서 어탐을 찍어보고 그물을 풀어놓았다. 선원들은 선실에 들어가 잠을 자거나 쉬었다. 어청도가 고향인 선장은 타고난 뱃사람이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나서 곧장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살았다. 밥 짓는 일부터 기관일 갑판일 뱃일이라면 뭐든지 익숙했다. 항구에 들어오면 열심히 그물을 깁고 사리 때는 바다에 나가쉼 없이 그물을 던지고 양망했다. 언젠가는 만선 깃발을 한번 날려 아내의 웃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출항하는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넘쳤다. 불안한 그림자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뱃사람 끼리는 서로 믿고 사랑하고 기대며 살았다. 바다에 나가면 풍신과 용신이 저들을 지켜 준다고 굳게 믿었다. 고기잡이를 떠나려면 그는 늘목욕재개하고 풍신과 용신께 제를 올렸다. ‘이번 사리에는 꼭 만선의 깃발을 올리게 해 주소서’ 하고 빌었다. 좋은 날씨에 물때도 좋겠다, 갈바람이라 무슨 거리낌 있었으랴. 양떼처럼 피어 오른 흰 구름이 행운의 손짓처럼 보였다. 배는 어장을 찾아 물너울을 가르며 신나게 남하하고 있었다. 선장 이연근은 콧노래를 불렀다. 날씨를 살피던 갑판장이 다가와 걱정스레 그에게 말했다.
“저 구름발 심상치 않네요!”
구름발이 동남간으로 나타나 검은 불꽃처럼 서북을 향해 뻗쳐오르고 있었다. 구름발은 해를 단숨에 덮어버렸다. 서해바다 물너울이 차츰 커졌다. 큰 너울이 올 적마다 배가 물속에 갈아 앉았다가 물너울 따라 솟아 올랐다. 눈에 뵈는 것은 하늘로 솟구치는 물놀뿐이었다. 배는 안마도를 지나 홍도쪽으로 서서히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갔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해가 바뀌었다. 꽃들이 울긋불긋 아름답게 피어나는 봄이 되었다. 유자망 조업은 난류가 오르는 사월에서 오월말까지가 성어기였다. 대흑산도 가까운 바다로 몰린 유자망은 난류를 따라 유월에는 연평도 가까운 바다로 나가서조업했다.빚이 많은탓에 남편은 수협에서 단 한푼의 영어자금조차 빌리지 못했다. 비싼 사채를 얻어 기름 값을 치르고 식자재는 상점에 빌붙어 외상으로 구입했다. 연근은 항구를 나설 때 손을 흔들며 무사 귀항을 빌고 있던 순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걱정마라 이번 사리엔 한방 떠서 호강시켜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봐.’ 하고 마음속에 다짐을 되새겼다. 배가 고군산도를 벗어나 왕등도 밖을 지나가고있을 때였다. 갑판장이 조타실에 올라서며 화급히 소리쳤다.
“하장(조리사)이 바다에 빠졌다. 뱃머리를 돌려라.”
허드렛물을 쓰려고 바닷물을 퍼 올리던 하장이 거듭 퍼 올리려다 달리는 힘에 끌려 떨어진 것이다. 오리새끼처럼 헤엄치는 그를 갑판장이 끌어올렸다. 갑판장이 보지 못했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선장 이 연근은 홍도 북서쪽 이십 마일 바다에 배를 띄웠다. 어탐을 찍어보고 물흐름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월 초엿새의 입하사리는 떠돌이걸그물(유자망) 황금시간대였다. 유자망들은 난류 따라 북쪽으로 오르는 조기 떼를 노렸다. 조기어장이 형성된 서해남부 날씨가 차츰 흐려지고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떠돌이걸그물에 부표를 달고 잘 펼쳐 놓았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바다는 롤링을 그치고 피칭하면서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물을 놓고 승선원들은 북상하는 조기떼가 그물에 걸리기 기다리며 잠을 자거나 쉬었다. 선원 홍 성오는 난생 처음으로 배를 탔다. 수평선 멀리 하늘과 잇닿은 바다가 너무 신비스러웠다. 뱃멀미만 아니면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주방장 장기수는 남해 바닷가 출신으로 회 뜨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어떤 요리사보다 기막힌 솜씨로 가자미 포를 떴다. 오늘도 조타실 선장과 기관장 앞에 한 접시씩 가져가고 두 접시는 갑판에 올려다 놓았다. 강 덕수는 농사짓던 촌놈이 배를 타려니까 뱃일이 힘들다고 항상 고충을 털어놓았다.
