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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2] Abide With Me (제게 머무소서)
주포 추천 0 조회 235 15.01.01 16: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Abide With Me (제게 머무소서)
Mormon Tabernacle Choir
    Henry Francis Lyte (1793-1847) 작사

 

 

 

 가정 축일인 어제 본당에서 11시 미사를 마치자마자

우리 6구역 자매님들이 봉사하는 뜨거운 차를

입 천장 데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원샷으로 마시고

아내 히야친타와 함께 차를 몰고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갑니다.

사고로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참 오랫만에 수도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수도원에서 성탄 자선행사의 일환으로

이번에 분도출판사(베네딕도를 한자음으로 표기하면 분도로 표기된다)에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2' 가 신간으로 출간되어 작가의 팬사인회가 열리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기다려 왔었던 것입니다.

나의 급한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올해 마지막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왜관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맘껏 가속패달을 밟아도 걸리적거릴 것이 없을 정도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마치 고향 5일 장터를 연상할 정도로 벌써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조금은 부산스러웠습니다.

매번 수도원을 찾을 때의 고너적한 분위기에 익숙해온 나로써는 잠시 어리둥절 할 수 밖에요.

그렇거나 말거나 딴 곳에 얼찐거리지 않고 곧장 대성전 1층 라운지로 들어섭니다.

그곳에서 작가의 팬 사인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선 수도원기행 책 두 권을 삽니다.

그리고 집에서 가져온 '높고 푸른 사다리'를 수도원 기행 두 권 책 사이에 끼워 넣고서

덤으로 작가의 사인을 받으려는 꼼수를 씁니다.

꽁지작가는 나의 얄팍한 잔머리를 이미 다 알고나 있는듯 벙긋 웃으며 

책마다 "평화"란 사인을 해 줍니다. 

평화!

이 평화란 단어 역시 내가 무척 좋아하는 낱말인 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책 3권에다가 똑 같은 '평화'를 꾹꾹 누질러 새겨 줍니다.

오늘 이 책의 제목과 또한 내용이 시사하듯

공지영작가 모습이 그렇게 환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 양쪽 볼은 잘익은 발간 홍시빛을 띠고 있었는데

마치 홍해를 건너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의 백성처럼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처럼

그리고 이 책 속에 소개되는 독일 동화 '씨앗( 이 책 87쪽)'처럼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온 듯한 작가의 해맑은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마음 속으로 "머리에 꽃만 꽃으면" 더 어울릴 것만 같았습니다. ㅋㅋㅋㅋ 

그래서

너무나 천진난만한...

 

 

 

 

 

의 책 읽는 습관은 내 물렁 물렁한 성격과 버릇을 그대로 닮아있는 모양입니다.

책 한 권을 펼치면 끝까지 읽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이 책 조금 읽다가 덮고 다시 다른 책을 펼쳐 조금 읽고 하는 식으로

보통 너 댓권을 찔끔 찔끔 변비 걸린 사람처럼 그렇게 책을 읽으니

책 마다 책 갈피가 끼워져 있거나 페이지 모서리가 접혀있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 운이 좋은 책은 한참을 지난 후에 마지막 쪽을 만날 수 있고

더러는 읽다말고 중간에서 그만둔 책도 부지기수 입니다.

그런 나의 못된 책 읽기 습성임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일요일 저녁 소파에 앉은 상태에서 꼼짝도 안하고 책 속에 몰입되어

완독할 수 있었으니 내 자신 스스로도 조금은 뿌듯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없는 이유가 여럿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가공되지 않는 작가의 부끄러운 속살의 치부를 고스란히

보란듯 만천하에 활자화하여 공개할 수 있게끔 만드는 작가의 용기랄까, 아니면 견고한 믿음이랄까...그런거.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작가의 진솔함과 책 속의 내용이 어쩌면 나 자신의 고백론일 수도 있겠다라는 공감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란 무릇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지 아름다운 형용사로 치장하기 바쁜데 반해

공지영은 그러한 군더더기를 스스로 떨쳐버릴려고 하는 것이 글 속에 진하게 배여 있기에 그런지도 모릅니다.

 

 

 

 

 

 

 

"먼저 이글은 내가 이제까지 써 왔던 모든 글과 다름을 밝혀 둔다."

이 책의 서문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내가 발표했던 작품에 대한 기대만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하신 분은 이 서문만 읽고 그냥 이 책을 내려놓기를 권한다."

이어서 친절하게도  독자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요령까지 알려주면서

수도원 기행2는 시작됩니다.

일테면 서문에서 밝혔듯

"이 글은 우주보다 큰 존재가 불쌍하고 초라한 한 여자에게 접촉해 온 기록"이듯

공지영 문학 작품이 전혀 딴 세상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써

 독자가 공지영 작가에 대하여 받을 여러가지 변수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작가가 서문 첫머리에 이렇게까지 배수진을 쳐 놓은 이 책이

도대체 얼마큼의 외도(?)를 하는지 한 번 몰래 들어가 볼까요?

