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양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꼭 120년 전인 1896년 병신년(丙申年)부터다. 1872년에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채용한 일본보다는 24년 늦었다.
정부는 개국(開國) 504년 9월 9일(양력 1895년 10월 26일) “정삭(正朔)을 개정하여 태양력을 사용하되 개국 504년 11월 17일로써 505년 1월 1일을 삼는다”라는 조칙을 공포했다. 두달 뒤인 11월 15일(양력 12월 30일)에는 양력 채택을 재차 확인하고 연호(年號)를 사용한다는 조칙을 반포했다. 조칙이 그대로 시행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은 〈관보〉다. 관보 제214호는 발행일을 “建陽元年 一月四日 土曜”라고 표시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변경됨이 없이 양력은 국가의 공식 역법으로 자리 잡았다. 병신년, 양력을 쓰기 시작 그러면 요일을 처음 사용한 것은 언제일까? 요일은 양력에만 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 정부는 양력 1895년 4월 25일부터 음력에 요일을 표시했다. 관보 제1호의 발행날짜는 “開國 五百四年 四月一日 木曜”로 되어 있어, 양력보다 8개월 앞서 요일부터 사용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 보면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그만큼 정부가 근대적 개혁에 조바심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보 제1호’란 발행호수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 이때라는 말이다. 근대식 정부 소식지인 관보는 양력 1894년 7월 23일(일본군이 경복궁을 무도하게 점거한 날이다)부터 발행되었고, 정식 연호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개국’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8일 뒤의 일이다. 여기서 개국은 태조 이성계가 1392년에 조선왕조를 연 것을 뜻한다. 관보를 발행하면서 그동안 공식문서에 써오던 청나라 연호를 버린 것은 뜻깊은 일이다.
양력을 채택하면서 쟁점이 된 것은 국경일을 양력으로 바꿀 것인가, 음력으로 놓아둘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1896년 무렵의 중요한 국경일은 개국기원절(음력 7월 16일), 고종의 생일(萬壽聖節, 음력 7월 25일)과 국왕 즉위일(興慶節, 음력 12월 13일)이었다. 그리고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이 일을 기념하는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 음력 9월 17일)이 추가되었다.
논의 끝에 국경일은 계속 음력으로 쇠기로 정해졌다. 이들 국경일은 ‘국가의 경축일’이지만, 정부보다는 국왕 및 왕실과 관련된 날들이다. 40년 넘게 음력으로 지낸 임금님의 생일을 낯선 양력으로 바꾸는 것은 무엄한 짓일 테다. 500년 동안 음력 7월 16일로 알고 있던 왕조 창건일을 느닷없이 변경하는 것도 조상님들께 못할 짓이었을 것이다.
1896년 이래 관보는 물론 독립신문, 황성신문 등도 날짜를 양력으로 표기했다. 반면에 왕실기록이라고 할 〈승정원일기〉(갑오개혁 이후 승선원일기, 규장각일기 등으로 명칭이 바뀌어 1910년 경술국치까지 기록되었다)와 〈일성록〉은 음력을 유지했다. 조칙을 국왕 자신은 따르지 않은 셈이다. 근대서양의료를 국가의 주된 의료체계로 삼으면서도 왕실은 전통의술을 고수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비싼 봉급으로 분쉬 등 외국인 의사를 왕실 주치의로 고용했지만, 실제 진료는 전의(典醫)들이 담당했다. 생일을 빼앗기다 매해 음력 7월 25일에는 고종의 탄신을 경축하는 행사가 온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그날이 되면 관공서와 학교가 문을 닫았고 신문도 휴간했다. 1907년까지 그랬다. 하지만 1908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국경일에서 제외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1년 전에 새로 황제가 된 순종은 1908년 9월 8일(음력 8월 13일) 아버지 고종에게 생신 축하 문안을 드리기 위해 덕수궁으로 갔다. 고종의 생일이 바뀐 것이다. 고종이 태어난 임자년(1852년) 7월 25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9월 8일이 새로운 생일이 되었다. 7월 22일, 탄신일과 기념경축일을 양력으로 바꾼다는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궁내부(宮內府) 대신 이름으로 공포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일제의 작품이다.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의 날짜 표기는 조금 앞선 1907년 12월부터 양력으로 바뀌었다.
고종은 진실하지 못하다고 일제와 이토 히로부미에게 찍혀 속절없이 황제에서 쫓겨난 뒤에 55년을 지켜온 생일마저 빼앗겼다. 생일로 여기지 않았을 날에 탄신 인사를 받는 태황제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간적으로 동정이 갈 수도 있지만 결국 자업자득이다. 아버지 대원군의 섭정기간을 제외하더라도 30년 넘게 절대권력으로 한 나라를 통치해 온 사람이 누구 탓을 하랴.
올해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잃고 뒤죽박죽이었던 한 해여서 어서 보내고도 싶지만 역시 아쉬운 게 세월이다. 병신년 새 달력을 걸면서 혼용무도의 암흑시대가 끝나고 진실이 제 뜻을 되찾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하고 다짐한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첫댓글 희망찬 새해를 맞으며 건필을 다짐합니다.
건강에도 유념하겠습니다.
복담이님도 새해 꼭 하고 싶은 일을 이루십시요.
네! 감사합니다.
올해는 많은 복을 받은 듯 기쁨이 큽니다,
그러기에,
골고루 나누고 살아야 겠다는 결심이 서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