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년(?) 전에 <가세끼>라는 일본 영화가 방영되었다. 우리말로는 <化石>이라는 뜻이다. 50대의 한 사나이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 사람은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일약 재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유럽 여행 중에 동행한 자기 비서에게 걸려온 의사의 전화를 우연히 도청하다가 자기의 병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잘 치료해야 앞으로 1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과 좌절과 자포자기 속에서 그는 자기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죽음을 1년 앞두고서야 비로소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인생을 헛 살아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자기가 정신없이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온 모든 일들이 진정 자기 인생을 위한 삶이 아님을 알고 후회한다. 돈을 벌기 위하여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많은 귀중한 일들을 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귀에는 죽은 아내가 들려주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말씀을 강하게 느겼다. 문득 자신의 인생에서 이웃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묻어뒀던 기억 속의 일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를 키워 준 계모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리고는 고개를 숙인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만나 하룻밤을 지새우며 형제의 우애를 되새겨 본다. 수십 년 만에 전쟁터에서 사귄 옛 친구도 방문힌다.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에 잠긴 채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제목을 <화석>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흔적이 남을 뿐이다. 어떤 흔적으로 남고자 하는지? 그저 고달픈 인생 나 하나만을 위하여 살다가는 흔적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따라 남을 위한 인생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의 존재로,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사는 흔적인가?