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이정재, 김태희, 장동건, 설경구의 공통점은? 같은 스승 아래 배운 제자라는 점이다. '연기자들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최형인(64)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이들의 스승이다. 대학에서 가르쳤거나 개인 레슨을 통해 이들을 연기자로 키워냈다.
정곡을 찌르는 연기 지도로 이름난 최 교수는 오는 22일 개막하는 연극 '징글 징글 오, 마이 패밀리'(대학로 한양레퍼토리씨어터)에서 여주인공 리타로 출연한다. 내년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인생 2막'을 배우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다. '징글 징글…'은 지난해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한 화제작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극중 남편으로 최근 SBS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 출연한 남동생 최용민씨가 나온다. 최 교수의 외삼촌은 탤런트 고(故) 이낙훈씨, 남편은 이윤우 삼성전자 상임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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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광화문에서 만난 최형인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머리가 꽉 차야 연기를 잘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꽉 찬 연기’는 22일 개막하는 연극 ‘징글 징글 오, 마이 패밀리’에서 볼 수 있다. /이덕훈 기자
연세대 연희극회 출신인 최 교수는 1992년 극단 한양레퍼토리 창단 후로는 연출에 전념해왔다. '연기 스승'이 연기에 나서는 것이니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는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연기를 가르치는데 연기 못 하면 누가 제 말을 믿겠어요"라며 "잘해야죠, 잘할 거예요"라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잘하는 연기'란 "수영장 안에 들어가서 수영하듯, 그 배역의 인생 안에 들어가서 하는 연기"를 말한다. "대본을 완벽하게 이해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배우예요. 배우의 해석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감정에 짓눌린 연기가 되죠." 그래서 '배우는 악기'라고 했다. "어떤 배우는 장난감 피아노밖에 못 돼요. 그런 배우가 아무리 연기 해봤자 그랜드 피아노 소리를 낼 수가 없죠. 자신을 감정과 표현 능력이 무궁무진한 큰 악기로 만들 줄 알아야 큰 배우가 됩니다."
'큰 배우'가 되려는 배우들은 최 교수에게 수시로 SOS를 보낸다. 한번은 이정재가 촬영장에서 급하게 전화를 했다. " 선생님 나 숨넘어가는데 어떻게 해야 해요?" 최 교수의 조언은 "본능적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꽉 막혔다 싶을 때는 배짱대로, 계산하지 말고 해야 하거든요."
그런 '본능'에 가장 강한 배우로는 김윤석을 들었다. 두세 번만 말해도 바로 알아듣고 나아진 배우는 수애였다. 최근 눈여겨보는 배우는 드라마 '상속자'의 박신혜. "주저함이 보이지 않아서 돋보인다"고 평했다. 평소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는 백윤식. 악역일 때도 우아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연기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김태희는 "지나치게 모범생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흥이 없어서 그래요. 여유가 부족하면 연기가 좀처럼 안 늘어요."
최 교수가 추천한 연기의 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신문을 자주 읽고, 시장에 나가서 사람 구경을 하라"는 것. "제발 몸만 만들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관객이 돈을 내고 표를 사서 볼 때에는 몸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생에 대해서 무슨 얘길 하는지 궁금해서 가는 거죠. 연기를 잘하고 싶으면, 제발, 머리에 인생을 집어넣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