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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유는 당연하지 않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한강)를 읽고 나눈 책 대화 최종 보고서
박지원 전희주 장승우 김태희 광동고 2학년 5반 preparation518@gmail.com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의 내용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이 문장을 지겹게 들어봤을 테지만 그만큼 이 문장이 의미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딱히 깊게 생각해본 적도, 와닿는 간절함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우리에게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 문장이 당연하지 않았던 곳이 있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가 바로 그곳이었다. 광주는 이 단순명료하고도 당연한 말을 외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의 도시가 되어야 했다.
이 책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 담긴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간절히 바랄 필요가 없었던, 자유를 당연하다는 듯 누려왔던 우리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낯설기만 한 주제다. <소년이 온다>는 그런 우리가 단숨에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 날의 광주 거리에서 인물들과 함께 항쟁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만큼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죽을 각오로 민주주의를 외친 희생자의 시점, 홀로 살아남아 숨을 쉰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생존자의 시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시점 등 다각도로 여러 인물의 시점을 대리 경험하며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더 나아가 책 대화 활동을 통해 서로 의견을 공유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톺아볼 수 있었다.
아득히 멀기만 한 그 날의 사람들
<소년이 온다>는 장편 소설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같은 주제에 대한 단편 소설집처럼 느껴진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인물과 그 인물이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시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므로, 우리는 읽으면서 모든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살짝 어려움을 느꼈다. 그렇기에 같은 책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에 집중하고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지, 서로가 이해한 책의 서술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함께 의견을 나눠보았다.
태희: 나는 이 책의 서술자가 계속 바뀌는 점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서술자가 계속 교체가 되는 게 우리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야. 우리는 평소에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없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린 모르잖아.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같은 사건을 두고 주인공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의 시점으로 서술하니까 내용을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지원: 난 피해자와 그 유족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어. 우리는 이걸 직접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보면 숭고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 편으론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 근데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대목처럼 간접적으로 유족의 심정을 알려주는 장면들은 우리가 직접 인물들에게 이입함으로써 마치 우리가 그 당사자 유족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줘.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추모 공연이지만 당시 검열로 인해 무대 위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입모양으로 이 대사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사는 유가족들의 심리를 투영한 대사로, 실제 가족을 잃고도 시신을 찾지 못하거나 검열 등의 이유로 가족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이들의 심정을 얕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승우: 나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이나 심리라고 생각하거든. 이 소설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면서도 잊으면 안 될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들의 심리에 주목하면서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
희주: 나도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생각해. 우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생각하면 우리가 직접 겪어본 게 아니니까 그 당시의 상황, 그 당시 사람들의 심리를 잘 느끼지 못하잖아. 그냥 들은 것을 토대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에 맞춰서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렇듯 우리는 모두 <소년이 온다> 속 독특한 인물 활용에 비슷한 의문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는 각 장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우리에게 다양한 인물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이입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스스로 정대의 영혼이 되어보기도 하고, 살아있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생존자 은숙이 되어보기도 하며, 친한 친구 정대를 눈앞에 둔 채 죽음과 도망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 동호가 되어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멀기만 했던 희생자들과 간접적으로 동료, 지인, 그리고 가족이 되어보면서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어린 새는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23p)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45p)
책에서는 희생자들의 시신에 대해 묘사하며 ‘어린 새’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한다. 1장의 주인공 동호는 어릴 적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몸에서 어린 새 같은 것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후 민주화운동 가운데 시체로 혼비백산이 된 광주에서 동호는 피해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체를 천으로 덮어주는 일을 하며 다시 한 번 비슷한 느낌을 받고, 그 새들이 어디로 떠나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러 차례 나타나는 그 표현을 보며 ‘어린 새’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어린 새’는 시신에서 빠져나가는 ‘영혼’을 뜻하는 것일까? 각자 이 ‘어린 새’라는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태희: 시신들에게서 어린 새 같은 것이 나왔다는 게 무슨 의미일지 한번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린 새’는 날 줄도 모르고, 자신의 욕구가 있지만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아직 몰라서 그 자리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 있지 않아? 이 어린 새의 이미지랑 비슷하게 2장에서 혼들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만 무엇에 묶인 듯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머문다는 이야기를 해. 난 어린 새와 혼이 무언가에 얽혀 있는 것 같다는 공통점 때문에 어린 새를 언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승우: 사람들이 죽게 되면서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을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하는 부분이 있어. 여기서 ‘어린 새’는 사람들의 혼 아니면 생명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고 생각해.