“귀항하면 배는 그만 타야지, 그런 디 며칠 쉬면 바다가 미치게 그립더라.”라고 말했다. 군산호에 승선 했던 문 경호는 기관장을 맡기려고 선장 이 연근이 맘먹고 모셔온 노련한 뱃사람이었다.
“지난 사리에 군산호에서 그물걷기를 끝내고, 귀항 차 기관을 돌리다가 스크류에 줄이 감겨, 잠수하여 풀다 죽을 뻔 혔응께, 이번 사리는 그런 일 없어야 헐턴 디.”
풍랑주의보가 풍랑경보로 바뀌자 군산어업무선국은 전 출어선에 긴급 대피 방송을 내보냈다. 선장은 선원들을 독려하여 양망을 서둘렀다.
“풍랑경보가 내려지고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 일손을서둘러야 될 것 같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마이크를 잡고 지시를 내렸다.
“파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물을 끌어올릴 때 조심해라.”
선장은 고함치듯 소리치며 일손을 다그쳤다.끌려 올라오는 유자망 그물코에 조기떼가 걸려 마치 메밀꽃 핀 것처럼 하얗게 보였다. 꿈에 그리던 만선의 기쁨으로 선원들의 일손이 빨라졌다. 어창은 조기상자로 가득가득 채워졌다. 빈 공간을 모조리 채우고도 조기상자를 쑤셔 넣을 데가 없었다. 갑판 위까지 조기상자를 널어놓을 정도였다. 선장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만선이다! 깃발을 높이 올리고 이제 돌아가자.”
꿈꾸던 만선의 깃발이 올라갔다. 갈매기 떼가 기세 좋게 날아올랐다. 귀항하는 뱃머리를 높은 칼 파도가 핏칭 후려쳤다. 이물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갑판장은 기우뚱 기우는 배를 보고 썩 좋지 않은 지레느낌이 들었다. 그는 만선의 배를 무리하게 몰다가 뒤집히는 고깃배를 떠올렸다.갑자기 오싹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무리하게 몰고 가다가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파도 때문에 가끔 스크류가 헛돌았다.선장에게 달려가 마땅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선장님, 기관 스크류가 헛돌아요. 배에 짐이 무거워 파도를 못이길 거 같아요.”
선장 이 연근은 한참동안 골똘히 생각했다. 산처럼 쌓인 빚더미에 큰아이 혼수, 둘째아이 학자금문제까지 떠올랐다. 황금이 되는 조기상자를 훌쩍 버리기가 아까웠다. 이번 한방이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죽기 살기로 그냥 밀고 나가?’ 지나친 욕심이 기어이 재앙을 불러왔다.
“키만 잘 잡으면 별일 없을 겨, 날 믿어 보랑께.”
그렇게 지시 했지만 불안하기는 선장인 연근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물살의 흐름을 타려고 키를 잡아 돌리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스크류가 공회전을 반복했다.
“갑판에 있는 생선 반절 넷고 배의 무게를 줄여라.”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선장은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기관장이 조타실로 올라와 절망적인 보고를 했다.
“선장님, 그물이 스크류에 감겨 기관이 섰어요!”
선장은 큰소리로 기관장에게 지시했다.
