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잘 보이는 테이블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나만 혼자인 게 안쓰러운지 장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신경을 쓰고 현주도 늘 방으로 전화를 걸어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오늘은 조금 일찍 서둘렀더니 시간이 좀 남아 호텔 정원을 산책하였다.
생긴 대로 자란 배나무와 자두나무에 자그마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고
체리나무는 제 철이 지나서인지 상태가 온전치 않은 체리가 군데군데 몇알 열려 있었다.
몇년 전 호주의 빅토리아주 산골마을 오메오에서 체리나무 가로수에 주렁주렁 열린 체리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홀리데이 인 부다페스트 호텔의 자두나무

표주박 같이 생긴 배, 우리나라 배와 복숭아의 중간 맛이다.
버스는 곧장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제까지 보았던 소박한 농촌마을보다 좀더 윤택해보이는 샬레형 집들과 초지, 해바라기나 옥수수가 심어진 들판이 있었다.
소형차 일색이었던 주변의 차들도 벤츠나 아우디, 베엠베 같은 고급 차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유난히 해바라기를 좋아하는 나와 현주는 해바라기 밭이 나올 때 마다 셔터를 눌러댔지만
달리는 차안에서 유리창 너머 해바라기 평원의 풍경을 살리기는 역부족이어서 제대로 된 사진 한장 건지지 못했다.
그립엽서세트같은 풍경들을 지나 비엔나에 도착헀을 때는 11시 무렵,
제일먼저 들른 곳이 벨베데레 상궁이다.
이 여행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문구 중에 클림트의 '키쓰'를 본다는 것이 있었고
그것이 이 프로그램을 선택하게된 결정적인 펀치였는데 바로 이 벨베데레 궁에 있다.
궁정 외부는 세련되고 아름다웠지만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스윽 훑어보고는 얼른 입장했다.
중앙홀 계단을 올라 갤러리 두번째 방에 들어서자 정면에 "키쓰"가 있었다.
화집에서 보고 원작을 상상했을 때는 벽면을 가득 채운 큰 그림일 줄 알았는데
그림 속 주인공들이 거의 우리 체구와 비슷할만큼 생각보다 큰 그림은 아니었지만 이 큰방을 압도했다.
조금 떨어진 곳의 게슴츠레한 눈을 한 여자 그림을 보는 순간 내가
" 루 살로메다"
했더니 가이드가 웃으며
" 녜, 맞아요. 그런데 이건 '유디트'예요. "
처음에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때 '살로메'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유디트를 보면 살로메를 떠올린다.
나도 늘 이그림을 보면 살로메를 먼저 떠올린다.
헤롯왕의 의붓딸로 매혹적인 춤을 춘 후 상으로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했던 요녀(?) 루 살로메와 달리
앗시리아군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조용하고 정숙하며 신심이 깊은 과부 유디트가 현란한 치장을 하고
앗시리아의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 미모와 감언이설로 유혹하여 그의 목을 베어 돌아와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이 된 성녀 유디트를
클림트는 많은 사람이 살로메를 떠올릴만큼 요부로 만들어버렸다.
서울에 클림트 전이 왔을 때 꼭 가려고 별렀지만 끝내 못보고 말아 아쉬웠었는데
이 그림만 보아도 비엔나에 온 값은 다 한 셈이어서 오래오래 그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내가 가진 책이 "클림트의 황금빛 유혹"이고 우리나라엔 거의 황금빛 그림만 알려져서 황금빛 그림만 그린 줄 알았는데
어두운 초록을 주재료로 한 그림도 여럿 있었고 그 분위기도 묘하게 끌렸다.
이동할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서둘러 다른 방들을 둘러보았다.
고흐나 고갱, 르느와르, 모네의 작품도 몇 장 있었다.

벨베데레 궁 입구의 면세점에는 온통 클림트였다. 우산, 가방, 엽서 ...
때로는 조잡한, 어떤 것은 꽤 분위기가 나는 프린트가 새겨진 물건들을 사느라 다들 시끄러웠다.
갤러리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서진이 한장도 없다.
시간이 늦어 클림트 엽서나 그림 한장 사려했는데 그것도 못하고
나중 시내 기념품숍에서도 가방이나 우산만 있지 엽서나 그림은 없어 못사고 말았다.
그렇지만 어떠랴? 나는 비엔나에 왔고 '키쓰'를 보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방향 분간이 안되는 시내 어디쯤 아카이코라는 일본음식점에서
일본식과 한국식이 반반인 점심을 먹었다.
소나기가 한시간쯤 억수같이 퍼붓더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파랗게 개어 쉔부른 궁전에 갈 때는 우산이 양산이 되었다.
마리아 테리지아의 여름 궁전인 쉔버른 궁전으로 이동하면서 마리아 테레지아와
조세프 2세의 아름다운 왕비 엘리자베스(애칭 씨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현명하고 백성을 사랑했으며 갖가지 개혁적인 제도를 정착시킨
위대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보다 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는
이기적이고 사치스러우며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씨씨란다.
쉔부른 궁전에 이르는 길가 가로수나 알림판, 펼침막은 온통 씨씨의 초상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쉔부른 궁전은 아름답고 웅장하고 화려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와 있어서일까
아님 이 넓은 궁에 냉방장치라곤 오직 선풍기 세대뿐이어서일까 내부는 덥고 답답했다.
너무나 검소하고 너무 열심히 일해서 '백성의 황제'라 불린 조세프 2세의 집무실과 그의 흔적이 인상적이었다.
장샘과 현주와 '해리포터와 불의 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잘 전지된 정원 숲과 꽃밭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하도 더워 물 한병을 샀는데 세상에 500밀리 물 한병이 4유로(으악..) 아이스크림을 살까 하다가 놀라서 그만두었다.




