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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8년 3월 20일 (수요일)
정전 제 2교의편 제 1장 일원상 4. 일원상서원문 Ⅲ
오늘은 일원상 서원문 마지막장입니다. 세 번에 끝내려니 좀 죄송합니다. 일원상 서원문은 진리, 신앙, 수행, 사은까지 하나로 똘똘 뭉쳐져 있어서 원불교의 핵심이 다 들어있습니다. 천도법문과 일원상 서원문은 대종사님께서 직접 쓰셔서 더욱 은혜롭습니다.
●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 : 입정된 자리, 그 자리는 평등한 자리이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자리를 현실 속에서 잘 대조하시는 분이 가장 위력을 잘 얻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힘든 경계가 왔을 때 입정처 자리에 들어갔다 오면 쉽게 끊기죠. 이런 자리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놓아버리면 계속 분별이 분별을 번뇌가 번뇌를 대체해서 계속 꼬이게됩니다. 이런데 입정처 자리에 탁 들어갔다 나오면 해결책이 됩니다. 범부들은 분별을 분별로 대체하고 상대심을 상대심으로 대체하다보니까 머리가 너무 아픈거예요. 그러나 입정처 자리에 들어갔다 오면 끄떡없습니다. 그래서 입정처 자리에는 괴로움과 낙이 없습니다. 고락을 다 넘어선 자리이고 있고 없고도 다 넘어서고, 차별도 없고 하다못해 너와 나까지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들어갔다 나오면 새롭게, 마음이 부드럽고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됩니다.
이 입정처 자리는 본래 그대로의 마음이며 원만구족한 마음입니다. 텅 비어서 훤하고 밝고 따스합니다. 이 마음이 우리 본래의 마음이고 일원상의 그 마음입니다.
● 그래서 우리 현실 속에서 유무를 초월해서 생사, 즉 변화를 바라본다. 변화를 바라봐도 유무를 초월해서 바라본다. 즉, ‘고가 있다, 낙이 있다’ 가 아니죠. 고와 낙이 있다는 것은 ‘내’가 있다는 뜻이죠. 내가 있으니 고와 낙이 있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의 본래 자리는 무엇이 ‘나’인가? 이것이죠. 그 자리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나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입정처이고 언어도단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빈부빈천도 흥망성쇠도 다 넘어서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무초월의 생사문이 되는 것이죠. 어떤 유무의 상대의 세계에서도 상대를 뚝 떼고 볼 수 있습니다.
●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 이 자리입니다. 중생 -> 범부 -> 조사 -> 제불 순으로 진급을 하는데, 그런데 진급에서도 더 들어가면 성품자리는 없다.
● 그리고 그 자리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죠. 이 세상에 사은 외에 복을 구할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 복이 나오는 그 구멍, 그 바탕이 바로 일원상 자리입니다.
● 그래서 그것을 다시 변, 불변으로 유상무상 무상유상으로 이야기하면 먼저 유상으로 보아 불변하는 것으로 볼 것 같으면, 바로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다. 사실은 그 불변하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더 들어가 보면 바로 그 자리가 무상이거든. 이게 바로 하나이면서 양면성이다. 그래서 그것은 우주는 성주괴공이라는 변화, 만물은 생로병사라는 변화. 우리도 생로병사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생이라고 하는 것은 심신작용이라는 것을 따라 육도로 변화가 된다. 그래서 혹은 진급,강급이나 혹은 은생어해냐 해생어은이냐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언어도단의 입정처 자리를 놓아버립니다. 즉 은혜를 좀 입으면 교만, 바탕, 상이 나온다. 그래서 다시 해독으로 갑니다. 이것을 번복합니다. 그래서 언어도단의 입정처라는 것은 은혜와 해독을 초월한 자리. 그래서 해독이 왔어도 왔냐, 은혜가 와도 왔냐, 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나’라는 것이 나와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입정처 자리는 너나가 없습니다. 여러분 본래가 그렇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어두워지고 매해지고 오염되고 때가 낍니다. 그래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이라 했습니다. 