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시몬 바일스, 기계체조에 한계는 없다
입력2020.08.13. 오전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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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세계선수권에서 마루 연기를 하는 시몬 바일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공중에서 회전 한 번, 두 번, 아니… 세 번! 이건 불가능한데!!”
시몬 바일스(23, 미국)가 2019년 10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마루 예선에서 연기 초반부터 초고난도 기술을 성공시키자 현지의 중계방송 해설자는 이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바일스가 국제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마루의 신기술이 바로 ‘바일스2’다. 땅 짚고 두 번 돌고 나서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도는 기술이다.
링크>>바일스의 트리플 더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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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pic Channel on Twitter
“@Simone_Biles @TeamUSA The TRIPLE DOUBLE or now known as 'The Biles II'. The floor element has officially been named after @Simone_Biles. ??? #Stuttgart2019. @USAGym https://t.co/QLusB53JP5”
twi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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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일스2’는 체조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난도인 J난도 기술이다. 두 번의 땅 짚고 돌기와 공중 3회전이 합쳐진 기술이라 ‘트리플 더블’로도 불린다.
바일스는 이 기술을 성공시키면서 2019 세계선수권 5관왕에 올랐다. 개인종합, 마루, 평균대, 도마, 그리고 단체전까지 금메달을 휩쓸었다.
바일스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관왕(단체전, 개인종합, 도마, 마루)이다. 그녀는 2013년 성인무대에 데뷔한 이후 리우의 여왕이 되면서 세계 최고의 체조 스타로 떠올랐고, 2019 세계선수권 5관왕으로 새 역사를 썼다. 바일스는 체조 세계선수권 역사상 가장 많은 메달(25개/금 19, 은3, 동3)을 따낸 선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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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가 2019 세계선수권에서 따낸 5개의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레벨이 다른 체조 스타
슈트트가르트 세계선수권에서 바일스는 체조의 GOAT(The greatest of all time,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들었다.
바일스가 놀라운 점은, 이미 리우 올림픽을 포함해 2014, 2015, 2018년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4관왕에 오르며(첫 세계선수권인 2013년 대회 2관왕) 세계 최고임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바일스는 이 대회에서 그동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초고난도 기술을 연이어 성공함으로써 ‘어나더 레벨’에 올라선 선수임을 보여줬다.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 바일스가 새롭게 선보인 기술은 두 가지였다. 마루의 ‘바일스2’, 그리고 평균대의 ‘바일스’ 기술이다.
여자 체조 마루에서 ‘바일스2’는 J난도이며, 남자 선수들도 일부만 할 수 있는 초고난도 기술이다. 기계체조 채점규정에서는 단일 기술을 사용하는 도마를 제외하고 그 외 종목에서는 세부 기술의 레벨을 알파벳으로 표기한다.
기술 레벨은 A난도(가장 낮은 수준)부터 J난도까지 나뉘며 A는 0.1점부터 시작해 J가 1.0점까지 레벨 별로 차등 점수를 준다. 바일스2(트리플 더블)는 그야말로 바일스의 시그니처가 됐다.
한편 평균대의 ‘바일스’는 난도 평가를 받을 때 논란이 일었다.
이 기술은 평균대 연기의 마지막 착지 동작 때 쓰는 것인데, 평균대 위에서 두 차례 팔을 짚고 넘은 후 공중 2회전해서 착지하는 기술이다.
링크>>바일스의 평균대 연기
Simone Biles stamps her name in gymnastics history again
The American landed two original skills in qualification at the World Artistics Gymnastics Championships to add her name to the Code of Points twice.
www.olympic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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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FIG의 여자체조 기술위원회(WTC)는 이 기술에 H난도를 매겼다. 이 기술 역시 초고난도 이기에 트리플 더블과 같이 J를 받을 만하고, 적어도 I난도는 나올 것이라 예상됐다. 그러나 H난도로 발표되자 바일스는 그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하하하하하하, 말도 안돼”라고 썼다.
WTC는 “뒤로 점프한 후 공중에서 살토(앞뒤로 공중 회전)를 해서 착지하는 동작은 자칫 심각한 목 부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등급을 H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매체들은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USA투데이는 “바일스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경기를 하는 선수다. 지나치게 뛰어난 실력이 죄라며 벌타를 받았다”, “FIG는 위선적이다. 그렇게 위험하다면 여자 체조에서 I와 J난도는 굳이 왜 존재하게 두었나?”라며 비꼬았다.
‘너무 어려워서 난도가 깎인’ 해프닝까지 낳은 바일스는 이 외에도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을 두 개 더 갖고 있다.
마루의 ‘바일스’는 2013년 등록한 G난도 기술로, 두 차례 땅을 짚고 돈 뒤 공중에서 더블 레이아웃 하프 트위스트를 하는 기술이다. 바일스2와 구분하기 위해 ‘더블 더블’로도 불린다.
도마의 ‘바일스’는 유르첸코 하프턴으로 도마를 짚고 올라가 몸을 쭉 편 채 두 바퀴 회전 후 앞으로 착지하는 기술이다. 6.4레벨의 여자 도마 최고난도 기술이기도 하다. 2018년 FIG에 등재됐다. 눈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몸을 구부리고 공중회전을 하는 것보다 몸을 펴고 회전하는 게 난도가 더 높다.
링크>>바일스의 도마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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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ic Worlds 2018 - Simone Biles vaults into the Code of Points - We are Gymnastics !
