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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ystal Cathedral(사진출처/Crystal Cathedral홈페이지) |
미국개신교 기가처치 수정교회, 미국 가톨릭 오렌지 교구에서 매입
지난 11월 17일 미국의 초대형 교회 중 에서도 그 화려함과 명성으로 인하여 가히 미국 개신교회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크리스털 캐씨드럴(Crystal Cathedral, 한국에선 LA 수정교회로 불림)이 파산하여 법원에 의해 매각 당했다는 소식이 미국의 종교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 희화적인 기사가 더욱 충격을 준 것은 미국 개신교 복음주의의 본산인 이 교회당이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있는 천주교 오렌지 교구에 매각되어 주교좌성당으로 변모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교회당은 대형유리 1만664장으로 외벽이 장식되어 있고 세계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과 진도 8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지어진 건물이다. 문자 그대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건물이었다. 개신교의 대형교회를 메가 처치 (megachurch)라고 부르지만 주일 예배 참석률이 10,000 명을 넘으면 기가 처치(gigachurch) 즉 초(超)대형교회라고 부르는데 수정교회는 기가처치의 원형을 이루는 교회이었다.
설립자인 쉴러(Robert H. Schuller) 목사의 목회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주요 메시지는 “긍정의 힘”이었다. 1955년 쉴러 목사는 로스앤젤레스 근교 가든 그로브에 있던 자동차 극장을 교회로 만들고 누구나 마음속에 긍정적인 신앙을 갖고 있으면 그 대가는 “네가 꿈꾸는 바대로 이루어지라”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라는 메시지로 대중을 매혹시켰다. 그의 설교는 듣기만 해도 그야말로 “필 굿”(feel good)이 되게 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매 주일 “능력의 시간”(Hour of Power)이란 TV 방송을 통해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수정교회 설립자 쉴러 "네가 꿈꾸는 바대로 이루어지라" 한국교회의 "잘살아보세" 기복신앙과 맞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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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러 목사.(사진출처/Crystal Cathedral홈페이지) |
그의 성공적인 목회신학은 그대로 한국에 직수입되어 1960-70년대의 소위 “잘살아보세”라는 정치적. 사회적 운동과 기막히게 잘 들어맞았으며 긍정의 힘을 변용한 “번영신학”은 한국인들의 기복신앙과도 잘 맞물려 개신교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 당연히 한국의 개신교 목회자들은 앞 다투어 쉴러의 전략을 자신들의 목회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하느님의 축복을 부의 획득이나 사회적 성공 그리고 개인의 건강에 연결시켰다. 그러므로 미국 개신교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 성장 모델을 그대로 직수입하여 성장한 한국 개신교계가 LA 수정교회의 파산을 목격하면서 받았을 그 충격파의 여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미국의 철학자이자 최면술사 이었던 큄비(Phineas Parkhurst Quimby)는 치유나 부자가 되는 것은 모두 마음의 힘의 작용으로 보았고 이후 미국의 ‘신사고 운동’(New Thought Movement)의 기원이 되었다. 긍정적 사고, 치유와 창조적 시각화 훈련을 통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은 점차 미국사회의 기업.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 그리고 학계에 까지 널리 퍼졌으며 후일 신자유주의와 맞물리면서 미국의 보편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긍정의 힘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번영신학으로 변형되었으며 고전적인 단죄나 죄의식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 보다는 부와 성공과 건강을 믿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메시지는 방송복음전도자(Tele-Evangelist)들에 의해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에 대한 수용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잠재력에 관한 믿음이고 특히 자신의 현세적 열망을 긍정적 언어로 표현하는 적극적. 긍정적 습관을 숙달하면 무엇이든 소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신은 인간의 현세적 성공과 번영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 내지는 수단으로 전락되어버린다.
거대한 예배당과 수많은 교인을 꿈꾸게 한 '긍정의 힘'..그리고 파산
긍정의 힘이란 미국식 가치는 미국 것이라면 뭐든 잘 팔리는 한국 땅에 무서운 속도로 퍼졌으며 대형 교회를 열망하는 개신교 목사들은 이 미국식 가치의 열렬한 외판원이 되었다. 대형교회들의 웅장한 예배당, 호화스러운 각종 설비, 천문학적 액수의 헌금 등은 메가 처치 열풍을 한국 땅에 일으켰으며 목사들에게는 거대한 예배당과 수많은 교인을 꿈꾸도록 독려했고, 신자들에게는 돈과 성공을 향한 욕망을 부추겼다.
이들의 전도훈련 내용을 보면 마치 교회는 기업이 되고 전도는 판매의 일환이며 불신자는 고객처럼 보인다. 결국 피터 버거(Peter L. Berger)의 말대로 종교적 세속화로 인한 “시장상황”(market situation)을 형성하게 되어 종교는 상품으로 신자는 소비자로 전락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시장상황은 교회 간에 선의의 공존보다는 경쟁상황을 유발하게 되어 종교가 시장경쟁의 논리에 지배당하게 된다.