지원: 혹시 파랑새 이야기 알아? 그 이야기에서처럼 ‘어린 새’가 파랑새와 같은 희망과 자아를 뜻하잖아.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에서 어린 새가 빠져나갔다는 건 희망과 자아가 떠나갔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린 희생자들의 성숙하지 못한 자아, 그리고 아직 어린 삶과 떠나간 희망을 ‘어린 새’에 투영한 게 아닐까?
희주: 나는 승우와 비슷하게 ‘어린 새’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생각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은 10대, 20대 정도의 청년들이 많잖아. 그 희생자들은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직접 총을 들고 최전방에 뛰어들어 꿈과 열정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기에 ‘어린’ 새라고 표현하고 영혼을 새처럼 표현해서 갇혀있는 느낌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
‘어린 새’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어린 새의 이미지로 순수한 영혼과 자아, 희망과 긍정을 떠올리기 쉬웠다. 우리는 ‘시체에서 어린 새가 떠나갔다’는 표현에 대해 각자 해석하고 함께 이야기 해보면서,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숭고한 영혼과 자아,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과 희망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소설에서 묘사하듯 천국이나 지옥 같은 이국적인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오랜 기간 한에 묶여있었던 어린 새들이 속박을 풀고 자유롭게 날아올랐길 바랐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바라며
계엄군이 도청에 쳐들어온 날 밤, 시민군은 총을 메고 창 아래 숨어 군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시민들의 죽음을 무력하게 두고 볼 수 없었던 시민군들이 급기야 총을 들고 기꺼이 양심을 목숨과 맞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결국 총을 쏠 수 없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117p)
그들이 총을 쏠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총이 망가진 총이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다. 그들이 총을 쏘기도 전에 군인의 총에 맞아 죽어버려서도, 총을 다루는 솜씨가 미숙해서도 아니었다. 이들은 왜 총을 쏠 수 없었을까? 이들에겐 정말 ‘양심’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일까?
태희: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건 이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기도 해. 이 사람들에게 대항한다는 건 민주주의를 위해 부조리와 맞서 싸우는 거잖아. 계엄군은 폭력으로 시민들을 대하고 있는데 이들과 같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대항하는 것에 대한 본질을 잃고 전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 그래서 총을 쏘지 못했나 싶어.
승우: 나는 그들이 단순하게 죽을 각오는 되어 있어도 죽일 각오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총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죽을 각오도 되었지만 결국 총을 쓰지 못한 건 자신이 계엄군처럼 생명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
희주: 맞아. 사람들이 총에 맞는 것을 직접 봤지만, 그래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이면 결국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잖아.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 나도 너희의 의견과 비슷해. 책에서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난 이 말의 뜻이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 아닐까 싶어. 실제로 생존자 인터뷰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어. 그는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총을 손에 드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해. 난 이 책에서도 양심과 생존이 걸린 그 상황을 정말 잘 표현한 것 같고, 그래도 ‘인간’으로 남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
자신과 동료들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저들도 결국 ‘인간’이라는 생각이 많은 것을 바꿨다. 괴물은 인간을 쏠 수 있지만 인간은 인간을 쏠 수 없다. 이들은 학살자들과 같은 괴물이 되기보단 인간의 고귀한 영혼으로 남기를 택했다. 광주의 시민들이 다함께 불렀던 노래의 가사처럼, 그들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택했다.
망자의 목소리
소설 2장 [검은 숨]은 죽은 정대의 영혼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정대의 영혼은 죽어서도 꽤 오랫동안 자신의 시체에 묶여있었다. 정대는 자신이 죽은 과정과 자신의 시체가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처리되는 과정을 모두 보고 느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과 슬픔, 처절한 분노의 감정을 차례로 드러낸다.
정대뿐만 아니라 산처럼 쌓인 시체들에는 모두 각자의 영혼이 있고, 저마다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2장은 정대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시체에 묶인 영혼, 몸에서 풀려난 후에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영혼, 갈 곳을 잃은 망자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망자의 목소리는 어떤 역할을 할까? 망자는 무엇을 위해 등장했을까?