본래는 원만구족합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대종사님, 나도, 여러분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불조사의 성품을 가진 부처라 해놓고 왜 어리석다고 했을까요? 왜 서원을 세워야할까요? 둘은 같은 질문입니다. 일원상같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래 일원인데 일원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성품은 원만구족 지공무사한데, 마음이라는 것은 경계따라 별별 마음이 다 나온다 이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그 마음이 머물러서 오염되어 착심이 되면 이게 업력, 습관이 되어 잘 안됩니다. 그 어리석은 것이 자기인줄 알게 됩니다. 어리석은 중생이 자기 본래 모습인 줄 압니다. 본래는 그렇지 않은데 한 마음 동할 때 꺾어져서 업력이 되고 습관이 되어 우리가 어리석어 집니다. 우리가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할 때 참회문이 왜 나왔는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화요공부방을 수요공부방으로 바꾼 이유가 바로 대학원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제도 공부하고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을 들으며 참회가 됩니다. 내 생활과 계속 대조가 되면서 마음이 참회가 되는 거예요. 아마 여러분들 공부방 오면서 그런 마음이 들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사람은 배울 때 행복하구나.’ 라는 것을 느낍니다. 알아야 참회가 되고 알아야 변화가 되고 안 만큼 행복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대종사님의 서원문을 공부하는데 서원문 자체가 워낙 훌륭합니다. 상산 박장식 선생님같은 경우에는 만석꾼에 경성제대 법대를 나오시고 사업하시다가 출가하셨습니다. 그 집안 그 분이 출가하시며 한 30명이 출가했습니다. 그 분의 어머니께서 우리 식구를 제도하고 싶어서 회갑잔치를 남원에서 하지않고 익산 총부에서 회갑잔치 해야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그 때 그 아드님이 총부와서 보니까 깨끗하고 여기는 꼭 신선들이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셨대요. 그러다가 처자식이 있으신데도 출가해야겠다 생각하고 출가하셨습니다. 그 분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다들 만석꾼의 딸이니 어떤 옷을 입고 오나 보셨답니다. 그런데 만석꾼 딸이 무명 옷을 입고왔더랍니다. 왜? 당신 아버지 박장식 선생님이 대종사님의 방법대로 취사하신거예요. 검소하게. 부잣집 딸이라고 잘 입힌 것이 아니라 그 법을 실생활에 써 먹으신거죠. 대종사님 법에 신심이 나가지고 자식들까지 다 출가시킨 사람들을 보면 종교에 미친 것일까? 미친 것일까요? 아니면 그 입정처 자리, 생전 보통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 입정처 자리에 감을 잡아서 과감히 내 생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 체받아서 : 체받는다는 것은 뭐예요? 붓글씨에서 선생님이 체본을 써줍니다. 온몸으로 다 받는거에요. 그대로. 그러려면, 먼저 타력에 대한 믿음으로 받는 거죠. 확실한 믿음으로 받으면 따라하게 되고 모시고 받들게 됩니다. 신앙의 대상으로, 수행의 표본으로 체받는다.
아까 말한 것처럼 일원상처럼 되지 않아 우리는 중생이고, 그래서 일원상처럼 되기 위한 서원을 세우고, 그 일원상처럼 되기 위해 삼학공부를 하는 거예요.
●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한다. 다른 종교는 마음, 마음만 말하는데 마음과 몸은 서로 영향을 주죠.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심신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아파보니 몸을 지키지 못하면 마음을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원래 심신은 원만한 것이나 여러분은 어때요? 애기들은 원만합니다. 여러분 애기를 보면 그냥 예쁘잖아요? 왜? 애기들은 원만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운동, 바둑 같은 것을 해보면 운동이나 바둑을 어중간하게 배웠던 사람보다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 가르기치기가 더 쉬워요. 어떻게 보면 순수할 때, 맑은 때 마음공부를 하면 훨씬 더 물들이기 쉬워요. 심신을 원만하게 수, 지킬 수 예요. 지킨다는 것은 오염되지 않게 한다는 거예요. 제가 지난 일요일에 ‘염착’(染着) 이다. 먼저 오염이 되고 나서 착이 되는 거예요. 심신이 원만하게, 마음도 몸도. 본래는 허(虛)심(心), 텅 비어있습니다. 원만구족 지공무사. 대종사님 당대의 서대원 선생님이 신심을 보여준다고 손을 잘랐잖아요. 그런데 물을 길어오는데 손가락이 없으니 빠져버려. 그래서 대종사님이 초반에 날마다 혼냈대요. 왜? 몸을 자기가 지키지 않았어. 