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반복 / 강지혜
습도가 낮은 날을 골라 누나는 육수를 끓였다
누나는 번번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누나는 단지 풍경을 기록하는 사람
진짜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과 만날 때 누나의 말을 곧잘 인용했다. 누나의 정보는 대부분 신빙성이 없었지만 나는 누나의 말을 따라하는 것이 좋았다.
"이번 생은 애벌빨래야" 이건 누나의 입버릇이고
장마가 끝나자 매미들이 누나의 창으로 몰려들었다 누나는 방충망 사이로 그들의 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냄비를 꺼냈다
사람들은 계절을 눈치 채지 않았다.
누나는 매미가 가장 완전무결한 생명체라 믿었다.
어디까지나 누나의 가정이었다.
그건
지독한 향수병이었다.
누나가 앉을 자리에는
투명한 부스러기가 점차 늘었다.
나는 매일 불안했다
뼈와 살이 물이 되는 냄새
그리고 끝내
하얀 연기가 되는 냄새
발목과 냄비를 번갈아 보며 누나는 가끔 울었다.
국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내가 훔친 기적 <민음의 시, 2017 >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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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세지
ㅇ 심층(라캉의 상징계이론)+표층(각자의 체험에 근거해 해석)
ㅇ 라캉의 상징계- 언어라는 동어반복, 상징계의 병에 걸린 인류라는 병
라캉은 인류 전체가 모두 운명신경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우리네 삶이 결국은 똑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욕망은 부모의 욕망의 반복이고, 부모의 욕망은 또한 그들의 부모의 욕망의 반복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주체의 욕망이란 전적으로 타자의 욕망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어반복은 인류의 숙명이자, 인간 소외의 원인이다. 반복되는 타자의 지옥.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하고 타자의 꼭두각시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곳에서는 “사랑하니까 사랑해” 또는 “살아야 하니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동어반복의 가장 초라한 판본이 실행된다. 남들이 그러하니 나 역시 그렇게 할 뿐이라는, 반복에 관한 최악의 판본이다.우리는 세계의 은유 속에 갇혀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갇게된 신앙때문이다.글쓰기는 세상과 다른 은유를 시도하는 것이다.세상이 심어놓은 신앙을 버리고 이단적인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세상이 은유한 나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쓴 글에 의해 자신이 은유되는 과정의 글쓰기로 나아가는 것이다.우리를 바꿀 수 있는 증상(감정, 사건)은 가끔 찾아 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한다.(백상현)
ㅇ 프로이드의 문명적 불만-
ㅇ 라캉의 잉여향유-상징계가 주는 제한적 향유에 갇혀 있음
ㅇ언어는 그 자체 상징계이며 구조이고, 동어반복 체계이다.
ㅇ 누나는 매미를 반복하고 나는 누나를 반복한다. 누나는 스스로 시인이라고 말하지만 한줄도 쓰지 못하고 기록만 할 뿐이다. 누나가 앉을 자리는 투명부스러기 밖에 남지 않고 남의 뼈와 살을 가져와 진하게 우릴 뿐이다.나 역시 신빙성 없는 누나의 말를 인용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얀 연기로 사라질 운명이다.실재계에서 응시는 불안으로 나타난다. 상징계의 동어반복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을 점층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먼저 육수에서 시작한다.언어는 존재가 아니고 존재의 집일 뿐이고 그 자체 환상이며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빙성은 없다.이 속에 빠지면 동어반복밖에 없다.
