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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카 예배, 넷째 날 (빛의 말씀, 샤밭) in 5778
하누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절기이긴 하지만 우리 교회는 4년 째다보니 익숙해졌다. 유대인들이 장난치는 하누카 팽이에 보면
נֵס גָדוֹל הַיָה שָׁם 네쓰 가돌 하야 샴 : 아주 위대한 기적이 여기있었다.
נֵס 네쓰 : 기적.
유대인들은 팽이에 4각형 팽이를 만들어서, 각 면에 첫 글자들, 네쓰, 가돌, 헤이, 샴을 만들어서 놀이를 한다. 뭐가 나오느냐에 따라서 점수가 달라진다.
하누카는 아주 위대한 기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주 위대한 기적이 뭐냐? 눈, 김멜, 헤이, 쉰을 다 더하면 숫자값이 358이다. 가장 위대한 기적을 358이라고 한다. 이 숫자같은 מָשִׁיחַ 마쉬아흐,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 기름부은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누카는 다 기름에 대한 기적이다. 이 놀라운 기적은 네쓰 가돌, Great Miracle, 아주 위대한 기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왜 위대한 기적일까? 우리는 돈이 많이 생기거나 병이 낫는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적과 하누카가 이야기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적은 초자연적인 것, 초월적인 것이 일어났을 때 기적이라고 한다. 우리 삶 속에 기적을 체험하신 분이 계시나? 비행기 타고 가다가 실수로 떨어졌는데 살아남았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 그러면 초자연적인 현상, 일들을 기적이라고 해서 기적을 꿈꾼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기적을 네쓰라고 한다. 주님이 장대에 달려야 한다고 한다. 동시에 뱀이 달리는 장대를 네쓰라고 한다. 뱀은 도대체 어디에 달리게 되느냐? 기적이 있게 되면 뱀이 장대에 달리게 된다. 기적은 뱀의 역사가 끝나는 것이다. 하누카는 기적의 절기다. 우리에게 뱀의 역사가 끝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우리 삶 속에 있는 고통은 뱀의 역사 때문에 온다. 사탄의 역사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시간에 늙고 어리석은 왕이라고 배웠다. 늙은 왕은 일치감치와서 우리를 속이는 왕이다. 늙는다는 것은 네가 누군지를 모르게 속이는 것이다. 백설공주가 누군지 모르게 속이는 것은 늙은 왕인가 젊은 아이인가? 다 늙은 왕이다. 우리를 속이는 것은 다 늙은 왕이다. 먼저와서 속이다.
그런데 얘가 어리석다고 한다. 어리석은 왕이다.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자기 속에 빛을 둘지 모르는 것이다. 빛을 받는 것에 대한 수동태, 자기 속에 빛을 두는 것을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온 몸이 어둡다. 우리 속에 빛을 두지 못하게 하는 것을 늙고 어리석은 왕이라고 한다. כְסִל 크씰, 어리석다. 어떤것도 적용(כ)하고 평가(ס)하고 측정해서 훈련(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어리석음이 임하면, 뭔 얘기를 할 수 없다. 이야기를 하면 다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 것이다. 빛이 있으면 단계를 거쳐서 하나님의 현상과 모양으로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빛이 없어서 나에게 선하냐 악하냐 밖에 없다. 뭔 얘기만 하면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지 알고 생 난리를 친다. 제자의 삶을 살 수가 없다.
원래 훈련이라는 것은 하다보면, 채찍질을 가하고, 이것도 못해?! 재대로 해봐! 해! 못해요! 해!. 그런데 우리는 늙고 어리석은 왕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해! 그러면 나를 왜 밟아 하면서 문다. 물고 자기도 독을 다 뿜어서 죽는다. 이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주님은 여기서 우리를 구하시려 오셨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늙고 어리석은 왕 때문에 자기 속에 빛을 둘 줄 모른다. 빛으로 와도 오히려 물어버린다. 훈련시켜준다고 하면 물어버린다. 너 뭐하려고 하냐. 그러면 어떻게해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빛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그 이야기가 미케쯔에 써있다.