“뭐라고? 빨리 잠수복 입고 잠수해서 풀어라”
바다에서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기관장은 곧바로 잠수복으로갈아입었다. 몸이 물살에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밧줄로 허리를 동여맨 그가 파도 속으로 뛰어 들었다. 산더미처럼 삼 미터가 넘는 파도였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 스크류에감긴 그물을 빨리 풀지 않으면 침몰할지도 몰랐다. 실로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700복영호 승선원들의 생명이 걸려 있었다. 기관장은 사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자맥질을했다. 한번 들어가 한 가닥씩 풀고 나와 ‘휘이’ 긴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몇 차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쑥 물속에 잠수하더니 아무 기척이 없었다. 갑판장이 놀라 밧줄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때서야 알았다는 듯 불쑥 올라 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동안의 사투 끝에 작업이 끝났다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잔뜩 긴장했던 선원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밧줄을 끌어 올렸다. 기관장은 잠수복을 벗고 소주를 마시며 몸을 풀었다. 선장 이 연근은 기관장의 등을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관장이 목숨을 걸고 우리들 목숨을 구했다. 우린 기관장에게 생명의 빚을 진거야. 기관장 정말 고맙다.”
폭풍우는 악마처럼 칼 파도를 몰고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다녔다. 선장은 물살을 타며 익숙하게 키를 잡았다. 갑판에 있는 생선을 버리고 선체가 조금 진정 되는 것처럼 보였다. 기관은 정상으로 돌아갔고 선장이 계속 키를 잡았다. 파도는 쉽게 귀항하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폭풍우 때문에 항로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배가 제 멋대로 흘러가며 잠시 항로를 잃었다. 전면을 유심히 살피던 선장 연근은 버럭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앗! 여기는 삼각파도치는 마(魔)역 아닌가.”
휘몰아치는 섞미친 바람은 복성호 왼쪽 오른쪽 가릴 것 없이 후려쳤다. 삼각파도가 배를 똑바로 못서게 배를 흔들었다. 똑바로 가지 못하고 키가 제멋대로 돌았다. 칼 파도 하나가 뱃전을 후려쳤다. 순간 우레 치는 소리가 들렸다. 선장은 무의식중에 무전기 폰을 잡았다. 비상주파수로 구조신호를 보냈다. 무전기에서 700복성호를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응답하려 해도 폰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급기야 좌초 배에 물이 차오르고 침몰하자 승선원들은 하나 둘 배에서 뛰어내렸다. 배 조각이라도 잡으려고 허우적대던 그들은 거친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고 말았다. 눈깜짝새 일어난 죽음의 끔찍섶(참상)이었다. 요행히 구명조끼를 입은 갑판장은 떠 흐르는 나무 조각 하나를 붙잡았다. 그것은 신이 내린 생명 줄이었다. 그는 나무 조각 하나 겨우 붙잡고 물결치는 바다에 떠 흘렀다. 저체온으로 버텨내기가 몹시 힘들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화물선이 허우적대는 그를 발견했다. 목숨을 건진 것은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그는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몇 시간을 버텼다. 체온이 떨어진 탈진 상태로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구조기관에 조난소식을 빨리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선원들은 어찌 되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는 천길 밑으로 꺼지려는 정신을 추슬렀다. 화물선의 한국인 선원에게 조난 사실을 꼼꼼히 알렸다. 해경은 화물선에게 실종선원을 샅샅이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해경 조사실에서 갑판장은 선장의 과욕이 부른 사고로 모든 책임을 돌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해경은 만선한 배가 섞미친바람을 만나 좌초 침몰한 것으로 조사를 끝마쳤다. 해경과 유자망이 실종선원 수색을 벌였지만 단 한 구의 실종 선원도 찾지 못했다. 며칠 동안 구조선이 실종선원을 찾아보다가 가망이 없자 수색을 포기하고 조난사고를 종결시켰다. 미친듯이 날뛰던 바다도 조용히 잠이 들었다. 하지만 실종 선원들의 생사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순영은 초등학교 운동회 때 반을 대표한 릴레이 선수였다. 가영은 동창생이지만 두 살 어린 남학생이었다. 순영은 배 소식이 궁금할 때마다 무선국 가영을 찾았다. 초등학교 때 두살 어린 가영을 동생처럼 여겼었다. 오랜만에 타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허물없는 그와 말을 트는 사이였다. 술자리를 가끔 같이하다보니 애인처럼 정도 생겼다. 허지만 불륜으로 몸을 섞은 적은 없었다. 남편 연근이 바다에 나가면 순영은 노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뱃사람 아낙들끼리 스포츠댄스를 하거나 술도 가끔 마셨다. 순영은 가영이가 스포츠댄스를 배우도록 도와주었다. 스포츠댄스를 즐기면서 그와 파트너가 되었다. 어업무선국은 하루건너 하루 일했다. 창밖에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날 아침이었다. 순영은 아침에 퇴근하는 가영에게 다이알을 돌렸다. 시간이 되면 오후에 만나자고 했다. 며칠 동안이나 순영은 쓰린 가슴에 육체적, 정신적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남편은 먼 길 뜬 사람 돌아 올 기약 없으니 어찌 난감하지 않으랴! 그녀는 굳건히 마음먹고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기로 했다. 술꾼 붐비는 술시가 아직 일러 막걸리 파는 고향집은 텅 비어있었다. 고향집 할머니가 끓여주는 물매기 탕 국물 맛은 늘 끝내주게 시원했다. 세시가 지나서야 헐레벌떡 나타난 가영은 미안하다며 자리에 앉았다.
