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잠실 역에서 만난 친구들 12명은 오모가리 찌개 전문점에서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은 뒤 바로 출발,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며 왜간에서 온 친구와 합류했다. 덕유산에 도착 후, 우리는 바로 곤돌라를 타고자 줄서기를 시작했다.
덕유산 무주 리조트에는 곤돌라를 타고 산행을 하려고 모여든 등산객 9,000여명이 있었다. 장장 두 시간에 걸친 줄서기를 시작한 후에야 우리는 겨우 곤돌라에 탑승할 수 있었다.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곤돌라에 탑승을 한 후는 기다린 만큼의 보람이 있었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펼쳐지는 장관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덕유산은 모든 산의 높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뚝 서서 천하를 호령했다. 1,614m의 위용을 자랑하는 그 웅대함은 얼마전 다녀온 계방산보다 빼어났다. 시선을 멀리 당겨서 보면 천하가 아득하고 지근 거리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온통 눈 천지인 산하가 별천지에 온 듯하다.
바람도 이곳 풍경에 감탄해서 어쩔 줄 모르고 멈춰서는 곳, 나무도 덕유산 정상에서는 삶이 무의미했었나보다. 군데군데마다 죽은 고목들이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며 숨을 놓아버렸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풀리겠지. 심청가의 애절한 판소리 한 토막을 진양장단에 맞춰 애절하게 불러도 덕유산은 모두 들어주겠지. 목울대 높여 꺼이꺼이 한 섞인 곡조를 읊조리면 하늘도 덩달아 씻김굿을 하고 말겠지.'
이런 날은 나도 고목이 되고싶다. 나도 고목이 되어 천년만년동안 비바람 모진 눈보라에 나를 맡기고 싶다. 나조차 나도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고싶은 산, 아! 덕유산이여!
정상 근처 양지바른 곳에 우리는 둘러앉아 과메기회에 소주와 컵라면으로 늦은 허기를 달랬다. 특히 과메기는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일품이었다. 손수 재료까지 전부 준비해온 중곡동 친구의 성의가 감동이다. 계란 한 판을 통째 삶아온 친구의 정성과 호박을 달인 차에 과일까지 가져온 대구친구, 내 아내가 만들어준 주말농장의 무공해 김치, 성남 친구의 구수한 누룽지와 커피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예정에 없던 곤돌라탑승의 기다림에 시간을 빼앗긴 우리는 이어지는 산행을 결국 포기하고 바로 하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도 내려가 보지 않은 개척산행의 선봉에 우리가 선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온몸이 전율할 듯한 동심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어 헤어날 줄 몰랐으니 내가 지금 후기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음이고 또한 나의 글 한 줄을 통해 다른 많은 분들이 나와 같은 동심을 느끼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젠에 스패츠까지 만반의 준비를 한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하산을 시작했다. 각자 준비한 비닐이나 돗자리를 준비했고 그조차 없는 친구들은 맨몸으로 바닥에 앉았다. 곤돌라가 지나가는 아래로 우리는 30cm가 쌓인 눈을 뚫고 내려가려는 것이다. 무주리조트 슬로프에서 산 정상까지 나무를 벌목하고 잔디를 심어 놓았기에 미끄럼을 타며 내려가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눈쌓인 길을 먼저 밟으면 눈은 길이 되고 길은 다시 미끄럼틀이 되었다.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길을 내 놓았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는 발자국 위에 비닐을 깔고 미끄러져 내려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주르르륵, 슈슈슈슝, 슈파 슈파슈파 슈파."
"야호! 으라차차찻 야야! 비껴!"
돗자리를 가지고 내려가는 나는 제일 선두에 서서 길을 만들었다. 내 뒤로 용기 있는 사람들은 줄을 지어 미끄럼을 타며 내려오고 있었다. 저마다 입이 귀에 걸렸다. 남녀 노소가 따로 없었다. 태백산 하산 길의 눈썰매보다 5배나 더 재미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1,614m의 덕유산을 미끄럼을 타며 내려온다는 것은 환상 그 자체였다. 설원을 가르며 질주하는 우리는 스치는 눈의 파도더미에 묻혀 온 몸이 눈사람이 되었다.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가도 까르르, 전혀 모르는 다른 산악회의 사람들과도 서로 웃으며 까르르, 저마다 함박웃음이 그칠 줄 몰랐으니 이보다 더 멋진 산행이 또 있으랴?
내려가는 길은 초급자 슬로프와 바로 연결되어있었다. 오후권이 끝난 시간이라 슬로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비닐을 타고 슬로프를 내려왔다. 스키장에 비닐을 타고 내려온 사람이 또 있을까? 스키장에 온 수많은 인파가 아래에서 우리들을 향해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있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행복이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게 그냥 포복절도하며 깔깔 웃어버리는 것은 또 아닐까?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둘러 차를 돌려 선희네 식당으로 향했다. 금강을 끼고 놓여있는 작은 식당인데 이곳 영동이 고향인 친구의 소개로 우리 일행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어죽(쏘가리, 메기 등의 속을 가려내고 끓인 생선이 다 익으면 살을 따로 발라두고, 생선 삶은 물에 멥쌀을 넣고 끓이다가 남은 생선살을 넣어 끓인 죽.)과 도리뱅뱅이(충청북도 옥천 지역의 향토음식인 도리뱅뱅이는 매콤하면서도 고소하고 바삭한 맛이 일품으로 피라미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돌려 요리하여 ‘도리뱅뱅이’라고 한다.)그리고 빙어튀김에 홍삼 주까지 우리는 향토 음식을 감칠맛 나게 먹었다. 우리는 진수성찬에 피곤한 몸을 풀며 다시 서울로 향했다.
혹시 겨울 덕유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등산코스는, 삼공리 주차장 - 신대휴게소 - 인월담 - 백련사 - 정상(향적봉)-곤돌라 정상-스키장쪽 곤돌라 아래쪽 비닐 타고 미끄럼틀 하행-스키장 초보 슬로프 비료포대를 타고 하행 순이다. 비닐만 준비해서 위의 순서대로 산행을 한다면 곤돌라를 타기 위해 두 세 시간씩 기다릴 필요도 없이 시원시원한 산행이 될 것이다. 물론 눈이 엄청 쌓여서 엉덩이가 다칠 위험은 거의 없다.
남자친구들 10명에 여자친구 3명, 산이 좋아서 모인 친구들이라 모두의 마음이 산처럼 곱다.
아름다운 여행은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찾아가는 여행만큼 아름다운 여행이 또 있으랴?
첫댓글 이야!정말 재밌으셨겠네요 눈썰매 신나셨겠다 ㅎㅎ 우리 딸래미도 스키장 간댔는데 오늘 ^^*
전 다음주에 갑니다 지산스키장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