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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초 오리역에서 처음으로 느림보 리무진을 기달리며 소풍날 어린아이들 처럼 마음 설레이던
기억이 여직도 또렷한데 벌써 10월이라... 만추의 계절이 다가 오고 있다.
오리역에서 강 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산벗님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누며 담소를 하고 있는데 노오란 개나리처럼 화사한
등산복을 입은 도무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새로운 느림보 여전사님이 등장을 하신다.
억 하고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정된 눈알 덕분에 그 순간부터는 도저히 다른 곳으로는 시선을
돌릴래야 돌릴 수가 없다.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느 드뇌브를 꼭 빼 닮은 관능적인 미모에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해바라기 군단이다.
오리역 일대는 오래 전부터 내 나와바리 였던지라 골목길 구석부터 행상을 하는 아저씨들 꺼정 도대체 모르는 바가
없다고 자부를 했었는데 카트린느 드뇌브와 한 동네에 살면서도 그 존재 여부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겨 지지 않는다.
강 대장님과 인접한 동네에 살고 있는 드뇌브님은 구성에 살고 계시는 유 고문님의 처제라고 신상을 밝히면서 인사를
하시는데 연일 새로운 회원으로 입회를 하시는, 도무지 예사롭지 않은 분들의 등장이 몹시도 흥미로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려가 현실로 바뀌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질 않았다.
느림보 리무진이 수원 톨게이트를 벗어 나기 바쁘게 이곳 저곳에서 자조적인 탄식과 함께 때 아닌 신세 타령이 나오기
시작한다.
요즘 들어서 자신의 키가 약간은 줄어 든 것 같은 느낌이 올 뿐 아니라 구져 펑퍼짐하게만 느껴 졌던 엉덩이가 제법은
쳐져 보인다는 둥. 히 히.
어떤 분은 자신이 약간 살이 토실 토실하게 찐 것만은 사실이지만 뚱뚱한 건 결코 아니라고 강변을 하면서 이깐 등산복
학 벗어 버리고 사복을 입으면 변신 로봇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고 아예 반항에 가까운 행악을 부린다.
이런 판국에 어설푸게 참견을 하느라 입을 잘못 떼는 건 정말 위험 천만한 일이기에 난 구져 주둥이 꾸욱 닫고 사태의 추이만을
지켜 볼 따름이었는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설마 수박이 되겠냐는 생각뿐이었다.
요즘 따라 연일 새로이 입회를 하는 외국계 여배우들 덕분에 우리 명품 느림보 산악회는 구져 따라 붙기만 하면 쥔종일
눈 하나는 몹시도 즐겁다.
경북 상주 화북면에서 문장대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상주는 예로 부터 감 농사와 누에를 치는 양잠이 유명한 곳인데 우리 어릴 적에는 농잠학교라고 하여 양잠을 위한 학교가
있었으며 여름 내내 시골 농가에는 마당 한가득 널린 멍석 위에 검붉은 오디를 수북하게 말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주 화북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유학을 왔던 내 딱 일년 선배되셨던 어떤 형은 학창 시절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분인데 졸업 후에는 끗발 좋은 공직에서 승승 장구를 했었는데, 겨울 바람이 몹시도 불던
어느 날 퇴근길에 자기 사무실이 있는 종로로 잠시 오라고 한다.
입이 델 듯한 뜨거운 정종 대포에 참새 한 꼬지가 동이 날 무렵 이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참으로 충격이었다.
고향땅 화북으로 다음 달이면 귀농을 한다는 것이다.
병원 수간호사로 근무하시는 형수님과의 불편한 사이 때문인데 어떤 사유로 두 분의 관계가 냉각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집에 들어 가면 식사는 고사하고 이 형이 자고 있는 방의 연탄불 마저 빼 버린다는 얘기만 독백처럼 웅얼거리며 정종 한 대포를
단숨에 들이 킨다.
공직자는 부부 관계가 불편하면 진급에 한계가 있다고 하신다.
당시로선 귀농을 한다는 건 거의 미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이 형은 지금도 산간 오지 화북에서 농사를 지으며
유지 행세를 하고 있는데 십 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맘 때 즈음이면 배추를 한 트럭 싣고 서울로 올라 와서 팔고 내려 가는데
언제나 천연 송이 몇개를 품고 온다.
샤브 샤브 식으로 끓는 물에 얇게 썬 소고기와 함께 데쳐 먹던 그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문장대는 첫 직장에서 연수 교육을 받는 과정에 산악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처음으로 올랐는데 한창 나이였던 지라 별반
힘을 들이지도 않았고 겨울철이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땀 한방울 흘리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넘의 세월이 아무래도
웬쑤다.
하지만 달라 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비록 힘은 들지언정 산을 오르며 즐거워 하면서 늘상 하심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배우고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 눈에 들어 오는 산을 비롯한 모든 피사체들은 언제나 그 모습일 뿐 변함이 없다.
단지 피사체를 바라 보는 인간의 시각에서 차이가 날 뿐인데 같은 사물이나 사안을 놓고도 극렬하게 상반된 입장을 견지
하는 경우를 우리 왕왕 본다.
