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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및 관련 단어 소개 20≫
◆은사◆
이미 용서받은 죄에 해당하는 현세적 벌의 전부, 즉 전대사(全大赦)나 일부 즉 한 대사(限大赦)의 면제(교황 바오로 6세, 대사에 관한 사도헌장).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은 자는 그 죄에 대한 현세적 벌까지 용서받은 것은 아니므로 보속 행위로 그 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나 죽은 뒤 연옥에서 그 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보속행위의 실천은 흔히 미약하므로 이런 약점을 가진 신자를 돕기 위해 교회는 은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은사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 신비체의 모든 지체는 병든 한 지체의 안녕을 위해 공헌해야 하는 것이다(1고린 12:21-26).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의 무한한 가치를 잘 알면서도, 성 바울로는 자신의 고통이 골로사이의 신자들에게 혜택이 될 수 있다고 즐거워하며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24) 하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권한의 힘으로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 일부를 나누어 주어, 죄에 상응하는 현세적 벌을 제거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은사를 얻기 위해서는 대죄 없는 신자로서 은사 얻을 뜻을 가지고 교회가 은사에 부과하는 기도나 선행을 해야 하는데 그 행위의 유효성은 그 행위가 초자연적 애덕에 의하여 이행되었느냐, 또 그 행위가 완수되었느냐에 달려 있다. (⇒) 대사, 보속, 공로
◆성령◆
1. 성령에 관한 계시 : 성서에서 성령에 대하여 사용한 단어는 고유한 형태가 아닌 무정형(無定型)의 단어로서 바람[風] 또는 숨, 입김[氣息]을 뜻하는 Ruah(히브리어), Pneuma(그리스어), Spiritus(라틴어) 등의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① 야훼의 영 : Ruah의 첫째 뜻은 바람이다. 바람은 구약에서 자주 하느님 야훼의 현존(現存)을 표시한다(창세 3:8). 바람은 하느님의 창조하시는 기운이요(창세 1:2, 시편 33:6), 하느님의 능력의 도구로서(2사무 22:16, 민수 11:31)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저항을 분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출애 15:10, 이사 30:27-28, 욥기 4:9, 호세 13:15, 예레 13:24). Ruah는 또 야훼의 입김이며, 만물은 이 입김으로 생명을 받는다(창세 1:30, 2:7, 6:17, 7:15, 민수 16:22, 27:16, 이사 42:5, 욥기 12:10). 이스라엘 역사 안에 돌연하고 일시적인 하느님의 간섭은 야훼의 영이 한 일이라고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주위의 이민족들과의 투쟁에서 그들을 구해낸 판관들 즉 오드니엘, 에훗, 데보라, 기드온, 삼손 등은 일시적으로 야훼의 영을 받아 초인적 용맹과 지략으로 백성을 구하였다(판관기 참조). 왕정시대에는 야훼의 영을 받은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항구적 사명과 능력을 받아서 왕이 되었고, 그 증거로 도유식을 거행하여 신성한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민수 11:16-17, 27:15 · 23, 1사무 16:13, 2사무 22:32). 야훼의 영은 가끔 충격적인 예언을 하도록 일시적으로 예언자에게 내린다. 모세, 발람, 아마새, 아자리아스, 즈가리야의 경우이다(민수 11:17, 24:2, 1역대 12:18, 2역대 24:21). 대예언자들은 자기들의 사명이 일시적인 경고를 주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민중을 야훼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임을 지각하고 있지만, 그들도 때로는 야훼의 영의 충격으로 독특한 행동을 취하였다(에제 3:12·14, 7:3, 11:1, 43:5).
유배 이후로는 일반적으로 예언자들의 모든 종교적 행위는 야훼의 영에 의하여 지시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즈가 7:12, 느헤 9:30). 특히 이스라엘의 결정적 메시아인 '야훼의 종'에게는 야훼의 영이 머물러 있어서 정의를 선포케 하고(이사 42:1-4), 온갖 고난을 받고 자기 생명을 대속물(代贖物)로 내놓아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한다(이사 53:1-11). 야훼의 영은 점차 이스라엘을 윤리적으로도 향상시킨다. 그는 참회와 겸손과 덕성과 평화를 주고(시편 51:2-9, 133:10, 이사 32:15),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는 지혜를 주어(지혜 9:17) 이스라엘을 정화하고(에제 36:26, 39:29), 메시아적 백성 전체에게 야훼의 영이 주어진다(이사 49:21, 요엘 3:1). 일반적으로 구약에서는 야훼의 영은 하느님의 힘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위격(persona)으로 보지는 않은 것 같다.