승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건 아마 그 당시 죽은 사람들을 위한 대변의 목소리일 거야. 원래 광주에서 상당히 많은 사상자들이 있었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있었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 망자의 목소리를 등장시킨 게 아닐까?
지원: 맞아. 원래 죽은 자한테는 말이 없잖아. 그리고 우리가 이 민주화운동을 볼 때 희생자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역사의 배경을 잘 모르는 경우엔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망자라는 요소를 첨가함으로써 독자를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에게 공감하는 또 하나의 ‘인물’로 만든 것 같아.
희주: 나는 이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되게 새롭고 다양한 문장과 구조들을 많이 접해봤는데, 망자 입장에서 전개되는 구조도 처음이었어. 망자가 등장하면서 이 소설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됐어. 망자라는 요소는 독자들에게 감정이입을 더 잘 시키기 위해 등장시켰다는 생각이 들어.
태희: 우리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듣는 이야기는 전부 생존자 혹은 목격자, 즉 산 사람들의 이야기이잖아. 그 이야기들은 사건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추모하는 그 희생자들의 고통은 알기 힘들어. 그래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들을 수 없지만 상상으로라도 망자의 목소리를 등장시킴으로써 우리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정서적으로 잘 이해하게 만들지 않나 싶어.
소설에서 등장한 망자들은 자신의 시체가 고깃덩어리처럼 취급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억울함, 분노, 슬픔 등 날것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이러한 망자의 직접적인 등장은 우리에게 죽은 희생자들에 대해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실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삶과 죽음, 선택의 시간이 온다면
<소년이 온다>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삶과 죽음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스스로에게도 궁금증을 던졌다. 과연 생존을 갈망하는 본능을 꺾고 죽음을 각오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생존하여 죄책감을 짊어지는 삶,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명예로운 죽음. 우리가 당시 광주에 있었다면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각자 무슨 선택을 했을까? 우리는 직접 소설 속 인물이 되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나눴다.
희주: 나는 옛날에 군인이라는 꿈을 꿨었고, 지금도 역사에 되게 관심이 많아. 나는 옛날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열사를 존경하는데, 유관순 열사는 어린나이에도 굴복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셨잖아. 물론 상황이 똑같진 않지만 내가 유관순 열사를 정말 존경해서 그런지, 나도 이 5·18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뛰쳐나갔을 것 같아. 물론 총이나 고문이 되게 무섭기도 하고, 내가 살 지 죽을 지도 모르는 거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겠지. 그래도 난 민주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살 바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뭐라도 했을 것 같아.
지원: 난 나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을 거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나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죽음보다 더 클 것 같거든. 그리고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유라서, 나한테는 그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 그래서 난 그 시위에 고민도 없이 참여했을 것 같아.
승우: 나는 거기 있었으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 같은데, 자유가 억압받는다고 했지만 결국은 탄압을 당하더라도 결국 죽는 건 아니잖아. 난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극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참여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 죽는 건 엄청 무서우니까.
태희: 나는 책을 읽으면서 너무 끔찍해서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모나미 볼펜 나오는 그 챕터는 진짜 못 읽겠더라고. 너무 끔찍해서 그 부분을 읽으면서 '이건 아니다. 내가 이 시대에 살았으면 이 시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시위에 참여했는지 의문이 생겼고 군중 심리에 대해 찾아봤어. '군중 심리'는 집단적으로 개별 주체의 일상적인 사고를 뛰어넘은 행동을 하게 되는 심리상태를 말해. 그런 행동을 이끌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인원수라고 해. 군중을 형성하고 있는 절대수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일치된 행동을 하게 하는 동인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처음 시위를 이끈 사람들 덕분에 군중심리가 형성된 것이기에 그 용감한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이런 이유로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린 듯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95p)
2장에서 생존자 은숙은 출판사에서 일하며 읽은 군중을 주제로 한 인문서의 내용이다.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되는데, 이를 ‘군중의 도덕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는 ‘선택’이 아닌 ‘군중심리’에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에서 보면 이런 민주화운동의 희생도 결국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각을 얻었다.
5월의 광주를 그리다
<소년이 온다>는 모두 알다시피 실제 5월 18일 전후 광주의 민주화항쟁 과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그동안 매체로도 많이 소개되었고,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나 만화 등 다양한 작품의 배경이 되어 처절했던 5월의 항쟁을 알렸다. 이밖에도 뉴스나 인터넷 기사 자료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주제다.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더욱 잘 이해하고 매체별 표현의 차이점을 관찰하기 위해 여러 매체 속 광주를 찾고 책과 비교해보았다.