따라서 교회마다 다양한 시장전략을 구사하고 고객 확보는 치열한 선교라는 명목으로 나타났고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에 쉽게 눈에 뜨이는 거대종교재벌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긍정의 힘으로 끝없는 번영을 누릴 것 같았던 미국 수정교회의 몰락은 그의 성장전략을 그대로 답습했던 한국의 개신교계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숼러 목사는 2006년 은퇴하면서 교회를 먼저 아들에게 물려주었으나 이후 딸에게 넘겨주었고 사위들까지 가세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돈을 챙기고 형제간 분란이 지속되면서 교회 헌금의 수입이 2008년 5,460만 달러에서 2010년에는 2,230만 달러로 줄었고 급기야 빚더미에 올라않아 파산을 선언해야 했다. 대형교회들의 세습과 족벌운영은 한국의 대형교회들도 그대로 답습하여 그동안 사회의 빈축을 받았고 최근에는 한국의 대표적 대형교회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도 아내와 두 아들이 관계된 족벌운영과 교회의 사유화 논쟁 때문에 지난 4월22일 조용기 목사가 신도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죄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권위와 카리스마를 가진 종교지도자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파산이다. 쉴러 목사와 조용기 목사는 거의 동일한 시기에 목회를 시작했고 둘 다 비슷한 목회 전략으로 초대형 교회를 만들었으며 은퇴도 거의 동일한 시기에 했고 양쪽 다 은퇴 후 자신들의 자녀가 연관된 교회의 족벌경영 논란에 휩싸인 점도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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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Crystal Cathedral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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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일간지는 수정교회의 파산 사태를 두고 “금이 간 수정교회”(Cracks in the Crystal Cathedral)라고 비아냥거렸듯이 현재 한국도 각종사회 고발 프로그램에 개신교를 대표하는 대형 교회들과 목사들이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교회가 죄 많은 세상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교회의 죄악을 고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론의 한복판에서 대형교회들이 벌거벗겨진 채 뭇매를 맞고 있지만,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구경꾼들의 손에는 돌멩이가 들려 있으며 급기야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 조직화되어 반기독교 운동이 인터넷을 통해 나날이 확산되고 있으며 기독교가 “개독교”로 치환되어 한국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가톨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들의 추락을 바라볼 뿐이지만 이들에 의해 야기된 종교적 냉소주의. 무관심주의는 결국은 가톨릭에도 부정적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의 댓글들을 보면 극단적인 반기독교주의자들은 가톨릭도 개신교와 같은 뿌리를 가진 동일 집단이라고 싸잡아 매도해 버린다.
사회적 책임 없이 개인의 성공 부추기는 한국교회의 번영신학
교회의 공신력 상실은 개신교 신자수의 감소로 입증되었다. 통계청이 2006년 발표한 인구센서스에서 기독교신자가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발표에서 드러난다. 1996년 876만 명이었던 기독교인이 2005년에는 861만6천명으로 지난 10년간 14만4천명 (-1.6%)이나 줄어든 것이다. 이에 비해 불교는 3.9%, 천주교는 비약적으로 74.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오히려 전체 종교인구수는 238만 명이 증가(증가율 10.5%) 한 것과 비교하면 그동안 개신교는 교회성장을 위해 총력을 집중해왔기에 그 감소는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인구 46.9%에 이르는 비종교인의 3분의 2가 한때는 개신교인이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1960-1970년 10년간 개신교인 숫자가 무려 412.4%나 증가했던 전성기에 비하면 지난 10년간의 마이너스 1.6% 라는 감소는 급격한 추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형교회 목사들이 개인구원과 세속적 성공을 강조하듯 그들의 목회전략을 그대로 답습한 대부분의 한국의 목사들도 세속적 성공을 바로 하느님의 축복으로 동일화시킴으로서 우매한 신자들을 성장과 축복 이데올로기에 함몰시켜 버린다. 대형교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돈과 권력, 명예를 쥐고 싶어 하는 한국의 신자들에게 세속적 성공 과정에서 따를 수 있는 죄에 대한 심적 불안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교묘하게 중산층의 정서를 읽어내면서 문화적 코드를 맞춘 달콤하고 세련된 설교를 통해 급속하게 성장했다.
편하고 쉬운 것만을 좋아하는 일반신자들은 사회정의나 개인 윤리와 책임성 같은 쓴 소리 보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성공신화 등 달콤한 간증만을 목말라하고 은혜가 충만한 설교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단것만을 좋아하게 되면 결국 비만과 당뇨 등 갖가지 합병증을 일으키듯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이다.