② 예수와 성령 : 신약에서 언급한 하느님의 영도 그 전부가 바로 명시적으로 성령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없다. 많은 경우에는 구약과의 연결성으로 보아 하느님의 힘이라고 볼 것이지만, 몇몇 텍스트는 명백히 성부와 성자와 구별되는 성령을 뜻한다. 하느님의 영은 요한 세자의 탄생에 작용하셨고(루가 1:5-25), 마리아에게 예수를 수태시키셨고(루가 1:35), 마리아와 즈가리아와 시메온에게 예언을 하도록 하셨다(루가 1:39-56 · 67-79, 2:25-35). 요한 세자는 영의 도우심으로 예수가 메시아임을 인식했고(요한 1:32, 3:34), 메시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 하였다(마태 3:11).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의 선언이 있었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마태 3:13-17, 마르 1:9-11, 루가 3:21-22). 예수의 영세는 그가 성령으로 충만한 메시아임을 선언하는 예식이었다(루가 4:14). 예수는 성령의 힘으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셨고(마태 4:1), 악령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풀어주셨고(마태 12:28),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다(루가 4:18). 항상 성령으로 가득한 예수는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예외적 현상이 없이 일상사처럼 기적을 행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셨다(요한 16:13-15).
예수는 당신과 함께 하시는 성령을 제자들에게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는(요한 17:12) 성령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요한 14:16, 16:7), 박해시에는 물론이고(마르 13:11, 마태 10:20) 세속과의 일상적 투쟁 속에서도 함께 계실 것이다(요한 14:16). 그리하여 예수께서 생애를 통하여 성부를 증거하신 것처럼(요한 5:41, 8:50, 12:49) 성령은 제자들에게 예수를 증언할 것이며(요한 15:27, 16:13-15), 제자들도 예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7).
③ 성령과 초대 교회 : 초대 교회의 모습을 증언하는 사도행전은 성령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령의 임재(臨在, assistentia)와 역사하심이 넘쳐흐르고 있다. 성령의 강림을 받은 제자들은 사도가 되어 용감히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1-14). 그들의 설교는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으며(사도 2:2), 그들의 지혜와 언변은 당대의 학자들을 침묵시켰다(사도 4:13-14, 6:10). 사도들은 성령의 지혜로 악인들의 생각을 폭로하셨고(사도 5:1-11, 8:18-23) 일곱 부제와(사도 6:1-6) 사도 바울로와 바르나바를 선택했으며(사도 13:2),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할 것을 깨달았고(사도 8:4-17, 10:1-48), 새 신도들을 구약의 율법에서 해방시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사도 15:28).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여 스승 예수를 방불케 했고(사도 3:14, 5:15-16, 8:4-7 · 39, 9:32-35 · 36-41, 14:8-10, 19:11-12, 28:3-4), 가야 할 장소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식별하였다(사도 16:6-7).
사도들이 성령께 받은 은총 중에서도 복음선포를 위한 열성과 용기는 뛰어난 것이었다. 그들은 구원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대담하게 전했으니(사도 4:29-31) 민중 앞에서(사도 3:11-26), 의회나 법정에서(사도 4:2-20, 5:26-42, 7:1-53, 23:1-11), 관헌들과 왕공들 앞에서(사도 24:10-23, 26장), 한결같은 용기와 지혜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사도 4:1-22, 5:17-42, 8:1-3, 12:1-5, 13:50-51) 예루살렘, 사마리아,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 반도, 로마에 이르기까지 항상 성령의 인도로(사도 20:22) 전도의 발길을 멈추지 아니했고, 마침내 순교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사도 7:54-60, 12:1-2). 성령은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뜨거운 형제적 사랑을 부어주시어 그들을 일치시키셨다. 재산을 공유할 정도로 서로 도왔으며 기도와 애찬과 찬미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사(사도 2:43-46, 4:32-37) 사람들은 그들의 형제애를 탄복하였다(사도 2:47).
