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장하다, 백만 걸음의 마침표를 찍은 이들이여.(서울 - 부산 총 525km)
조선통신사 걷기 행사 마지막 날인 4월 20일, 아침 7시 반에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김명자굴국밥집에서 아침을 들고 덕계동 주민센터로 향하였다.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8시 50분, 마지막 도착지인 부산 동래 동헌까지 25km의 행로에 나섰다.
출발한 지 15분 쯤 자나니 양산 시계를 벗어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면에 들어선다. 20여분 쯤 부산방향으로 나아가니 다시 양산시로 접어들어 한 시간 가량 걸어서 양산과 부산의 갈림길에서 부산방향으로 접어들어 곧 한적한 시골 길로 꺾어졌다. 노란 유채꽃이 피고 미나리가 많이 심어진 농촌마을을 3km쯤 걸어가니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쉴 곳이 마땅찮다. 왼쪽으로는 KTX 고속철로길이 뻗어 있고 간간히 빠른 속도로 열차가 지나간다.
10시 25분 경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에 있는 실로노인요양시설에서 휴식을 취하고 걸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정구 두구동에 접어든다. 이곳 사거리에서 양산경찰서 교통안내 팀이 잘 가시라는 인사를 하며 돌아가고. 언덕길을 따라 소로로 접어드니 아름다운 하천을 따라 오솔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걸어가니 부산광역시의 상수원보호지역인 회동저수지가 나타난다.
11시 50분, 주변에 음식점이 많이 들어선 금정구 선동 마을의 은행나무집에서 오리백숙으로 점심을 맛있게 들었다. 이곳에서 합류한 부산지역 걷기동호인들과 함께 1시에 오후 걷기에 들어갔다. 신문을 보고 조선통신사 걷기행사가 이곳에서 1시 경에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왔다는 부부도 있고. 에스코트에 나선 금정경찰서 교통계장이 친절하게 안내에 나서기도.
선동마을 입구에서 큰 길을 건너 호젓한 언덕길을 넘어서니 금정구의 아파트촌이 나타나고 이어서 복잡한 시내로 들어선다. 한 시간여를 걸어 금정문화센터 인근의 한국센터빌딩에서 아이스케이크를 들며 휴식을 취하였다. 문화센터 앞의 만남의 광장 높은 게양대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우리를 지켜보는 듯하다. 걷는 동안 계속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였는데.
이 지역은 옛날 조선통신사들이 평복에서 예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동래부로 향했다는 십부정이라고 선상규 회장이 설명한다. 우리도 예복을 갖추는 심정으로 매무새를 살펴보고 힘을 내어 마지막 코스의 걷기를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한참 걸어가니 동래구에 접어든다. 금정경찰과 동래경찰이 임무교대를 하고. 동래역에 이르니 오후 3시 25분, 동헌에는 화장실 이용이 불편하여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동래 동헌에 10분 거리에 있는 동래 동헌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반이 조금 넘었다. 대기하고 있던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동헌 마루에 올라 동래를 소개한 역사문화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전시자료에는 삼한시대 변진독로국의 옛터인 동래는 신라에 병합되면서 거칠산군으로, 고려 때는 동래현이 되었다가 조선 태조 때 동래진으로, 명종 때 국방과 대일외교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동래도호부로 승격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쉽게 함락되어 현으로 격하되었다가 다시 도호부로 지정되어 정3품의 당상관이 목민관으로 제수되는 예부터 널리 알려진 큰 고을이라고 적혀 있다. 동래야류라는 전통가면극이 무형문화재로 유명하다고.
오후 4시, 동래구청으로 이동하여 최종목적지 도착을 환영하는 행사를 가졌다. 일행 중 연장자인 한동기 선생과 시마무라 토미코 여사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고 조길우 동래구청장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조 구청장은 제3차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 일행을 따뜻하게 환영하며 한일 간의 선린우호를 다지는 뜻 깊은 행사에 참여한 일행의 용기와 노고에 치하를 보내었다. 일본지진피해에 대한 위로를 표하고 역사와 문화의 전통이 서린 동래에서 편히 쉬기를 당부하며.
이어서 선상규 회장과 엔도 애스오 대표가 답사를 통하여 성대한 환영,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감사하며 우리가 걸은 길이 평화의 길, 우정의 길로 발전하기를 염원하였다. 마지막 도착지라서 행사 전후에 기년사진 등을 열심히 찍기도 하고.
구청 가까운 곳에 있는 숙소(드림 모텔)에 여장을 풀고 6시 반에 숙소 근처의 예원한정식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재일동포 황복례 씨가 일부 식사비를 찬조하여 감사하였고. 행사를 모두 마치기까지 힘든 여정을 함께 한 서로를 격려, 위로하며 술잔이 다른 때보다 더 많이 비워진다.
2부 행사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완보한 이들에게 완보를 축하하는 기념패와 도중 참가자를 포함한 전원에게 참가증을 주고 일본 측에서 마련한 페난트와 받는 이에게 주는 덕담을 적은 명판도 전해주었다. 모범 걷기로 한국 쪽에서 최영미 씨와 일본 쪽에서 나카무라 다다시 씨가 꽃다발을 받았다. 얼떨결에 참가한 최영미 씨는 씩씩한 걸음걸이로 깃발을 들고 줄곧 선두에 서서 여군 출신이냐는 찬사를 받았고 나카무라 다다시 씨는 3차 때 일본에서 하루 저녁 나와 한 방을 쓰기도 하였는데 두 번이나 참여하여 사정상 완보하지 못한 구간을 나중에 혼자 걸었고 이번에 세 번 째 참가하여 열심히 걸은 것을 치하하는 뜻을 담았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 여성참여자들과 체육진흥회 스탶들에게 별도의 선물을 증정하여 분위기를 돋우고.
3부로 여흥을 즐기고 9시 넘어 파티가 끝났다. 50여명의 큰 일행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인솔하느라 애쓴 선상규 회장과 스탶들의 노고에 감사와 치하를 드린다. 질서와 친절이 몸에 벤 30여명 일본 측 참여자들의 열정과 봉사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 끝까지 완주한 열다섯 명의 한극 측 참여자들에게도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처제는 안동에서 돌아갈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는데 끝까지 동행하여 뿌듯한 심정이고 아내와 나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완주할 수 있어서 큰 보람과 자신감을 얻었다. 신향순 여사는 2년 전에 서울 - 부산 간을 완주한 후 많은 이들에게 광고라도 하고 싶을 만큼 자랑스러웠다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김중석 거사는 작년에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와 목포 - 부산 간을 걸은데 이어 이번에 서울 - 부산을 걷게 되어 전국을 삼각으로 돌아볼 수 있음을 뜻 깊게 여기고.
아침 출발 전에 천혜경로원의 강은수 원장이 한 정거장도 걷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은데 서울 - 부산을 완주할 수 있음을 축하하며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격려하였고 도착 2시간 전에는 마지막 행로를 무사히 걷기를 바라며 큰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둘째아들은 틈틈이 카페와 메일로 보내는 기록들을 챙겨주고.
아들들아, 오늘 읽은 잠언에는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잠언 20장 29절)는 말씀이 있거니와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이 들어도 힘든 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욕을 너희들에게 전해주고 싶구나.
장하다, 백만 걸음을 뚜벅뚜벅 완주한 일행들이여. 우리 모두 아름다운 미래를 향한 희망과 전진의 발걸음을 내딛자.
첫댓글 님의 무사완주를 진심으로축하합니다.
출발부터 도착하여 마무리까지매일읽는재미 좋았구요 많은걸배우고 느꼈습니다항상건강하고행복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