과거의 종교는 몸은 썩어 문드러지는 거라 표현했는데, 대종사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 몸은 원만구족한 것이다. 그 몸으로 사은에 보은해야할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혼난 것입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그렇다. 저에게 지도를 잘 해주신 훈타원 선생님은 70되실 때까지 감기 한 번 걸리신 적이 없어요. 그 분은 남원에서 수행하시는데 이에서 생사리가 나오실 정도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본래 그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성품자리, 그 자리를 잘 지켜야한다. 우리가 현실경계 속에서 얼마나 지키기가 어렵습니까? 제가 교화하며서 느낀 것은 나이먹은 사람들 교화가 어렵습니다. 자기 주견이 있어서 자기 나름대로 판단이 있어서 어렵습니다. 대종사님 육도 이야기를 해도 그런게 있나? 들어볼까?하는 거죠. 아까 체받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믿음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몸은 본래 원만구족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외부경계, 내부경계가 와도 그것을 다 지켜내는 그것이 가장 행복하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원력의 한 분야는 수양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평화로운 거예요. 본래 맑은 것이고 그 때 가장 행복해요. 입정처 찾아 들어가면 그거만큼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그 성품자리, 유무초월한 자리 한 번 들어가봐라.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천만경계에서도 내 본래 자리를 놓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편안할 때는 그 입정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염불, 좌선을 하면서 마음을 허공처럼 텅 비우는 것이고, 우리가 움직일 때 동할 때에는 딱 멈춰서 어떤 경계에서도 요란하지 않게 태산같이 딱 견고하게 있는 것이다. 이게 힘이 없으면 되겠어요? 힘이 없으면 어렵죠.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 이것은 삼학 사리연구할 때 자세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사리를 알아야 해. 사람마다 본래 이 사리가 다 원만한거예요. 그런데 관심따라서 한 쪽에만 치우쳐. 어떤 사람은 현실의 일에만 치우쳐, 어떤 사람은 이치에 관심이 있어.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이사병행을 하느냐. 병행을 하면 하나만 잘하는 것보다 몇 배의 효과가 있어요.
일을 잘하면 복이 있고, 이를 잘하면 지혜다. 여기서 유무 자리를 봅시다. 유무에는 흥망성쇠도 들어가요. 사업을 하면 흥망성쇠해요. 그래서 내가 이익 볼 때도 있고 손해 볼 때도 있어요. 그럼 아까 시비를 초월하신 부처님, 이해를 초월하신 부처님. 초월해서 시비와 이해를 운용해야하는데 그래서 유무 변화가 올 때 감당을 못하죠. 어떤 사람은 사업이 변하니까 병이 나죠. 이건 아까 입정처 자리를 놔버렸어. 그러면 거기에 정신이 없는거다. 그러면 복도 나가고 다 나가요.
대종사님은 사리에 밝다는 것을, 기업을 맡았으면 기업을 잘 운용하는거고, 단장을 맡았으면 우리 단을 성공시키는거고, 학생이면 시험공부를 성공하는 것이고 그게 사리연구예요. 원불교 교전만 보는 것이 사리연구가 아니라 내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다 해결할 수 있는거예요. 원불교에서 내놓은 이 사리연구를 내놓으셨는데 밝을 자리에 밝고, 어두울 자리에 어둡고, 빌 자리에 비우고 채울 자리에 채우고. 그리고 돌고도는 이치를 알아서, 아까 은생어해 해생어은 여기(유무) 있잖아요. 이게 왔다갔다 하는 것이예요.
지금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프로그램을 KBS에서 하고있습니다. 우리 사리연구에 보면 회화가 있는데 이 세상에서 회화를 제일 잘하는 집단이 유태인이라는 걸 알았어요. 유태인들의 도서관은 다 같이 앉게 되어있고 성경책보고 서로 토론하는 것이 도서관입니다. 제가 총부에 법회의식 개정위원이라 법회의 방향, 정체성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앞으로의 시대는 참여의 시대잖아요. 제가 원남에서 공부방 할때는 9명 정도 앉아서 오롯하게 주고받고 이야기를 하기가 쉬웠는데 그 때는 30% 씩은 출가를 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많다보니 같이 얘기하기가 어렵네요. 사실 제일 좋은 것은 여러분이 예습을 해서 질문을 하면 서로 답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런데 시간의 한계, 공간의 한계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죠.