성령에 의하여 사도로 불렸음을 확신하는 바울로는(2고린 3:2-3) 성령의 지시대로 움직이고(사도 20:22-24) 그 지령대로 설교한다(1고린 2:3-4). 바울로도 공관복음(共觀福音)처럼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임을 역설한다. 성령의 능력으로(로마 1:4) 예수를 부활시키신(로마 8:11) 성부께서는 성자로 하여금 생명을 주는 영이 되게 하셨고(1고린 15:45) 성령으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이 되게 하셨다(2고린 3:18). 우리가 받은 성령은 하느님이 주셨고(1고린 2:12), 그는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로마 8:11, 1고린 3:16, 16:19),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시고(로마 8:15-16, 갈라 4:6), 우리를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신다(에페 2:18).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은 성령에 의하여 산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로마 8:1 · 5 · 9).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시어(로마 5:5) 우리를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하여(로마 7:6, 2고린 3:6, 갈라 5:19)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고(갈라 13:13), 죄로 죽은 인간을 영신적 인간으로 재생시키시고(로마 8:10),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여(갈라 5:19-23)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성령의 평화와 즐거움을 누리게 하신다(1데살 1:6). 성령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깊은 경륜을 깨닫게 하시고(1고린 2:10) 바로 고백하게 하시기 때문에(1고린 12:3)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의 보화를 충실히 간직해야 한다(2디모 1:14).
모든 믿는 이는 한 세례로 한 성령을 받아 한 몸을 이룬다(1고린 12:13, 에페 4:3). 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하여 각 지체에 다른 기능과 은사를 분여하신다(1고린 12:7, 14:4). 여기에는 말씀의 은사를 위시하여 지혜, 지식, 신앙, 치유, 기적, 예언, 방언, 해석, 식별, 봉사, 격려, 지도의 은사들이 있고(로마 12:6-8, 1고린 12:4-11), 사도와 전도사와 교사들도 교회의 직책이며 그 직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은사를 받고 있다(1고린 12:28-31). 마침내 모든 은사 중의 태양인 사랑의 선물은(1고린 13장, 2고린 6:6, 갈라 5:22, 로마 5:5) 모든 신자를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묶어 놓는다(에페 4:4-6).
④ 위격(位格)으로서의 성령 : 신약에서도 하느님의 영은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힘을 가리키고, 간혹 인격화할지라도 문학유형상의 인격화에 불과하지만 몇몇 구절에서는 분명히 성부와 성자와 구별되는 위격으로서의 성령을 말해주고 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마태28:19)는 구절은 공관복음의 유일한 구절이고 상당히 늦게 마태오복음에 삽입된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도 단 한 번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를 "성령과 우리의 결정이라"(사도 15:28)고 하면서 성령을 독립된 위격으로 표현했고, 다른 경우에는 하느님의 힘을 인격화해서 표현하고 있다.
사도 바울로의 서간에서도 많은 인격화가 보이지만(로마 8:15, 1고린 3:16, 14:25) 명시적으로 성령의 위격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느님과 주님과 성령의 역할을 구별해서 말하고(1고린 12:4-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2고린 13:13) 신자들에게 축원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최후의 만찬석상의 주님의 고별사로써 성령의 위격을 뚜렷이 증언하고 있다. 성령은 예수 승천 후에 예수를 대신하여 제자들을 보호하시고(요한 14:26, 1요한 2:27), 제자들이 예수께 배운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요한 16:13-15),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신다(요한 15:26, 1요한 5:5-10). 요한 16:8과 13에서는 영이라는 중성명사 대신에 남성명사 (증거자)를 사용하였다. 그는 신자들 안에 살으시고(요한 14:17, 16:7) 활동하신다(요한 14:16-19 · 26, 15:26).
