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내일,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농업과 농민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은 수십년 동안 근본적인 대책을 기다려온 농민들에게 본질을 외면한 답만을 제시한 결과가 아닌지 염려된다. 27년 전 언급된 “보다 성의있고 근본적인 처방”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 땅을 다녀가셨다. 국가적으로 그리고 카톨릭 종교계로도 너무나 감사할 일이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항상 자비로운 미소로 한국민들을 안아 주시고 돌아가셨다. 짧지만 긴 마음에 종을 울리고 가셨다. 물질주의의 팽배, 규제되지 않는 자본의 세계화, 철저한 이기주의를 기반하는 무한경쟁주의, 인간소외, 공동선의 파괴 등을 우려하면서 이들의 거부와 파괴를 위해 나 자신과 교회로부터 나와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사제와 수도자에게, 우리에게 요구하였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과 농민문제에 속시원한 답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옛날에는 어찌했을까 하는 생각에 신문을 뒤지다가 1987년 2월 27일자 동아일보가 눈에 띄었다. 대체로 새해 벽두라서 희망의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 생각과 달리‘오늘과 내일’이라는 칼럼에 당시 김봉호 제2사회부장의 쓴소리가 실려 있었다. “농민은 「천더기」인가”라는 제목 아래 쓰여진 글을 읽으면서 지금과 다를 게 없는 당시의 상황,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때의 문제 하나를 지금도 해결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답답함이 더했다.
‘오늘과 내일’이라면 아마도 오늘을 짚고, 오늘의 고단함을 이겨내어 보다 좋은 내일을 지향하자는 뜻에서 이렇게 작명했으리라. 그러나 그 때의 오늘이 그리고 개선을 바라던 내일이 지금도 같다면 이는 희망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교황님의 우려는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개발과 시장경제 초기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기고된 칼럼은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 ‘농우회’의 애절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농촌 총각들이 장가갈 수가 없어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를 등지고 부득이 낯선 대도시로 장가들기 위해 나가는 오늘의 우리 현실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이므로 우리 농우회(어느 농촌 마을 조율 조직)는 농촌 총각 장가들이기 운동을 전개하오니… 우리지역 농촌으로 시집오시는 분은 여왕같이 모시며 농우회가 책임지고 절대 행복한 생활을 보장할 것입니다….” 이 취지문을 1천장 만들어 구로공단과 평화시장 등에 배포한 사실을 말하며 총각들의 구혼난, 빈 집, 빈 교실, 젊은이 부재 등은 “60년대 이후 지속된 산업화의 바람 속에 농어촌이 감내해야했던 소외와 상대적 몰락 바로 그것”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더 나가보자. “소 값 폭락을 비롯, 농축산물 가격 폭락 파동은 지금까지 해마다 번갈아 가다시피 빚어져 왔다. 농축산물가의 폭락은 으례 농민들이 과잉재배나 무리한 사육확대 탓으로 돌려졌다. 농축수산물 값이 단 몇 %만 뛰어도 고추 마늘에 이르기까지 무엇이건 급하게 수입해 들여 왔던 걸 농민들은 모두 기억한다.…경제개발의 요란한 구호가 농어촌엔 푸대접, 실의만을 안겨주었다는 걸 오늘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농민들은…거창한 대책들을 내놓아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오늘의 농촌은 보다 성의있고 근본적인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
부채가 거의 없는 농촌인데도 장가가기 힘들다고 했는데 당시 농가호당 부채는 219만원 이었다. 1985~2012년 사이 농가 호당 부채는 202만원에서 2726만원으로 농가소득은 같은 기간 574만원에서 3130만원으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부채 증가속도가 빠르다 보니 부채율(부채/소득)이 35.3%에서 87.1%로 증가하였다. 농업에만 한정해 볼 때 같은 기간 농업소득은 360만원에서 920만원으로 2.6배 증가한 반면 농업용 부채는 116만원에서 1312만원으로 13배 이상 급증하였다. 농업소득보다 부채가 많은, “농사지어야 헛것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개발 초창기 대통령께서 새마을 지도자들과의 환담 속에 하신 말이다. “추곡수매값 발표 들었지요. 올해 대풍이 들었는데 수매값은 국제 시세에 비한다면 비싼 편입니다. 미국 쌀을 사온다면 t당 2백 60달러, 태국 쌀은 t당 4백 달러로 미국 쌀에 비해 3배나 비쌉니다. 쌀 값이 비싸면 농민들은 좋을지 모르나 이제는 사먹는 도시사람이 농민보다 많아져 도시사람도 덕좀봐야지요.” (동아1977. 10. 15) 혹여 지금 농정수반의 생각이 이와 같다면 농업의 내일은 여전히 오늘과 같은 내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업과 농민들의 미래가 밝지 않을 수 있다.
힘들어도 근본부터 천천히 고쳐야 한다
도시근로자 소득의 60%이하인 농민들의 내일,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27년 전의 상황과 문제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고,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정책대응 신뢰도도 떨어지는 지금. 농업과 농민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은 수십년 동안 근본적인 대책을 기다려온 농민들에게 본질을 외면한 답만을 제시한 결과가 아닌지 염려된다. 오히려 더 깊은 질곡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된다.
명목가격에 의한 미래(2023년, KREI) 농산물 생산액과 부가가치액 모두 감소하거나 혹여 증가해도 1%미만이라는 전망이다. 2023년 농가인구의 비율은 4.4%로 줄고 농가인구가 230만 이하로, 가구 수도 100만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노령화 여성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27년 전에 우려했던 문제들이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수입품목과 정도의 확대는 당연히 외국산 농산물의 국내시장 지배와 확대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과 통제는 여전하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좀 더 좋아지면 좋으련만 그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서는 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나아가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농촌이 되도록 농촌을 개발하고, 쌀 시장의 관세화 개방을 농업발전의 반전의 기회로 하겠다고 한다. 6차산업이 미래농민들의 구세주인양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27년전 농민들이 기대했던 “보다 성의있고 근본적인 처방”이 될까. 간단하게 27년 동안 해오던 정책과 어떻게 달라서 농민들의 행복을 높일 수 있을까.
뭔가는 해야 한다. 관성적으로 전개해 가는 정책이 아닌, 중요한 것은 교황님께서 우려하는 그래서 지금의 문제의 저간에 도사리고 있는 근본의 이야기를 꺼내서 살펴봐야 한다. 힘들더라도 근본부터 천천히 고쳐나가지 않으면 27년 전 칼럼의 내용이 불변의 27년 후 이야기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려운 난제인 것만은 확실한 농업과 농민의 문제이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출처 : 농자재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