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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2)
2021년 10월 3일 / 아모스 8:11-14
아모스 8:11-14의 주석
암 8:11 /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라, 그날이 오고 있다! 그때에는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밥이 없어서 당하는 굶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요, 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당하는 기근이다.
본절은 보다 본질적인 기근의 문제를 다룬다. 즉 외적인 기근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호와 말씀의 기근이라는 것이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 ‘이를지라’에 해당하는 단어는 ‘들어오다’는 의미를 가진 분사형으로 역동적(力動的)인 의미를 내포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셨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말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시 74:9, 애 2:9, 겔 7:26, 호 5:6).
암 8:12 / 그때에는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다니며 북녘으로 달려갔다가 동녘으로 뛰어다니며 아무리 나 여호와의 말씀을 찾아보아도 그들이 정녕 그 말씀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 말씀의 기근으로 인해 찾아 헤매는 모습을 매우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실감나게 표현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 말씀의 기갈이 심각한 정도를 나타내는데, 아무리 간절하게 말씀을 찾아 헤맬지라도 아무런 말씀도 받지 못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된 정체성도 찾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오늘날의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고귀하고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지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근원이므로 그 말씀을 잘 알아서 신실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암 8:13 / [거듭된 형벌 선고] `그날이 오면 아름다운 처녀들과 힘센 총각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목이 말라 쇠약해지고 죽어 갈 것이다.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며 피곤하리라 –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는 인생의 황금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름다움이 가장 돋보이고 힘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삶의 지표를 잃고 나약한 모습을 나타내고야 만다. 이런 형편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 인생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사야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 40:8)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하셨다.
암 8:14 / 사마리아와 단과 브엘세바의 성소로 우상들을 섬기러 찾아다니던 자들도 모두 기진하여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무릇 사마리아 죄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 ‘죄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부끄러운’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죄’(guilt)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이 단어는 우상 숭배로 인해 나타나는 죄악상을 가리키기도 한다(대하 24:18, 33:23). 사마리아에는 아합이 왕으로 있는 동안 바알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왕상 16:32-33).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하는 사람은 - ‘단’은 여로보암 왕 이후로 금송아지를 섬기는 장소로 유명하였다(왕상 3:14, 7:13). ‘브엘세바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순례 행로를 가리킨 것이다. 아모스가 본 구절에서 여러 산당들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역에 따라 여호와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가 이방의 우상 숭배와 같이 변질되어 이방신의 개념이 들어오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 그릇된 신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당하게 될 징계를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하며(신 6:13; 10:20), 이를 준수해야 했다(렘 4:2). 만약 헛된 우상에 맹세하거나 그것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멸절되는 것이 당연하다(습 1:5-6). 본장에서 아모스는 네 번째 환상을 끝마치면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징계를 선포한다. 이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 본문 말씀은 선지자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한 말씀이다.
주전 8세기에 선지자 호세아, 미가, 이사야와 동시대에 예언을 하였다. 솔로몬 왕이 죽고 난 후, 남북으로 나뉜 지 거의 2세기가 지난 때였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B. C. 793-753년) 때 활동한 공의의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은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대와 성장 배경 / 아모스는 남유다의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6마일 가량 떨어져 있는 드고아에서 출생하여 그 곳에서 뽕나무를 재배하며 목자로서의 삶을 영위하였다. 그는 비록 남유다에서 출생하였으나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에 있었던 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부름받아 호세아와 더불어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선지자였다. 아모스는 평범한 농부에 지나지 않았으나 광야 생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성경에 정통한 지혜를 갖는 등 학문에도 깊이가 있었다.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의 통치 때와 견줄 만큼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에 반비례하여 종교적, 도덕적 타락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을 향해 그들의 불의와 부정, 타락 등을 강도 있게 비판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아울러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소망을 예언한 공의의 선지자가 아모스였습니다.
그러던 중 벧엘의 우상 숭배자 아마샤 제사장에 의해 북이스라엘의 왕을 모반하는 자로 모함을 받기도 한 아모스 선지자는 결코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며 그들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서도 예언한 신앙적 기개가 대단한 선지자였다.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세워 우상을 섬기게 했고, 남쪽 유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내려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막았다. 그 결과 이방 종교인 바알신 경배의 요소가 스며들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는 했지만, 점점 더 이방 종교의 신관과 사고방식과 습관들이 스며들어 형식적인 신앙이 되어버렸다.