우리는 늙고 어리석은 왕 때문에 빛을 원하지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누카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 키슬레브 25일, 이방인은 착각해서 12월 25일로 바꿨다. 하누카에 한 아이가 사람들에게 빛이 된다고 하는 놀라운 계시를, 하늘 문을 열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יֶלֶד 옐레드 : 한 아이 = נָעָר 나아르 : 젊다
옐레드의 특징은 나아르이다. 꾀가 자기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נ)인 꾀다. 이것을 젊다고 했다. עָר 아르는 벌거 벗었다의 뜻도 있지만 훈련받다는 뜻도 있다. 수동적인 훈련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훈련시킬 수 있다.
우리의 특징은 내가 훈련받으려고 한다. 황당한 것이 제자가 되겠다해서 훈련을 시키면, 이거는 너무 심하다 하면, 자기가 훈련 스케줄 조정을 다 한다. 자기가 못하는 것을 시키면, 리더 평가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다 한다. 어떤 사람은 주님께 제 삶을 다 드린다고 하고, 모든 훈련 계획을 자기가 다 잡는다. 하나님은 돈만 대라, 이것이다. 그런데 나아르는 수동적인 훈련이다. 아이들이 훈련 스케줄을 자기가 잡는게 없다. 하나님이 모든 훈련을 하는 자들을 찾는다.
옐레드는 한 아이가 이 겨울에 태어나서 수동적인 훈련을 받고자 한다. 이것이 하누카의 빛이다. 모든 훈련을 주님이 시키는대로 받게 되길 축복한다. 주님이 훈련 안 시키시는데요? 주님은 매일 훈련시키신다. 바로 경*씨가 나의 훈련인 것이다. 경*씨가 기적이라고 이야기 하기까지 얼마나 훈련을 받으셨나? 주님이 주시는 훈련은 전혀 받지 않고, 내가 내 스케줄 다 짜고, 진짜 기적은 경*씨에게 있었다. 입을 크게 열라고 해서 입도 크게 열었다. 주님이 시키는 훈련은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 이것이 놀라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얼마나 철저히 훈련시키는지 모른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있는 작은 마음들, 신성들, 성품들을 훈련시키려고 하는 것이지 다른 것 훈련시키려는 마음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스케일이 커서 그런 훈련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주님은 내가 내 생명을 버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내가 나를 위한 생각이 아닌 상대방을 위하는 생각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훈련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제가 기절초풍하는 것 중 하나가 아내랑 10년을 살아도 아내 마음을 잘 못 읽는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가 나오면 아내는 동의를 한다. 그것을 알지만 말고 해봐. 뭐하고 살았을까? 신혼부부들도 결혼하고 나면, 민*가 호*이가 일하고 있으면 대화하고 싶어서 대화하자 하면 호*이는 일하다가 얘기하자~ 그러고선 할 얘기 없으면 다시 일한다고 한다.
우리의 훈련은 사탄은 이 세상에서 내가 높아지는 것, 내가 잘사는 것에 훈련을 받으라고 한다. 그것이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주위에 주님의 훈련을 다 깔아 두셨다. 우리는 어두워서 그것을 못 본다. 제거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제거 해야할 내 환경, 나에게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을 밝혀주는 것이 하누카이다. 하누카는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하누카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가 기적, 그리스도, 우리를 구원하는 구세주이다.
חֲנוֹךְ 하노크 : 에녹, 교육
하누카의 기적은 교육이다. 여러분이 빛을 내 안에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교육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에 의해서 인간은 변화된다.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모든 것들은 하노크에 의해서 구원받았다. 교육에 의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주님이 온 땅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한 이유는 하노크 하라는 것이다.