이 사리연구가 예전에는 고시공부해도 산으로 들어가고 혼자했는데 요즘은 정보교환하고 서로 토론을 해야해요. 똑같아요. 원불교 공부는 조용히 선만하는 것이 아니예요. 대종사님께서는 산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고 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지 왜 산으로가냐. 그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원불교 법은 산으로 가는 법이 아니라는 거죠. 공부해서 써먹자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대중한테 대중 속에서. 유태인들은 얼마나 회화를 잘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원불교 다니는 사람을 보면 선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을 보면 어떻게해야할까요? 이 사람이 신심이 없으면 그것만 해라. 해요. 그런데 신심이 있으면 야 그것만하면 안된다하고 알려줘야해요. 신심따라 달라요 지도 방법이.
여러분은 어디가 밝으세요? 나에게 이익이 되냐 안되냐만 밝지. 중생은 이해에 밝고 지성인은 시비로 관념에 빠져있어. 그런데 도인들은 대소유무. 대소유무를 받아 시비이해를 보는 거죠. 이것은 사리연구 할 때 더 자세히 하겠습니다.
사리를 봐서 밝게 판단하자는 것인데 이 사리 어두운 사람을 보면 공통적인게 있어요. 무당을 좋아하고 점쟁이를 좋아하고 어떤 한 사람만 쫓아다녀요. 우리 교당에도 그런 분 있는데 그런 분 끝이 안좋습니다. 그게 다 사리 어두운거예요. 사은같이 복을 구할 데가 어디있으며 삼학병진같이 수행이 원만한게 어디있습니까. 어떤 하나만 강조하면 거기에 폭 빠져가지고. 지금 원불교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대중화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덜 나와 있어서 그 부분은 원광대 교수들과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삼학같이 수양, 연구를 이렇게 원만하게 해줬는데 사리에 어두운 사람들은 뒤로 딴 짓하고 다니기도해요.
●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 : 작업취사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원래 심신은 원만이죠? 그런데 사용할 때 보면 원근친소에 끌려있고 희노애락에 흔들리고.. 어려운 것 중 어려운 것이 중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알아도 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 사용하는 공부가 가장 좋은 것인데 어렵기도 합니다. 왜? 알아도 잘 안돼요. 한 경계가 오면 참 어려워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 훈련이예요. 동정간 자타력 병진으로 정기,상시 훈련을 통해 유무념으로 주의조항으로 계속 훈련하는거예요. 이게 바로 무시선이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 교당을 오는 것은 복짓기 위해서 오는 것인데, 교당와서 복은 안짓고 죄만 짓는 사람도 있어요. 참 사람을 판단하기 어려운 면이있어요. 저 사람이 편안하고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같은 직장에서 근무해보면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가 그래서 판단을 하고 채택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한가. 제가 어저께 배운 거 하나, 아이큐가 130이상인 사람인 전국민의 2.2%라 합니다. 평균은 100이래요. 91~109까지가 국민의 52%래요. 아이큐 60 이하는 지체인데 부모가 인정을 안해서 정상학교에 넣어. 그런데 자기 자식을 인정을 못해. 연구력이 없으니까. 애가 학교에서 왕따도 당하고 특수학교에 다니면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는데도.. 즉 뭐냐 분수를 알아야하거든.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를 하려면 알아야 수호가 되고 실행해야 수호가 되는 것이고, 아는 것도 수호해야 알아지고 사용해야 알아지고. 즉 삼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잘 알아요. 자기를 객관화시키고 점검해야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타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객관화 하는 것은 어렵죠. 여기서 타력은 나를 객관화하기 위한 타력입니다. 그래서 지도를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커요 사람이. 그리고 취사력도 힘이 없으면 안돼요. 교당을 다녀서 알 것 같아서 복짓는 기회있으니 너 할래? 하면 싹 돌아가요. 왜냐 안해봐서 그래요. 복도 안지어본 사람은 못해요. 그래서 신심, 공부심, 공심 아니면 서원으로 하는거예요. 그래서 자기를 변화시켜야 진급이됩니다.
제가 엊그제 제 동기 둘을 만나서 점심을 먹다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원불교학과 다닐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퇴임하신 교무님이 처음 원불교학과 다닐 때 견성을 하겠다고 옷장 속에 들어가고 그러던 사람이 있는데, 퇴임을 하고서도 계속 그러고 있더래요. 일생을 그렇게 살고 있더래요.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이 기숙사 때 저희들 살았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하잖아요. 동기들을 보면 주름살도 다 생기고 머리 까진 사람도 있고 그래요. 나이가 50다되다보니까. 그런데 살아가는 성격, 태도, 습관은 변화가 별로 안됐더라.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어~~ 하다가 어 한다 이 말이예요.