▶ 북이스라엘의 이 같은 신앙 형편은 우리 세대의 처지와 너무도 흡사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고작 주일날 교회에 나가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한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주일날만 교회에 갔다 오는 신앙인을 선데이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이런 선데이크리스천은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을 배우려는 관심이 없다.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붙들고 확신하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이 없다.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그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뿐 아니라 주일예배 드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11절 말씀은 징계를 받으면서도 선지자의 외침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기근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내용이다.
그런데 그 기근이라는 것이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게 되는 기근도 아니고, 비가 오지 않고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는 기근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에 대한 배반 그리고 그토록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신 책망과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시는 자비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가뭄이나 흉년이나 자연 재앙으로 기근을 보내겠다는 징계를 넘어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들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들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돌아다녀도 얻지 못할 것이며, 그 결과 모두 다 말씀에 갈하여 쓰러진다고 하셨다(12절).
12절을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겉으로는 말씀을 무시하지 않았다. 저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닌다고 하셨다. ‘어디에 가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알 수 있을까?’하며 마치 길 잃은 양을 찾아 온 들녘을 헤매듯이 이리 저리 찾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돌아다녔으나 얻지 못했다. 왜 해답을 얻지 못했을까? 그 당시 백성들은 말씀을 듣긴 들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하여 순종할 의지가 없고 그냥 위기만 모면하려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종교 생활로는 영적인 해갈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다니지만 영적인 기근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예배에 참여하고 말씀을 읽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큐티를 하고 성경 일독하고 성경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태도이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의지가 없으면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며 그런 상태에서 기도한들 그 기도가 상달이 되겠는가?
좋은 설교를 듣는다고 좋은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방송 설교, 웹으로 설교를 듣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씀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말씀을 듣는 태도이다. 태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명설교를 들어도 내 마음에 피와 살이 되지 않는다.
설교가 어눌한 목사가 말씀을 전한다 해도 그 말씀을 통해 내가 순종하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이다. 순종의 자세 없이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말씀의 기근이 해결되지 않는다. 엄격히 말하면 말씀에 대한 순종이 따르지 않으면 들었다고 할 수 없다. 들었다는 것은 순종으로 이어질 때까지를 말한다.
▶ 광야를 나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지자가 없었는가? 그들에게는 전무후무한 선지자 모세가 있었다. 그뿐인가? 저들에게는 매일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그 어느 민족이 맛보지 못한 만나가 있었다. 그뿐인가? 저들에게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밤낮으로 떠나지 않고 있지 않아서 전능하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왜 저들이 허무하게 애굽을 나와서 광야에서 고생하다가 목적지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는가?
이에 히브리서에 이러한 말씀이 있다.
히 3:5-13 /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칭찬받을 만한 일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하나님의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세가 한 일은 주로 후에 일어난 일들을 미리 알리고 설명하는 일이었습니다. 6)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 전체를 책임지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주께 대한 믿음과 기쁨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곧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7-8)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뛰어난 분이기에 성령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아라. 므리바에서 너희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말라. 너의 선조가 맛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말라.’ 9) 너희 선조는 거기서 내가 어쩌나 보려고 시험하였다. 저희 위해 내가 한 일을 똑똑히 보았는데도 한번 떠보려 하였다. 사십 년 동안 10) 나는 그 백성들에게 넌더리가 나서 어쩌면 저리도 마음이 떠나 있을까. 저들은 내 도를 들어 보려고도 하지 않는구나 하고 말하였다. 11) 나, 무척 화가 나 맹세하였다. 그 땅에, 편히 쉬라고 너희에게 허락한 그 땅에 너희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히 3:12-13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펴 악에 물들거나 불신앙에 빠져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날마다 서로 일깨워 주어 아무도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 시간까지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에 많은 은총을 베풀어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을 거두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을 때가 온다면 상상치도 못할 영육간에 재난이 물밀듯 닥쳐 올 것이다. 무서운 육적인 재난이 닥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한국 교회를 떠나실 것이다. 이것은 굶어 죽는 것과 목말라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한 재앙이요 저주가 될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왜 그리 큰 저주가 될까?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큰 징계이고, 큰 재앙이라는 말인지?