제가 옛날에 터키에 기도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터키에서 하누카를 기념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터키에서 하누카를 기념하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깐 하누카 촛대를 들고 가져갔다. 다행히 첫 날은 숙소에서 몰래 방에서 하누카의 불을 켰다. 저를 비겁하다고 하지 말아달라. 저도 나가서 하고 싶은데 겁이 나서 그랬다. 그런데 그 다음날 문제가 생겼다. 이동을 하는데 버스를 이동하다가 날이 저무는 것이다. 이것을 어떡하나. 그래서 버스가 중간에 쉬는 휴게소 같은데서 섰는데, 할 곳이 상점밖에 없는 것이다. 겁많은 제가 했다. 우리는 겁은 많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또 하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내가 다 연결시킨다. 과거에 봤던 CNN에서 봤던, 아랍사람들의 폭동들이 내 기억속에 있어서, 내가 하누카를 하고 히브리 말로 하면 나를 참수하지는 않을까? 이것이 우리의 타락한 기억이다. 이것이 아니라, 촛불을 켜는데, 하누카를 기념하는데 아무일도 안 일어나고 모두가 구경하고 좋았다.
그때만 해도 저는 하나님께서 왜 하누카를 터키에서 기념하라고 하시는지 몰랐다. 터키의 문제는 뭘까? 잘못된 교육이다. 교육자체를 엉뚱한 것으로 교육시키는 것이다. 한 아이가 아닌 늙은 왕을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가르칠 사람이 없다.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데 엉뚱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잘 가르치고, 어둠에 속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빛에 속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것이 빛이다.
에녹 좋아하시는 분 있나? 에녹 좋아하는 사람은 회의론자, 염세론자, 이 땅이 지긋지긋한 것이다. 유일하게 내가 빨리 가고 싶은 것이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소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아무리 해도 믿을 놈 하나 없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나는 거기로 가버리겠다. 이것이 에녹 팬들이다. 에녹 그러면 벌써 비범함이 흐른다. 에녹은 그냥 주님과 동행하다가 가버린 사람이 아니다. 에녹은 대단한 사람이였다.
유다서1: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아담의 칠대 손, 7의 빛이다. 에녹은 예언하는 사람이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다 예언에 대한 것이다. 교육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기억이다.
기억은 세 가지로 구성 되어있다.
시작 - 과정 - 끝
우리가 미케쯔에서 기억을 다룬다. 기억이 회복되는 것을 다룬다. 그렇게 되면 요셉을 얻어서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는 보통 시작을 과거, 과정은 현제, 끝은 미래라고 한다.
미래는 알 수 있나 없나?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과거의 어떤 일들은 안다라고 착각을 한다. 그런데 그 과거의 일이 지금 현재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어떻게 될 줄 모른다. 이것을 기억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억은 이미 시작과, 과정과 끝에 대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의해서 결정 되어있다. 이 전체를 안다고 한다.
교육은 무엇이 시작됐고, 어떻게 되가고 있고 어떻게 끝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נָבִיא 나비 : 예언자 = 교육자.
이미 결정된 사항을 가져오는 자이다. 알아 맞추는, 점쟁이의 개념이 아니다. 주님이 제일 싫어하는게 점쟁이다. 에언자는 교육자이다.
제자 사역을 하다보면 안타까운 일이, 그 끝이 보이니깐 너무 안타깝다. 너가 그것을 시작했냐? 그 과정속에 있느냐? 그 끝을 알아야지. 기적은 끝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이다. 예언자는 교육자다. 하노크, 에녹은 교육이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에언을 한다. 에녹은 사람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교육시키는 것이다. 하누카는 이 사람들에 대한 예언이 우리 속에 임해야 한다. 이 사람들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우리는 봐야한다. 이것이 하누카의 기적이다. 이 사람들이 누구냐?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얘들은 늙은 왕의 계열이다. 사탄이 사람들을 어떻게 사기 치고, 이 사람들이 사탄을 쫓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카인의 길로 간다.
