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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봉
비로봉
백두대간(소백산 이어걷기)(고치령~국망봉~비로봉~연화봉~죽령)(261018. 일)
(낙동산악회 20기 - 23구간)
□ 때 : 2026. 10 18(일)
□ 곳 : 소백산 구간(고치령~마당치~늦은맥이재~상월봉~국망봉~비로봉~제1연화봉~연
화봉~제2연화봉~죽령)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5명
□ 날씨 : 흐리고, 안개 끼고, 비 몇 방울 떨어짐
□ 길 : 흙길+푸석돌 길+널빤지 계단 길+쇠 계단 길+시멘트 길(연화봉~죽령 사이)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6. 10. 18(일) 02:24~12:53(10시간 29분, 쉰 시간 포함)
□ 푯말에 터 잡아 셈한 거리
○ 고치령—11.1km—국망봉—3.1km—비로봉—4.3km—연화봉—7.0km—죽령
(=총 25.5km)
※ 이 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2026. 10. 17(토) 02:24 고치령(760m-‘길 푯말’) 나섬.
○ 03:06 형제봉 갈림길(1032m-‘길 푯말’)
○ 03:26 마당치(910m-‘푯말’)
○ 04:35 연화동 삼거리
○ 05:17~05:22 웃옷[파카] 입음
○ 05:40~05:50 비옷 바지 입음.
○ 06:05 늦은맥이재
○ 06:39 상월봉 갈림길, 상월봉 아래(늦은맥이재 쪽)
○ 06:43 상월봉 갈림길, (국망봉 쪽)
○ 06:57~07:21 국망봉(1420.1m-‘푯돌’), 아침밥
○ 07:34 초암사 갈림길
○ 07:55 (퇴계이황 선생이 다녀간) 소백산성 푯말
○ 08:30 「어의곡」 삼거리
○ 08:40~08:47 비로봉(1439.5m-‘푯돌’), 머묾.
○ 08:57 천동 갈림길(1385m-‘길 푯말’),
○ 09:42~09:50 제1연화봉(1394m-‘길 푯말’) 아래, 머묾.
○ 10:34~10:38 연화봉(1383m-'지도 푯말‘), 머묾.
○ 10:44~10:48 화장실, 지도, 길 푯말 있는 곳. 머묾.
○ 10:50 소백산 천문대
○ 11:26 제2연화봉 전망대
○ 11:35 제2연화봉(1357.3m-‘지도 푯말’) 푯돌
○ 12:53 죽령(해발 696m-‘푯돌), 죽령 탐방 지원 센터, 소백산 국립공원 (푯돌), 죽령 휴게소 주차장.
※ 산행 끝.
고치령
산령각
국망봉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상월봉
용담
'용담과 여러해살이풀'
국망봉
수리취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잎과 줄기가 시들었다
비로봉
연화봉
이름을 알 수 없다
제2연화봉
제2연화봉 푯돌
투구꽃
'미나리아재빗과 여러해살이풀'
죽령
죽령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6. 10. 17(토) 22:37쯤 인제대 역을 떠난 버스는 다음날인, 2026. 10. 18(일) 01:57쯤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닿았다.
트럭을 타고 02:19쯤 고치령에 닿았다.
고치령(760m-‘길 푯말’)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마락리를 잇는 고개”로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고개를 넘나드는 차량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치령에는 푯돌과 산령각(山靈閣), 길 푯말이 있다,
대원들이 푯돌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02:24 고치령을 나서 42분쯤 뒤 형제봉 갈림길(1032m-‘길 푯말’)에 닿았다.(03:06)
고치령에서 1.9km, 국망봉까지는 9.2km 거리다.
고치령을 나설 때부터 발이 아파 천천히 걸었더니 같이 나섰던 대원들은 멀리 가버리고, 혼자서 터벅터벅 걸었다.
형제봉 갈림길에서 20분쯤 뒤 마당치(910m-‘길 푯말’)에 닿았다.(03:26)
마당치는 고치령에서 2.8km, 국망봉까지는 8.3km 거리다.
마당치에서 13분쯤 뒤 나무 계단이 나오고 1분쯤 걸었다.
마당치에서 57분쯤 뒤 또 나무 계단이 나오고 3분쯤 걸었다.