2. 성령에 관한 교의사 : 초대 교회의 신경에도 분명히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구별되는 위격으로 고백하고 있는데, 이 신앙교리를 신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많은 세월이 필요하였다. 성서는 아무런 기술적인 설명도 없이 성부 · 성자 · 성령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세 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신학의 주요한 과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神性)을 성서에 의하여 인정하면서도 성부를 최고의 자립신(自立神), 성자를 그 다음의 신, 성령을 제 3의 신으로 해석하여 자칫하면 삼신론(三神論)이 되기도 하고, 또는 일신론을 지키느라고 성자와 성령의 종속론(從屬論, subordinatianism)이 되기도 하였다.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는 단순히 "성령을 믿는다"고 결의했으나,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는 니체아 신경에 "또한 주님이시며 성명을 주는 성령, 성부께로부터 유출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을 믿는다고 결의하여 성령의 신성과 그 위격과 성부 · 성자와의 관계를 규정하였다. 그런데 이 결의를 해석하는데,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하여 유출하신다고 이해하였고, 서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유출하신다고 이해하였으며, 이렇게 해석했기 때문에 675년에 브라가 회의에서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와 성자에게서'(Filioque)를 삽입했고, 뒤에 로마에서도 이 삽입을 허용했기 때문에, 동방교회는 서방교회가 일반적으로 신조(信條)를 변경하였다고 공박하였고, 오늘까지 양 교회간에 분쟁거리로 남아있다.
또 한 가지 쟁점은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성령의 고유한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동방신학은 인간의 구원사업은 오늘의 교회에 있어서 배타적으로 성령의 작용이라고 보는데 반하여, 서방신학은 삼위일체의 작용이지만 주로 성령에게로 돌리고 있다(appropriatio). 아우구스티노는 성령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성령을 교회의 혼이라 하였다. "영혼이 육신의 각 지체에 생명과 기능을 부여한다. …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성령의 관계는 육체에 대한 영혼의 관계와 같다. … 그런데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 영혼이 없음과 같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게 성령은 계시지 않는다"(설교 267의 4: RJn. 1523 참조). 그 후부터 성령이 교회의 혼이라는 교설은 확고한 전통이 되었고 중세기 신학자들도 그대로 답습하였다.
3. 성령에 관한 신학 : 서방신학에서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의 사랑이시며 성삼의 일치의 매듭이요,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의 원리로 본다.
① 성령은 초자연생명의 원리이시다 : 성령은 성삼의 신비 안에서 성부와 성자를 일치시키는 사랑이시요 성령 안에서 성부는 성자께 향하시고 성자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일치하신다. 모든 전례 기도문의 결문에서 성자는 성부와 함께 성령과의 일치 안에서 영원히 살아 계시고 다스리신다고 찬양하는 것은 바로 성삼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종합한 것이다.
이러한 성령은 성자의 강생에 즈음하여 처음부터 예수의 인간성을 축성하셨고(루가 4:18), 이렇게 성령으로 축성된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인간 구원의 도구가 되셨고 그로 말미암아 즉, 우리 인간성이 축성된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도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아 초자연적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합체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인간성을 성부의 오른편에 앉게 하사 영광스럽게 하신 원동력이시므로 그리스도와 합체된 믿는 이들의 영광화(glorificatio)의 원동력이시다. 그래서 교회의 전통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의 성령의 위치를 교회의 혼이라고 한다. 인간의 육체가 영혼에 의하여 살아 있듯이 교회도 성령에 의하여 살아 있다는 말이다. 성서 본문에서는 성령을 교회의 혼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성령께서 모든 영성 생명의 근본 원리로 작용하고 계심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을 교회의 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헌장은 "동일한 성령이 교회의 머리(그리스도)와 그 지체에 계시어 몸 전체를 생활케 하시고 통일하시고 움직이신다. 그래서 교부들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생명의 원리 즉 영혼이 육체 안에서 하는 일과 비교할 수 있었다"고 가르친다(교회헌장 7항).