그 부끄러운 속살의 치부를.....

 

 

 

이 책은 수도원 기행 1편에 이어지는 작품이라고 일견 생각할 수 있으나

차라리 작년에 출간된 '높고 푸른 사다리'와 아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는 작품임을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머.. 영화의 속편이라고 하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까요.

'높고 푸른 사다리'는 공지영 자신이 다만 '작가'의 신분에서 고착되어 

에둘러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책이라면 

이 수도원 기행2는 공지영 자신이 이 책 속의 주인공의 신분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즉 객체에서 주체로 옮아 감으로써 자연적 작가의 한 뼘 정도 자란 성숙된 신앙을 가늠할 수 있게 만듭니다.  

이 책 속에는 우리나라 수도원 1곳 그리고 10개의 외국 수도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도원들은 처음부터 공지영 작가의 신앙고백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도원 기행이란 형식을 빌어서 공지영 자신이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을

아주 담담하게 아주 진솔하게 어떨땐 아주 격정적으로 풀어나가는 자전적 소설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통해서 작가는 신앙을 성장시켜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 책 속의 수도원 기행의 전반부는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등지 베네딕도 수도원을 순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공지영의 신앙 여정이기도 한 복된 파로이키아일테지요.

 

 

 

 

 

 

'그래도 제가 여성 작가들 중에서 논리도 좀 되고 나름 비판적이고

지성적인 소설가예요.

이건 좀 이상하잖아요.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다 그러는 것 같잖아요.(이 책 98쪽)'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을 방문하기 위하여 가이드 역할을 맡은

K로부터 '왜 이런 이야기를 책에 쓰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고서 대답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 수도원 기행은

기존 공지영의 숱한 작품들과 전혀 다른 '좀 이상한' 책이고

공지영이 스스로 말하듯 '할렐루야 아줌마' 로 둔갑시키는 책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언니, 그건 그냥은 안돼. 고통을 겪어야 알게 되는 거야.

십자가 없이 어떻게 그분을 알겠어?"(이 책 170쪽)

 

굳이 이 책 수도원 기행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공지영 자신이 쏘아부치듯 내뱉는

위의 대사가 아닐까 합니다.

혼자서도 자기 자신의 고통과 부끄러운 치부조차도 기억해내기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공지영 작가는 무려 3번의 결혼실패에 대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고스란히 받으며

(유교적인 관념이 아직도 팽배한 이 사회에서..더군더나 여러번의 이혼에 대하여) 

그래서 끝없이 추락하여 더 이상 내려 갈 조차 없을 때 작가는 "그래요, 저 이런 여자예요"라고

고백하면서 그래서 끝내는 자신이 말한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처절한 고통의 강을 건너서(Pass- over: 빠스카의 신비)  

드디어 그 분의 '평화'와 마주합니다.

그렇게 그분과 마주한 시간이 1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자신의 '고통'을 말하면서 자식을 잃은 세월호 부모님들의 고통과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를 지우기고 합니다.)

 

 

 

 

 

단언컨데 꼼짝도 하지 않고 일요일 밤 늦게까지 책 속에 몰입시키게 만드는 것은

공지영 작가의 살아오면서 겪었을 조각 조각난 고통들의 편린들을 꿰어마추다보면

 꼭 내가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그 헤진 조각들을 꿰고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늦은 밤 책장을 덮었을때

내 모든 것들이 다만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 지기를

그리하여 노래처럼 늘 제게 머무르기를(Abide With Me ) 기도합니다.

 

피앗미히(Fiat Mihi, 주님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이렇게 응답하신 성모님처럼.....

 

 

 

 

 

 

 

의탁의 기도

 

                            샤를 드 푸코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에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은 내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작가 공지영이가 이 '의탁의 기도'를 적어가지고 다니며 힘이 들 때마다

들여다 보았다지요.

 

 

 

 

 

 

 

 

1층을 빠져나와 아랫층에 있는 자선바자회장에 들렀는데 요셉 형제를 만납니다.

그곳에서 그의 아내인 마리아씨가 직접 만들고 구워낸

도자기 성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익금 일부를 이 수도원 해외선교기금으로 기부할테지요.

아내 히야친타가 딸아이 소화 데레사 방에 걸어둘 요량으로

예쁜 십자가 하나를 고릅니다.

 

 

 

 

 

수도원을 뒤로하고

아내 히야친타와 함께 이름도 아름다운 가실성당에 잠시 들렀습니다.

이 가실성당 역시 베네딕토 수도원 수사신부님이 본당신부님으로 사목하고 계십니다.

매번 자전거로 수도원에 갔었던 낙동강 자전거 길과 나란히 놓인 도로를 타고서 집으로 옵니다.

길게 드리운 겨울 햇살에 낙동강 은빛 물결이 참 아름답습니다.

올해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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