긍정의 힘, 사회적 재앙을 개인의 잘못으로
지난 수십 년간 소위 미국식 이데올로기인 “긍정의 힘”에서 유발된 적극적 사고, 자기개발, 행복전도사 붐은 이 땅에 홍수처럼 몰아닥쳤으며 기업, 종교, 심지어는 학계에까지 맹위를 떨쳤다. 긍정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시스템은 그동안 기업, 종교, 학계에 유포되었고 자기계발서, 기업의 동기 유발 프로그램, 행복전도서들이 앞 다투어 발행되었고 여러 영역에 걸쳐 그물망을 짜 나가며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만능약 처럼 비쳐졌던 긍정적 사고방식도 심리 현상 중의 하나인 “가짜 약 효과”(placebo effect)라 볼 수 있는데 이제 약발이 다한 것 같다. 영원한 번영, 영원한 건강은 없다. 그러나 번영 신학은 영원한 것이 아닌 이 세상의 덧없는 것들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이와 같은 미국식 이데올로기에 찬물을 끼었었던 두 가지 충격적 사건은 “긍정의 힘”의 전도사 역할을 담당했던 LA 수정교회의 파산이고 또 하나는 이 긍정의 힘의 부정적 실체를 파헤쳐 단박에 미국 아마존 사회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긍정의 배신>(Bright-Sided)이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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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 <긍정의 배신>의 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교회와 자본가와 긍정적 사고 전파자들이 결탁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속기 쉬운 속성과 낙천성”을 이용해 오히려 튼튼한 미국 경제를 무너뜨려 세계의 위기를 초래하고 우리를 불행에 빠트리고 있다고 고발한다. 낙관주의란 함정이 위기의 징후를 간과하게 만들었고 금융 위기를 비롯한 사회적 재앙에 대비하는 힘을 약화시켜 왔으며 나아가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적. 적극적 사고의 부족으로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개인의 노력을 병행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일반인은 대부분 그 두 가지의 선후 관계를 혼동한 채, 무작정 잘될 것 이라는 주문만을 외우며 긍정적으로 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자기암시 내지는 최면을 건다. 사회 최하층의 빈민들이나 실업자들은 자본가들에 의해 저질러진 경제적 폭력에 휘둘리면서도 긍정적 사고야 말로 그나마 행복의 외길이라 굳게 믿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긍정의 힘을 전파하여 살판난 것은 부자들과, 심리학자, 그리고 교회를 포함한 '긍정적 사고' 의 전도사들뿐이다.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고자 하는 맘몬 신앙
복음주의자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신의 계시를 받았다던 부시와 그가 이끌었던 공화당 집권 8년 만에 미국은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경제시장의 붕괴와 빈부의 양극화로 인해 망신창이가 되었으며 덩달아 온 세계가 함께 고통을 받고 있다. 미국은 현재 내부적으로 남북전쟁 이래 가장 심한 정치·문화적 분열을 겪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최악의 혼란 상태에 직면해 있다.
그토록 위대한(?) 미국이 월가를 지배하는 투기꾼들의 탐욕과 거품으로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미국은 오직 하느님을 잘 믿어 축복받은 나라라고 강변하는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풀러 신학교의 김세윤 교수는 일갈 한다: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 맘몬 신앙의 핵심이며, 이는 이웃을 착취하게 만들고, 고난과 죽음을 증대시키는 사탄의 통치 방식"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원인을 제공한 대형교회에 몰입된 성장지상주의자들에게 “구원은 철저히 개인적ㆍ내세적ㆍ추상적ㆍ관념적인 상상물로 변화되고 있다”며 일부 진보성향의 신학자들은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물질 축복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동일시하며 하느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그 한계를 스스로 웅변한 셈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번영신학을 고스란히 답습한 한국교회의 신학적 위기는 재정적 스캔들이나 내부 갈등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이제 미국적 가치라는 게 과연 보편타당한 것이었을까를 진지하게 물어봐야하는 시점이다. 1%가 행복해지기 위해 99%가 불행해지고 있다고 고발하는 반(反)월 스트리트 데모의 의미는 가치관과 도덕성의 타락이 미국 경제를 붕괴로 이끌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일단 한번 무언가에 "끌리고 쏠리고 들끓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토론은 순식간에 실종되어 버리고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득세한다. 그간 위세를 떨쳐온 긍정의 힘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한다.
이처럼 혼란한 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적 덕성은 철저한 자기비판능력과 아울러 모든 종류의 은폐를 간파할 수 있는 지성적 세련 위에서 타인들과의 변증법적 대화를 통해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시민적 자질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열린 대화의 자세야 말로는 서로를 일깨움의 상태에로 이끌어 정신적 폭을 넓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영석 (강남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종교학)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첫댓글 하느님 두루 굽어 살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