마당치에서 1시간 9분쯤 뒤 길 푯말(↓고치령 6.1km, ↑국망봉 5km, ←연화동 3km)이 있는, 연화동 삼거리에 닿았다.(04:35)
처음부터 가을 윗옷[티셔츠]에 가을 조끼와 가을 웃옷[파카]를 입었으나 세차게 부는 바람에 추위를 느껴 가을철 방수 웃옷[파카] 하나를 더 껴입었다.(05:17)
방수 웃옷을 입고 5분쯤 뒤 길을 나서(05:22) 18분쯤 뒤 빗방울이 나뭇가지에 내리는 소리를 듣고 비옷 바지를 꺼내 입었다.(05:40)
발싸개[스패츠]와 등산 신발을 벗고, 비옷을 입어야 했으므로 땅에 퍼질러 앉아 입었다.
비옷 바지를 껴입으면서 10분쯤 시간이 걸렸다.
비옷 바지를 입은 뒤 길을 나서(05;50) 15분쯤 뒤 「늦은맥이재」에 닿았다.(06:05)
「늦은맥이재」는 고치령에서 9km, 국망봉까지 2.1km 거리다.
이 일대에는 나무 몸통에 하얀 반점 같은 것이 많이 새겨진, 물푸레나무가 많다.
「늦은맥이재」에서 34분쯤 뒤 상월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닿았다.(06:39) 바로 오르려면 바위를 타고 네 발로 기어올라야 한다.
그냥 지나쳤다.
이 갈림길에서 4분쯤 뒤 국망봉 쪽 상월봉 갈림길에 닿았다.(06:43)
상월봉에 오를까 하다가 같이 걷던 왕정문 님이 오르지 않겠다 하여 나도 그냥 지나쳤다.
전에 여러 번 올랐다. 안개도 끼어 둘레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오르지 않았다.
이곳부터 철쭉이 굴[터널]을 이루고 수리취가 검게 변하여 많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월봉 아래 갈림길에서 14분쯤 뒤 국망봉(1420.1m-‘푯돌’)에 닿아(06:57) 사진을 찍고 나서 바람을 피하여 바위 아래서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 국망봉을 나서(07:21) 13분쯤 뒤 길 푯말(↓국망봉 0.3km, ↑비로봉 2.8km, ←초암사 4.1km, ←돼지바위 0.6km)이 있는, 초암사 갈림길에 닿았다.(07:34)
600m쯤 떨어져 있다는 돼지바위를 보러 가지 않았다.
초암사 갈림길에서 21분쯤 뒤 (퇴계 이황 선생이 다녀간) 소백산성 푯말이 있는 곳에 닿았다.(07:55)
여러 번 대간 길을 걸었으나 이 푯말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무 계단과 쇠 계단 여러 개를 지났다.
초암사 갈림길에서 56분쯤 뒤 어의곡 삼거리에 닿았다.(08:30) 국망봉에서 2.7km, 비로봉까지 0.4km 거리다.
어의곡 삼거리에서 10분쯤 뒤 비로봉(1439.5m-‘푯돌’)에 닿았다.(08:40)
비로봉엔 예상보다는 바람이 약하게(?) 불었다.
악명 높은 소백산 바람이고, 일기예보를 들어봐도 강풍이 예상된다고 하여 잔뜩 움츠렸으나 실제로는 세게 불지는 않았다.
안개가 끼어 둘레는 볼 수 없었다.
7분쯤 머문 뒤 비로봉을 나서(08:47) 10분쯤 뒤 천동 갈림길(1385M-‘길 푯말’)에 닿았다.(08:57)
천동 삼거리에서 45분쯤 뒤 제1연화봉(1394m-‘길 푯말’) 길 푯말이 있는 곳에 닿았다.(09:42)
실제 제1연화봉은 뒤쪽 10m쯤 위에 있다.
과일을 나눠 먹으면서 8분쯤 머문 뒤 제1연화봉을 나서(09:50) 44분쯤 뒤 연화봉(1383m -'지도‘)에 닿았다.(10:34)
연화봉에서 죽령까지는 7km 거리로, 흙길 뒤 시멘트 길이 이어진다.
4분쯤 머문 뒤 연화봉을 나서(10:38) 6분쯤 뒤 화장실과 지도, 길 푯말이 있는 곳에 닿아(10:44), 4분쯤 머문 뒤 길을 나서(10:48) 2분쯤 뒤 소백산 천문대 아래를 지났고(10:50), 여기서 36분쯤 뒤 제2연화봉 전망대에 닿았다.(11:26)
제2연화봉 전망대에서 9분쯤 뒤 제2연화봉(1357.3m-‘지도’) 푯돌이 있는 곳에 닿았다.(11:35)
이제 본격적인 시멘트 내리막. 아픈 발로 말미암아 고통이 밀려왔다.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발마저 아팠으므로 예쁘게 물든 단풍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군데군데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을 제대로 감상할 마음도 나지 않아 사진 몇 장면만 찍고 걸었다. 아쉬웠다.