요한슈트라우스의 왈츠곡 '비인 숲속의 이야기' 배경인 시민공원에서
요한슈트라우스 동상과 사진을 찍고 인근의 가게에서 호재 시계와 내 시계를 샀다.
비엔나에 와보니 모짤트도 베토벤도 아닌 요한 슈트라우스가 비엔나의 얼굴이었다.
스왈롭스키 매장 구경도 하고 스테파노 대성당을 들렀다가 비엔나 거리를 걸었다.
여유로워보이고 그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혼잡하지 않은 거리 분위기가 좋았다.
약간 더웠지만 감격에 겨워 거리를 활보했다.
'바로 내가 그 비엔나 거리를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비엔나 대학과 시청 건물을 차창으로 구경하고 왈츠교습원에서 왈츠를 배웠다.
기본 동작만 배우고 실제로 춤을 출 때 나는 한켠으로 물러나 일행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같은 버스에 탄 다른 팀의 젊은 남자 한 명이 파트너가 없었지만
하루 종일 땀 흘리고 돌아다녔는데 모르는 남자와 왈츠를 춘다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았다.
비엔나의 근교 와이너리 마을에 800년된 식당에서 저녁 식사로 호이리게 정식을 먹었다.
베토벤도 다녀가고 모짜르도 즐겨 찾았다는, 부시 대통령이나 비엔나를 찾은 유명인들이 들른다는 식당인데
70쯤 되어보이는 키작은 바이올리니스트와 젊은 아코디언 연주자가 테이블을 돌며
왈츠나 아리랑, 몇 곡의 한국 노래까지 연주해서 흥을 돋운 것 외에 음식은 정말 실망이었다.
양배추를 잘게 썰어 만든 샐러드는 상큼했지만 소시지 몇조각과 감자 뿐인 메인디쉬는 정말 짜기만하고
식사 후의 애플파이도 즈디아르 마을의 시골식당에 비하면 영 별로였다.
"이런 식당이 왜 이리 유명하지?"
하고 의문을 품었는데 나오면서 현지인들의 식사 테이블을 보니 생선 요리랑 스테이크 같은 것이 먹음직스러워보였다.
메뉴를 선택할 수 없는 패키지 여행객 만의 맛없는 식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식사 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성의 홀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실내악단과 몇 명의 오페라 가수들이 연주와 노래와 춤을 보여주었는데
1인당 80유로짜리를 흥정 끝에 70유로로 예약한 음악회로 꽤 괜찮았지만
오늘 하루 너무 덥고 피곤하여서 빨리 들어가 쉬고 싶었다.
비엔나에서의 모든 음악회가 그러듯 마지막 라데츠키 행진곡이 나오고 언제나처럼 박수로 장단을 맞추니
피곤이 싹 물러가고 좀 더 음악을 들었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오늘은 육신의 피로가 정신의 기쁨을 이기지 못했나보다.
음악회를 마치니 우리 버스는 하루 일정이 끝나 현지 승합차가 왔다.
호텔이 비엔나 공항 근처에 있어 도심에서 이동하는데 30분 가까이 걸렸고
천둥 번개와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데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낯선 운전사 외에 가이드도 동승하지 않아
우리는 양파 까는데 혹은 사람 기름 짜는 데로 실려가는 것 아니냐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다스리며
늦은 밤 빗속 질주의 공포를 이겨내고 무사히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이름이 NH호텔이어서 농협이 비엔나에서 호텔사업도 하냐며 같이 웃었다.
첫댓글 지루한 여름 비...대나무 돗자리 보전하고'빈이 사랑한 천재들'을 잼나게 읽었는데... 목인님은 그 현장에...또 부럽...-_-;
실은 쓰면서 여련화님이 보시고 저런 엉터리 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글구 저는 그책 지금 알라딘에 주문 넣어놨는데....
그림이 등장하는 이 대목에서는 여련화님과 대화가 통하겠지 했는데 역시,
60여개국을 다녔는데도 아직 비앤나는.......
아마데우스, 사운드 오브 뮤직.......베토벤, 모짜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슈베르트......수 많은 악성들의 본향.....
다음에 만나면 목살 소금구이와 더불어 밤 새우며 함 들어야....목인씨의 여행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