● 이 세상이 창조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하여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요 3:16-18 /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 18) 그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어둠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으로 판단을 받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처럼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이방인이나 죄인, 창기, 세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나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 가운데서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 3:19-21 / 죄인으로 판단받았다는 것은 곧 빛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는데도 그들이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20) 그들은 어둠 속에서 죄짓기를 즐기고 하늘의 빛을 싫어한다.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서 수치를 당할까봐 빛을 멀리한다. 21) 그러나 올바른 행실을 하는 사람들은 즐겨 빛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상종하지 않는다면, 아예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하신다면 어떻게 될까? 믿으면 생명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삶속에 역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이 넘치며 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로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욕망까지도 가르고 그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데(히 4:12),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은 병이 들어 죽게 될 것이다. 평생 죄의 노예로 살다가 비참하게 죽어갈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서운 경고를 잊지 않으셨다. 이 경고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재앙이 뒤 따르는지 열거하는 것조차 두렵다.
레 26:14-39 / [내 말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러나 너희가 내 말을 따르지 않고 내가 일러준 명령을 따라 살지 않으면 15) 또 내가 가르쳐 준 규정과 법을 하찮게 여겨 내가 너희와 맺은 계약을 깨뜨리면 16) 내가 너희에게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을 내려 앞을 못 보고 급기야는 목숨까지도 잃게 될 것이다. … … 39) 너희 가운데 살아남은 자도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또한 그 조상들의 잘못 때문에 쓰러져 죽으리라.
▶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당장은 편할 것 같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지 말라, 이리로 가라, 저리고 가서는 안 된다’는 등 갖가지 잔소리에서 자유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들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니 마음에 부담이 없어지고, 자유를 느끼지 않겠는가?
쉽게 예를 들어보자. 학생들이 교실에 선생님이 없으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마음대로 떠들 수 있고, 공부를 안 해도 되고, 끼리끼리 놀아도 되고 …. 집에 부모가 외출하고 없으면 아이들끼리 남아서 얼마나 편하겠는가? 부모님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고,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놀고, 맘대로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고, 무슨 짓을 해도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신나고 편하고 자유롭겠는가?
그러나 그런 시간이 한 두 시간이 아니고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계속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신나고 편한 것이 아니다. 불행이고, 재앙이다. 미래가 암담한 것이다. 그뿐인가? 그러다 문제가 생긴다. 100%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된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고 위기를 만나면 꼼짝 없이 불행을 겪어야 했다.
사사시대의 상황을 보아서 알지 않는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판단대로, 자기중심적인 생각대로 살아가니까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부도덕과 타락과 끔찍한 범죄들 그리고 파멸이 다가오게 되고 끝내는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가나안 왕 야빈의 밑에서 군대 사령관 노릇을 하던 시스라, 미디안 사람, 블레셋 사람들의 지배하에서 오랫동안 많은 고통을 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를 통해 겨우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두어 간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너희들끼리 잘 살아보아라! 내 말을 안 듣게 되거든 너희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보아라! 갈 때까지 가 봐라! 그리고 그 결과 망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는 것은 절대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던 사랑과 은혜를 거두어 가시는 것이다. 오직 진리되시는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케 할 뿐이다(요 8:32).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참 자유가 아니고 방황이요 결국은 방탕할 뿐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를 때에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염려와 근심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분노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기심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나아가서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을 비롯한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 성령이 내주하시지 않는 상태 - 갈 5:19-21 / 여러분이 본성이 시키는 대로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면 여러분의 생활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곧 더러운 생각, 육신의 쾌락을 찾는 마음, 20) 우상숭배, 마술, 헐뜯음과 싸움, 질투와 분노,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 불평과 비판적인 태도, 자기의 작은 당파 외에는 모두 나쁜 것으로 인정하는 배타주의와 거기서 나오는 잘못된 교설 21) 시기, 살인,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따위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한 번 더 당부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 성령이 내주하시는 상태 – 갈 5:22-26 /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생활을 지배하실 때 그분은 우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여기에는 율법에 반대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4)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시면서 그리하면 보내주시겠다는 성령님께서 내주(內住)하시도록 사모하며 늘 간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면 모든 생활 역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명예와 인기를 얻고자 질투하거나 악한 감정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요 나아가 육체의 정욕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담겨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의 양식을 얻는 것이 아니다. 교양을 늘리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다. 상식이 풍부해지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포도나무와 그곳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지속된다는 뜻이다.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요, 최종 목적지인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준비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처럼 한걸음 더 나아가 제자들과 맺으신 새언약을 우리와도 맺으실 것이다.