이 세상에는 카인의 길이 있다. 우리는 다 길을 간다. 인생은 道다. 길을 가는데, 카인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인생에는 두 길 밖에 없다. 카인과 아벨의 길이다. 어느 길로 갈것이냐? 에녹은 카인의 길로 행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1. 카인의 길
카인은 자기 중심이다. קָנָה 카나, 뭔가를 사는 것이다. 무엇을? קָיִן 카인, 자기 소망(ק)이다. 소망이 자기 자신 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소망으로 가진다. 내가 잘 사는 것, 내가 살아남는 것, 자기를 소망으로 둔다. 다른 사람을 소망으로 두지 않는다. 이것을 카인의 길이라고 한다.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자기가 내 소망이다.
제가 옛날에 어떤 자매에게 형제를 소개해준 적이 있다. 겁나게 이쁜 자매였다. 그런데 이 자매가 나한테 굉장히 화를 내는 것이다. 자기를 어떻게 알고 그런 형제를 시켜줬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미안하다, 너를 잘못 알았다 이야기해줬다. 너는 카인이었는데 내가 잘못알고 아벨의 형제를 소개해줬구나.
자기가 소망이다. 그래서 누가와도 자기의 격을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자기를 완성하려고 하는데 방해가 되는 인간을 소개하다니?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화 있을진저, 여기에 화가 있다. 이 여인은 화로 되어있다. 주님은 완전히 불 속에 집어넣는다. 그 불에 자기가 타 죽는다.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살인을 한다. 카인의 길은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살인의 주된 무기가 증오, 미움이다. 카인의 길을 가지 마시게 되길 축복한다. 하누카에 우리가 얼마나 카인의 길을 사랑하는지 보고, 그 길에서 나와서 한 아이의 길에 들어서길 바란다.
2. 발람의 어그러짐
또 이 사람들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들어선다. 카인의 길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간다. 몰려가는 특징이 있다. 주로 투기를 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많다. 교회 안에 사기 당하는 사람이 많나 적나? 교회 안에 사기 당하는 사람이 많다. 제가 옛날에 애굽에 살 때 주로 피라미드를 했다. 나는 예수를 안 믿지 전에 했었는데, 제가 예수를 믿고 깜짝 놀란게, 예수를 믿고 교회에 와보니깐 엄청 많은 것이다.
발람의 특징은 삯을 바란다. 내 유익. 유다가 요셉을 왜 팔았나? 죽이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이런다. 뭐든지 자기를 위한 삯이다. 불의의 삯은 자기를 위한 유익이다. 나한테 무슨 유익이 있냐는 것이다. 나한테 유익이 있어야 한다.
제가 옛날에 제일 싫어했던 집회가 예언 집회이다. 정말 잘 맞추고 탁월한 예언 집회 정말 싫어한다. 왜? 나한테는 안 해준다. 나는 일치감치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왜 지금 들어오는 사람한테만 하는 것이다. 거기에 왜 우리가 다 몰려가는 줄 아시나? 내 예언. 다른 사람 예언 받으면, 다른 사람의 유익이 되면 그것이 좋아야지, 그런데 결국 끝까지 나는 예언 안 해준다. 하나님의 유머는 정말 대단하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큰 교회에서 예언 집회를 많이 하는데, 맨 앞에 앉아서 잤다. 그런데 자는 나를 깨워서 예언을 한다. 그렇게 한번 예언 받아봤다. 그런데 그 예언도 별 유익이 안되는 예언이였다. 나는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드는 그런 은사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위한 유익이다. 그러면 다 몰려간다. 몰려가지 마시길 바란다. 이것을 가나안 성도라고 한다. 좋은 교회 찾아서 몰려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자기를 위한 유익을 찾아서 다닌다. 자기를 위한 삯을 바라는 것이 우리 속에 있는, 굉장히 깊이 있는 하나의 삶의 형태이다. 토라는 다 이것에 대해서 배운다.
에녹은 사람의 이런 삶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이다. 예언이란 이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다. 어떻게 된다는 것이 미리 나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경험해야지 하는 기억이 아니다. 창제 전부터 이 길에 시작과 과정과 끝이 나와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고라의 길이다.
