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팔 복 말씀 2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7-12)
①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논란이 있었어요! 지금까지도 시원한 대답을 내리지 못해요! 성경적으로는 닭이 먼저인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닭을 만드셨지 알을 만드신 것은 아니거든요! 사람도 태아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아담 그 자체를 만드셨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흙을 모아 토닥토닥 주물럭주물럭해서 사람을 만드신 것 같지는 않아요! 긴 세월 속에서 땅 속의 여러 원소들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것 같은데 그렇게 명령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거예요!
② 또 사람의 속성을 두고 성선설이 맞냐, 성악설이 맞냐는 논란이 있어요! 참고로 성선설은 맹자가 한 말이고 성악설은 순자가 한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나 사람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악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아담의 후손이 내려왔어요! 언제를 기준 삼느냐에 따라서 성선설이 맞기도 하고 성악설이 맞기도 해요!
③ 한편 사람이 죄인이라서 죄를 지을까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일까요? 성경적으로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하게 창조된 아담과 하와에게 마귀가 다가와 유혹함으로써 사람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노예가 되고 결국 죄를 짓게 된 거예요!
④ 그래서 말씀인데 구원과 복된 삶의 관건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되느냐에 달려 있어요! 쉽게 말해서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과 복된 삶을 살게 되는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구원과 복된 삶을 얻게 돼요! 이것을 명심해야 해요!
⑤ 우리는 지난 주에 이어서 팔복 말씀을 보고 있는데 여덟 개의 복을 한꺼번에 외울 수가 없어서 두 번에 나눠서 말씀드리고 있어요! 한번에 하나씩 하려고도 했는데 역시 전체를 아우르기가 어려워서 네 개씩 두 번에 걸쳐서 팔복을 완성하려는 거예요! 아무튼 예수님은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복이 있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아요! 심지어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도 하지 않아요!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업적을 이루었다고 해서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⑥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What to do가 아니라 What to be의 문제인 거예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되느냐가 우선이라는 거예요!
⑦ 오늘의 말씀을 차례대로 보면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아멘! ‘긍휼’이라는 말은 ‘불쌍이 여긴다’는 뜻인데 사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거예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만이 만물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고 계세요! 아멘! 그런데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긍휼의 능력을 받아 마침내 남을 긍휼히 여기게 되면 저 자신이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에요!
⑧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 모든 빚을 주인의 은혜로 탕감 받았으나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윽박지르고 관가에 고발했다가 마침내 그 악한 행위가 그 주인에게 알려져 그 빚을 도로 떠 앉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마18:23-34)
⑨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대적으로 바꾸어 설명하자면 어떤 사람이 1억원의 부채를 갚지 못해 허덕이는데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 빚을 탕감해주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에게 1백만원의 빚을 진 사람을 찾아가서 돈을 안 갚는다고 으름장을 놓고 결국 경찰서에 가서 고발을 했어요! 이 소식을 들은, 1억원의 부채를 탕감해준 주인이 대노하며 그 사람을 다시 불러 빚을 갚으라 하고 그도 역시 옥에 가두도록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야고보서 2장 13절에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아멘!
⑩ 긍휼을 베푸는 간단한 방법 하나를 소개하자면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전에는 그랬는 걸 뭐!”를 읊조리는 거예요! 참 쉽죠! 그런데 여기에 머무르면 안돼요! 왜냐하면 기준이 나이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의 입장과 처지가 되어서 생각해보는 것이 곧 긍휼이에요!
⑪ 다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아멘!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우선 순수한 마음을 생각할 수 있죠! 가령 봉사 활동을 하면서 칭찬 듣기를 기대하면 그것은 순수한 마음이 아니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기 만족에 있으면 그것은 순수한 믿음이 아니에요! 이처럼 두 마음이 아니라 순수한 한 마음을 가리킨다고 봐요!
⑫ 그래서 순수한 마음은 또한 정결한 마음이라는 거예요! 정결한 마음은 내적인 자세와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마음이에요! 달리 표현해서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이에요!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마음,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이 의지와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사람이에요! 그러한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고 온천한 예배를 드리게 해요! 아멘!
⑬ 어떤 이들은 마음의 정결을 오직 성적인 순결로만 국한시켜 해석하려고 해요! 물론 마음의 정결에는 이러한 성적인 순결의 측면이 내포되어 있어요! 하지만 성적인 순결은 이 복이 말하는 본래의 주제는 아니에요! 다시 말씀드리건대 정결한 마음의 소유자는 모든 차원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해 하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더러운, 간음한, 우상 숭배하는 마음이 되는 거예요!