제 예팬네가 산행이 있는 날이면 항시 입버릇 처럼 하는 말이 있다.
올랐다가 야밤에 당신이 늘 하는 버릇처럼 부리나케 내려 올게 뻐언한데 뭣땀시 힘들여 산엘 끼집어 올라 가냐는 것이다.
영 틀린 말 같아 보이진 않는다.
조 대장님 말씀에 의하면 문장대에서 묘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은 한동안 입산이 통제되었다가 최근에 개방을 하였다고
하는데 내린 비로 미끄러운 길이 여간 녹록하지가 않았다.
한구비 한구비를 조심스레 돌아 가는데 어느 전망 좋은 편편한 바위 위에서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으시던 시나브로님께서
황급히 불러 세우시더니 야생화님, 앙개님 그리고 에쉴리 여사님이 작품 사진을 위해서 일렬로 도열한 중간에 잠시 서라신다.
어느 등산복 회사 씨에프 사진을 촬영하는 줄로만 알고 사양에 사양을 거듭하였다.
아직 채 나이 40을 넘겨 보이지 않는 세 분의 모델들과 결국은 한컷을 하는 영광을 누렸긴 한데 아무래도 시나브로님께서
실수를 하신 것 같다.
혹여 사진 제목이 40 젊은 언니과 60 늙은 오래비의 어느 날 오후라면 행여 모를까.
법주사를 살짝 비켜 내려 오니 사하촌과 주차장이 보인다.
멀리 느림보 리무진과 우리 사랑하는 느림보님들의 모습이 시야에 반갑게 들어 온다.
십 수년전 하던 사업,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말아 먹고 잠시 이곳 법주사 사하촌에 있는 여관에서 하룻잠을 자고는
다음 날 법주사로 올르며 한 사람의 인생 행로에 대해서 많은 고뇌를 했었던 젊은 날이 문득 생각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도무지 종 잡을 수가 없었던 인생사를 반추했었던,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된 삶인지 나로선 도무지 모를 듯한 그 시절이 괜스래 그리워 짐은 웬 호사인지 까닭 모를 일이다.
중국의 어느 유명한 고사 한구절이 생각난다.
길을 가던 두 나그네 눈에 봉화 춘양목처럼 늠름한 나무 한그루가 들어 오자 너무도 훌륭한 나무라고 한 나그네가 감탄을 하니
함께 길을 걷던 또 다른 나그네가 저 나무는 필경 속은 썩어서 텅 비었음이 틀림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벌목이 되어 어느 부잣집 대들보 신세가 되었을 것이라 한다.
날이 어두워 져서 목적지에 도착을 하니 주인 양반이 몹시도 두 나그네를 반기면서 하인에게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거위
한마리를 잡으라고 분부를 내린다.
어르신! 우는 소리가 아름답고 도둑 또한 잘 물리치는 거위를? 아님 울음 소리도 구렇고 도둑 또한 제대로 물리 치지 못하는?
야 이놈아! 당연히 거위 노릇 제대로 못하는 넘을 잡아야지.
그리고 인재는 낭중 지추와 같다는 말이 있다.
걸출한 인물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그 진면목을 반드시 보이고야 만다는 말인데 우리 명품 느림보 산악회 회원님들 또한
좋으신 매너로 늘 겸허한 모습들을 보이지만 독심술로 바라 본 내 시야에는 모든 느림보님들이 송곳처럼 보인다.
성별, 나이, 직업 그리고 사회 경력이 천태 만상인 분들이 모인 이룬 친목 단체는 진정한 산교육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무료 강습기관이다.
나보다 더 나은 무었을 가진 분들에게 뭔가 한가지라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 인격적으로 조심스레 접근을 하는데
인간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일은 결코 없다.
당신이 뭔데 하는 시각으로 너 잘 났어를 외치기 시작하면 첫째로 상대방이 미워 지기 시작하는데 미워하는 대상이 뭔가
변화가 있었던 건 분명 아니다. 일체유심조라고 내 마음의 삿된 장난일 뿐이다.
이런 산행기를 쓰는 저 역시 일 없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이 되고져 함은 물론 결코 아닙니다.
이마마하게 훌륭한 친목단체가 영구히 좋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의 발로일 따름입니다.
동네를 일 없이 배회하는 숫개라면 저엇이라도 자랑할 것이 있다고 하지만 전 가진 거라곤 요 알량한 주둥이 하나 뿐인지라
그리 할 뿐입니다.
그져 구엽게만 봐 주세염.
안성 휴계소에서 잠시 쉬기 바쁘게 강 대장님이 하차를 서두르신다.
전셋방을 전전하던 젊은 시절 울 엄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은 다름 아니라 이사를 할 적에는 방위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집주인 상판데기 잘 보아서 인심이 후해 보이는 집을 찾으란 것이었는데 난 정말 오리역 가까운 무지개마을로 이사 하나는
제대로 온 기분이 요즘 들어 절실하다.
오리역 인근 먹자골목에 있는 돼지고기 특수 부위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느림보 뒷풀이가 또 한번 더 껄쭉하게 벌어 진다.
