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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포도나무요(요 15:1-10)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덧 겨울 속으로 깊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여러 색깔로 물든 낙엽이 가지에 달려 있는 것보다는 길거리에 떨어져 나뒹구는 잎이 더 많아져가는 계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는 바람도, “시원하다”라는 느낌보다는 “춥다”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계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육체적으로, 몸 관리를 잘 하여, 감기나 독감에 걸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영적으로도, 믿음 관리를 잘 하여, 영육간의 강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바라는 간절한 소원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라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그는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바라고 원했던 한 가지 소원은 평생 하나님의 집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라고 고백하기도 했는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고 걸어가는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님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오직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것이, 그의 한 가지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오직 주님 품 안에서,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5절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나무 가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일까요? 붙어 있어야 합니다.
세찬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강한 태풍이 와 모든 것이 흔들린다 할지라도, 그 어떤 경우에도, 가지는 무조건 나무에 단단하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떨어지면 안됩니다. 아무리 튼튼한 가지일지라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말라비틀어지고, 그 생명이 점점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나무가지인 우리를 나무인 예수님으로부터 떨어뜨리려고 온갖 일들을 꾸밉니다. 우리를 유혹하기도 하고, 시험하기도 하고, 높이거나 낮추기도 하고, 실패하게 하거나 병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일들을 통하여, 나무인 주님으로부터 우리를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를 떼어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라고 외쳤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 참포도나무인 예수님으로부터 가지인 우리를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이 간섭이요,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 것이, 참된 자유요, 참된 행복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만의 착각일 뿐입니다. 참된 자유와 참된 행복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4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생명을 누릴 수 있고, 더 나아가, 열매도 풍성하게 맺을 수가 있습니다.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에만, 교회 안에서만, “나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라는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언제든지, “나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중국 선교라는 큰 비전을 품고, 중국 대륙의 문을 두드린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선교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점점 일이 많아지면서, 협력자와 선교비가 필요했으나, 도와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정신적 부담은, 밤잠을 설치게 했고, 마침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 테일러 선교사가 요한복음 15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5절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비취는 것처럼, 어둡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나무이신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스스로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니,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 주옵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후,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게, ‘어떻게 하면 진액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성도들은 예수님이 포도나무인 것을 기억하고,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분리되지 않고,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하나일 때, 예수님 안에 있는 풍부하고 무한한 자원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신앙을 가질 때, 이미 그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계속해서, 예수님 안에 사는 일이며,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그 뜻을 성취하는 방법도 깨닫게 되며,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풍부하게 공급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항상 기억하고, 허드슨 테일러는 성경 읽는 것과 기도 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기도 생활은 예수님 안에 계속해서 머물 수 있게 해주었고, 주님과의 교제를 더욱 깊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이나 형편 때문에, 밤새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자신이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가지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참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단단히 붙어 있는 한, 어떤 환경과 여건이라고 할지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고, 더 나아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 때도 있고, 강한 비가 내릴 때도 있고, 비가 내리지 않아 극심한 가뭄을 견뎌야 할 때도 있고, 나무가 흔들리고, 뿌리가 뽑힐 정도로, 무서운 태풍이 휘몰아칠 때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떨어지면 안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잡다한 벌레들도 물리치고, 매서운 질병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찬 비바람도 견뎌내고, 태풍도 극복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포도나무의 가지가 왜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까?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멋진 가구를 만들 수도 없고, 화력 좋은 땔감으로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열매를 맺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쓸모없고, 볼품이 없습니다.
여러분! 포도 열매는 송이를 이룬 다음에도, 100일은 견디며 붙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포도열매가 된다고 합니다. 잘 익은 열매가 되려면, 수확의 때까지, 잠시도 나무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100일 동안, 가지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을 충분하게 공급받아야,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나무와 가지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우리는 하나됨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고서도, 홀로 헤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로 똑바로 걸어가지 않고, 자꾸만, 엉뚱한 곳에 눈길을 주고, 마음을 빼앗기고, 딴 길로 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 밖에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될 때도 있습니다.
가지인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든지, 포도나무에 단단하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가지는 나무가 모든 것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그저 받기만 하면 됩니다. 가지인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기만 하면 됩니다. 가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으로 붙어 있기만 하면, 나무이신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세상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해도, 주님께 붙어 있는 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몽골에서 활동한 이용규 선교사는 “같이 걷기”라는 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몽골에서의 사역 기간 동안,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과 같이 걷는 동안, 7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혼자 걸었으면, 길고 지루했을지 모를 그 길이지만, 고비마다, 하나님과 함께 나눈 추억들이 있기에,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그분이 같이 가시는 한, 비록 사막 가운데 걸어가고 있을지라도, 결코 혼자 걷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가장 친밀한 동반자, 주님이 내 곁에서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얻어서도 아니고, 무엇을 해서도 아니고, 무엇을 성취해서도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기만 하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함으로, 그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바냐 선지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6)라고 선포했습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노래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잠잠히 사랑하고, 즐거이 노래 부르며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4절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여기서 “거하라”라는 말은 어느 한 순간에만 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 머물라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 잠시 멈추었다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머물러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더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리는 쭉정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가지는 왜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까?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왜 예수님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까? 잎도 아름답습니다. 꽃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꽃은 예쁘고 향기롭습니다. 꽃은 보는 사람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꽃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씨가 들어 있는 열매 맺음에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지에게 유일한 목표가 있다고 한다면, 열매 맺는 것입니다. 가지가 존재하는 목적은 단 한 가지, 나무가 바라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삽화가이가, 판화작가이며, 성서의 내용들을 소재로 한 판화 제작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도레(Gustave Dore, 1832-1883)라는 프랑스 화가가 있습니다. 그에게 제자 한 사람이 찾아와, “선생님, 제가 예수의 얼굴을 그렸는데, 한 번 봐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구스타프가 그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가 그분을 더 사랑한다면, 더 좋은 그림이 나왔을 걸세!”
주님을 더 사랑했다면, 더 멋진 그림이 나왔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가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한다면, 우리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그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주님 안에 머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는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가지이지만,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연약한 가지인 것 같지만, 우리와 하나이신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때문에,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요한복음 10:10절 말씀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만 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단순히 붙어 있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이 주시는 삶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열매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머지 않는 날, 열매들이 튼실하게 맺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대하라. 기도하라. 기다리라.”
우리의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길고 긴 장거리 경주입니다.
뭔가를 기대하고, 뭔가를 위하여 기도하고, 뭔가가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면, 머지 않는 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복된 날이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설레지 않습니까?
설렘과 기쁨을 가지고, 더욱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단단하게 붙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직 주님 안에 머물러, 주님만 의지하고 살아가고자 다시 한번 결단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