출 19:4-6 / ‘내가 애굽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어떻게 내게로 데리고 왔는지 너희는 다 보았다. 5) 온 누리가 다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되리라. 6) 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러주어라.
벧전 2:9-10 / 그러나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손수 택하신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하고 순결한 겨레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아무런 가치 없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 은혜를 입고 여러분의 생활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며 내 삶 속에 역사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찬을 나누시면서 많은 말씀으로 당부하시며 새언약을 주셨다(요 14-15장).
요 14:15-17 /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말을 지키라. 16) 그러면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다른 돕는 자를 너희에게 보내 너희와 영원히 같이 계시게 할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영이다.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일 수 없다. 세상이 그분을 찾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지금은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훗날에는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요 15:5-8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6) 만일 누구든지 나를 떠나면 필요 없는 가지처럼 버려질 것이요, 말라서 다른 것과 함께 묶인 채 불에 태워질 것이다. 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살며 내 말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내 참제자가 된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말씀이 없는 기준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중심 없는 삶을 산다. 방향 없는 삶 – 천성을 향한 삶이 아닌 세상을 향한 삶을 살아간다. 신령한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린 채 탕자처럼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듣지 않도록 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지 않도록 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로 듣고 실천하자.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 실례 - 공산주의를 만든 마르크스도 성경을 읽었다. 그런데 성경에서 공산주의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세계 역사의 실패한 이데올로기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살게 했다. 북한의 김일성도 어렸을 때 교회학교에 다녔다. 성경을 알았다. 그의 어머니 강반석은 착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어설프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했거나 하나님 말씀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똑바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렇게 더 사악한 인간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오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지 못한다. 자신이 얼마나 메마르고 완악해졌는지 발견하지 못한다. 자신의 교만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만이 아니라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 자기 생각대로 끝까지 밀어붙이므로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지니까 자신을 높이게 되고, 하나님을 무시한다. 하나님을 무시하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더욱 강퍅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도 순종하지도 않는다. 결국 죄를 짓고서도 회개할 줄 모른다. 그 영혼이 더 완악해지고 타락하니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짓는 줄도 모른다.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이 되어 결국 금수만도 못한 사람, 개나 돼지만도 못한 사람, 사람의 탈을 쓴 짐승으로 살아간다.
교회가 폐쇄된지 오래요 성경마저 읽어보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이 흐른 북한에서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 요즈음 교회를 불태우거나 폐쇄시키는 중공에서 몸부림치며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성도들, 이슬람권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에 비하면 우리네 형편은 어떠한지?
어떤 분이 과거에는 찬송가 190장을 많이 불렀는데 ……. 그나마 10년 만에 불러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1년에 몇 번이나 부르며 하나님을 향해 간구하였는지? 부르지 않아도 되는지?
1.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후렴 :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2. 성령이여 강림하사 크신 권능 주소서 원하옵고 원하오니 충만하게 하소서
3.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 강림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
4. 정케하고 위로하사 복을 받게 하소서 충만하게 하시오니 무한 감사합니다
아모스 8:11의 ‘보라, 그날이 오고 있다! 그때에는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밥이 없어서 당하는 굶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요, 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당하는 기근이다.’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 아닌가 하여 이 말씀을 준비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3)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실례와 순종한 실례를 들어가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 183장을 미리 불러본다.
1.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후렴>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2.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3.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
4.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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