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본질이란 참眞된 몸體입니다 이 몸은 일만 가지 교화의 영역에 은근히 계합하여 다 어울립니다 참된 몸이라 이름은 붙였으나 찾아보면 보이지 아니하며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세계는 이것이라 할 수 없고 말로는 여러 가지로 표현하나 그 표현이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참된 몸 곧 마음이 경직되어 있다면 과부족에 들어맞는 게 없습니다 세모와 네모가 들어맞지 않듯 서로가 서로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엄 세계에 거부는 없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하더라도 만물을 덮어줌에 부족함이 없고 한낮 햇살의 밝기라 하더라도 너무 밝다는 말은 붙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매우 자연스러우니까
한낮 햇살의 밝기가 얼마나 될까요? 1의 세제곱미터가 1kW입니다 태양으로부터 1AU를 날아온 밝기가 그 정도니 놀랍지 않나요? 한밤중 가정에서 이 밝기로 불을 켜면 전기료 오른다며 야단법석이겠지요 아무튼 좀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다소 밝으면 밝은 대로 둔 채 아주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화엄의 참된 본질은 부드러움입니다 그릇 하나를 만드는 데 있어서 첫째 흙이 있어야 하고 둘째 물이 있어야 하며 셋째 불이 있어야 하고 넷째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그릇은 절대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지수화풍이 다 갖춰져 있더라도 이를 버무릴 만한 솜씨가 없다면 그릇은 만들어지지 않지요
장인의 솜씨가 참眞된 본질體입니다 참된 본질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고 하여 몸소 건반을 두드리지 않는데 피아니스트의 솜씨가 눈에 띌까요 붓을 들지 않은 화가에게서 그의 솜씨가 저절로 그려질까요 마음의 세계도 분명 그와 같습니다 장인의 솜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내재된 솜씨를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명진체冥眞體가 법신의 세계라면 현덕상顯德相은 보신의 모습입니다 축구 선수에게 운동장이 없고 함께 겨룰 상대가 없으며 축구공도 주어지지 않은 채 솜씨를 보여달라면 가능할까요 누구에겐가 보시布施를 하고 싶은데 이를 받을 대상이 아무도 없다면 과연 나눔의 실천이 가능할까요 덕상德相을 드러내고 싶더라도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는 불가합니다
본질體과 모습相과 쓰임새用를 두고 불교에서는 삼대三大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흙이 준비되어 있고 흙을 이기는데 필요한 물이 있으며 그릇을 구울 화덕이 갖추어져 있고 불의 온도를 유지할 바람이 있더라도 장인이 솜씨를 드러내지 않으면 그릇이 이루어질 수 없듯이 체상용體相用 삼대는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삼대三大라 표현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