② 성령은 교회를 성화하신다 : 이것은 성령께서 교회의 혼이라는 근본 현상에서 당연히 연역되는 결과이다. 거룩한 자체이신 성령께서 인간에 내주(內住)하시면 그 인간은 성령의 거처가 되어 거룩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성령은 성화의 은총으로 죄를 사하시고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할 자격을 부여하시어 그에게 영신적으로 새 사람이 되는 함을 주신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초자연적인 덕성을 주시어, 사람이 구원 진리를 올바로 믿게 하시고, 그 믿음에 의지하여 주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영생을 바라며, 모든 피조물 위에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열정을 주신다.
성령은 이 기본 삼덕(三德)을 완성하는 데 유익한 도움을 특히 견진성사를 통하여 주신다. 그 여러 가지 도움을 교의신학은 이렇게 분류한다. 인간의 지성에 관계가 깊은 슬기(sapientia), 지각(intellectus), 의견(consilium), 지식(scientia)의 선물과, 인간의 의지에 관계가 깊은 용기(fortitudo), 효경(pietas), 두려움(timor)의 선물로 성령의 칠은(七恩)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모든 은사를 이 7가지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이 칠은은 '7'이라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를 존중하여 만든 것이고, 이사야 예언서에서 힌트를 얻어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이사 11:1-2).
이렇게 성령은 신자 개인을 성화시킬 뿐 아니라 역사를 통하여 교회 안에 성덕의 향기를 계속시킨다. 교회 발족 이래 오늘까지 복음선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무수한 순교자를 배출했고, 일생을 주님과 인간에게 봉사하기에 바친 증거자들을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닌 성인 · 성녀들과 사도직 활동을 창안한 수많은 수도회를 일으키셨다. 그리고 교회로 하여금 성화의 기본 수단인 전례를 발전시키게 하셨고, 여러 가지 신심운동과 방법을 발견하고 조장하게 하였다. 교회가 사람들의 성화에 유익하다고 가르치거나 권장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성화의 원리이신 성령의 임재를 받아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토마스는 우리가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는 말은 결국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믿는다는 뜻이라 하였다(Summa Theol., Ⅱ-Ⅱ, 9. 1, a. 9. ad 5).
③ 성령은 교회를 형성하신다 :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간단한 결론에 만족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교회의 근원은 성삼의 신비 안에 있고, 예수께서 교회의 모든 내용을 설치하신 '기성인'(起成因, causa efficens)이라면 성령은 교회가 교회로서 존립하고 활동할 수 있게 하시는 '형상인'(形相因, causa formalis)이다. 성령이 교회 안에 항상 계심으로써 교회는 신앙의 유산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모든 믿는 이들을 하나의 백성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진리의 성령이시므로 교회가 구원의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나 그것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감독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요한 16:13-14) 성령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해주시어 오류없이 보존하고 해석하고 선포하게 하신다(2디모 1:14).
교회헌장은 교회 전체가 진리를 믿음에 있어서 오류에 빠지지 못하는 이유가 성령께서 백성에게 일으키시고 지지하시는 신앙감(信仰感, sensus fidei) 때문이라 하였다(교회헌장 12항). 이 새로운 용어는 전통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신앙의 기본 사항에 관하여 거의 본능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러한 공통판단은 슬기와 지각과 지식의 은사가 교회에 주어지지 아니 하였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성령은 또 교회의 혼이시므로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결핍되지 않도록(indefectibilitas), 교회의 기본 구조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은사(恩賜, charisma)들을 주신다. 성령의 성화은총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합일한 우리는 이 몸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역할을 분담하고 또 각자의 소명에 적합한 카리스마를 받고 있다.
성령은 신약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가 완성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회의 품안에서 어떤 저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영감(inspiratio)을 주셨고, 어떤 이들을 사도로 세우시고, 그 후계자들을 배출시키시어 교회를 이끌어가도록 배려하셨으며, 이 교계(敎階, hierarchia)가 신앙의 수호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도울 수 있도록 많은 성학자들을 또한 배출시켜 진리를 깊이 천착케 하시고, 그들 개개인의 주장의 진위를 판단할 능력과 책임을 주교단에 맡기셨다(교회헌장 12항).