제2연화봉 푯돌 있는 곳에서 1시간 18분쯤 뒤 죽령(696m-‘푯돌’)에 닿아(12:53) 산행을 마쳤다.
아픈 발을 핑계로 느릿느릿 걸었다.
끝까지 함께한 심민철 대장 님과 쏘롱라 님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회장 님, 기사 님 수고했고, 세 분 대장 님, 대원 모두 수고 많이 했다.
죽령으로 이어지는 7km 가까운 시멘트 내리막을 걷느라 지루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안개와 구름으로 둘레 구경은 못했으나, 비를 맞지 않아 다행이었다.
날씨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자연이 주는 변화를 우리는 수동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죽령~고치령 구간은 죽령에서 시작해 고치령 쪽으로 걷는 것이 시멘트 길 7km 가량을 내려서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북진(北進)하는 것이 시멘트 내리막을 걷는 고통을 덜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생강나무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사스래나무(?),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산딸기나무[산딸기], 팥배나무[감당 01(甘棠), 왕잎팥배, 왕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신갈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구절초, 미역취(?), 수리취[구설초], 쑥부쟁이
○ 미나리아재빗과 갈래 : 투구꽃
○ 백합과 갈래 : 비비추,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 앵초과 갈래 : 금강봄맞이, 까치수염
○ 용담과 갈래 : 과남풀[용담, 네귀쓴풀, 용담초, 초용담]
○ 장미과 갈래 : 짚신나물
○ 질경잇과 갈래 : 질경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풀
○ 뽕나뭇과 갈래 : 환삼덩굴[들초, 한삼, 한삼덩굴]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나를 돌아보는 걷기
백두대간을 알고 걷기 시작하고 오래지 않은어느 날 새벽.
고치령에서 도래기재 구간을 걸을 때 앞서가던 대원들은 몇 발 앞서가고, 뒤에 오는 대원들 불빛은 멀리 깜빡거리고, 어느 호젓한 길을 나는 홀로 걷고 있었다.
나는 무슨 까닭으로 이른 새벽에 낯선 곳을 외롭게(?) 걸을까?
멀리서 이름 모를 짐승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어릴 적 겁이 많았던 내가 낯선 강원도와 경북 지방 경계를 걸으며 무서움도 떨쳐 내고 걷고 있었다.
찬바람 몰아치는 캄캄한 새벽.
이번에 고치령을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서 걷던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되어 가는 지난 시절. 어느 새벽에 느꼈던 묘한 느낌이 밀려왔다.
외로움이었을까?
갈래짓기 어려운 여러 생각이 들어왔다가 빠져 나갔다.
그동안 세월과 시간이 흐르면서 내 생각은 더 깊어진 것일까?
깊이와 너비가 좁아진 것일까?
짧게 지나가는 두서없는 생각.
거의 30년 전 내가 일터에서 승진시험을 앞두고 이른 새벽 책상 앞에서 책을 펼쳤을 때 머릿속을 필름처럼 뒤죽박죽 스쳐갔던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앞에 읽었던 책장을 다시 넘겨 읽어보곤 했다.
그때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으나 정리되지 않은 이런저런 잡생각을 많이 했다.
번다한 도회지에서는 갖지 못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길을 걸으면 일반 산보다는 더 깊이 있는 생각에 잠길 수 있다.
걷는 즐거움과 생각하는 즐거움. 온갖 신경 쓰이는 일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찰나이고 틈이다.
거기에 나무와 들꽃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을 더하는 대간 길 걸음이다.
2. 자기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설물
국립공원이나 백두대간 길 따위를 걷다 보면 군데군데 소방 푯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소방 푯말과 길 푯말을 자세히 보면서 걸으면 내가 어디쯤 걷는지, 내가 지나는 곳이 해발 몇 m쯤 되는지 알 수 있어 좋고, 내가 길을 나선 곳에서 몇 km쯤 거리를 걷고 있는지, 남은 거리는 얼마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치령~소백산~죽령 구간에는 세 종류의 소방 표시가 있었다.
고치령에서 마당치 구간에는 00 01~00 04까지 4개, 마당치에서 비로봉~연화봉~죽령 가는 길에는 소백 01~소백 40까지 40개, 그 뒤 죽령까지는 00 01~00 06까지 6개 소방 푯말이 있었다.