3. 고라의 패역
고라의 패역은 무엇이냐? 점점 상태가 심해진다. 다른 길이 아니라, 카인의 길을 시작하면 고라까지 온다. 한 사람 안에 있다. 패역은 반역하는 것이다. 패역에 가려면 Give가 있어야 한다. 주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인데 만약에 주는 것이 Give to receive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주는 것은 언제나 탁월하기 때문에 Give는 리더십을 가져온다. Give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여서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리더십이 주어진다.
고라는 이스라엘 자손의 리더십들, 250명을 리더하는 자가 되었다. 이것을 Give to receive. 목적이 받으려고 하는 목적이다. 내가 받으려고 하는 목적으로 리더십을 가지면 패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겉모습은 Give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모세를 리더십으로 모시고 있다. 같은 길을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것을 패역이라고 하느냐? 정말 있지 말아야 하는 일이 갑자기 생긴 것이다.
카인은 말썽 피우는 불량배 아들과 비슷하다. 그런데 고라는 그렇지 않다. 고라는 주겠다, 이러다가 패역한다. 어느 날 갑자기 패역한다. 유다는 왜 패역 했을까? 유다는 어느 날 갑자기 그런다. 우리는 목적이 내가 받고자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숨겨진 목적이면 우리는 고라가 된다.
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이들의 특징이 몸에 대한 것이다. 몸을 기른다. 사람은 몸을 기르면 안 되고 영혼을 길러야 한다. 사람이 성장하고 기르는 것은 영혼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몸을 기르는 일이 익숙하냐면, 제자의 삶을 살다가도 삶이 똑같다. 처음 교회 옆으로 이사올 때는 Exciting하다. 이제는 나는 어떻게 될 것이다. 근데 와서 보면 별거 없다. 괜히 새벽기도를 가야하는 부담감만 늘어난다. 죽을 맛이다. 교회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 오면 괜히 미안하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보면 변한게 하나도 없다. 몸은 그렇게 안 변한다. 제가 별로 안 변한다. 키도 별로 안 크고, 몸이 변하는 유일한 길을 살찌는 것 밖에 없다. 몸에 속한 것은 이미 규정되어있다. 물질 세계는 이미 구조화 되있어서 변화가 없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특징, 육신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 땅에서 사는 것 밖에 모른다. 기억이 이 땅에 것밖에 없다. 하늘의 기억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몸만 기른다. 양 떼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 몸만 기르고, 이 땅에서 어떻게 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예수 믿고 이 땅에서 행복해져라 이 이야기만 한다. 자기 몸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
죽어서 뿌리없는 열매없는 가을나무와 같다. 저는 제 나이 28살에 이것을 봤다.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28년을 살았는데 열매가 하나도 없고, 뿌리까지 뽑혀 있어서 열매를 맺을 가능성도 없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사탄의 형상을 쫓아가고, 자기 자신의 몸을 쫓아가는 것은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가는 별들이 되게 한다. 사람이 몸을 중요시 여기는 것을 헬라, 인본주의라고 했다. 하누카의 불빛은 다 이것을 가르친다. 늙은 왕이 가르치는 것을 에녹이 가르친다.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 분명히 가르쳐주면 기적이 일어난다. 구원이 임한다. 더 이상 그 삶을 살지 않는다.
카인의 길, 발람의 길, 고라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적이다. 이 길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기적이 아니다. 다 멸망할 것이다. 길을 바꾸는 것이 기적이다. 헬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스포츠를 제일 좋아한다. 모든 스포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최고로 여기는 스포츠이다. 올림픽은 다 영적인 것이 연관되어있다. 영적으로 사악한 세력이 연관 되어서 인간이 몸을 제일 중요시 여기게 한다.