교회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성령은 성사와 교직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며 여러 가지 덕행으로 꾸며주실 뿐 아니라 또한 당신의 은혜를 당신 의향대로 각자에게 나누어주시며(1고린 12:12), 모든 계층의 신도들에게 은사도 나누어주심으로써 교회의 쇄신과 보다 폭넓은 건설을 위하여 유익한 여러 가지 활동과 직무를 맡기에 적합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킨다"(교회헌장 12항). 이렇게 성령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만들고 계신다.
교회가 시대나 환경에 따라서 필요한 제도나 운동을 신설하거나 변경하거나 폐지하는 모든 사목활동에 성령께서는 항상 임재하시어 크게 그르치지 않게 보호하신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에도 성령의 다양한 카리스마가 내리고 있으니, 각자는 자기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전체 교회에 봉사하여야 한다. (鄭夏權)
◆성령칠은◆
성령께서 내려 주시는 7가지 은사(恩賜). 성령은 생명의 은총으로 믿음, 희망, 사랑을 주실 뿐 아니라 이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시며 이는 특히 신자들이 견진성사를 통하여 받게 된다. 이 일곱 가지 은혜는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인간의 지성과 관련되는 슬기(sapientia), 통달(intellectus), 의견(consilium), 지식(scientia)의 선물과 인간의 의지와 관계 깊은 용기(fortitudo), 효경(孝敬, pietas), 경외심(敬畏心, timor)의 선물이 그것이다.
슬기는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세속사랑보다 귀하게 아는 지혜이며, 통달은 구원의 진리를 인간 지력의 한계 내에서라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의견은 선악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돕는 것이며, 지식은 믿을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식별하게 하는 은사이다. 용기는 신앙 생활에 수반하는 장애를 극복하는 힘을 주는 것이며, 효경은 하느님께 대한 자녀적 사랑을 증진시키고, 경외심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 주는 은사이다. 이 칠은은 '7'이라는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를 존중하여 만든 것이고, 메시아 왕국에 대한 이사야 예언서에서 유래한다.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이사 11:1-2).
초대 교부들은 칠은을 말할 때 성령의 일반적인 은혜나 바울로의 은사(카리스마)와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스 교부들은 성경의 은혜를 아사야서에 나열된 일정한 숫자로 국한하지 않았으나 라틴 교부들은 '7'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였다. 피토의 성 빅토리노(St. Victorinus of Petau)는 칠은을 요한 묵시록(1:4)의 일곱 천사와, 성 힐라리오(St. Hilarius)는 빵과 물고기의 기적(마태 15:32)의 빵 일곱 개와 각각 관련시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칠은을 진복팔단(眞福八端, 마태 5:3-12)과 대비하고 이사야 예언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다. 성 그레고리오 1세는 특히 아우구스티노에 가까운 해석을 하였는데 칠은은 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한 도움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하며, 이러한 해설은 후대에 은총론(恩寵論)에 영향을 주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잠벌◆
잠벌이란 영벌(永罰)과는 반대로 일시적으로 잠시 받는 벌로서, 현세에서나 연옥에서 받게 되는 벌을 말한다. 모든 범죄에는 그 죄에 상응하는 벌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일 고해 성사로 죄를 용서받았다 할지라도, 이에 대한 잠벌은 남아 있기 마련이다. 교회는 현세나 연옥에서는 잠벌을, 그리고 지옥에서는 영벌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기도와 희생, 기타 보속을 통하여 잠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렇게 면제받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그런데 전대사(全大赦)는 연옥에서 받을 잠벌 전부를 면제받는 것이며, 한대사(限大赦)는 그 일부를 면제받는 것을 말한다.
출처 : [용어사전]
◆은총론◆
1. 의의 : 은총이란 일반적으로 은사(恩賜)라고 하며, 무상으로 주어진 은혜(恩惠)를 말한다. 이는 순수한 호의와 자비로써 거저 베풀어진 혜택이며, 본질적으로는 영적인 은혜이다(로마 1,11; 1고린 12,1-11). 그러므로 결국 은총이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성령이 베풀어 준 은혜라고 할 수 있다.
