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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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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158(창30) 노아의 취중 실수
“18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창세기 9:18-29)
서론: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흠이 없고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6:9,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으로 완전한 사람이라는 노아도 술에 취해 실수를 하고 수치를 당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아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은 술에 취한 노아의 실수나 허물보다 아버지의 실수와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하다 심판을 받은 노아의 아들 ‘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부모의 단순한 실수나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노아의 취중 실수”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노아는 술 때문에 실수를 하고 수치를 당했습니다.
본문 20-21,절에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실수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언제부터 술을 먹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연대나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9대손인 노아가 홍수 후에 술에 취한 것을 보면 인간의 음주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술이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먹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식품입니까? 아니면 제한적으로 허락된 식품입니까? 술에 대해서 선입관이나 편견을 버리고 성경이 술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술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해서 술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술을 즐기지 말라, 술을 탐하지 말라, 술에 인박이지 말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술은 공의를 굽게 하고(이사야 5:22-23), 가난하게 되며(잠언 23:21), 방탕하고(에베소서 5:18), 하나님을 거역하고(호세아 7:14), 거만해지고(잠언 20:1), 화를 당하며(이사야 5:11),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린도전서 6:9-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술을 먹도록 장려하는 표현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성경에 명시적으로 술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없지만 성경은 반복해서 “술을 멀리하라, 술을 가까이하지 말라, 술을 가까이해서는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목축을 하는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육식을 많이 했습니다. 포도주는 육식의 소화를 돕고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로 즐겨 마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포도주는 번영(창세기 27:28)과 기쁨(시편 4:7)을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신앙생활에 유익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 술은 인간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고 마약이나 담배처럼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술에 중독되면 끊거나 절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술을 마시면 과음을 하고 술에 취해서 이성과 판단력을 잃고 노아처럼 벌거벗고 소란을 피우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술은 물론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나실인이나 경건한 선지자들은 평생 포도주를 먹지 않았고 선지자 다니엘도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술을 드신 것이 아니라 유월절 의식을 행하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인 칼빈 선생님은 “술에 취한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에 먹칠을 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실수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 형상에 먹칠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잠언 23:31,에서 “술을 보지도 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술은 그 사람의 감추어진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인간성을 폭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취중에 속뜻이 드러나고 취중에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노아가 의복만 벌거벗었습니까? 노아는 옷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권위와 체면까지 벗어던졌습니다. 술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 노아처럼 자식들에게 멸시와 수치를 당하고 싶지 않으면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노아의 실수와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한 함은 노아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노아에게는 ‘셈’과 ‘함’과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벌거벗고 방에 누워있을 때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이 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본문 22절에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은 술에 취한 아버지를 걱정하고 근심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실수와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형제들에게 알린 것입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실수와 허물을 조롱하고 멸시하다니 얼마나 악하고 불의합니까? 아버지의 단순한 실수나 허물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태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술에 취한 노아의 실수나 허물이 아니라 술 취한 아버지를 멸시하고 조롱한 함에 대한 정죄와 심판입니다. 부모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불의한 인간은 부모의 단순한 실수나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인간입니다. 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면 비난할 수 있지만 어쩌다가 범한 실수나 허물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인간입니다. 부모의 단순한 실수나 허물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아버지를 멸시하고 조롱한 함에게 무서운 저주와 심판을 내렸습니다. 본문 24-25절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저주를 내렸습니다. 노아는 그의 아들 ‘함’에게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라”고 저주했습니다. 형제의 종이 아니라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라고 저주한 것입니다. 종들의 종은 종중에서도 가장 낮고 가장 천한 종을 말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여기에서 노아는 함의 아버지로 함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와 하나님의 예언자로 함을 저주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그 시대의 유일한 하나님의 선지자와 하나님의 예언자였기 때문입니다.