아마도 배 고문님께서 또 한번 더 쏘시는 것 같은 분위기인데 번번히 신세를 져서 몹시도 송구스러웠지만 음식맛 하나는
아주 끝나는 분위기였다.
괜스래 미안해 하는 분위기를 감지하신 배 고문님께서 한말씀 하신다.
산행을 하는 날이면 하루 쥔종일 젊디 젊은 모델이나 외국계 여배우들이 주위를 둘러 싸고 같이 놀아 주면서 운이 좋을 적에는
돼지고기에 풋마늘 듬뿍 얹은 상추쌈 마져 입안으로 밀어 주는 광영을 돈으로 환산을 할라문 이룬 음식값 정도는
쨉도 안된다고 하신다.
천번 만번 지당하신 말씀이란 생각에 연신 고개들을 끄덕인다.
선두 이 대장님께서 강추를 하셔서 홍어회가 두 접시 상에 올랐는데 항정살과 함께 쐐주 한잔 털어 넣고 씹으니
그 감미로운 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우리가 흔히들 삼합이라고 하면 돼지고기와 홍어 그리고 김치를 거론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김치를 빼고 꼬막을 넣는다고도
하는데 그 진위는 정확히 모르겠다.
요즘 유행하는 일명 천겹살이라고 하는 항정살은 목덜미에서 뺨으로 흘러 내린 살을 말하고 갈매기살은 가슴 부위에서 호흡을
도와 주는 횡경막을 말하는데 양쪽 끝을 잡고 들어 보면 그 형태가 갈매기와 같다고 해서 붙인 말이라고도 하고 갈매기살이
간을 받혀 주는 부위하고 해서 간받이살이라고 하다 갈매기살로 부르게 되었다는 말 또한 있다.
그리고 한때 유행했던 소막창구이는 조심해서 먹을 필요가 있다.
막창은 소 한마리에서 아주 적은 양만 나오는데 그 형태가 곱창(소창)처럼 완벽한 창자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나오는 막창은 넓적한 살을 네모나게 짤라서 나온다.
이룬 형태는 틀림없이 소의 제4번 위를 막창이라고 속여 파는 경우이다. 진짜 막창은 돼지를 비롯하여 정말 맛있다.
그래서 소문난 순대국집은 국물을 우려낼 적에 돼지막창을 필히 넣는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른 시간에 뒷풀이가 끝났다고 생각들을 하셨는지 아마도 노래방을 갔었던 것 같은데 술이 제법은 거나하여
어떻게 지랄 발광을 하지나 않았는지 걱정만 앞서고 노래를 불렀는지 그 조차도 기억이 아물거린다.
노래방에서 비틀거리는 저를 매섭게 노려 보시던 강 대장님의 눈빛만이 아물거리며 여엉 찜찜한데 다음 주 산행 예약에
제 이름이 등재된 걸로 보아선 아직은 짤리진 않았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를 하지만 마니 마니 근신을 해야 겠다는
다짐 또한 굳게 하며 이만 황급히 펜을 놓습니다.
탄천변에서 와일드비이스트(일명 누우)의 후예 돌삐 드립니다.
첨언 ; 그리고 연 삼일을 밤낮 가리지 않고 온 몸을 던져 노력 봉사한 결과 예팬네로 부터 다음 설악산 산행 한번만은
난생 처음으로 외박을 허락한다는 윤허를 힘겹게 받았는데 강 대장님!
설악산에서 불여시처럼 생긴 외간여자들과 같은 지붕 밑에서 함께 쪼구리고 자는지 마는지 만은 꼭 물어 보라고 하명을
하시길래 대충 얼버무렸는데 ... 어떻게 되는 일인지요?
그리고 외박하고 들어 와서 혹 집에서 쫒겨 나면 강 대장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소청 산장에 잡역부로 취직을 꼬옥 시켜
주세요. 전 경제권도 일체 없는 불쌍한 신세입니더. 흑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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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 봉사로 얻어 내신 단 하루 외박가 유합니다.
결코 후회스럽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산장에선
느림보님들 젊잖으신 체면..손상시킬 일은 없습니다.
그 점을 꼭 말씀 드리시고..
만약 쫓겨나는 일 있으시면 걱정마셔요.
어부인 제게 오셔서 제발 돌삐서방님 어디 계시냐고
애원해도 모른다 할테니까.
드디어 문장대 거쳐 묘봉까지 섭렵하셨군요..화북 문장대면 제 고향집에서 불과 5-6Km정도의 거리랍니다..
느림보님들께서 산행을 시작하셨을 견훤산성 지나 식당이 모여 있는 곳의
오른쪽 첫번째 식당인 "소나무 식당"은 저의 20여년 단골집입니다..
맛있는 자연산 버섯찌게와 산나물 및 집에서 가꾼 채소가 기가 막힙니다..
물론 동동주 맛도 죽이구요..
그곳으로 하산해서 한잔하시면 신선이 따로없는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재미있게 웃음짓고 또 한주간 연재소설 기다리는 재미로 기다리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어 멋지고 재미있고,유익한 글 쭈욱~~~기대합니다...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삐님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해도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