저희 아버지는 몸을 끔찍히도 사랑하시고 관리하셨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몸도 관리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당신의 몸만 관리하셨다. 헬라는 몸의 아름다움을 끔찍히도 좋아한다. 그리고 동성애를 좋아한다. 카인, 발람, 고라의 길은 다 이런것으로 나타난다. 동성애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좋은대로 하는 것이다. 사회, 이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모든 인간이 다 동성애를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다 상관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 사실은 이것을 넘어서서 더 악한 이유는 씨를 싫어한다. 씨로 사는 삶의 스타일을 싫어한다. 씨는 다른 어떤 존재를 위해서 내 삶을 줘야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한다. 왜 그럴까? 자기 삶을 못 사니깐. 저도 결혼하고 나서는 일 년 후에 애를 가지자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다 그런다. 씨를 중요시 여기지 않고 내가 살아야 한다. 그런 씨앗의 삶은 살려고 하지 않는 것들은, 제자를 안 삼으려고 한다. 신앙생활은 내 구원,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누군가를 영적으로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하나?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이것이 뭔지 모른다. 왜? 에녹이 없어서 그렇다. 헬라와 인본주의 아래에서 커서 그렇다.
하누카에 에녹을 살리지 않겠는가? 에녹을 살려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가는 별의 길에서 벗어나서 한 아들, 한 아이의 음성을 듣는 사역으로 나가시게 되길 축복한다. 주님은 수절절에 빛으로 오셔서 이 사람들의 빛이 어떤 것임을 알려주셨다. 더 이상 이 길로 가지 말고 주님의 길로 가자라고 말씀하신다.
* 기도
하누카의 기적이 우리에게 임하여 주옵소서. 카인의 길, 발람의 길, 고라의 길에서 나오는 기적이 우리에게 있게 하여주십시오. 주님 내가 거기서 나가겠습니다. 헬라의 인본주의의 가르침에서 나가겠습니다. 이것이 빛의 축제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카인의 길, 살인하는 길, 미움과 증오로 사는 길. 내 마음에 안드는게 있으면 미워하고 나를 위해서 끊임없이 사고 또 사는 카인의 길에 빛을 비춰주십시오. 카인의 길에서 나오는 기적을 주십시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토라지고, 화내고 자기 중심적이어서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미워합니다. 주님, 이 길에서 벗어나는 기적을 주십시오. 이제 그 빛을 비춰주십시오. 주님 발람의 길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끊임없이 내 유익을 위해서, 자기 삯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일할 줄 모르는,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생각을 할 줄 모르고, 그것이 삶이 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내 유익, 그것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발람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우리를 발람의 길에서 꺼내주십시오. 끊임없이 내 유익만을 생각하고, 자기 연민에 휩싸이고, 내 이익이 적다고 이야기하는, 이 발람의 길에서, 저주의 삯을 바라는 저주 가운데서 우리는 구해주십시오. 이제 다른 사람의 삯을 위해서 일하게 하여 주십시오.
고라의 길을 절대로 가서는 안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주는 것을 통해서 리더십을 얻으려고 하고, 주는 것을 통해서 결국은 내가 받으려고 하고, 결국은 나에게 오는 것이 없을 때 패역하게 되는 여기서 나를 구해주십시오. Give to Receive. 결국은 받기 위해서 주었던 것, 남편, 아내, 교회, 주님에게 조차 결국 내가 받으려고 헌신하고 봉사했던 것, 주님, 이 고라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주는 것을 통해서 나를 가장하고, 결국은 나에게 오는 것이 없을 때 패역하게 되는 길에서 구원하여주십시오. 내가 받으려고 헌신하고 봉사했던, 주님이 고라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주십시오.
이 모든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너무나 쉽다. 빛만 비춰주면 된다. 이 길에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것을 비춰주면 이 길을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우리는 이 길에 대한 빛을 비춰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면 된다. 한 아이, 우리의 빛, 우리가 유일하게 바라는 빛이 비춰졌다.
주님, 많은 날들을 이 길에서 벗어나고자 노려해왔지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내가 받아야 되는 것은 오직 빛 되신 당신 뿐이라는 것을 참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압니다. 하누카의 시기에 나는 오직 당신만을 받아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에녹의 길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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