2. 분류 : 은총에는 생명 은총(生命恩寵, 聖化恩寵, 常存恩寵)과 도움 은총(助力恩寵, 現行 은총)이 있다. 전자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생활하시면서, 천상의 생명에로 우리를 참여시키는 은총이며, 우리 안에 항상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은총(超性恩惠)이다.
그리고 도움의 은총은 우리를 비추시고 우리가 선을 행하도록,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힘(도음)을 말한다. 이 힘은 초자연적이고 비쳐지는 빛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3. 은총 논쟁(恩寵論爭) : 이는 은총 신학의 여러 논쟁을 뜻하나, 도미니코회와 예수회 학파 간의 ‘도움에 관한 쟁론’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각각 충족 은총(은총의 수용 여부가 인간의 자유에 좌우됨)과 효능 은총(하느님이 인간 안에서 거역할 수 없이 관철시킬 수 있는 은총)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그노시스의 공격에 대해, 이레네오와 오리게네스는 성령의 내주(內住)와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령의 신성을 공격한 마체도니우스주의에 대해서도 바질과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성령이 성화자(聖化者)이심을 들어 논박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가 지니는 역할을 강조한 펠라지우스에 맞서 하느님의 은총을 역설하였다.
교회는 원죄나 은총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박탈하지 않는다고 가르쳐 왔다. 그리고 인간이 범한 죄에 관계없이 구원에 있어서는 은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따라서 교회는 “은총 없이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펠라지우스(Pelagius, 360~422년)의 주장을 단죄한 카르타고 공의회(418년)의 결의문을 되풀이하면서 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로(功勞) 문제에 있어서도 펠라지우스를 단죄한 것처럼, 교회는 “업적이란 은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이미 받은 은총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은총의 무상성과 실재성”을 강조해 왔다. 은총은 항상 하느님의 자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를 전혀 무시했다.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그 본성이 완전히 부패되고, 자유마저 상실하였으므로, 하느님의 ‘은총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으며, 그 구원이란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일 뿐이며, 인간을 내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는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른다는 기본 입장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에 협력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인간을 향한 인격적인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 안에서 작용을 발한다고 하였다.
◆견진 성사◆
1. 의의와 역사 : 견진 성사는 칠성사 중 세례 성사 다음으로 받게 되는 성사(사도 19,4-6)로, 주님과의 일치는 물론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게 한다. 구약 시대에는 안수(按手)와 도유(塗油)가 행해졌다. 당시 안수는 하느님의 약속을 실천하거나 성령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행해졌었다. 도유 역시 축성(祝聖)의 행위이며 성령을 받음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이사악의 안수로 야곱이 하느님과 약속의 계승자가 되었으며, 이 약속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창세 12,3)이었다. 또한 사무엘에 의해 사울이 도유되었으며, 다윗 왕이 사무엘을 성유로 축성했을 때, 성령이 그를 뒤덮었다(1사무 16,13).
2. 견진과 직무 : 하느님 백성은 견진 성사로 그리스도의 예언직(豫言職)에 참여한다. 그래서 견진으로 세례 때 받은 은혜가 더욱 굳게 나타나, 진리를 잘 알아듣고 이를 전할 힘과 용기도 받게 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司祭職)에도 참여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에 참여한다(1베드 2,9). 그런데 여기의 사제직은 성직자의 사제직과 구분하여 보편 사제직(普遍司祭職)이라고 한다.
진정한 대사제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미사와 함께 성사 생활을 통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리고 견진 성사로 그리스도의 왕직(王職)에 참여하게 된다. 왕직은 이웃에 대한 봉사를 말한다. 따라서 견진 성사를 받은 우리는 세상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겸손되이 희생적 봉사를 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3. 견진과 성령의 은혜 : 성령의 은혜는 우리가 행하는 일상 생활 중에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5,22-23)에서 성령의 은총(열매), 즉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온유, 착함, 성실, 절제 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거스르는 법은 없다고 하였다.