초반에 대종사님 법을 만났을 때 그 한 마음 났을 때 한 번 확 해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변화가 별로 안되더라. 제가 지금 일반 교화하면서 상당히 벽에 부딪히는 면이 있습니다. 교당에 나온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면 그래도 준 모범급은 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깝깝해 죽겠어. 그래서 내가 생각이 초반에, 보통급 때 특신급 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보통급, 특신급 때 서원을 딱 세우거나 일원상에 대한 원력을 세워 초반에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길가에 노숙자 중에도 한떄 잘나갔던 사람도 있습니다. 노숙자 중에도 서원이 있으면 다시 사장이 되기도합니다. 그런데 서원이 없으면 계속 노숙자고 딱 고착되는거죠.
저는 여러분이 이 교당에 다니면서 이 좋은 법 만났을 때 확 바꿔보자, 그러려면 내가 열심히 구체적으로 유무념을 잡아서 점검받고 해나가야한다. 작은 것부터. 언젠가 세월이 지나면, 지금은 바쁘니까 이러면서 나중에 하면 계속 나중이 된다. 죽어도 나중이 된다. 우리 조카가 한 번 엄마한테 땡깡을 부리며 “밥 안먹어!”하는 것을 보고 너무 웃긴거야. 지 좋으라고 밥먹으라고 하는데 땡깡을 부리네, 그런데 교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 제가 이렇게 말한 것이 나(김제원교무님)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하는거야. 아니예요. 누구를 위해서 살아요?
자, 심신을 원만하게, 실습교무님이 여기에 오겠다고 신청을 했다고해서 두 가지를 물었는데 그 중하나가 “원만하냐?” 자기가 여기 와서 배우면 좋지, 그런데 우리한테도 은혜가 되어야지, 자리이타가 되어야한다. 그래서 교화에 대한 열정이 있냐 (=서원을 세운 사람이냐), 원만하냐 이렇게 딱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길 왜 드리냐, 여러분이 스스로 내가 원만하냐, 일과 이치에도 원만하냐, 심신이 원만하냐, 취사력도 원만하냐. 그 원만함이란 것은 자기가 잘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부족한 부분까지 땜질하고 그것을 유무념으로 해야 원만해질 수 있다. 먼저 가까운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원만해지고 어디가서나 환영을 받네. 나도 반성을 해보면 원만하지 않은 게 많아요. 그래서 속으로 유무념을 잡았어요. 나는 내생에도 출가하고 더 보은하는 교무가 되려면 지금부터 유무념을 잡아서 확실하게 잡아야겠다 생각합니다.
● 지성으로 하여 : 지성이라는 것은 지원지성과도 같은 말인데 원이 지극하여 지극한 정성을 말합니다. 이건 경계가 오면 나자빠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조건이 좋고 경계가 없어서 성공하나? 아니죠. 정성 속에 성공하죠. 저 정성이 나오려면 서원이 이 서원과 정성 이 안에 뭐가 있어요? 신, 분. 의 서원에 바탕해서 신. 분. 의로 삼학공부로 연결이 됩니다.
성자의 문패는 지성이랍니다. 학벌이 좋고 인물이 좋고 말을 잘하고 머리가 좋고 이것으로 성공한 것 아닙니다. 그건 좋은 조건이죠. 설사 인물이 못나고 잘 몰라도 약해도 지성이면 감천이여. 하늘이 돕지. 감동해버려. 예전에 우리 선진 교무님들은 그렇게 사셨어요. 다 빈 손으로 시골교당 들어가서 지성으로 해버리니까 그냥. 여러분 집 하나 일생에 마련하려해도 얼마나 어려워요. 그런데 여자 교무님 혼자 교당 5채를 지으셨어요. 다섯채면 보통 가정집의 10배 큰 집을 다섯 채 지은거예요. 그 분은 일반 사람들이 혼자 50채 지은거랑 마찬가지예요. 왜? 지성으로. 그래서 지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이란 소리예요. 그리고 어떤 경계가 와도 상관없다 이 말입니다. 잠깐 넘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오뚝이같이 일어선다. 사람이란 경계따라 움직이는 거거든. 사람은 약하거든. 그렇지만 환경에 의해 자빠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도 그건 마음의 힘이고 유무초월의 힘이다. 공부못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확 날새기(벼락치기)하는 사람은 공부 못합니다. 지성으로 하는 사람, 오늘도 내일도 유무념도 그렇고 일과도 그렇고. 그런 사람 무서운 사람입니다 힘이 있어요. 이건 요행수가 아니고 확실하죠.
