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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자유인의 삶을 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이브의 질투
여자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남편들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아담이 며칠 동안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자 하와는 마음이 심란해졌습니다.
“당신... 다른 여자들이랑 있다가 온 거죠?”라고 따졌습니다.
아담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 세상에 당신 말고 여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라고 대답했습니다.
말다툼은 아담이 잠들었을 때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아담은 누군가가 자기 가슴을 콕콕 찌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하와의 짓인 것을 보고는 “당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하와가 하는 말, “당신 갈비뼈를 세어보고 있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부부는 서로 신뢰하는 관계입니다.
부부는 서로 의심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부부는 서로 깊게 신뢰하며 믿어주는 관계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조금의 의심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깊이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행복하게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P4.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5월10일에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연설할 때 “자유”라는 단어를 36번이나 사용하면서 취임 연설을 하였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 이래 자유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취임연설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평화가 아니라 자유라는 사실이다.
어느 분께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방법을 평화를 주장하면 좌파요 자유를 주장하면 우파라고 정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만큼 우리들에게는 자유가 중요한 것이다.
자유라는 단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단어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잘 다듬고 지키는 것이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가 뭐라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민족으로 선택받은 민족이다.
중동지역에는 각 민족마다 섬기는 대표적인 신들과 잡다한 신들이 존재한다.
애굽인들, 7족속의 가나안인들, 모압인들, 암몬인들, 블레셋인들, 아말렉인들, 아람인들이 각각 다른 신들을 섬긴다.
바벨론 전통종교인 일월성신 곧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섬기는데, 각각 민족마다 다른 이름으로 태양신과 달신과 별신들을 섬긴다.
그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고 사람을 만들어주시고, 신중에 신이요 왕 중에 왕이요 주 중에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민족은 없다.
어느 민족도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신으로 섬기는 민족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맺으신 언약을 상기시켜주신다.
모세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어내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리면서 제사를 올려드리는 민족으로 세우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본적으로, 근본적으로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어느 때가 되었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며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민족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차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D4.
① 제사드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제사를 받고 싶어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올려드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제사를 올려 드리려고 하면 반드시 제물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갖가지 제물을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와 고운 가루를 제물로 삼아서 제사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제사를 올려드리는 방법으로 화제, 전제, 요제, 거제를 드리라고 하신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할 것이기 때문에 소제, 전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소제를 드리려고 하면 고운 가루와 기름을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이고, 전제를 드리려고 하면 포도주를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와 같은 모든 제사에 소와 양과 염소, 비둘기를 기본 제물로 삼고 아울러 소제와 전제를 곁들여서 제사를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부지 중에, 실수로 범한 죄가 있더라도 반드시 속죄제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종류의 죄든지 부지 중에 범한 죄라 할지라도 반드시 사함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속죄제를 드리게 하신다.
죄 사함을 받지 않으면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뻔히 죄인 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범한 죄에는 사하지 않고 반드시 징계하신다.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아야 할 백성들이 고의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범한 죄는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징계하라고 말씀하신다.
②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라고 하시는 하나님
종은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다.
종은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신분이다.
주인이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하면 종은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다.
종이란 신분은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신분이기 때문에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종은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제사를 드릴 수 없다.
제사와 달리 예배는 남몰래 은밀한 곳에 숨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배는 소리 내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기도하고 찬양 부르면서 말씀을 읽고 나누면서 남몰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지만 제사는 남몰래 드릴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제물을 잡으면서 피를 흘려야 하고, 온전하게 제물을 불에 태워야 하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냄새가 나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 금방 주변에 알려지게 된다.
그래서 종은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제사를 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면서 조상들에게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뀐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껏 제사를 올려드리게 되는 것은 이제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 되었다는 증표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애굽의 종된 신분이 아니라 어엿한 자유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서 기업을 얻게 되면 더 이상 억압과 핍박과 박해와 온갖 시련 속에 살아야 하는 종의 신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껏 제사를 올려드리는 수 있는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더 이상 죄와 세상과 사망과 율법과 권세의 종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31-3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모든 것들의 주님이 되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더 이상 죄와 사단과 마귀와 어둠의 영들과 악한 영들과 죽음과 세상의 온갖 권세들의 억압과 속박과 핍박의 종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③ 희생양으로 경고하시는 하나님.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방종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유를 잘못 판단하면 자기 마음 먹은 대로, 생각나는 대로 살아도 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속박이 아니라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그 자유를 허락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와 규례를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시면서 더욱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말씀과 법도와 규례를 정해 주셨고, 그 정해진 말씀에 따라서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 많은 말씀들 중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수없이 말씀하신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하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수없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신신당부하신다.