희주: 나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가 생각났어. '택시 운전사'는 광주 5·18 민주화 항쟁을 배경으로, 당시 취재를 위해 광주로 가야 했던 외국 기자와 그를 태웠던 택시 기사님에 대한 내용이야. 택시 운전사는 영화다 보니까 약간 좀 긍정적으로 끝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냥 현실적으로 담아낸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
태희: 여기서 5.18 당시에 사람들이 행동했던 방식들을 설명했고 나는 그 방식으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찾아보고 싶어서 5.18 광주 민주화 사태의 영향을 찾아봤는데, 한미 관계에 큰 영향이 있었다고 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이었고 이때 정상회담이 있었는데, 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손에서 피가 흐르는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대. 그런 식으로 한미 관계에서 좀 많은 변동이 있었고, 지금은 우리가 5.18을 기억해야 할 날로 여기고 있잖아. 그때 당시에는 우리 부모님들한테도 여쭤보면 다 폭동으로 여기고 있었거든. 근데 지금은 이런 식으로 인식이 개선된 게, 아까 희주가 말했듯이 택시 운전사에서도 외국 외신 기자가 보도를 했지. 그런 식으로 외신 기자들의 보도로 우리의 인식이 개선된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어.
지원: 난 <소년이 온다>랑 비슷한 드라마 <오월의 청춘>이 생각나. <오월의 청춘>은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라서 본 사람도 있을 텐데, 잔인하다는 평을 진짜 많이 받았지. 처참한 광주 거리나 시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때문이 아니라, 시청자들을 몰입시킴으로써 이 캐릭터들을 ‘시청자의 지인’으로 만들어준 다음에 민주화 운동의 상처들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 잔인했다고 생각해. 정든 캐릭터들이 한순간에 끌려가서 피범벅이 되도록 맞아죽고, 파릇파릇했던 청춘의 거리가 시체 밭이 되어가는 과정을 너무 생생하게 보여주니까 시청자들에게 ‘현실과 5월 18일의 거리’를 조금 줄여주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이 드라마가 그런 부분에서 <소년이 온다>와 많이 닮았어.
승우: 나도 희주랑 똑같이 영화 <택시 운전사>랑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 비교를 해봤어. <택시 운전사>는 희주 말대로 상당히 밝은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비극을 극복하고, 희망을 좇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잖아. <소년이 온다>는 동호의 친구인 정대도 죽고 정대의 누나도 행방불명되니까 <택시 운전사>보다 조금 더 암울했어. 이 둘을 비교하자면 소설과 영상의 차이점이 보이고, 전개 방향과 분위기도 상당히 다른 것 같아.
같은 주제를 가진 여러 자료들을 찾아 비교해보았는데, 글과 영상이 각각 집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 보니 <소년이 온다>가 나타내는 맥락과 서술 방식의 특징을 더욱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 당시의 뉴스 기사 등을 찾아보며 보다 더욱 깊숙하게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하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왜‘소년이 온다’인가
<소년이 온다>. 제목만 보면 꼭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일 것만 같다. 민주화 운동가 주제일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줄거리 없이 제목만 보고 읽었다가는 매우 큰 충격과 슬픔을 느낄 것 같다. 그렇기에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우리는 얼핏 내용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제목에 궁금증을 품었다.
<소년이 온다>는 왜 ‘소년이 온다’인가? 소년인 동호가 주인공이라서 ‘소년이 온다’일까? 동호 외에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모두 주인공이었으며 그들은 거의 소년이 아니었는데, 왜 하필 제목이 ‘소년이 온다’일까?