소방 푯말은 500m 거리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그러므로 고치령~마당치 구간에 소방 푯말이 4개 있는 것은 거리가 2km 라는 뜻이다. 물론 고치령부터 바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거리와 조금 차이가 있긴 하다.
마당치에서 연화동~죽령 구간에 소방 푯말 40개 있으므로 거리가 대략 20km, 그 뒤 죽령까지 소방 푯말 6개가 있으므로 거리가 대략 3km라고 알면 된다.
그래서 고치령~죽령 구간에 소방 푯말 50개(4+40+6개)가 있었으므로 거리가 대략 25km쯤 된다고 보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3. 기상 예보가 빗나갔을 때 느끼는 즐거움
거의 일주일 전부터 “10/18(일) 새벽부터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이번 비는 가을비 치고는 꽤 많은 양이고 요란할 것이다...” 뭐 이런 예보를 쏟아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가을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산을 걷는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되기는 어렵다.
특히 ‘칼바람’으로 유명한 소백산이면 최악의 조건이다. 소백산에는 초속 33m를 초과하는 센 바람이 분다는 예보였으니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아내는 그런 예보를 듣고 “이번에는 한 번쯤 쉬세요. 늘 가는 산. 한 번 빠진다고 누가 벌금이라도 받으러 온답디까?...”
달콤한 유혹이다. 날씨를 걱정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산에 다니면서 비 한두 번 맞나요? 산에 다니는 사람은 일상인 것을...” 나는 그럴싸하게 둘러댔다.
다행스럽게 일기예보는 빗나갔다. 덕분에 비를 맞지 않고 산행을 끝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예상이 들어맞아 다행일 수도 있도, 빗나가 다행일 수도 있다.
세상일이란 그런 것이다.
4. 미리 호들갑 떨었다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에 10/18(일) 전국에 많은 비를 뿌린다는 말을 들어 잔뜩 긴장했다.
05:17쯤 세찬 바람에 웃옷[파카] 위에 또 다른 웃옷[파카]을 덧입었다.
05:40쯤에는 내리는 빗소리에 놀라 미리 비옷 바지를 입었다.
비옷 바지를 입기 위해서는 등산 신발을 벗어야 했으므로 땅에 퍼질러 앉아 신발을 벗고 비옷 바지를 입었다.
「제1연화봉」 조금 아래 길 푯말이 있는 곳에 닿아서는 후드득후드득하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비옷까지 꺼내 입었다. 중간에 비를 맞고 꺼내 입는 번거러움을 덜기 위해서...
「제1연화봉」 길 푯말 있는 곳을 나섰더니 몇 방울 내리던 비는 멎었다.
거추장스러운 비옷을 연화봉까지 입고 걸었다.
몸은 둔하고, 조금 덥기까지 했다.
상황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데 지레 겁을 먹고 호들갑 떨었으니 하지 않아도 될 불편을 불러들여 기운 빠지게 하는 꼴이 되었다.
호들갑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걷는 내내 발이 아파 고통스러웠다
몇 달 전부터 오른쪽 발이 조금 불편한 것을 미련하게 참고 시간을 보냈다.
고치령을 나설 때부터 발이 시큰거리고 불편한 것을 참고 걸었다.
고통은 점점 깊어 가고, 갈 길은 멀고...
이를 악물었다.
연화봉을 지나 죽령에 이르는 시멘트 길은 고통을 더 키웠다.
특히 가파른 내리막 시멘트 길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몰고 왔다.
평소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침이라도 맞아야 했으나 일터에 일이 바빠 일과시간에 자리를 뜨기 어려웠고, 다른 까닭은 전에 침을 잘못 맞아 후유증을 크게 겪은 뒤로 침을 잘 맞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침 한 번 맞으면 좋을 것을 아픔을 반복하고 있다.
미련함이 고통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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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길,행님.!!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아픈 발을 이끌고 긴 산길과 아스팔트 딱딱한 길을 걸었으니, 그 고통이 크게 느꼈을 것이, 나에게도 와닿네요. 치료 잘 받으셔서 다음 산행에서 만나요.
세찬 바람 불어오는 소백산 구간을 머리카락 휘날리며 내달리며 다양한 경험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사뿐사뿐 걸었을 유도사 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해 아쉽습니다.
수고했고, 고압습니다.
새벽 5시에 올라온 글.
밤을 지새웠을까요?
아침잠이 없어 새벽에
일어 났을까요?
항상 같이 걷다가
이번엔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불편한 발목임에도 불구하고 25km를 걷다니 경험없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낙동산악회의 귀감이시니
편칞으시면 아니되옵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산에서는 굼뜬 걸음.