대종사님이 뜻이 있으면 즉 서원이 있으면 고통을 문턱넘듯이 넘는다고 하셨어요. 무서운거예요. 서원, 원력이라는 것은. 일반인이 성리를 알아서 해결합니까? 원력으로 해버리잖아요. 그리고 저는 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는데, 이 감천 전에 누가 먼저 감동해? 지가 먼저 지한테 감동해. 내가 나한테 감동한다. 그러려면 철저하게 준비하고 엄청난 공을 들여야한다.
여러분 지성으로 하세요? 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고. 좋아하는 분야는 하죠. 노는걸 지성으로 하는 사람이 있어요. 선진님은 지성으로 하니까 혈인이 나오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교육 중에 제일 좋은게 지성으로 했을 때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겨요. 작은거라도 유무념을 잡아서 공부심으로 해보세요. 그러면 사람이 겁이 없어져요. 아 하면 되는구나. 딱 생겨요. 하면 됩니다. 심신을 수호하고 사실을 알고 그리고 지성으로 하면 되는거죠. 되는거에요.
● 진급이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아니하기로써 : 입을지언정, 입지아니하기로써 강한 비장한 각오가 들어있습니다. 그게 원력이예요. 내가 진급하겠다, 내가 이 어둡게 잘못판단한 것 줄여보자, 이 고통을 넘어가보자, 하기 싫은 선 해보자. 불필요한 자존심 과감히 던져보자. 제가 보면, 여러분도 느끼실거예요. 저 사람이 이 생에 어떻게 생을 마감하겠다, 내생은 어떻게 되겠다. 여러분도 보이실거예요. 좀 진급하다가 까라진 사람이 있죠? 왜 그러겠어요? 불신과 욕심때문입니다. 즉 서원을 놔버렸고 신심을 놔버렸다. 그럼 도망가버립니다. 그럼 강급이지. 수많은 사람이 교당에 찾아옵니다. 10년,20년,30년,40년,50년 참.. 한 때 많이 알고 아무 소용없어요. 진짜 확실한 원력, 확실한 신심 이것이 바로 지성으로 가야지 그 사람이 진급하는거예요. 지금 우주가 완전히 진급기랍니다. 지금 조금만 공들이면 팍팍 진급해요. 더구나 우주시기가 진급할 뿐 아니라 대종사님 법이 그 우주기운에 맞춘 법이라 얼마든지 팍팍 진급한다. 한번 해보세요.
●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 일원의 위력을 얻는 것이 언제 그래요? 기도할 때 뿐 아니라 처처불상 사사불공으로 하면 얼마든지 위력이 있어진다. 뭐가 끊어지면? 사사가 끊어지면 그렇습니다. 사심이 녹으면 위력이 나온다. 그 다음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내가 망념이 끊어질 때 그래서 무시선으로 항상 입정처자리를 들었다 냈다한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을 활용하면 경계 경계따라 체성에 합할 수 있다. 그래서 위력이 신앙이고 체성이 수행이다. 그래요. 위력이 타력이고 체성이 자력이다 그래요.
● 서원함. : 여러분 일원상 서원문이 참 좋습니다. 천도제로도 가장 위력이 있고 법회, 단회, 아침좌선 때 해도 참 좋습니다. 해보세요.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홍라희씨 어머니 신타원 출가위십니다. 그 분은 하루에 200독씩하십니다. 내일 일이 많으면 그 전날 200독을 더 하십니다. 서원이 있는 사람은 기어이 해내고 맙니다. 지성은 오토매틱으로 될 때까지 아침에 잘 일어나집니까, 심고 오토매틱으로 되세요? 지성은 오토매틱입니다. 오토매틱이 되려면 하고싶다 말고싶다를 넘어서고 그냥 해야합니다. 그게 믿음의 마음이고 서원의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와우! 정리 완전 깔끔!!! 이거 쓰시느라 동영상 몇번이나 반복해서 보셨을까요..ㅠㅠ 강연도 잘봤고요!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완벽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