승우: 나는 작가님이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주제로 인터뷰한 걸 한 번 찾아봤어. 작가님은 한 선생님의 일기를 보고, 소년이었던 동호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대. 그 소년인 동호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해. 동호가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시신들에 흰 베일을 덮고, 그렇게 군인에게 죽게 된 동호가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지원: 중의적 의미였다고 생각해. 첫 번째로 소설에서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 동호고, 동호는 소년이잖아. 에필로그에서도 나왔듯이 동호라는 인물은 소년일 때 죽었고, 동호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이 남긴 일기장을 보고 작가가 각색을 한 거니까. 소년 동호의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압축해서 말 그대로 희생자 ‘동호’가 어린 소년이었음을 알리고자 하는 뜻이 있었을 거야. 두 번째 다른 의미로는 소년인 동호가 밝게 웃으며 돌아오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 읽으면 읽을수록 동호가 돌아오길 바라게 되는 독자의 심리를 보여준 제목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태희: 너희들은 소년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상상되니? 난 소년이라 하면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그런 느낌이 떠올라. 소년이 열정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갈망하면서도 배후의 위험이나 손해는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순박함이랄까.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투쟁한 사람들이 이런 소년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특히 희생당한 사람들은 죽음의 최전선에서 자유를 갈망하면서 4장의 내용과 같이 양심에 의해 그런 위험을 이겨내고 순수하게 자유를 외친 것이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을 소년으로 비유하여 제목을 ‘소년이 온다 ’라고 짓지 않았을까 싶어.
희주: 나는 제목이 <소년이 온다>라고만 했을 때 솔직히 광주 5·18 광주 이야긴 줄 하나도 몰랐고 예상도 못했어. 그런데 내용을 읽고 나니까, 이 책의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닌 동호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우리에게 알려주러 온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211p)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소년인 동호의 일기장을 토대로 글을 써 세상에 오래도록 기록되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 동호의 유가족에게 양해를 구하는데, 이는 소설의 모티브가 된 동호가 실제 인물, 즉 실제로 그 날의 광주 민주화 운동 한가운데 있던 ‘소년’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은 저마다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에 좋은 제목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듯, 우리의 각자 다른 의견처럼 여러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이렇게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많은 생각과 감정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서로의 궁금증과 의견을 나누며 <소년이 온다>의 궁극적인 목적에 또 한 번의문이 생겼다.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세상에 어떤 마음을 전하려 했을까?
태희: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언가에 열정적일 수 있다. 이것이 작가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려던 말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4장에서 반복되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이 내용을 통칭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난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어. ‘지금 이 투쟁에 참여한다면 나의 죽음은 거의 확실한데 굳이 그 위험에 뛰어들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시점에서 서술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양심이 그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그러니까 인간은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세계를 끝나게 하지만 그런 나의 세계 속에서의 평화를 위하여 나의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그런 모순적인 행위를 양심이라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한 내용인 것 같아.
지원: 작가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독자와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하고 싶었던 것 같아.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과정과 이 작품을 쓰면서 결심했던 것들이 나오는데, 내가 작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유가족 모독'을 막기 위함과 '더 생생한 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어.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망자수가 통틀어 569명인데, 실제로 그 당시 실종자와 부상자는 모두 3천명이 족히 넘는대. 현재까지도 많이 축소되고 은폐되어지는 거야. 그래서 작가는 이런 소설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그 날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리고 상기시킬 의무가 있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승우: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사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해. 처음에 동호도 생존자로서 죄책감에 휩싸였고, 동호가 죽은 후의 이야기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피해자들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면서도 싸우신 분들이 싸우시는 과정을 그리고, 기리고 싶었을 것 같아.
희주: '이렇게 참혹한 5·18을 잊지 말자, 우리가 이렇게 편하고 민주적인 투표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들이 있었기에 이런 세상이 왔다'라는 걸 더 자세하고 더 친근하게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아.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95p)
<소년이 온다>의 의도는 사실 내용에서 이미 명확하게 드러났다. <소년이 온다>는 어떤 강력한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그 날의 상황과 인물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인간’과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던지는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그 과정을 통해 반성하고 성찰하며 자유의 대가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좇는 자유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자유가 당연한 날이 오기까지 어떠한 대가를 치렀는가?’
시간에 마모된 기억과 싸운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134p)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135p)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이 가지는 생각과 의문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그 상처를 온전히 이해할 길이 없었다. 우리는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료와 지인을 눈앞에서 잃어본 적도, 소중한 사람의 처참한 시신 앞에서 무너져 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책 대화를 하며 한 번 더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은, 우리의 자유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적인 나라에서 자유를 쥐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 자유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무수한 희생으로 힘겹게 민주주의를 이룩한 민주국가이다. 우리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대가로 나라의 주권과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더더욱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
우리에게 그들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바쳐온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준 작품, <소년이 온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