내려와서는 게으름까지 겹쳐 산에 다녀온 내 작은 발자취를 갈무리해서 블로그와 카페에 올리는 일이 시간에 쫓겨(?) 새벽녘에 올렸습니다.
게으른 학생이 공부를 미뤄두었다가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승승장구 님이 빨리 걸어 호탕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
무엇보다 참고 걸으셨을 오른쪽 발이 걱정입니다.ㅠㅠ
새벽 산길을 홀로 걸으며 나누신 '나를 돌아보는 생각들'과 길가에 피어난 투구꽃, 용담, 수리취를 하나하나 눈에 담아주신 마음의 여유가 글 너머로 진하게 전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몸은 잘 정돈되고 작은 우주임을 느낍니다.
모든 기관이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아주 정밀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복잡한 기계입니다.
몸 기관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연결되어 관현악단 연주, 단원 모두가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된 목표를 위해 호흡을 같이하는 합창단 음악처럼 기능함을 압니다.
문화 예술 여러 부문이 하나가 되어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듯 종합 예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작은 아픔, 불편을 방치하여 더 큰 불편을 겪은 것 같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찬바람 몰아치는 캄캄한 새벽.
이번에 고치령을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서 걷던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되어 가는 지난 시절. 어느 새벽에 느꼈던 묘한 느낌이 밀려왔다.
외로움이었을까?
갈래짓기 어려운 여러 생각이 들어왔다가 빠져 나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독보다 깊은 절대고독의 순간일까요?
본래성을 재확인하는 현존재의 묘한 느낌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해석입니다
아름다움은 절대고독 속에서 잠시 피고 지는 중묘지문에서 나온다는 노자 할배 말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래도 건강하셔야 합니다 아프면 치료부터 하시구요
그래야 형님과 오랫동안 말을 모르는 바위처럼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번잡한 일과 사람 관계에서 살짝 벗어나 홀로 되었을 때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소홀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 되돌아보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라던 바 대로 되는 일도 있고, 어쩌면 미흡함이 더 많이 보일 때 괘도 수정을 더듬어볼 때도 있습니다.
캄캄한 밤에 허우적거리듯이 철학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소백산 자락에 호탕한 무쏘꿈 님 이야기와 웃음소리를 수놓았을 터인데, 듣지 못해 아쉽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즐감하고 수고많이하셨습니다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충분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발이 불편함에도 장거리 코스를 강행하셨네요.
걱정이 됩니다.
무탈하셔야
될텐데요.
무릎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면서 답답했습니다.
동네 산이라도 가볼까도 고민했습니다.
2-3주 관리하면 되겠지 하고, 참고 전례를 따랐습니다.
통증 잘 관리하셔서 오래도록 대간을 걸을 수 있어시길 바랍니다.
소백산은 가장추울때 제가 무박으로 겨울산행을 처음으로 참여한 코스였습니다.
12월 중순경 눈보라와 칼바람을 경험하면서도, 국망봉에서의 환상적인 설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이후 겨울 대간길 매력에 빠져, 구룡산- 태백산-사길령 구간을 걸어면서, 질흙같은 어둠과 칼바람을 맞으며, 간간이 홀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면서, 고독, 외로움, 추위, 두려움과 배고품, 생존, 자아, 동행이라는 단어들을 수없이 뇌리에 떠올리며
홀로 걸었던 기억이,
큰형님의 경험과 너무도 비슷하게 겹쳐지네요.
대간을 홀로 걸어면서 느끼는 사유의 시간은 자아를 찿아가는 또 다른 소중한 과정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풍부한 대간 정보와 소중한 생태계를 알려주시는 형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소방 표지목에 대한 유익한 정보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스무 해가 더 된 것 같은데, 어느 해 4월 낙동산악회에서 소백산에 갔습니다.
산 아래에서는 비가 내렸으나 소백산에 올랐을 때는 눈 세상을 마주했습니다.
추위와 미끄러움이 마주했는데, 등 가방[배낭]에 잔뜩 넣고 다니던 장비 덕분에 추위와 미끄러움을 극복했습니다.
4월에 맞는 눈을 이고 있던 소백산. 아주 멋진 풍경화였습니다.
그 기록을 남기지 못했으나 아마도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2기나 3기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산에서 맞닥뜨리는 변화무쌍한 날씨.
알뜰하게(?) 준비한 등산 장비들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아픈 부위 치료 잘 하여 대간 길에서 만나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