FIG Official ? 48th Artistic Gymnastic Gymnastics World Championships, Doha (Qatar), 25 October - 3 November 2018. Simone Biles (USA) successfully landed her...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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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일스가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지는 2019 세계선수권의 성적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마루와 도마, 평균대에서 바일스는 유일하게 15점대를 받았다. 마루에서는 2위와 무려 1점 차이가 난다. 감점을 0.9점 받았어도 우승했다는 뜻이다. 외신들은 “여자 체조에서는 선수들이 사실상 은메달을 놓고 경쟁했다”고 표현했다.
마루
시몬 바일스 15.133
순시아 리(미국) 14.133
안젤리나 멜니코바(러시아) 14.066
도마
시몬 바일스 15.399
제이드 캐리(미국) 14.883
엘리 다우니(영국) 14.816
평균대
시몬 바일스 15.066
류팅칭(중국) 14.433
리시지아(중국) 14.300
완벽한 신체와 정신력
바일스2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여자 선수의 신체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수준의 체공력과 점프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ESPN은 2019년 기사에서 바일스의 특별한 능력을 분석했다.
먼저 신체 조건. 먼저 바일스는 기계체조에 적합한 작은 키다. 키 142cm인 바일스는 미국대표팀 동료들보다도 확연하게 키가 작다. 그런데 단순히 키가 작아서 체조에 유리한 게 아니라 키와 몸무게, 근력이 황금비율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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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일스의 백 핸드스프링. 사진=연합뉴스
또한 바일스가 보여주는 모든 기본동작은 체공력을 극대화하기에 완벽한 모양이다. 전 체조 선수 케이시 존슨 클라크는 “바일스가 트리플 더블을 하기 직전 백 핸드스프링(뒤로 땅 짚고 도는 동작)을 하는 동작을 보면, 바일스의 몸이 완벽한 무지개 모양”이라며 다른 체조선수의 레벨을 넘어서는 완벽한 기본기와 폼에 감탄했다.
이처럼 바일스는 최적의 피지컬로 완벽한 폼을 구현하면서 강력한 근육의 힘을 이용한 엄청난 스피드까지 갖췄다.
ESPN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물리하과 교수인 데이비드 영 박사를 인용해 바일스가 점프할 때 뛰어오르는 속도가 시속 23.657km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런 기술과 실력은 바일스가 어린 시절부터 매우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탄탄한 기본기를 쌓았기에 나올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남다른 멘탈이다. 바일스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머물지 않았다. “리우 올림픽 4관왕이 끝이 아니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 의식이 확고했다.
바일스는 슈투트가르트 세계선수권 후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평균대에서의 더블 더블 같은 건 연습 때 가끔 해 봤던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 될 거라고는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코치들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줬고, 이제 그 기술은 모두 나의 루틴이 되었다”고 말했다.
여자체조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기계체조 채점규정은 과거 10점 만점제에서 2005년부터 만점제를 폐기하고 새 기준으로 바뀌었다. 10점 만점제는 쉽게 설명해서 10점이라는 이상적인 만점을 설정하고 실수가 있으면 감점을 해 나가는 방식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이단평행봉에서 나디아 코마네치(루마니아)가 역사상 첫 10점을 받으면서 10점 만점제 시대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바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나디아 코마네치.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2005년 이후에는 난도 점수와 실행 점수를 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점수 상한을 정해두지 않는다.
10점 만점제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선수들의 연기 루틴이 보수적이었다. 고난도의 연기에 도전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난도의 루틴을 완벽하게 해내는 게 점수를 받는데 더 유리했다.
바일스의 등장은 기구 위를 날아다니던 가녀린 ‘요정들의 시대’가 이어지던 여자 체조에 지각변동이 일어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바일스가 한계를 모르고 도전하면서 점점 더 높은 점수를 보여줬고, 여자 체조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파워 우먼의 시대’를 맞았다.
바일스는 체조의 기본적인 우아함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폭발하는 듯한 스피드와 파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전까지 여자 기계체조에서 보기 힘든 수준의 기술을 보여준다.
바일스의 연기를 보면, 도움닫기와 점프, 동작 하나하나가 속이 시원할 정도로 빠르고 호쾌하다. 기계체조의 본질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작을 구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걸 그녀가 매 대회마다 보여주고 있다.
시몬 바일스. 사진=연합뉴스
코마네치는 지난해 ‘올림픽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바일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일스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선수다. 남자 선수도 하기 어려운 기술을 쉽게 해내고 있다. 이렇게 압도적인 선수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바일스는 단순히 그냥 체조 선수가 아니다. 체조의 한 시대이자 체조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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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가 201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기를 마친 후 관중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바일스에게는 마지막 도전이 남아있다. 도쿄 올림픽이 1년 미뤄지면서 2021년에 그녀는 24세가 된다. 여자 체조선수로서 너무 많은 나이인 게 사실이다.
바일스는 인터뷰에서 도쿄 올림픽 1년 연기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다. 23세의 엘리트 여자 체조선수가 올림픽 준비를 1년 더 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그대로 지켜갈 뜻을 내비쳤다. 바일스는 “리우에서 루키로서 도전했던 올림픽과 지금 베테랑으로서 최고의 자리에서 도전하는 올림픽은 다르다.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다”면서도 “힘든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물론 앞으로 1년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불가능한 몸짓으로 전세계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바일스가 이번에는 나이의 벽마저 무너뜨리고 포디움 정상에 서는 모습을 많은 이들이 도쿄에서 보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