함이 그의 아버지를 멸시하고 조롱한 죄를 범했는데 왜 함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고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렸을까요?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으로 가나안은 함의 네 명의 아들 중 막내아들입니다(창세기 10:6). 왜 함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고 함의 막내아들인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렸느냐?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함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을 내리기 위해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렸다는 주장입니다. 가나안은 함의 막내아들입니다.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자식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더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함도 그의 네 명의 아들 중 막내아들인 가나안을 가장 사랑했을 것입니다. 함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저주를 받았다면 함에게 그보다 큰 고통과 형벌은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주장은 함의 아들 가나안이 함과 같은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저주를 내렸다는 주장입니다. 가나안도 함처럼 자기 아버지를 멸시하고 조롱했기 때문에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를 멸시하고 조롱한 죗값으로 그의 자손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아들, 가나안 족속은 멸절되거나 대부분 종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함의 후손들도 대부분 흑인이나 아프리카 민족들처럼 가난하고 미개한 종족으로 전락하여 종이나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함의 후손들은 조상을 잘못 만나 저주와 심판을 받고 곤고한 삶을 산 것입니다. 부모의 허물과 실수를 멸시하고 조롱한 형벌이 얼마나 크고 무섭습니까? 부모의 단순한 실수와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하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노아의 허물과 실수를 덮어준 셈과 야벳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23절에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는 말씀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하체가 무엇이냐? 아버지의 성기(性器)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벌거벗은 몸, 벌거벗은 하체, 남녀의 성기는 함부로 노출해서는 안 될 금기(禁忌)사항에 속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에 대한 수치심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에 주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는데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벗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무절제한 성을 억제하고 다스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성에 대한 수치심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남녀의 성(性)이란 성(聖)과 속(俗), 거룩함과 속됨이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적 쾌락은 인간에게 원초적 만족과 행복감을 주지만 성이 잘못 사용되면 가장 혐오스러운 범죄행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남녀의 성기(性器)나 성의 유희(遊戱)는 감추고 절제하고 추스르는 도덕적 긴장이 필요합니다. 성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와 절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셈과 야벳이 노아의 하체를 보지 않고 옷으로 덮었다는 표현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깬 후 ‘함’에게는 무서운 저주를 내렸지만 ‘셈’과 ‘야벳’에게는 큰 축복을 내렸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노아의 축복과 저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셈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메시아의 조상으로 오늘날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야벳은 오늘날 유럽인의 조상입니다.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하리라는 말씀은 야벳의 후손이 셈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역사가들은 세계 문명의 3분의 1이 유대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손들은 다 유대인입니다. 셈의 후손인 유대인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벳의 후손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유럽대륙의 인종들입니다. 반면에 노아에게 저주를 받은 함의 후손은 아프리카의 흑인종과 미개한 인종이 되었습니다. 조상을 잘 만난 셈과 야벳의 후손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조상을 잘못 만난 함의 후손은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처럼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해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추태를 부린 것을 보고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은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실수와 허물을 까발리고 아버지를 멸시하고 조롱했지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지 않고 덮어주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함처럼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를 까발리고 조롱하며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셈과 야벳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까? 셈과 야벳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셈과 야벳처럼 부모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고 부모를 공경해야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노아는 술 때문에 실수를 하고 수치와 멸시를 당했습니다. 술은 신앙생활에 덕이 되지 않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짧습니까? 짧은 인생을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살아야지 왜 술에 취해서 멍하고 흐릿한 정신으로 살아갑니까? 그리스도인은 술을 멀리하고 깨어서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노아의 아들 함은 아버지의 실수와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한 죄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모의 단순한 실수나 허물을 멸시하고 조롱하면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노아의 허물과 실수를 덮어준 셈과 야벳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셈과 야벳처럼 부모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고 부모를 공경하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학습자료*
노아 홍수의 발생연대 대해 주전(主前, BC) 2,350년부터 주전 1만년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습니다. 주전 2,350년은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족보를 근거로 계산한 것이고 주전 1만 년은 지질학에서 대변혁의 사건이 주전 1만 년 전에 일어났다는 학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전 5만 년 전일 수도 있고 주전 10만 년 전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아르메니아의 아라라트산에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성경 말씀이 있고(창세기 8:4) 현재 아르메니아인들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홍수가 발생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2023,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