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술가'와 '예언 기도자'의 유사성에 대하여
가. 예언 예언(豫言)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 전하는 일(민11:25;행2:17)로 성경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선포되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렘20:7;벧후1:21).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 직접 그것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문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또는 자기 관찰에 의하여 신의를 알아보는 주술가, 무당, 점복자와는 다릅니다.예언자가 하는 말 가운데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있지만(행11:27-28;계1:1,2), 신약 성경의 예언자들이 맡은 임무는 무엇보다도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예언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말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고전12~14장).고린도 교회에서의 예언의 은사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부끄러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때 이를 백일하에 들어나게 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에게 경배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결코 요사이 일부에서 말하는 미래에 일어날 길흉을 미리 알아서 알려주는 '예언 기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고전14:24,25).따라서 예언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것인지(행2:4), 악령이 말하게 함을 따라 하는 것인지, 거짓으로 자기가 지어내어 하는 것인지 분별(分別)해야 합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하고 경고하였습니다.그래서 예언도 교회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살전5:20,21). 계시는 악한 영이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성령이 주시는 예언은 말씀의 증거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덕이되며 자기 사명을 더욱 공고히 하며 기쁨과 확신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갈5:22,23)가 있습니다. 그러나 악령이 주는 말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고 이웃을 시험 들게 하거나 근심과 염려, 불안이 지속됩니다. 육신의 열매(갈5:19-21)로 드러납니다.나. 점술사람은 길흉화복에 대하여 무척 민감합니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거나, 점괘를 뽑거나 토정비결을 통하여 자신의 운수를 알고자 하고 거기에서 얻어진 자료에 목매다는 경우가 많습니다.저의 지난 날 경험 중 기억나는 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1950년, 1960년도에 모든 정치인이나 대 재벌들이 돈 보따리 싸들고 찾아가는 '백운*' 이라는 유명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 시절에 그 사람의 제자란 사람이 후배로 들어왔습니다. 그 때는 무신론자여서 심심 파적으로 관상, 수상 보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첫마디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선배님, 관상, 수상은 철학이기 전에 과학입니다. 수많은 사람, 여러 유형의 관상(얼굴의 모양), 수상(손과 손금의 모양)을 모아 분류하여 통계로 체계화한 것입니다. 저의 학문은 아직 백 선생님의 무릎 앞입니다. 그러니 큰 기대를 걸지 않기를 바랍니다. 확률은 50% 수준입니다." '생각보다 관상, 수상이 주역 이상의 과학이구나' 하는 감탄을 내심 하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바닥의 손금을 가리키며 생명선이 어떠니, 운명선이 어떠니 하더니 결론을 내렸습니다."선배님, 40대가 되면 가정에 안정을 누릴 상입니다."그 때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기분에 '철학관'(?)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이 말들을 되짚어 봅니다. '확률 50%'란 말은, 반은 맞을 수도 있고 반은 틀릴 수도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엉터리 말을 '50%'란 수학 용어로 기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40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을 합니다. 40대 가전 안정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거지로 산다는 말입니다. 이런 엉터리 말을 통계로, 과학으로, 주역으로 얻어 진 결과라고 사람을 우롱하는 것이 점술입니다.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봅니다.30대 후반의 여인이 철학관에 찾아왔습니다. 얼굴은 건강미가 넘치는 미모이며, 옷차림도 명품으로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왜 철학관을 찾았을까요?세상적인 복은 일반적으로 오복(壽․富․貴․康寧․子孫衆多)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30대 후반이니 '壽'가 제외되고, '건강미가 넘치는 미모'에서 '康寧'이 제외되고, '옷차림도 명품'이니 '富', '貴'가 제외됩니다.그러면 오복에서 여인이 갖추지 못한 것은 '子孫衆多'입니다. 따라서 아이를 낳지 못함이 됩니다. 그 연유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때문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가 신체적인 결함이란 것이라면 철학관을 찾지 않거든요.이와 같은 잔머리를 굴려 "남편 때문에 왔군."하고 한 마디 하면 그 다음은 여인의 입에서 주절주절 나오는 말을 조금씩 각색을 하면 유명한 점술가가 되는 것입니다.이것에서 더 발전시켜 요즈음엔 골목 입구나 대문에 CCTV를 몰래 설치하여 골목이나 대문 밖에서의 표정과 몸짓을 미리 살펴 기죽이는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어떻습니까? 이제 철학관에 가실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겠지요?다. '점술가'과 '예언 기도자'의 유사성저의 현직에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매년 첫 시간에 처음 만나는 반 학생을 대상으로 몇 사람을 지적하며 지적된 학생의 특기(소질), 성격, 버릇 등을 말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귀신같다!" 하면서 신기해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거의 절대 순종입니다. 저가 귀신이라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사람의 유형이 분류되어진 것입니다. 사람을 많이 접하는 사람은 그 경험을 통하여 그 사람의 외모(얼굴, 표정, 옷차림, 건강 등)만 보고도 그 사람의 모습을 대략 맞힐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학생 지도에 점술가적인 벙법으로 문제 학생을 제어하기도 하였습니다. 부모와 연합하여 문제 학생만이 가진 비밀스러운 부분을 알아 그 학생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 그 신비함에 무릎 꿇었습니다. 점술가가 CCTV를 이용하는 방법과 같은 것이죠.안수 기도를 하고 사사로이 예언을 즐겨하는 부류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안수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기본자세에는 자신의 지금의 처지보다 나은 회복이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조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세상의 오복 이외에 영혼 문제가 있습니다. 즉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 믿음의 문제, 가족의 믿음의 문제 등입니다.이 영혼의 문제는 누구나 갈급한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라도 똑 같은 말을 하여도 연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수 기도하고 예언한다는 사람의 말의 유형을 조사하여 보세요. 그러면 몇 가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점술가가 철학관에 온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과 같은 패턴을 이용합니다. 이것을 능숙하게 요리하는 사람들이 유명한 안수 기도자 또는 부흥강사로 인기를 끌게 되는 것입니다.“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겔13:6).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겔13:7). 신약에서 사적인 계시의 사례로 제사장 사가랴(눅1:13-20), 시므온(눅2:26,27), 집사 빌립(행8:26), 백부장 고넬료(행10:30-32), 선지자 아가보(행21:11,12)의 예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예언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수를 더 알기 위해 그리고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개인의 길흉화복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입니다(고전14:3,31).무엇보다 신약 시대에 성령님이 주시는 예언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개인을 위한 예언을 주신다하여도 남을 통하여 주시지 않습니다. 개인에게 말씀의 뜨거움으로, 눈물로 응답을 주십니다.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대구동부교회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