“집안이 폭탄 터진 것 맹이로 정신 없을턴 디 괞찮냐?”
며칠 새 몰라보게 핼쑥해진순영의 모습을 본 가영은 마음이 짠했다.
“자 한잔 받아라, 얼굴이 반쪽이네.”
막걸리 한 사발을 순영은 술꾼처럼 단숨에 들이켰다.
“신랑이 웬수여, 새끼들 맡겨두고 난 어쩌라고 혼자 간 겨.”
알콜 기운이 들어가자 순영은 슬픈 마음이 솟구쳐 울고 싶어졌다.
“날마다 빚쟁이가 찾아와 난장판이야, 미치고 환장 허겄서, 남부끄러워 멀리 도망칠 맴뿐야.”
가영은 딱히 위로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산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 견디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막걸리 몇 잔에 취기가 오르자 슬픈 순영의 마음도 많이 풀렸다.
“널 만나자고 한 것은 물속 귓鬼것 된 신랑 넋이라도 건져 주고 싶어서야.
지금 내 형편으론 엄두도 안 나고, 어쩜 좋을지.“
순영에게 무슨 도움 줄만한 것은 없는지 가영은 늘 생각하고 있었다.
“ 내가 넋풀이굿 잘하는 디 수소문해서 연락 하마 걱정하지 마.”
마음 써주는 가영이 순영은 참으로 고마웠다.
“죽어도 누구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고 싶었는 디, 고맙다. 예수 믿는 신자라고 딸이 당굿은 못 하게해.
딸 귀에 안 들어가게 해 줘.”
가영이가 너무 고마워 순영은 마음의 잔을 가득 따라주었다. 그녀는 밀린 집안일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오늘은 그만 헤어지자고 일어섰다. 중동거리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가영은 친구의 소개로 호남 넋풀이 굿 명인이라는 하진순 선생을 찾았다.
“전화는 받았어요. 제가 직접 굿을 해드리고 싶지만, 행사관계로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잘 아는 법사法師 한분 소개 시켜 줄게요.”
그가 건네준 명함 한 장으로 법사를 만났다. 용신굿에 드는 비용은 모두 가영이 부담 했다. 해망동 선창에 굿판을 차려 용신굿을 치르기로 했다.