심지어는 안식일을 범하게 되면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는데도 안식일에 땔감을 하러 간 백성이 있었다..
땔감을 하러 간 사람을 본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들 앞으로 끌어온다.
땔감을 함으로 안식일을 범하게 된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모세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여쭈게 된다.
하나님은 35절에서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36절에서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하나님은 안식일을 범한 사람을 백성들에게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땔감을 함으로 안식일을 범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 사람의 인격도 보호해 줘야 하지 않나?
살인이나 강도나 사기와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중죄인들도 그들의 인격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데, 어떻게 수 많은 백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백성들이 돌로 쳐서 무자비하게 죽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공개적으로 회중들이 돌로 쳐서 죽이는 사건을 통해서 희생양으로 삼으시려는 것이다.
희생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백성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려고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희생양을 삼음으로써 백성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백성들이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희생양을 삼지 않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안식일을 범하는 죄악들은 수도 없이 발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본보기로 삼으로써 더 이상 안식일을 범하는 죄악이나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을 범하는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고고고고고대시대의 백성들은 오늘날의 백성들처럼 지혜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좀 우둔하게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원주민들이나 아마존강의 원주민들을 TV화면을 통해서 보면 어림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최첨단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지구촌 일부 지역에서의 원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고고고고고대사회에서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모습을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봄으로써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범한 사람을 징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함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시기 위해서 희생양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희생양으로 삼으시고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어 하시는 것일까?
운전자들이 종종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범칙금을 내라는 통지서를 받는 경우가 있다.
범칙금을 내라는 통지서가 일종의 희생양, 본보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어쩌면 희생양을 봄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기 전에 우리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④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을 항상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와 규례와 율법과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율법을 잘 지키지 않음으로 안식일에 땔감을 하러 가는 죄를 범하게 되고, 온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규례를 잘 지키면서 살아가게 하려고 갖가지 방법들을 제시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38-41절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다양한 방법들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옷단 귀에 술을 만들어 달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옷단 귀에 술을 만들어 달고 입는 것이 겉옷이다.
복음서에 보면 겉옷이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하는 데, 겉옷이 바로 옷단술을 가리키는 것이다.
술은 4개의 줄로 만들어 달아야 하는데, 4개의 줄 중에 하나는 반드시 청색으로 줄을 만들어 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찌찌트(히브리어: ציצית, tsitsit, 옷단술)라는 겉옷을 머리에 감싸고 다닌다.
찌찌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찌찌트를 쓰면 하나님 앞에서 “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라는 증표가 되고, 하나님께서도 찌찌트를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면서 “그래 내 백성이구나.”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옷단술, 찌찌트는 유대인들이 머리로부터 온몸을 감싸듯이 쓰고 다니는 기도숄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도 찌찌트를 하시고 다니셨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붙잡고 고침을 받는 장면이 있다.
혈루증 여인이 붙잡은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걸치고 다니셨던 기도숄에 매달려있는 옷단술이다.
이스라엘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찌찌트를 하고 다닌다고 보면 된다.
기도숄의 네 모퉁이에 4가락의 줄이 매어 있다.
4개의 줄 중에 한 줄은 청색이라야 한다.
청색을 달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색깔이 바로 청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이야 청색을 구하기가 너무 쉽지만, 고고고고고대사회에서 청색을 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청색 줄은 매우 고가의 값을 치러야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청색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고대사회에서 옷단술에는 청색 줄을 달고 머리에 쓰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들은 매우 고가의 청색을 구하기가 비교적 쉬울 수 있었지만, 일반 서민들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간기 시대와 예수님 시대에는 산해드린공회에서 4개의 줄 중에 한 줄은 청색으로 달아야 하는 제도를 모두 흰색으로 달아도 되도록 제도를 고치게 된다.
