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7 주일예배
본문: 고후 6:14-18
제목: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1.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한 멍에를 같이 메고서 끌지 말라의 뜻이다.
두 마리의 소나 말이 한 멍에를 같이 메고서 일하는 것을 본다.
한 마리로 할 때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믿지 않는 자와 전혀 사귀지도 말고 일도 같이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5:10-11)
믿지 않는 자들과는 꼭 필요치 않은데도 친밀하게 교제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인들은 ‘의’이고 ‘빛’인 반면에,
믿지 않는 자들은 ‘불법’이고, 죄와 무지로 가득한 ‘어둠’이다.
인간의 삶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합당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것은 금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과 교회의 머리이시다.
‘벨리알’은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의 머리이자 세상의 신, ‘마귀’를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아주 추악하고 비열한 자들을 가리키는 데 매우 자주 사용되었다.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시101;3)
비천한 것, 배교자들의 행위가 직역하면 ‘벨리알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마귀와 상종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마귀의 자식들과 불필요한 교제는 하지 않아야 한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셨다. 그들을 목사로 장로로 섬기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아무 문제도 없는 양, 필요 이상으로 어울리고 친하는 것은 문제이다.
홀로움을 견디지 못하면, 주의 뜻을 따라, 말씀을 따라,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교회와 우상을 상대화하여 별 차이나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니까,
같이 어울리고 일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나서, 곧장 바알을 섬기러 갔다.
산에 가서 산신령에게 빌고, 내려오다가 절에서도 빌고,
시내에 교회가 있으니까 거기서도 빈다.
누가 복을 줄지 모르니 다 섬긴다나요. 다 섬기다가 다 노여움을 살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하신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4-6)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4:24)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 하신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그런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우상이요, 현대 교인의 큰 문제이다.
마음 속에 돈과 재물, 권력과 출세, 명예와 칭찬에 대한 소욕이
깊고 넓게 차지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우상을 섬기는 자이다.
그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는 것이다.
심판의 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다.
혀를 서늘케 해줄 물 한 방울을 구걸해도 통하지 않는 곳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믿는 자들은 성령의 전.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우리는 믿은 자들 다수이지만, 교회는 단수형이다.
믿는 자들은 오직 하나의 몸을 이룬다. 우리 각자는 그 몸의 지체들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거하셔서 그들과 교제하신다는 것이다.
계2:1,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그리스도와 같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여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37:26-27)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교회에 거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화평이 언약으로 세워지고 그 가운데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다.
그들의 하나님, 내 백성의 영원한 관계 가운데 견고하고 번성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동시에 죽은 우상과 교제할 수 없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죽은 우상을 섬기는 백성이 될 수 없다.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하나님, 나의 백성의 언약에 참여할 수 없고 분깃도 없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18)
그들의 하나님 나의 백성의 관계는 ‘새 언약’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의 법이 성령으로 마음에 생각에 기록되어 준행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관계이다.
주님은 이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해 자기 피로 세우고 부어주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에, 생각에,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기에,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기록하여, 지켜 행하게 하는 것이다.
주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성령께서 그 일을 하실 수가 없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말씀을 머리판에 먹으로 아무리 많이 써봐야
마음과 생각에는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과는 상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마음과 생각에 있는 이익과 쾌락과 평안을 좇아 살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마음판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로 머리판에만 기록하였기에
아는 것 많고 규정하는 것 많았지만,
마음에 없고 생각에 없었기에 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율법학자였고, 성경 박사들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 후, 개혁주의자 청교도들도, 마찬가지로 많은 교리책들을 보급했지만,
성경학자들 성경 박사들이었지만, 맺는 열매는 바리새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이 세운 교회들이 많지만 세상은 소금으로 정화되거나 빛으로 밝아지지 않았다.
왜냐? 그것을 성령의 지혜로 하는 것 같았고, 그렇게 주장했지만,
사람의 지혜로, 바리새인들처럼, 먹으로 머리판 돌판에만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와 발도인 교회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가는 곳마다 세상을 변화시켰지만,
개혁주의 교회와 현대 교회는 교리만 말만 지식만 많을 뿐 동일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초대교회 신앙을 이어받은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발도인 교회의 역사가 발굴되고 증거되면서,
그 엉터리 같은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5백년 동안 개혁주의자들한테 속았다.
그들은 결코 초대교회의 뿌리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교리 증거는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발도인들은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교리책 만들고 교리만 파고들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대로 단순하게 순수하게 읽고
영으로 가르침 받고 영으로 그 말씀을 살았다.
개신교 5백년 교리책들은 먹으로 쓴 것이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 아닌 것을
초대교회, 발도인 교회를 보면 알 수 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3:6)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편지 맞아요?
먹으로 쓴 거 아녜요? 오직 지식으로, 교리로, 사람의 지혜로 쓴 것 아녜요?
영으로 회심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적이 있으세요?
초대교회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목사들의 감언이설에 안심하고 있는 것 아녜요?
지금도 우리는 교회 생활하면서도 성경을 읽으면서도 줄줄 외우면서도
그것이 먹으로 돌판에 쓸 뿐 마음에 생각에 영으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으로 살지도 못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거듭나고 회심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패러다임이 바뀌고,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바뀌게 마련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땅에서 하늘로, 육에서 영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께로,
떡으로만 살던 사람에서 말씀으로 사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는 것이다.
그런 적 있어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것이다.
3.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래야, 아버지와 그의 자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 우위나 상대적인 것으로 아는 것이 문제이다.
상황윤리들은 다 상대화한 윤리이다. 다 옳은 것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진리는, 절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양보나 양해가 있을 수 없다.
아닌 것에 대해서는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한다. 분파와 분리는 다른 것이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매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52:11)
가나안 7족속들과 관계를 맺거나 사귀지 말라고 하였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덧과 함정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더러운 자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그런 자들로부터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함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것이다.
먹물을 만지고서 손을 더럽히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게 마련이다.
믿음과 진리의 문제는, 따로 있지 않고서는 오히려 끌려갈 수 밖에 없다.
믿지 않는 자들과, 신앙이 다른 자들과는,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과는,
불필요한 교류나 친밀한 교제를 금해야 한다. 멍에를 함께 매지 말아야 한다.
종교 연합 운동에 먹혀들고 있다. 대교단, 대교회의 노예가 되고 있다.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자의 먹이가 되고 있다. 대충대충이 화를 불러온다.
다른 교훈을 하는 자들과는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아야 한다,
그들의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에 참여해서는 안 되고,
그들의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들의 악을 책망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하신 것들은 세심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할 때, ‘전능하신 주’,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들을, 모든 일에서 보호하시며 지극히 큰 영광으로 축복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