법사는 굿 날을 오월 초사흘 날로 잡았다. 오월은 아카시아 꽃향기와 장미꽃 흐드러지게 피는 꽃철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맑았다. 굿판위로 갈매기가 날았다. 성주 알림 넋풀이 굿을 알리는 태징을 울린 법사는 흰 두루마기에 흰 고깔을 쓰고 돼지머리 앞에서 육자배기 가락으로 부정경不淨經과 당산경當山經을 깔밋하게 읊었다. 바닷가에 높다랗게 꽂은 깃발이 바닷바람에 붉게 펄럭였다. 기다랗게 늘어뜨린 광목천은 바다를 끌어와 땅과 맺어주었다. 태을보신경太乙保身經, 부정경不淨經 신명축원神命祝願으로 법사의 장구가락이 신명나게 울렸다. 법사는 삼혼칠백三魂七魄이라 쓴 종이 위패를 놋그릇 쌀 속에 넣고 뚜껑을 닫아 반죽된 밀가루로 막았다. 무명 한필을 길게 늘어뜨려 끝부분에 종이 위패를 담은 놋그릇을 묶어 돌과 함께 매달았다. 넋이 건져 지도록 조리도 함께 매달았다. 길게 늘어뜨린 무명을 물속에 멀리 던지고 암탉을 물에 던졌다. 암탉으로 하여금 대수대명大壽代命토록 한 것이다. 그리고 줄을 당기며 빨리 집으로 가자고 영가에게 애원했다.
“연근아, 연근아,”
망자의 이름을 애자지게 부르고 하소연하며 매달렸다. 유족들의 흐느낌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 줄을 끌어들여 밥그릇 뚜껑을 열었다. 고혼이 된 연근의 머리카락이 밥그릇에 담겨있었다. 북어 미역을 머리에 이고 덩더꿍 춤을 추던 법사는 그것을 바다에 던졌다. 용왕님을 먹여 달래려는 것이다. 남편의 머리카락을 끌어안고 이제 어찌 살라고 나를 떠났냐고 순영은 슬피 울었다. 그리고 위패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마당에 넋 맞이 상을 차렸고 굿을 벌인 법사는 목청껏 해원경解寃經을 읊었다. 넋을 보내는 길 닦음 사자풀이 문간 굿과 안심경安心經을 읊고 나서 넋풀이 굿은 끝을 맺었다. 서산머리에 걸린 해가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700복성호는 선체보험을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가입의무가 있는 수협공제에서 공제금이 조금 나왔을 뿐이었다. 선주는 빚더미에 올라 앉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해망동 어판장에 텐트를 치고 대책을 논의했다. 유가족대표로 유 신영을 뽑았다. 유 신영은 기자 출신으로 기관장의 이종형이었다. 우선 군산어업무선국에서 조난 경위를 자세히 알아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군산어업무선국 국장 양병국은 어선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직원들을 모두 국장실에 불러들였다.
“유가족이 무선국에 오면 근무일지도 보여 주지 말고 무조건 잘 모른다고 해라.
말 한마디 잘못 하면 큰일 난다”
송 가영은 국장의 잘못된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국장님, 근무일지를 보여 주고 사실대로 말해주는 게 옳은 거 같은데요.”
국장은 책상을 치며 큰소리를 말했다.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책임질 테니 잔말 말고 내말대로 해.”
군산어업무선국 통신사들에게 그는 함구령을 내렸다. 유가족에게 성실하게 설명하고 위로했다면 별 탈 없이 넘어 갈 일이었다. 통신사마다 뭘 숨기는 듯 쉬쉬하는 것이 유가족들 눈에 수상하게 비쳤다. 유가족들은 숨기는 뭐가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근무일지를 확인하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유가족들은 해경에 수사를 요청했다. 해경은 당일 근무일지를 가지고 당일 근무자가 직접 출두하라고 통보했다. 해경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조난 당일은 통신사 조규창의 당직 날이었다.
조난 당일 조규창은 익산 사는 친할머니 부고를 받았다. 무선국장과 통화가 안 되어 허락을 받지 못하고 장례식장에 갔다. 졸지에 근무지 이탈 사실을 숨겼다. 실습생 김종환이 조규창 대직 근무를 섰다. 해경은 근무자들을 불러 수사했다. 조규창의 근무지 이탈 사실이 밝혀졌다. 군산어업무선국은 근무지 이탈로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다. 유가족은 그것을 빌미로 수협중앙회에 유가족 보상을 요구했다. 수협은 유가족 요구대로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 본부에서는 무선국장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국장은 용케 빠져 나갔다. 아무 일 없을 거라던 직원 조규창이 중징계를 당했다.