이 찌찌트의 줄을 매는 방법이 613개의 율법을 의미한다.
찌찌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613개의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찌찌트를 머리로부터 온몸을 감싸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결단한다.
백성들 중에 한 사람이 안식일을 범함으로 인하여 회중들의 돌에 맞아서 죽음을 당하는 사건을 희생양으로 삼으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항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을 기억하며 그 율법을 반드시 지키면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옷단술을 매달고 다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기억하고 지키면서 살기 위하여 옷단에 술을 달고 다니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이 기도숄에 옷단술을 매달고 다니는 것은 마치 자가용 차량을 운행하는 사람이 자기 차량에 증표를 하나씩 달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저도 차량에 십자가를 매달고 다닌다.
십자가가 주술이 될 수는 없지만,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항상 조심해야지, 신앙인답게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굳이 찌찌트, 기도숄, 옷단술을 매고 다닐 이유가 없다.
우리 신앙인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는 인식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며 살아야지.’라고 다짐하며 사는 것이다.
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인식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더 이상 애굽의 종이라는 신분으로 살지 말고 새로운 자유인이요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온 몸으로 느끼고 인식하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율법,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지를 제대로 깨달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이끌어낸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없이 하나님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인식하며 고백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하나님의 말씀, 계명, 율법을 잘 지키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수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를 말씀하시면서 깨우쳐 주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래서 애굽에서 보았던 잡동산이 신들을 섬기지 못해서 안달한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는 가나안의 잡동산이 신들을 섬기지 못해서 안달한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이 매우 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처럼 보인다.
여호와 하나님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살아 계신 분이지만, 잡동산이 신들은 다양한 형태로 신들의 형상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쉽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양한 모습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대단하여 뭔가 해낼 것 같은 모습으로 신들의 형상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신들이 아니라 죽은 신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들을 최고의 신들로 믿고 의지하고 섬기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것이다.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이 무지몽매한 인간들에게 이런 신들을 섬기고 싶은 욕망, 욕구를 가지도록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누누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매일매일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한 지도 몇 년 지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갈라주신 홍해를 직접 건넜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신 물을 마셨고, 므리바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직접 마셨고,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맛보았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직접 들었고, 매일매일 이른 아침마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둔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인가.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똑똑하고 다재다능하고 지혜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데도 어리석기가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말로 표현하기가 곤란할 정도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신의 형상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어리석은 인간을 대면하면서 은혜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께서도 너무너무 답답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애쓰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여전히 갓난 어린아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는 삼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명확하게, 정확하게, 올바르게, 많이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온 몸과 온 피부로 느끼고 인지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일매일마다, 시간 시간마다 하나님을 인지하고 깨닫고 고백하면서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B4 & L4.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리면서 제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민족으로 세워짐을 입는다는 것은 더 이상 종의 신분이 아니라 자유인의 신분, 주인의 신분으로 승격되었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 때의 신분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의 신분은 완전히 달라진다.
애굽에서는 종이라는 신분이었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주인이라는 신분으로 바뀌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생활이란 430년 동안 애굽제국의 종이라는 신분에서 살았던 종의 습관, 풍습, 의식, 자세와 태도를 말끔히 씻어내는 과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애굽에서 습득되었던 종과 같은 삶을 훌훌 털어내고, 이제는 새로운 자유인, 주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의식체계를 전환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주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기에는 준비가 덜 된 상태이다.
여전히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그리워하며 과거에로의 삶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종이라는 신분을 지어버리고 완전한 주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게 하신다.
광야 생활을 통해서 과거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완전한 주인이라는 의식체계로 바꾸어가는 시간이 4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말할 것 없이 우리 신앙인들은 자유인답게, 주인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유인답게, 주인답게 사는 삶이 바로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기 때문에 이제는 온갖 죄에서 자유, 율법에서의 자유, 죽음에서의 자유, 온갖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에서의 자유, 불확실한 장래에서의 자유, 악한 영들의 미혹에서의 자유를 누리며 자유인답게 살아갈 특권과 의무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자유,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신 자유, 신앙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자유를 잘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유인으로,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모두 9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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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기도올립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헤입니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은혜로 감싸 주시길 기도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