⑭ 결국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어떤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뜻해요! 즉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교훈과 약속을 듣는 것을 의미해요! 요한일서 3:1-6에서는 하나님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그와 동일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과 전적인 사귐의 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는 뜻이에요! 이는 결국 천국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또 다른 표현인 거예요!
⑮ 잠깐 유머, 택시 기사가 휴게소 화장실에 들어갔어요! 일을 보려고 하는데 누가 밖에서 노크하는 거예요! 그러자 택시 기사왈 “합승은 안돼요!”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까요! (하나 더) 어느 부부가 싸움 후 서로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겠기에 메모지에 쓰기를 “내일 아침 7시에 좀 깨워줘!” 그리고는 그것을 냉장고 문에 붙여놓았어요! 다음날 아침 남편이 일어나 보니 벌써 여덟시인 거예요! 화가 난 남편이 아내를 노려보았어요! 그러자 아내가 냉장고 문을 가리키는데 보아하니 “여보, 일어나세요! 7시예요!”라는 메모지가 붙어있는 거예요! ㅋㅋ
⑯ 말씀으로 돌아와서 일곱 번째의 복,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아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화평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화평케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부정적인 말, 상스런 말, 험담, 자기자랑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화평이 잘 깨져요! 그러니 말을 조심스럽게 더 나아가서는 온화하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⑰ 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인데 베스 데이의 ‘세 황금문’이라는 책에서 논하기를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져야하는 질문, 첫째, 이 말이 사실인가? 둘째, 이 말을 해야만 하는가? 셋째, 이 말은 친절한 말인가?’ 어쩌면 이것 다 지키려다 아무 말도 못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잘 훈련되면 황금문을 통과한 듯 황홀한 기분이 들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할렐루야!
⑱ 이제 끝으로 여덟 번째의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아멘! 이어지는 11-12절은 보충 설명이에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아멘!
⑲ 요즘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이단들 때문에 또 가짜 크리스찬들 때문에 억울하게 듣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또 실제로 크리스찬들이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있어서이기도 해요! 그런데 초대교회 때에는 정말 억울하게 핍박을 많이 받았어요! 성찬식을 하는데 떡과 포도즙을 나누는 것을 밖에서 듣고서는 어린아이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하지 않나, 일과를 마치고 밤 시간에, 그리고 남녀가 함께 모이는 것을 보고 음란한 집단이라고 정죄하고, 동정녀가 아들을 낳고 그 사람이 자라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다시 살아나서 인류에게 새생명을 주셨다는 구원의 말씀을 미친 소리라고 매도한 거예요!
⑳ 로마황제 네로는 로마 대화재 때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막시무스라는 대경기장에서 처형했어요!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의하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이 붙잡혔다. 그들은 불을 지른 죄만이 아니라 인류를 증오한 죄로 기소되었다. 그들은 짐승의 가죽을 쓰고 개들에게 찢겨 죽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불태워져서 낮이 지나 어두워졌을 때 등불이 되었다.”
㉑ 히브리서에 의하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11:36-37) 아멘!
㉒ 몇 년 전에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북한에서의 탈북자와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줘요! 참 무섭고 한편으로는 지금의 평화로운 신앙 생활이 너무 감사한, 그러한 감동을 주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깨닫게 된 것은 신앙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교제하는 것임을 안다는 것이 바로 의를 위해 핍박 당함을 이기는 큰 힘인 거라는 거예요!
㉓ 이제 팔복을 정리하자면 우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구원과 복된 삶은 우선 무엇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무엇이 되느냐에 있어요! 자기의 죄인됨을 알고 겸손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애통해 하고 또 하나님을 생각하며 잘 참아 온유함을 드러내고 또 하나님께는 정직하고 사람에게는 착하게 살아서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구원과 복된 삶을 얻게 된다는 거예요!
㉔ 그리고 다음은 무엇이 되느냐에서 무엇을 하느냐로 발전해 가는데 우선 남을 불쌍히 여겨 이해와 용서를 베풀고 또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또 화평을 도모하고 또 어떤 비난과 시련 앞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불굴의 삶을 사는 것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이에요!
㉕ 그런데 이러한 복된 삶이 나 혼자서는 안돼요! 된다고 해도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많은 크리스찬들의 연합이 요구돼요! 아무튼 팔복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성령 충만으로 그렇게 살도록 준비해 놓으신 것이니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