순영은 고향 바닷가 물새소리가 그리워졌다. 그곳에 가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도 없는 타향 땅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도 친정에 돌아오라고 간곡히 말했다. 집을 팔아 우선 다급한 빚을 갚았다. 수협에서 대출 받은 빚은 송가영이 보증을 서주어 벌어서 갚아도 문제없었다. 학교 다니는 아들들은 셋방을 얻어 주었다. 딸은 어머니와 함께 물질을 배우기로 했다. 살림살이를 정리하자 마음이 홀가분했다. 순영은 고향에서 만나자며 가영과 술 한잔 나누고 한 맺힌 군산항을 떠나갔다.
고향바다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순영을 반갑게 맞았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졸지에 과부가 된 딸을 위로했다.
“모든 게 팔자거니 생각하고 잊고 살아라.”
나잠 어촌계에 찾아가 해녀 등록을 마쳤다. 어촌계장은 젊은 일꾼이 둘씩이나 온 것을 환영 한다며 반겼다. 오랜만에 하는 물질이었다. 아직 깊은 곳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물질은 미역을 따는 것부터 시작했다. 차츰 물질에 자신이 생겼다. 망시리를 물에 띄우고 깊이 들어가 소라 해삼 전복을 땄다. ‘휘오이’ 휘파람소리에 마하바다가 흔들렸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물질한 보람으로 돈도 좀 모았다. 수협 빚은 모두 청산했지만 딸 시집보내랴 두 아들 가르치랴 숨 쉴 틈이 없었다. 숨비소리 맞추어 뱃노래가 절로 나왔다. 물질 중에 부르는 이어도 사나 후렴은 언제 불러도 좋았다.
-이어도사나, 이여사나, 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구름으로 똥을 싸 섧은 님 떠나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사나, 이어싸.-
-이어도 사나, 이어 사나, 너른 바다 에헤 한길두길 에헤 통합대합 비쭉비쭉 이어도사나 미역귀가 너훌너훌 이어도사나 에헤 사랑이 깊어 에헤 숨막히는 줄 몰랐구나 에헤 우리 님은 어디가고 에헤 물결소리만 처량하다 이어도사나, 이어사나.-
물질을 하면서도 순영은 “이어도사나”를 불러야 마음이 평안했다. 그녀의 노랫소리에 바다가 화답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남편의 넋이 살아나 합창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순영은 생각했다. 남편을 빼앗아간 바다가 순영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허지만 남편이 잠든 바다를 사랑하기로 맘을 돌려먹었다. 차츰 자맥질이 익숙해졌다. 물질 솜씨도 옛 모습을 되찾았다. 딸은 좋은 직장 다니는 사내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몇 달 만에 이혼하고 바다에 나가 물질을 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이 들통 났기 때문이었다. 두 아들도 대학을 나왔다. 큰 아들은 대기업에 취업했다. 둘째는 마땅한 취직자리가 없어 공부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달구름(세월)흐르고 뼈 시린 괴로움은 물결 따라 차츰 잊혀져갔다. 바다에 들어가면 남편이 품어주는 것처럼 아늑했다. 둘째 아들이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세월이 가면 해결 되리라 믿고 오로지 물질에만 전념했다. 송가영이 휴가차 고향에오면 물질한 해삼을 안주로 막걸리 잔을 돌렸다. 그렇게 물질하기를 몇 해, 곱던 얼굴도 주름살이 깊어졌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바닷가에 나가 남편에게 하소연 했다.
철석 대는 물결소리가 남편의 위로처럼 들렸다. 바다가 된 남편의 품에 안겨 오래도록 잠들고 싶었다. 남편이 떠난 바다로 떠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수평선 멀리서 남편이 손짓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순영은 남편의 바다로 떠날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했다. 가영을 만날 때 그녀는 유언처럼 말하곤 했었다.
“내가 안 보이면 ‘이어도 사나’ 부르며 남편 곁으로 간 줄 알라”고. “끝”
해양문학상 대상소설 지은이 : 감뫼 김 종 선
첫댓글 저는 쓰신것 읽어보기도 힘든데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