이 은혜는 신자다운 생활을 묘사한 것이며, 숨은 성실이요 친절이다. 또한 묵묵하고 겸손한 의무 수행이며, 믿음의 신뢰이고 유혹에 대적하는 인내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도와 주는 친절이요 동정이며, 고요한 기도 중의 열렬한 마음이고 양심의 희열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의 일상적인 은혜 중 신령한 언어(方言), 예언, 치유 등은 초대 교회보다 드물다. 이는 종교적 관습의 차이나 혹은 교회 기초를 놓는 데 필요했던 것들이 완성되어 가면서, 초대 교회 때보다 그 필요성이 줄어든 탓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의 결실은 일상적이고 알기 쉬우며 교훈적이고 유익하며 봉사적인 은혜들이다(2고린 13,13).
4. 성령 칠은(聖靈七恩) : 우리는 견진 성사로 일상적인 은혜 외에 성령 칠은을 받는다. 이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를 말하며 반(反)그리스도적 사조에 대항하고 세상의 불의와 싸워 승리를 얻고, 하느님 왕국 건설을 위해 주어진다. 이 은혜는 지혜(슬기), 통찰(깨달음), 의견(일깨움), 용기(굳셈), 지식(앎), 공경(받듦), 경외(두려워함) 등이다.
이는 사랑의 실천과 관계를 맺으며, 용기는 주님을 향하는 마음과 관련되어 희망과 합하여 큰 힘을 내고, 나머지는 믿음과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일곱 가지 은혜의 효력은 다음과 같다.
슬기는 구원을 얻기 위한 모든 사정을 파고들어 연구케 하며 이에 맛들이게 한다. 그리고 통찰은 우리의 지력이 미치는 데까지 믿음의 오묘한 이치를 믿을 만한 것으로 판단하는 효과를 내게 한다. 의견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분별케 하며, 용기는 하느님의 도움을 한층 더 많이 받게 하고, 악을 대적하여 순교까지도 하게 한다. 또한 지식은 영생을 얻기 위해 믿을 것과 믿지 말 것을 분별케 한다. 그리고 공경은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하게 하며, 경외는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질까 봐 걱정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5. 성령 특은(聖靈特恩) : 지금도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도 공동 이익을 위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한 바(1고린 12,7-10) 있지만, 특은은 개인보다 단체를 위해 주어진다. 그런데 이 성령의 특별한 은총(特恩, Charisma)은 보다 두드러진 하느님의 은혜이다.
예를 들어 예외적인 사목적 능력, 밝은 지혜, 현명한 통찰력, 뛰어난 예술 활동, 훌륭한 교육, 탁월한 일생 등이 그것이다. 종종 이러한 은혜는 개인보다 단체나 대중에게 활기를 준다. 이는 공동체의 중요성과 단체에 속한 개인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자각케 한다. → 카리스마
6. 견진 성사의 전례 : 견진 성사는 주교나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사제가 행한다. 그리고 사제는 임종자에 한하여 견진을 집행할 수 있다. 전례 중 주교는 먼저 손을 펴 들고 성령 칠은을 받도록 기도한 다음,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도유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항상 머무르시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증거할 용기도 주시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주교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축성된 성유를 이마에 십자형으로 바를 때, “(아무)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때 견진자는 “아멘” 하고 답해야 한다. 또한 이어서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면, 견진자는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답한다.
◆카리스마◆
카리스마란 그리스어로 은혜, 은사, 선물 등을 의미하며, 성령의 특별한 은혜 혹은 은사를 말한다. 넓게는 모든 하느님의 은혜를 말하나, 좁은 의미로는 성령께서 각별한 호의로 내려 주시는 특별한 은총, 즉 특은(特恩)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기적, 예언, 영의 식별 등이 그것이다.
이는 인간의 공로와는 관계없이 주어지는 특별한 은사이다(로마 5,15; 1고린 7,7). 카리스마라는 단어의 복수형은 그리스도 교회에 봉헌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주어진 특별하고 구체적인 은사를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의 영이 인간에게 내릴 때, 그 인간에게 특별한 능력이 주어져,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하였었다(창세 41,38; 신명 34,9). 교회 헌장(12항)은 “이러한 은사는 이례적인 것이건, 보다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이건 모두 교회의 필요에 적합하고 유익한 것이기에, 감사와 위안을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용어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