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이은봉
대나무는 저 자신이 싫었다 봄날 한때
뾰족뾰족 마디를 만들며
어쩌다 오염된 세상, 기껏 한번 찔러댔을 뿐이면서도
사철 내내 떳떳하고 늠름하게 서 있는 몰골이
한심했다 파랗게 윤기가 이는
늘씬한 몸매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하늘 멀리 새털구름 따위나 그리워하는 마음이
우스웠다 후다닥 꽃 한번 피우고 나서는
이내 사라지고 말 운명이거늘,
무엇이 그리도 자랑스럽다는 것인가
온종일 흔들리는 잎사귀들
깊이깊이 서로에세 기대고 나서야
겨우 대쪽으로 커 오르면서도
걸핏하면 툭툭 튀어오르는 삐죽한 고집이
미웠다 날카로운 죽창에 찔려 죽은
수많은 중음신을 거느리고 사는 동안
텅 빈 제 안에 숨기고 있는 고독이
꿈의 공동묘지라는 것쯤은
대나무 저도 잘 알고 있었다 숲을 만들고
그늘을 만들면서도 발치 아래
해바라기꽃 한 송이 키우지 못하는 자신이
역겨웠다 가슴속 가득 차오르는 허공이
마디마디 자존심을 키우고
우뚝우뚝 지조 높은 퉁소 소리로 울지라도
안쓰러웠다 때로는 악착같이
서로의 뺨 쳐대는 잎사귀들과 함께
길 밖으로 토해놓는 고통이
세상의 온갖 꿈과 희망 풀어놓을지라도, 대나무는.
<작가약력>
출생 1953년 5월 24일, 충남 공주시
소속 광주대학교교수
학력 숭실대학교 대학원
데뷔 1984년 시 '마침내 시인이여'
경력 광주대학교 인문사회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수상 2014.03. 제5회 질마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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