2. 이미지의 연쇄와 교차, 점층
1) 날씨 이미지: 습도-풍경-장마-빨래-계절-매일
2) 매미 이미지: 애벌레-몰려들다-방충망-배-생명체-투명 부스러기
3)냄비의 아미지-육수를 끓이다-그들의 배-가정(중의어)-지독한 향수병-뼈와 살이 물이되는 냄새-하얀 연기가 되는 냄새-진한 국물
4) 언어의 이미지-시인-풍경-기록-한줄-쓰다-인용-정보-신빙성-지독한 향수병-입버릇
ㅇ 상승의 이미지:육수를 끓이다-연기
ㅇ 하강의 이미지-습도가 낮다
3. 리듬
ㅇ ㅅ 자음운- 습도, 시인-사람들-신빙성-생-사이-생명체-향수병-부스러기-살-냄새
ㅇ ㄴ자음운- 누나-나-냄새
ㅇ 매일과 매미, 울다와 우러나다
은유: 상징계는 동어반복이다
동어반복(상징계)의 점층 ↔ 실재계
높은 습도ㅁㅁ↔ 낮은 습도
육수, 인용,따라함↔ 시인, (원재료)
풍경을 단지 기록↔ 진짜 이야기
신빙성 없다 ↔ 신빙성 있다
장마 ↔ 계절
커다란 냄비↔ 불안, 울다
매미,완전무결한 생명체
투명 부스러기↔ (온전한 몸)
가정, 지독한 향수병 ↔ (확철대오)
끝내 하얀 연기
진한 국물이 우러남
<지극히 개인적인 해설>
동어반복 / 강지혜
습도가 낮은 날을 골라 누나는 육수를 끓였다
(습도가 많은 장마철 중 습도가 낮은 날을 골라 언어를 정제한다. 습도가 많은 계절 중 습도가 낮은 날이라해도 역시 타 계절에 비해 습도가 높다.그러므로 상징계 속에서 무엇을 하든 상징계일뿐이다.그런데 누나가 하는 행동은 재탕, 동어반복으로서의 육수를 끓이는 일이다)
누나는 번번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누나는 단지 풍경을 기록하는 사람
진짜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누나는 자신이 창조적 존재 즉 실재계의 존재인 시인이라고 소개하지만 실상은 단지 남이 만든 말을 반복할 뿐이다. 언어의 세계, 상징계의 세계에서는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없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 실재계에 진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과 만날 때 누나의 말을 곧잘 인용했다. 누나의 정보는 대부분 신빙성이 없었지만 나는 누나의 말을 따라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상징계에 머무는 것이 좋았다.)
(누나는 언어이다.언어는 존재가 아니고 존재의 집일 뿐이고 그 자체 환상이며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빙성은 없다.그럼에도 나는 상징계가 좋다. 우리 모두는 상징계에 속한다)
"이번 생은 애벌빨래야" 이건 누나의 입버릇이고
(애벌빨래란 때가 많이 타는 부분의 얼룩을 먼저 가볍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생은 상징계의 때를 조금 벗겨내고 다음 생에는 완전히 벗겨내면 된다.)
(상징계 내에서도 완전한 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
장마가 끝나자 매미들이 누나의 창으로 몰려들었다 누나는 방충망 사이로 그들의 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냄비를 꺼냈다
( 습도가 높다는 것은 곰팡이가 슬기 좋다는 것이고 최적의 상태가 아니라는 뜻으로 상징계를 상징한다.매미는 울음을 반복하는 존재다.매미는 상징계의 또다른 상징으로서 더욱 더 깊은 상징계다.
더욱 더 심화된 상징계가 누나에게 왔다. 누나는 매미의 배 즉 내부, 진수를 보았다. 어정쩡한 언어, 얼치기 상징계가 문제다. 그러므로 한약 다리듯 상징계의 진수를 빼내기 위해 냄비를 꺼냈다)
사람들은 계절을 눈치 채지 않았다.
(사람들은 상징계에 머물러 있다. 변화의 실상인 실재계를 보지 못한다)
누나는 매미가 가장 완전무결한 생명체라 믿었다.
어디까지나 누나의 가정이었다.
그건
지독한 향수병이었다.
(누나는 심화된 상징계 매미 즉 심화된 언어야말로 가징 완전한 것이라고 믿었다.언어는 지성이고 누스로서 신적인 능력이기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누나의 의견일 뿐이다.실재계가 존재할 수 있고 이것이 더 완전무결할 수 있다. 누나는 언어를 잘 사용하여 최고의 경지(를 향한 향수병)에 이르고자 한다)
(상징계 집착, 매미라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고질병인 향수병)
누나가 앉을 자리에는
투명한 부스러기가 점차 늘었다.
(누나의 언어지상주의, 상징계 중시주의는 실체가 없는 투명부스러기일뿐이다)
(온전한 몸이 아니라 허상인 투명 부스러기만 늘어난다)
(언어의 이미지에 매미의 이미지를 잘 교차하고 있다)
나는 매일 불안했다
(매미에서 매일로 기표를 변주하고 있다)
(불안은 실재계에서 찾아오는 증상이다)
뼈와 살이 물이 되는 냄새
그리고 끝내
하얀 연기가 되는 냄새
(육수를 끓이므로 뼈와 살이 물로 고아진다.언어의 뼈와 살은 언어의 핵심이며 언어 즉 상징계는 실체가 아니므로 끝내 하얀 연기로 무화한다.)
발목과 냄비를 번갈아 보며 누나는 가끔 울었다.
(아무리해도 자신이 낮은 단계에 있다는 사실, 낮은 단계의 상징인 발목과 최고 경지에 도달하려는 수단인 재탕, 동어반복이라는 상징계의 상징인 냄비를 번갈아 보면서 가끔 한계상황을 체험하지만 포기하지는 못한다 )
국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동어반복,재탕으로서의 상징계가 더욱 심화된다)
(실재계는 더욱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